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그들이 사는 세상] 소년이여.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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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여.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인생관이 바뀐 그를 만나다


글 나동현/ arbeitsmann@naver.com



흔히 젊었을 때는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한다. 그것은 젊은이야말로 왕성한 호기심과 다른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개방성, 그 둘을 뒷받침해주는 체력과 열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넓은 세계에 나가서 그 곳의 다른 삶을 마주하고, 그것에 깊은 감명을 받고 돌아온 후 자신 나름의 인생을 살고 있는 20대.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야망보단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열정에 주목하라는 그를 만났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권민혁 씨. 어렸을 적부터 넓은 바다를 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는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배낭을 둘러메고 바다를 건넜다.

 

“집이 바닷가에 맞닿아 있어요. 어릴 때부터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저 바다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궁금했어요. 특히 입시공부로 힘들었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는 했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부산 앞바다가 보였는데, 날이 좋으면 저 멀리 쓰시마 섬이 보였거든요. 쓰시마 섬이 보일 때면 조금만 견디자, 입시만 끝나면 바다를 건너 저곳을 가보자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어요.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맞은 첫 여름방학 때 일본으로 떠났죠.”

 

여행을 결정하고 불과 일주일 만에 일본으로 떠난 그는 일주일동안 일본 큐슈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된다.

 

“20년을 외국 한번 나가본 적 없던 제가 별다른 계획도 안 세우고 무작정 떠난 곳이 일본이었어요. 말이 안 통하는데 어쩌나, 물가가 비싸다는데 어쩌나, 어쩌나 타령을 하면서 불안감이 가득 담긴 발걸음으로 배에 올랐던 게 일주일 전이었는데요. 막상 일본에 도착하니 별것 아니었어요. 이방인에게 호의적인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고, 제가 어렸을 적부터 궁금했던 바다 건너에 이렇게 번화한 도시가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어요. 또 한국과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고요.”  

 

오로지 대학이라는 목표만을 보면서 살아왔던 그에게 첫 해외 경험은 강렬하게 기억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이후로 일본만 4번이나 더 다녀왔다고.

 

“부산에서는 일본이 서울보다 더 가까워요. 그리고 처음 방문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때문인지 자꾸 일본으로 발걸음이 향하더라고요. 두 번째 부터는 아예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고요.”

단지 쇼핑하고 사진만 찍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일본여행을 하면서 대학생활의 목표 하나를 세웠다고 한다.

 

“일본을 다니면서도 그냥 생각 없이 다니지는 않았어요. 저는 여행을 한다고 하면 단지 풍경만 보는 것은 올바른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울 점은 없는지, 다른 점은 무엇인지와 같이 끝임 없이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보다 앞서 사회현상을 겪고 그게 문제가 되고, 또 풀어나가는 일본을 보면서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큰 세계란 바로 미국이었다. 그저 적당히 놀다가 군복무가 끝나고 복학하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던 그에게 미국은 목표가 되었다.

 

“제 전공은 국제법무였어요. 하지만 국제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영어도 잘 못하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한 관심도 없었어요. 학과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주는 혜택도 무궁무진했지만 관심 밖이었고요. 그런데 일단 미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꼭 가자라고 결심을 하게 되자 달라 보이더라고요.”

 

좀 더 폭넓고 깊이 있는 세계를 경험하는데 도움이 될 영어와, 수많은 민족과 인종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미국. 마침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지자체와 연계하여 학생들이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날의 방황과 방탕으로 당장 지원하기에는 무리였다고.

 

“영어를 배우려고 가고 싶은데 영어를 못한다고 거기에 못 가는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제 인생에서 20대 말고는 언제 넓은 세계를 경험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꼭 미국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단 제가 번 돈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배우고 오자라고 결심했어요.”

하지만 당장 수중에 돈이 없었던 그.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2년에 걸친 긴 계획을 세우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너무 조급해하지는 않았어요. 주변에서는 유행처럼 어학연수를 한번 씩은 갔다 오는데 준비 없이 떠나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놀다 오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2년 동안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어요. 모은 돈은 펀드와 환차익을 통해 저렴하게 아낄 수가 있었고요. 또 치밀하게 어디를 가서 어떻게 공부하고 생활은 어떻게 해야겠다는 등의 계획을 세우고, 그걸 거기 가서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했던 덕분에 실속 있는 어학연수를 할 수 있었어요.”

 

미국 뉴욕에서 1년 동안 지내면서 영어를 배웠다는 권민혁 씨. 특히나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세계 최대의 도시에서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뉴욕을 택한 것은 일단 세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고, 역동적인 곳이라는 생각에서였어요. 더구나 워낙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인만큼 직접 그 나라를 가보지 않아도 뉴욕 안에서도 풍부한 각국의 문화를 접할 수가 있고요. 물론 다민족 도시고 그들 나름의 공동체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 데는 걸림돌이 된다는 사람도 있어요. 코리안 타운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영어를 쓸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요. 하지만 저는 다양한 스타일의 영어를 접할 수 가 있다는 점, 또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뉴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학연수를 가서 가장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장기여행을 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언제 여기에 올 수 있겠냐는 생각으로 주말에는 주말이라고, 수업이 끝나면 수업이 끝났다고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하고, 그게 반복되다보면 어느새 공부는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권민혁 씨 또한 그 점을 경계했다고 한다.

