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인터뷰] 우리도 국민입니까?

Mini interview

우리도 국민입니까?

박하나 작가

 


한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길을 가고 있다.
누군가 그를 발견하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곧장 손잡이를 잡고 휠체어를 민다.
손으로 바퀴를 굴리고 있던 장애인은 화들짝 놀란다. 당연한 일이다.
처음 본 사람이 행선지도 모르면서
내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밀지 마세요. 위험해요.”라고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것은 사과가 아니다.
도와주는데 왜 그러냐는 신경질이다.
이게 정말 선의이고 도움일까.



✽ <함께 걸음>은 장애인이 겪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언론이다.

누구나 기본권이 보장돼야 민주주의 사회

꾸며낸 이야기도, 일부의 이야기도 아니다. 장애인 인 권 잡지 <함께걸음>의 조은지 팀장은 휠체어를 타는 장 애인이 흔히 겪는 일이라고 말한다. “차별이란 게 별 거 아니에요. 자신이 가진 권리를 장애인도 똑같이 가졌단 생각을 안하는게 차별이죠. 무거운 짐을든 사람을 도와줄 때 ‘제가 도와드릴까요?’ 먼저 물어보지 갑자기 짐을 채 가듯이 들어주지는 않잖아요. 동등하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물어보고 허락을 구해야죠.”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비장애인 대다수는 항상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사회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배제·소외시키는 방식의 차별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이상의 건물, 턱으로 가득한 도로와 건축물,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도 이용할 수 없는 대중교통과 음식점, 읽거나 들을 수 없는 설명서와 방송. 비장애인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장애인에게는 불편하거나 허락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인간으 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다.

장애 여부에 따라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조팀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장애인에게 민주주의는 ‘속 빈 강정’ 아닐까 생각해요. 장애인이 국민으로서 인정을 받아야 민주적이라고 할 텐데, 제가 취재를 하면서 보면 장애인은 국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도 굉장히 침해 당하고 있거든요.”

근본적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함께걸음>은 다양한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루는 월간지이다. 장애인 관련 유일한 오프라인 매체로, 1988년 창간이래 29년 동안 한번도 빠짐 없이 매달 발행되고 있다. 적은 인원과 소수 자본으로 매달 잡지를 간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로써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있다. 장애 상태나 재정·환경 등의 문제로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장애인에게는 인쇄물이 가장 유효한 정보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걸음>은 장애인에게 무료로 배포된다.

내용적으로는 당사자 입장에서 보다 본질적으로 장애인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도 방향에 따라 독자의 문제 인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유력 언론은 단편적·자극적 보도로 잘못된 인식을 조장할 때가 많다. 부산 발달장애인 사건과 청주 버스폭행사건이 대표적이다.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장애 특성과 장애인이 처한 상황, 구조적 문제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장애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화제화 했다. 이 기사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만 키웠을 뿐,사고예방이나 재발 방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비인권적 보도가 주를 이룰 때, 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같은 주제를 되풀이해 다뤄야 할 때, 답답하고 힘들지만 앞으로도 <함께걸음>은 장애인 문제의 본질과 당사자 목소리를 담아내는 매체로 남겠다고 조 팀장은 말한다. “장애 문제는 장애인만의 것 이 아니에요. 나와 내 주변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장애인이 겪고 있는 문제를 바라봐 주세요.”

 

 


몽골에서 한국은 잘 알려진 나라다.
작드 허르러씨는 저녁마다
TV 속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 사람과 몽골 사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오는 길은 긴장됐지만
자상한 남편 덕분에 안심했다.
하지만 실제로 겪은 한국의 모습이
드라마와는 너무나도 달라 당황스러웠다.

 


✽ 이주여성과 학생들이 다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함께 어울리며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는 허르러 씨는 더 멋진 다문화 강사가 되는 게 꿈이다.

이주여성 마음 헤아리지 않는 한국인

“처음 한국에 와서 남편은 뭐하는지, 월급은 얼마 받는지, 어디서 사는지 질문 받았을 때 엄청 충격이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함부로 물어봐도 되나 싶었죠.” 몽골과 한국이 다른 것은 문화만이 아니었다. 물과 공기도 다르고 음식도 안맞았다. 당장 허르러씨 몸에 변화가 생겼다. 머리카락도 빠지고 몸무게도 줄었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 임신도 되지 않았다. 부부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병원을 다니며 인공수정까지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3번정도 했는데 모두 임신이 안됐어요. 노력 많이 했으니까 아이가 생길거라는 기대가 컸는데 실패하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난임의 고통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데, 결혼 이주여성인 허르러 씨는 위로는 커녕 의심까지 받아야 했다. 일부러 임신을 피하면서 남편과 헤어질 생각을 하는게 아니냐는 거였다. 다행히 결혼 2년 만에 임신을 하면서 의심은 풀렸지만 그때의 기억은 쓰라린 상처로 남았다.

