[20대 그들이 사는 세상] 꿈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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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현실이다

나동현/ arbeitsmann@naver.com



며칠 전 일이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간, 선생님이 각자가 졸업 이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흐르는 침묵’을 깨고 싶던 나는 먼저 말문을 열었다.

“…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상태로 살아간다면 제가 노숙자를 보며 하는 생각, ‘그래 저것이 나의 미래다.’ 이 생각이 결코 극단적인 생각만은 아닐 거라는 점입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며, 혼자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찍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의 학생들은 서양의 학생들에 비해 인생에 대한 고민이 늦게 오는 편이에요. 10대 때 사춘기가 온다고 하는데, 저만 봐도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은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중후반에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자책하지 말고, 힘내세요. 건투를 빌어요.”

나의 ‘간증’과 선생님의 격려에 힘을 얻은 탓인지, 이후 학생들은 봇물 터지듯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의 대부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아… 이것이 바로 오바마가 극찬한 한국 교육의 힘인가.’

그런데 그런 학생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반예을 씨가 바로 그 학생이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학생 신분과 이별한다는 그녀는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고등학생 시절 제가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사회, 국사, 근현대사였어요. 그 중에서도 정치에 가장 재미를 느꼈고요. 시간에 따라 바뀌는 정치체제가 어떻든 결국 국가의 굵직한 결정들은 정치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거든요. 그래서 고민 없이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이제는 조금, 그런 결정들이 이루어지는 원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졸업이네요.”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면서 “국가의 바람직한 결정을 만들 수 있는 보편적인 원리를 알고 싶었다.”는 그녀는, 학회와 대회에 참가하며 그 궁금증을 해결해갔다고 한다.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외교안보학회라는 학교 안 공부모임에 가입해서 활동했어요. 매주 학생 스스로 발제와 토론을 하면서 전공에 대한 이해도 높이는 게 좋았고, 정말 좋아서 국제관계학을 하는 선배, 동기, 후배들과 만나는 것도 즐거웠고요. 항상 같은 학우들과 토론하고 또 특정 교수님께 지도받는 것이 사고의 획일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교외 토론대회도 참가했어요. 같은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점에서 무척 도움이 되었어요.”

그렇게 바쁜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녀는, 3학년 2학기에 ‘결단’을 내린다.

“주위에서 그런 저를 보고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했어요. 취업 준비만 해도 벅찬 시간에 무슨 생각이냐고….”

사람들에게 우려 섞인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그녀가 갑자기 복수전공을 신청한 것 때문이었다.

“보통 복수전공은 2학년 때 신청하는데, 저는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신청했어요. 4학년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성적이나 학업성취에 부담이 많았고, 지금 하고 있는 것들만 유지해도 벅찬 일상인데 과연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무리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든 것도 사실이었어요.”

그럼에도 그녀가 복수전공을 신청한 것은, “그냥 그렇게 자신의 청춘을 살아지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복수전공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어였어요. 그때 당시 6개월 뒤를 목표로 잡은 프랑스 교환학생을 염두에 둔 것이었죠. 저는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어요. 하다못해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도 접해본 적이 없었죠. 그래서 프랑스 교환학생으로 선발되기 위해, 사설 어학원뿐만 아니라 학교 안에서도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위해 3학년 2학기였지만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된 때문인지 일단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학기 초 가지고 있던 불안과 부담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귀찮거나 괴롭기보다는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죠. 그래서 학교에서도 프랑스어에 몰입하고, 학교가 끝나면 어학원에 가서 또 열심히 공부했어요. 자랑 같지만 그래서 단시간에 프랑스어를 남들보다 빨리 향상 시킬 수 있었고요.”

그렇게 한 학기 동안 프랑스어에 몰입한 그녀는 프랑스 교환학생 선발에 합격한다.

“친구들이나 교환학생 선발 당시 면접관들이 저에게 물어봤던 것이 왜 프랑스에 가려고 하느냐였어요. 제가 프랑스어를 배운 것도 졸업을 1년여 앞둔 시점이었고, 교환학생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사실 프랑스 교환학생은 서류상의 목적이었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요. 프랑스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그 일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고요. 만약 이대로 졸업을 하게 된다면 그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그 기회를 제가 만든 거죠.”

그렇게 교환학생에 선발되어 프랑스에 간 그녀가 지낸 곳은, 한국인들에게 와인의 산지로 유명한 보르도 지역이었다.

