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촛불집회와 정당 정치-정당체계의 민주화와 다원적 정당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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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촛불집회와 정당 정치

정당체계의 민주화와 다원적 정당 정치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parsh0305@gmail.com

정치적 시민의 탄생
2016년 촛불집회는 2008년 ‘광우병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에 이어 8년만의 대규모 집회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사이의 변화는 흥미롭다 못해 경이적이다. 2008년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반(反)정치적 혹은 반(反)정당적 열정으로 시작했다. 촛불집회의 현장에서 정당과 정치인들은 발언권을 갖지 못했고, 정당의 이름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비난받았다. 대의민주주의는 회의의 대상이었고 의회 정치와 정당, 선거의 사이클은 민주주의를 시민에게서 빼앗아 정치엘리트들의 세계로 되돌리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2016년 촛불집회는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시민적 실천, 그것을 위한 정치적 진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집회였다. 2008년 촛불집회와는 달리 2016 촛불집회의 시작은 “정치여 오라!”, “정치인들 뭐 하냐? 왜 함께 하지 않느냐?”였으며, 이어서 “국회, 정당들 뭐 하냐? 빨리 대안 내놔라!”로 이어졌다. 2016년 촛불집회가 누구도 예기치 못한 정치적 성과를 낳은 것은 한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손에는 정치를 부여잡은, (최장집 교수의 평소 표현을 빌면) “양손잡이 민주주의”를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16년 촛불집회는 “정치적 시민의 탄생”이라고 부를 만한 대변화를 동반했다.

2016년 촛불집회에서 보수 언론과 종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놓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20대 총선이다. 당시 야권이 승리하지 못했더라면 2016년 촛불집회는 그처럼 놀라운 확산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20대 총선 결과에 숨겨져 있던 변화의 가능성은 촛불집회 과정에서 강렬하게 표출되었다. 하나는 정당체계 오른편의 변화였는데, 그것은 기존에 집권당을 지지했던 보수적 시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친박 내지 박근혜식의 정치관에 깊은 회의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집권당의 참패, 특히 강남 지역에서 집권당에 대한 급격한 지지 이탈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민주대연합론’의 붕괴라고 표현할 만한 일이다. 강한 구체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야권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 보통 ‘민주 대 독재론’으로 단순화되었던 정치관 역시 부정되었다는 말이다. 당시 야당이 분열되었음에도 수도권과 특히 서울에서 야당이 압승한 것은 기존 야권의 정통이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변화는 촛불집회 국면에서 더 전면화되어 나타났는데, 이에 대해선 뒤에서 온건다당제 개념을 통해 설명하겠다.

입법부와 의회의 재발견
민주주의란 군주권력도 아니고 귀족권력도 아닌 평민원, 즉 입법부가 제1의 권력기관이 되는 것을 뜻한다. 왕과 귀족의 계급 권력을 폭력으로 부정하고 입법부만을 시민 권력으로 인정했던 200년 전의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이를 피로써 실증한 바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통령중심제 역시 입법부의 강함을 전제로 한 것이었고, 그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든 민주주의란 입법부가 중심이 되는 정치체제가 아닐 수 없다.

1960년 6월 15일부터 1961년 5월 16일까지 불과 11개월간 존속했던 제2공화국을 제외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입법부가 중심이 된 적은 사실상 없었다. 처음부터 국가는 강력했다. 행정부와 관료제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고, 이는 민주화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집권당의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 “국가를 장악한 이후 만들어지거나 국가로부터 파생된 현상”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 시대의 자유당이든 박정희 시대의 공화당이든 전두환 시대의 민정당이든 모두 “국가를 장악한 이들이 사후에 만든 정당”이었다. 정당이 국가나 정부를 만들고 책임 있게 운영한 사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박근혜정부, 이명박정부처럼 대통령 이름을 붙여 정부를 말할지언정, 한나라당 정부 내지 새누리당 정부라는 표현이 어색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라고는 하나 새천년민주당 정부, 열린우리당 정부라는 명칭을 잘 쓰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언론들이 입법부를 우습게 알고 조롱하는 정치 담론을 양산해 왔던 것도 큰 몫을 했다. 사실 주류 언론과 지식인들의 반정치 담론의 핵심은 국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입법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 탄핵 국회 가결은 큰 전환점이다.

이번 사건은 “책임 정치의 기반이 없는 대통령중심제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그러면서 입법부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는 구조적으로 입법부 즉 의회의 역할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변화다. 적어도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시민들은 대통령 권력의 부재를 받아들였고 대신 입법부가 정국을 통제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이는 결코 경시할 수 없는 대변화라고 본다. (흔히 내각제라고 잘못된 개념으로 표현되긴 하지만) 의회중심제로 정부형태가 사실상 그 첫걸음을 옮겼다는 것이다.

