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그들이 사는 세상] 바쁘고 고되지만 행복해요. 내 인생을 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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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고되지만 행복해요. 내 인생을 사는 거니까.


- 여성 종합지 기자 전미희 씨


글 나동현/ arbeitsmann@naver.com


미용실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두꺼운 여성 종합지. 광고가 반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많은 주제와 기사를 매달 쏟아내는 여성 종합지를 펼쳐들 때면 매번 드는 의문이 있다.


‘대체 이 많은 걸 언제 기획하고, 섭외하고, 취재하고, 기사로 만드는 거지?’


혹시나 해서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수를 확인해보면 그렇게 많지도 않다. 그럼 이 사람들은 휴일도 없이 밤낮 다음 달 잡지를 만들기 위해 사는 걸까?


잡지가 너무 좋아 매순간 잡지만 생각하는 광인이거나, 매일 밤샘을 해도 버틸 수 있는 철인이 아닌 바에야 대체 이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



현재 한 여성 종합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전미희 씨. 뭔가 일반적인 직장과는 다른 분위기와 시간에서 살 것 같은 여성 종합지 기자의 실제 삶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보통 여성지 기자라고 하면 잡지에서 비춰지는 이미지 때문인지 자유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자유로운 건 인정해요. 일반적인 회사처럼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고, 외근도 많고, 복장도 자유로우니까요. 하지만 저희가 누리는 자유라는 것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자유란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 낼 수 있을 때 따르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부담스럽기도 해요.”


그럼 현재 전미희 씨가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저는 여성 종합지 안에서도 생활팀에 있어요. 생활팀에서는 주로 뷰티 기사를 쓰는데요. 다루는 주제도 그렇고 실리는 잡지의 성격도 그렇고, 내용은 당연히 좋아야 하지만 기사의 시각적인 면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해요. 그래서 감각이라는 것을 길러야 하죠. 그리고 잡지라는 것은 단지 글로만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나 그걸 포장하는 디자인적인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팀과의 협업이 꼭 필요해요.”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매달 잡지가 나올 때마다 겪는 거지만, 제가 애초에 구상했던 시안과 실제로 나온 기사의 차이를 볼 때마다 자괴감을 느껴요. 저의 기획과 구성이 다른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니까요. 거기다 감각이란 것도 무슨 시험공부 하듯이 암기하고 문제를 풀어보고 해서 키워지는 게 아니에요. 일단은 다른 잡지들을 많이 보면서 감각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한권의 잡지가 나오기 위해서 잡지기자들은 어떤 준비를 하는 걸까?


“잡지기자들끼리 흔히 하는 말이 있어요. 남들은 하루 단위로 살지만 우리는 한 달 단위로 산다고요. 잡지기자는 다음 달 잡지를 만들기 위해 살아요. 전쟁 같던 다음 달 마감이 끝난 첫째 주는 조금 쉬엄쉬엄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하지만 몸은 편할지 몰라도 머리는 복잡하죠. 다음 달 기획을 해야 하니까요. 기획회의에서 방향이 잡히면 각자 기사가 배당 되요. 그럼 제가 맡은 기사를 진행해나가요. 저는 뷰티 기사를 많이 쓰기 때문에 화보 시안을 생각하거나 제품 협조 공문을 보내요. 이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아요. 기사의 정보가 우선이냐 이미지가 우선이냐의 갈등이 생기거든요. 아직도 이 부분에서는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이렇게 둘째 주가 흘러요. 이때까진 야근이 없어요. 보통 다른 직장처럼 끝나죠. 하지만 셋째 주가 되면 진정한 잡지기자의 일이 시작 되요. 취재하러 촬영하러 다들 정신없어요. 그래서 사무실이 텅텅 빈 날이 많죠. 그리고 마감 주가 되면 지옥을 느껴요. 집은 잠만 자러 가는 곳이 되고, 너무 늦어 차가 끊기면 사무실에서 밤을 새기도 하죠.”


그렇게 “좀비처럼 마감을 끝내”고 나면 다시 앞서 말한 생활이 반복된다는 잡지기자의 일상. 그래도 다른 직업과 달리 유명인을 만나고, 패션쇼에 가고, 신제품을 써보는 등 바쁘고 고되지만 화려함 또한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때문인가요? 제가 여성 종합지에 다닌다고 하면 명품으로 도배하고 회사에 나갈 거라는 오해들을 해요. 하지만 실상은 매일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습기를 머금은 지하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해요. 취재를 위해 행사장에 가면 이 직업의 화려한 면을 종종 보곤 하죠. 유명하고 높은 사람들이랑 인터뷰를 하고, 유명한 곳도 가보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공짜로 식사도 하고……. 하지만 그건 제 것이 아니잖아요. 이쪽은 급여가 적어요. 경력을 차근차근 쌓으면 차후의 연봉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초봉은 아주 적어요. 높은 연봉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화려하게 보이는 겉모습에만 이끌려 들어오면 많이 실망할거에요.”


하지만 바쁜 일상과 적은 급여에도 묵묵하게 여성 종합지 기자로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전미희 씨. 그녀가 잘 버텨나가는 것은 바로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학교 다닐 때부터 막연하게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신 있던 분야를 전공으로 했고, 글 쓰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국문학을 함께 공부했죠. 그런데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소설이나 시를 쓸 능력도 자신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 시나 소설보다는 세상과 마주하는 글을 쓰고 싶었죠. 그래서 기자가 떠올랐는데, 또 저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여성 종합지에 끌렸어요.”


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생각했던 것과 실제 겪는 것의 괴리에서 오는 갈등은 없는 걸까?


“이쪽은 이직이 잦은 직종이에요. 그래서 항상 앞날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제가 기자로서 자질이 있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고요.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연봉이란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끔은 제가 하는 일에 회의감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버틸 수 있는 것은 제가 쓴 기사가 도움이 되었다는 독자 엽서 덕분이에요. 제가 한달 동안 머리로 고민하고 발로 노력해서 쓴 글을 누군가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거잖아요.”


잡지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또 꿈과 현실, 아니면 꿈과 밥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해줄 말이 있다고.


“전 어릴 때부터 저와 제 삶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언젠가 진중권씨가 한 말이 꽤 와 닿았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라고요. 인터넷이 발달해서 워낙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럴수록 고민하고 사유하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고 생각해요. 뭐가 진짜 필요한 정보가 아닌지를 판단해야하니까요. 그래서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 덕분인지 제 인생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 됐어요. 요즘 20대들은 힘들다고 하잖아요. 고민도 많고요. 그런데 저는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어떤 삶을 살든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고요. 제발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인생을 길게 보고 살았으면 해요. 내 인생이니까.”


다시 좀비처럼 마감을 끝내야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녀. 하지만 누구의 인생도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이기에 그 피곤한 시간들마저 생명력 있는 시간들로 기억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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