 

“제가 다녔던 어학원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63층에 있었어요. 밖을 보면 뉴욕의 전경이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말로만 듣던 그 곳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소위 말해서 마음이 붕 뜰만했죠. 거기다 뉴욕에는 한국의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즐비했어요. 어학원에는 한국인 친구들도 많았고요. 정말 한방에 실패하는 어학연수생으로 갈 만한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보다 더 저를 바짝 몰아붙였어요. 수업시간에는 수업에 집중하고, 끝나면 곧바로 현지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어요. 주말에는 컨벤션 센터에서 카펫을 바닥에 고정시키는 일을 했고요. 그러면서도 밥 먹을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서 매일 햄버거로 한 끼를 때웠어요. 그렇게 어학연수 기간의 대부분을 수업과 자습과 일로 보냈고, 또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는 어학연수가 끝나고 나서 캐나다 퀘벡에서 미국의 애리조나, 샌프란시스코까지 여행을 갔어요.”

1년여의 시간 동안 미국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돌아온 그는, 바라던 학교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된다.

“토익점수가 월등했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미국에서 현지인들과 일하면서 그 사회에 부딪쳐봤던 경험이 선발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렇게 한 번 더 미국으로 건너간 그가 지낸 곳은 뉴욕과는 정반대인 샌디에이고였다.

“처음에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샌디에이고의 토마스 제퍼슨 로스쿨에서 공부하게 되었어요. 거기서 공부하면서 인턴도 경험했고요.”

 

로스쿨 내에서 영어로 된 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과 한국인 학생과 관련된 업무를 지원하며 어학연수 시절과는 다른 계층의 미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그. 또한 어학연수 때와는 다르게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바쁘게 사느라 어학연수 시절에는 놓쳤던 미국의 일상에 더욱 집중했다고 한다.

 

“저를 보내준 학교와 지자체에서 지원금이 나오다보니 어학연수 시절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미국 사회를 좀 더 자세하게 관찰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대한 국가잖아요. 뭔가 다른 점이 있고 배울 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미국사회를 바라보기 시작한 그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미국사회의 특징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이야말로 승자독식의 가혹한 신자유주의 사회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매일같이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것을 봤는데 뭔가 한국과는 다른 점을 발견했어요. 거긴 쓰레기를 쓰는 사람과 그걸 받아서 치우는 사람을 따로 두는 거 에요. 한국이라면 비효율적이네 인건비가 많이 나가네 하면서 한명을 쓰고 그 사람에게 노동 강도를 높이라고 하겠지만 거기서는 굳이 두 명을 써서 그 일을 분담시키는 거 에요. 그걸 보면서 미국이라고 꼭 효율성만 따지는 것은 아니구나. 이런 식으로 사소해보이지만 일자리를 창출해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에피소드 말고도 그가 바라본 미국사회의 특징은 또 많다고. 특히 그 중에서도 그의 인생관이 바뀐 미국 사회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미국사람들은 자신들 삶의 초점을 자신에게 맞춰요. 한국에서는 자신의 삶도 사회적인 목표와 기준에 맞추잖아요. 그러다보니 뭔가 성취해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낙오한다고 손가락질하고. 스스로를 비관하고 그러잖아요. 미국은 그렇지가 않은 느낌이었어요.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자신의 삶, 그리고 자기 가족이 더 중요하며, 미국 사회 또한 그런 그들의 가치관에 맞게 시스템을 만들어놓았어요.”

 

자기 인생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는 미국인의 인생관에 주목했다는 그. 한국에 돌아온 이후 그의 삶은 그렇게 변화했다고 한다.

 

“사회의 가치관보다는 제 자신의 가치관에 더 무게를 두고 움직이게 되었어요. 물론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고, 특히나 한국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저 또한 방황과 고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회적인 기준과 자신의 인생관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한국의 기준에 맞춰 직장을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고.

 

“보험회사에 들어갔어요. 연봉은 꽤 좋았어요. 높고 세련된 빌딩 안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항상 깔끔한 정장을 입고 다니고요.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출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괜찮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셈이었죠.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싶더라고요. 새벽부터 출근해서 밤늦도록  하루 종일 일하면서 사는 게요. 제가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말이죠. 그저 연봉이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티면서 사는 게 정말 내가 잘 사는 건가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났어요.”

 

철이 없다는 주변의 지적과 취업난 속에서 자신이 너무 배가 부른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는 그. 하지만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인생관으로 불안한 시기를 버텨내고, 지금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여행과 레저를 좋아하고 학보사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아웃도어와 관련된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연봉은 보험회사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저는 평소 제가 좋아하던 분야인 글과 아웃도어를 접목시킨 제 직업에 대해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꼭 잡지기자보다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콘텐츠 제공자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현재 잡지사에 있지만 인터넷 콘텐츠 부에서 일하고 있고, 상품과 아웃도어 정보에 대해 관련 기업들과 협의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자신의 분야에서 노력해 기반을 확보하고, 자신이 가장 우선하는 여행과 가족에 초점을 두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권민혁 씨. 그는 주위의 동생들에게도 틈만 나면 넓은 세계를 경험해 보라며 권유한다고 한다.

 

“요즘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취업준비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불과 몇 년 사이에 취업하는게 더 힘들어졌다는 의미겠죠. 그렇지만 저는 20대야말로 다양한 것을 경험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뭘 해봐야 그게 자신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알잖아요. 책으로만 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봐요. 무턱대고 돈 많이 버니까 어른들이 인정해주니까,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으니까 이걸 하자하는 그런 한국식 기준은 젊을 때만이라도 지양했으면 좋겠어요. 젊으니까요. 그래서 전 말하고 다녀요.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보단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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