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6월항쟁] 왜 기본소득인가? - 실질적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기본소득에 대한 상상

왜 기본소득인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기본소득에 대한 상상

김종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념관추진단 과장 ksun3@kdemo.or.kr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사람들은 노동시간을 단축할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쓰고, 사회봉사에 쓰고, 책 읽는 데 쓸 것이다. 사람들은 더 현명해질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민주주의의 기초다. 우리는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형식적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 뒷받침이 없다면 형식적 권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청 앞에서 집회가 열리는데 시청까지 타고 갈 교통수단에 대한 요금을 지불할 수 없다면 이 집회와 시위의 권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 카티야 키핑(독일 좌파당 공동대표)의 인터뷰 중에서

인상된 담뱃값만으로도 농민기본소득이 가능하다
2015년 담뱃값이 갑당 2,000원이나 올랐다. 이로 인해 2016년 거둬들이게 될 세수입이 13조 1725억 원에 달할 것이라 한다. 담뱃값이 인상되기 전인 2014년에 비해 6조 1820억 원이 늘어난 것이다. 담뱃값 인상에 대한 논란을 하자는 게 아니니 이렇게 확보된 재원을 농민기본소득으로 쓴다고 가정해보자. ‘2015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농가규모는 108만 9천 가구로 나타났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농가 1가구당 연간 600만 원, 월 50만 원을 지급할 수 있다. 같은 해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이 1천 1백만 원 가량이므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 정도의 기본소득이 농가에게 지급된다면 농가소득이 23% 정도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피폐한 농업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고, 귀농 귀촌을 권장하기 위한 복잡한 지원책들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절감된 지원예산을 농민 기본소득에 추가로 반영한다면 지급액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매우 낮은 단계의 기본소득조차도 소득불평등을 상당히 개선한다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현재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시도된 다양한 실험 가운데, 가장 오래 지속해왔으며 보편적 지급형태를 지니고 있는 모델은 1982년에 시작된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이다. 알래스카 영구기금은 석유 채굴 수입을 재원으로 설치된 영구기금을 토대로 최소 6개월 이상 공식 거주한 모든 주민에게 조건 없이 매년 이익의 일부를 배당하는 제도이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의 통계를 보면 평균지급액은 1,339달러로 같은 기간 알래스카 주 1인당 국민소득의 4.7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영구기금의 배당은 뚜렷한 분배개선 효과를 보여 주었다. 1992년부터 이후 10년 동안 미국의 상위 20% 가구 평균소득은 26% 증가했지만 하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은 12% 증가하는데 그쳤다. 반면 알래스카에서는 같은 기간 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이 7% 증가했으며, 하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은 28%나 증가했다. 총소득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배당만으로, 알래스카 주는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가 되었다.

불안한 인류의 미래가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
2016년 6월 5일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을 법으로 보장하자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다.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의 23%가 찬성하는 데 그쳐 개정안은 결국 부결되었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스위스 국민, 나아가 세계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스위스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실험과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핀란드는 2018년 실험적인 도입을 목표로 사회보험총괄기구인 KelA(Kansaneläkelaitos, The Social Insurance Institution)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지난해 아키텐 주의회가 일종의 기본소득 실험 법안을 통과시켰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도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수행할 예산을 배정받아 올해부터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인류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환경재앙, 빈부격차, 일자리 위기 등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접근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적절한 소득을 제공한다는 발상은 16세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논의에 불이 붙은 기본소득은 1970년대 미국 하원을 통과하면서 거의 도입될 뻔했지만, 너무 소심한 법안이라고 생각한 사람들과 너무 용감한 법안이라고 생각한 사람들 사이의 줄타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상원에서 반려되고 말았다.

기본소득은 단지 복지사회의 확장판이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본소득은 모든 이들이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 모든 부(재화)는 이전 세대의 축적에 기반하며, 특히 정보화 사회에서의 부는 공유자원이라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사회배당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좌파와 우파 양측이 각기 다른 입장에 근거하여 기본 소득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기본소득은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우파와 만나며, 임노동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좌파와도 만난다.

물론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도 많다. 가장 큰 비판은 당연히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좌파 근본주의 입장에서 기본소득이 자본-임노동 관계의 완전한 철폐에 반하는 자본주의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호혜성의 문제, 즉 무임승차에 대한 지적도 있다.

지금까지 시행된 기본소득 실험은 매우 제한적이고 단기적이어서 기본소득 이후 사회의 모습을 그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는 절대빈곤이 없어진 사회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상이다. 경제적인 의미의 부를 생산하는 노동이라는 개념을 확장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임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길에 다가설 수도 있다.

엄청난 재정이 필요한데 과연 실현 가능할까?
최근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는 국회연설에서 아동(0∼5살), 청년(19∼24살)과 노인(65살 이상)에게 우선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고려대 조영철 교수의 분석을 조금 변용해서 적용해보자. 이들에게 월 30만 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대략 48조원이 필요하다. 이미 기초노령연금과 보육료 등으로 지급되는 예산 16조 원을 빼면 32조 원이다. 그런데 2014년 18.0%였던 조세부담률을 부자감세 이전 수준인 2007년의 19.6%로 1.6%만 올리면 연간 약 25조에 가까운 추가 세입을 확보할 수 있다.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제안처럼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자면 180조 원이 필요하다. 한신대 강남훈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기존의 사회보장과 중복되는 부분이 30조 원에 가깝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면 150조 가량이다. 만약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인 26.1%(2013)로 8% 가량 올리면 연간 130조에 가까운 재원이 확보 가능하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와 결정에 다가설 수 있는 정치적 과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있다.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이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며,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만큼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더 깊어지며 또한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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