정당의 변화와 민주주의 발전


✽ 2016년 12월 제5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어린이가 아빠의 목마를 타고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주의의 중심이 대통령과 행정부가 아니라 입법부와 정당이라는 관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대통령은 물론 검찰 등 국가 기구의 권력을 축소, 재편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업이 되었다. 곧 있을 대선 국면에서 어느 정당, 어느 후보도 대통령 권력의 축소를 공약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을 말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정부를 맡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요컨대 ‘청와대의 민주화’는 물론 내각과 행정부 운영 역시 의회 내지 의회를 주도하는 정당 내지 정당연합에 맡겨 책임 정치를 실현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사회적 합의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강력한 대통령, 강력한 청와대”를 통해 개혁 정치를 주도하는 접근이 이제는 복고적 내지 퇴행적 관점이 되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짧은 기간 동안 야3당이 중심이 된 의회정치의 역할 또한 특별히 평가할 만하다. 이는 ‘야3당 체계’라고 이름 붙일 만한 새로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의지와 상관없이 탄핵이라는 “입법부의 헌법적 권한”을 적어도 정치적으로 잘 마무리한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는 여당의 성격을 “국가로부터 파생된 정당”으로 보고 야권은 그 잔여범주 내지 그에 가까운 한계를 보였다고 비판하면서, 한국의 정당정치를 “서로에 대한 잘못 때문에 존재하는 양극화된 체계”로 규정해왔는데, 이번 과정을 지켜보면서 “온건다당제로의 길”을 실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당이 하나인 것보다 3당인 것이 훨씬 더 낫다는 판단을 했고,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합의를 만들어가는 다당제의 긍정적 효과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보았다. 단일야당 체계였거나, 아니면 민주당과 국민의당처럼 서로를 무한 견제하는 두 야당만 있었다면 이런 변화는 어려웠을 것이다. 3당 내지 2.5당 체계의 역학적 효과가 꽤나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경험은 특별하다.

이런 변화를 발전, 내실화시켜 입법부가 제1권력 부서가 되는 ‘민주적 삼권분립의 길’을 가기 위해서라도 정당체계의 발전은 중요하다. 특히, 사회의 중대 갈등이 중심이 되는 정당 체계, 이른바 “(이념적으로나 계층적으로 실체적 차이를 갖는) 다원적 정당 정치”로의 길이 넓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 정당의 역할도 크다. 이번 촛불집회가 남긴 가장 큰 민주적 효과를 꼽으라면 필자는 한국의 정당체계가 1990년 3당합당의 그늘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을 들겠다. 만약 친박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구체제 세력이 과거 자민련의 경우처럼 소멸되는 경로로 가게 된다면 최소한 “민주화 세력의 범위 안에서 정당 체계의 오른쪽이 정립”된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작은 변화가 아니다. 향후 보수가 한국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퇴행시켰던 과거와 같은 냉전반공주의의 비이성적 정치동원 대신 다른 이념 내지 사회적 기반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압박에 노출되리라는 것, 이른바 ‘비박’일지라도 그런 변화를 통해서만 ‘정치적 시민권’을 인정받게 될 거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체계의 민주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병행해 진보 쪽의 정당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미에서 변화의 압박이 커질 것이고, 이는 전체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우호적인 일이라고 본다.

헌법의 정치적 발견과 개헌
그간 87년 헌법은 기성 정치세력들 사이의 타협의 산물 내지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정의되곤 했다. 또한 헌법은 법률가들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나 운위될 수 있는 어렵고 전문적인 담론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국면에서 달라졌다. 헌법은 촛불집회의 주요 국면 국면마다 새롭게 조명되었고, 헌법의 주요 원리나 내용은 대중적으로 멋지게 해석, 재해석되었다. 그야말로 헌법은 어려운 법조항이나 경직된 자구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해석’의 행위를 통해 살아나게 되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87년 민주헌법’이 그에 맞는 영혼과 정신을 갖기 시작했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간 필자는 대통령중심제와 양당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왔고, 따라서 양극화된 양당체계에서 보수-진보 양당체계로의 이행을 좀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여겨왔는데,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다른 가능성도 열어두게 되었다. 국회에서의 탄핵이 결정적이었고, 이를 야3당이 이끌면서 사실상 “정치적 개헌”이라 부를 만한 변화가 일궈진 것도 인상적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의회중심제로의 변화는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다당제 구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인식이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이런 조건 위에서 향후 새로운 정치체제로의 변화가 조금씩 진척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개헌은 이미 ‘정치적으로’시작되었고, 일정한 방향도 설정되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개헌론을 말하고 또 반대한다. 분명한 것은 정계개편을 위한 개헌(론)은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략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를 시민여론이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수구적 개헌론”이라고 정의해보자. 그렇다고 개헌론 자체를 반대하고 나서는 야권 일각의 입장은 기존 대통령 중심제로의 보수적 회귀 이상으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 역시 넓은 의미에서 “수구적 반개헌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두 접근보다는 실제 대통령 권력의 축소를 위한 개혁안이 먼저 나와야 할 것이다. 향후 행정부 및 내각 운영 역시 야3당 체제가 주도하게 된다면, 사실상 유사 연정 내지 연립정부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각 정당 내지 대선 후보들의 공약으로 이런 변화가 수용되고, 그 뒤 새롭게 출범한 신정부에서 정부형태나 선거제도, 검찰 문제를 포함한 포괄적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시작된다면, 실질적인 개헌 논의는 그때 비로소 정당성과 함께 시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촛불집회가 개척한 변화의 실질적 내용을 주목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개헌에 대한 제3의 시각으로서 “정치적 개헌론”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정부형태만 이야기될 일은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의회중심제와 온건다당제로의 변화는 선거제도의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야3당 체제가 대선국면에서도 유지된다면 온건다당제와 그에 맞는 선거제도 개혁의 실현 가능성 역시 높아질 수 있다. 그럴 때 개헌 문제는 지방분권을 포함해 더 폭넓은 내용으로 확대될 수 있고, 이런 논의의 자연스러운 연장선 위에서 우리에게 맞는 헌법을 모색하는 논의가 실질적 내용과 함께 절차적 정당성을 갖고 진행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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