“저는 프랑스의 서남부에 위치한 보르도에서 지냈어요. 보르도는 최대, 최고의 와인 산지로 유명하지만, 또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기도 해요.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가깝고 겨울에도 따뜻하여 살고 싶은 도시로 손꼽히기도 하고요.”

프랑스 교환학생 준비로 바쁜 일상을 보내던 한국과 비교해서, 프랑스에서의 일상은 살면서 가장 단순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를 만들어 먹고, 잠시 공부를 하거나 음악을 듣다가 학교에 갔어요. 수업은 대체로 오후에 끝나는데, 방과 후에는 시내 구경을 하거나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을 했어요.”

하지만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공부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프랑스어는 하면 할수록 재미없다가 아니라 더 잘하고 싶다는 동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꼭 성적 때문이 아니라 제가 좋아서 열심히 했죠. 그 덕분인지 교환학생으로 처음 갔을 때는 프랑스어 실력이 좋지 못했지만, 체류기간이 끝날 때쯤 응시한 프랑스 어학자격증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어요.”

그렇게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프랑스 사회의 문제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프랑스에 대해 일종의 환상이나 동경 같은 것이 있었어요. 프랑스를 소개하는 책들이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잖아요. 그런데 프랑스에서 살면서 겪게 되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때문에 힘들었어요. 또 지금 프랑스는 높은 실업률과 이혼율, 고령화, 비단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알제리 출신이나 아프리카계에 대한 차별로 몸살을 앓고 있거든요. 거기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마다 느끼는 비효율성도 문제였고요.”

그럼에도 그녀가 프랑스에 살면서 주목한 것이 있다고 한다.

“프랑스도 완벽한 사회는 아니에요. 극우주의도 있고, 인종차별도 있어요. 그렇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어 제가 공부하던 대학의 도서관이나 도시의 공공도서관은 점심시간에 아예 문을 닫아요. 그것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도서관 관리자도 여유롭게 점심시간을 누려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죠. 그리고 저녁 8시가 되면 폐관을 해요. 이것 또한 공부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또, 프랑스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되도록 숙제를 내주지 않고 학교에서 주어진 시간에 맞춰 공부를 가르치려고 해요. 만약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면 그 학생 개인이 처한 가정환경에 따라 공부 기회가 달라진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프랑스 직장인들도 주말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므로 업무용 연락을 하지 않을뿐더러, 만약 주말에 업무용 연락을 했는데 담당자가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하지 않아요.”

그런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그녀는‘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도서관은 밤 12시는 물론이고 24시간 개방을 하는 곳도 있잖아요. 또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하루 종일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매일 야근에 주말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데 한국이 그렇게 할애하는 시간만큼 프랑스보다 잘 살고 행복한 나라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꼈어요. 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 개인보다는 전체에 집중하고 양으로 승부했던 과거의 높은 성과를 부정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런 앞 세대의 노력과 희생이 지금의 경제발전을 가져온 거죠. 다만, 우리도 이제는 사람이 살아가는 보편적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실천하는 사회를 추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으니 한 번 그런 사회를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또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한층 넓어졌다’는 반예을 씨. 그것보다 더 큰 수확은 ‘본래의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라고 한다.

“저의 주변 한국 사람들 중에는 제가 꿈을 이루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하면 딱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아요. 어른들은 물론 친구들 중에서도, 그런 비현실적인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얼른 땅에 발을 붙이며 살라든가, 헛똑똑이 라는 말을 하기도 해요. 프랑스에 가기 전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정말 내가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잘못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끼곤 했었어요. 그래서 주위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상처도 잘 받았고요. 하지만 제가 짧은 기간 동안 공부해서 합격한 교환학생시험, 오로지 제가 열심히 벌어서 마련한 돈으로 다녀온 프랑스 교환학생, 이런 여정들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경험으로 꽉 채워진 현실이거든요. 그 때 그 순간 나의 꿈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 현실적으로 살았던 나날이라고 생각해요.”

“프랑스와 같이 한국 사회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는 반예을 씨. 그녀의 바람만큼이나 그녀의 꿈도 범상치가 않다.

“한 국가가 어떠한 위기를 겪고 있을 때 그 사회에 응축된 신뢰도가 높으면(공정사회) 위기 속에서도 구성원들이 불안에 떨지 않을뿐더러 그들에게 닥친 위기를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다고 해요. 아직 구체적인 직업은 정하지 못하였지만 이러한 사회 구성원 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 그녀의 새로운 꿈이 현실이 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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