이처럼 이주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그것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드러 내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주여성들은 ‘또 낳아야지, 외국에서 왔으니까 또 낳아야지, 쑥쑥 낳아야지.’란 말을 엄청들어요. 각자 사정이 있을수도 있고 기분이 나쁠수도 있는 말인데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두 번 차별받는 이주여성

올해로 한국에 온지 10년이 된 허르러씨는 한국사회에 잘 적응한 편이다. 다정한 남편, 귀한 아들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한국 문화에 적응해 사적인 질문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게 됐다. 한국어를 배웠던 이주여성 인권센터에서는 통번역사로, 초중고에서는 다문화강사로 이주여성으로서의 경험과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이주여성들이 허르러씨처럼 적성에 맞거나 희망 하는 일을 하지는 못한다. “한계가 있어요. 저는 운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하고싶은 일을하고 있지만, 다른 이주여성들은 규칙적으로 일하기 힘들어요. 전에는 모국에서 대학을 나와도 인정해줬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야 해요.”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은 공장에서 오랜시간 낮은임금을 받으며 고된일을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쉽지 않다. 전문적 단어를 이해해서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도 어렵지만 자격증이 있어도 잘 써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다.

여성이라서 받는 차별도 있다. 육아와 살림을 도맡는 것이다. 허르러씨는 한국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발달했지만 의식은 옛날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단다. “몽골에서는 서로 도우면서 해요. 직장 갔다 일찍오는 사람이 애도 데리러 가고 요리도 해요. 그런데 한국은 마누라 없으면 일찍와도 밥 안하고 올때까지 기다리고. 이건 아닌 것 같아요.”

허르러 씨는 이주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남편들에게 집안일 분담과 적극적인 마음 표현을 부탁했다. “남편이 무뚝뚝하면 기댈 곳 없는 이주여성들은 무섭고 힘들어요. 많이 칭찬해 주고 애정을 표현하세요. 마음 속으로 하는 건 알 수가 없어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어요.”

 

 


대구에 사는 배진교씨는
성소수자 관련 활동과 행사 참가를 위해
항상 서울로 향해야 했다.
늘 서울에서만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서울로 올라가던 어느 날,
배씨는 ‘지역에도 성소수자가 있는데
왜 관련 활동과 행사는 지역에서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단순한 질문에서
국내 유일의 지역 퀴어축제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시작되었다.



✽ ‘9회말 역전 홈런_ 혐오와 차별을 넘겨라’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진행된 9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는 이전보다 많은 지역 성소수자가 참여했다.

인식 변화 바람의 시작

무지개인권연대 대표 배진교 씨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조직위원장으로서 대구퀴어문화축제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자긍심의 퍼레이드’로 막을 올린 올해 축제에서는 달을 넘겨 7월 9일까지 토크쇼 와 연극제, 영화제 등의 행사가 펼쳐졌다. 올해로 9회를 맞은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서울 이외 지역에서 열리는 유일한 퀴어축제이다.

아직도 축제를 반대하고 행사 진행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9년 사이 긍정적인 변화도 많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당사자들의 참여 확대다. 제1회 퍼레이 드에는 100명 정도의 인원이 참가했는데 대부분 서울에서 온 활동가였고 지역 성소수자는 5명 남짓이었다. 행사 자체가 낯설기도 했겠지만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 큰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지역 성소수자 참여 인원이 10명, 20명으로 늘어 나더니 작년에는 1,800여 명, 올해는 무려 3,000여 명의 성소수자가 퍼레이드에 동참했다. 올해는 지역 대학의 성소수자 동아리들이 부스 활동에 참여하는 등 해마다 당사자들의 참여도와 적극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비성소수자도 변화했다. 성소수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조금씩 하게 된것이다. 실제로 2015년 한국 갤럽의 설문조사에서, 동성결혼의 법적 허용 찬성 의견이 가장 높은 곳이 대구·경북 지역이었다. 정치·문화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곳이라 의외의 결과였다. 배 대표는 대구·경북 인식 변화에는 대구퀴어문화축제의 영향이 크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직접 축제에 와서 보면 별반 다를 게 없거든요. 우리 축제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풀어주는 소통 창구 구실을 했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사회에 성소수자 이슈를 만들고 변화의 바람을 이끄는게 퀴어문화축제의 목표죠.”

‘운동’이 아닌 온전한 ‘축제’로 남기를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시 설문조사에서 대구·경 북 지역의 동성결혼 찬성률은 38%로 과반을 넘지 못했다. 최근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나온 동성애 혐오발언과 군대의 동성애 처벌만 보더라도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내가 가진 성적 정체성으로도 자유와 평등을 누릴수있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사회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존엄성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지만 성소수자들에게는 지금도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게도 민주적인 사회가 되려면 법과 문화, 생활양식 등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 가장 시급한 것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꼽았다. “이번 촛불 대선을 보니 국민들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더라고요.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가 배제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배 대표가 바라는 것은 퀴어축제가 온전히 축제로 남는 것이다. “지금은 축제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운동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관공서의 부당함과 싸우고, 시민들의 오해와 편견을 풀기도 하고요. 그런데 대학 축제나 도시 축제는 ‘운동성’이 필요 없는, 말 그대로 축제잖아요. 대구퀴어문화축제도 다른 축제처럼 ‘축제’의 기능만을 고민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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