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랜드의 행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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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랜드의 행복 찾기

  박한나 자유기고가 / hanna_p@naver.com

쥐들의 나라 ‘마우스랜드’에서는 정기적으로 선거를 실시해 지도자를 뽑았다. 쥐들은 검은 고양이를 대표로 선출했다. 쥐들의 나라에서 고양이 대표라니 이상하겠지만 후보가 고양이뿐이었다. 지도자가 된 검은 고양이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 쥐구멍은 고양이의 발이 들어갈 수 있도록 크게 만들 것, 쥐는 일정 속도 이하로만 달릴 것 등이었다. 당연히 쥐는 고양이에게 쉽게 잡아먹혔다. 화가 난 쥐들은 다음 선거에서 검은 고양이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새로운 대표로는 흰 고양이를 뽑았다. 흰 고양이는 쥐구멍을 네모나게 만드는 법을 통과시켰다. 쥐구멍은 더 커졌고 쥐는 역시나 고양이에게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쥐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번갈아 지도자로 선출했다.

이 이야기는 1962년 캐나다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가 의회 연설에서 발표한 정치 우화다. 쥐 한 마리가 고양이를 대표로 뽑는 이상한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데, 지금의 한국사회를 대상으로 한다면 질문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고양이가 아닌 쥐 사이에서 대표를 선출한다고 해도 모든 쥐들이 행복한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쥐들은 고양이가 만드는 세상이 자신의 행복이나 안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물론 쥐들 사이에도 생쥐인지 다람쥐인지 뉴트리아인지에 따라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다. 대표자만 바라보며 행복한 세상을 기다리기에는 시민 개개인이 개성이 뚜렷하고 능동적인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2018년 대한민국판 마우스랜드를 만든다면 쥐들이 행복하기 위해 누구를 대표로 뽑을 것인지를 넘어 쥐들 각자가 무엇을 할 것인지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정답은 알 수 없지만 힌트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민들을 만났다. 이들은 마주한 세상에 무작정 스스로를 맞추는 대신 끊임없이 말을 걸고, 돌멩이를 던지고, 새로운 옷을 입히고, 때로는 몸으로 부딪히면서 세상을 우리에게 맞추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장을 이끄는 것은 소수의 대표자가 아니라 시민의 성숙이었다. 결국 민주주의란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제가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어요

2009년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개최하고 있는 청소년사회참여발표대회는 청소년이 직접 자신의 지역사회나 학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조사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정책을 제안하는 사회참여 활동을 하고 활동 과정을 발표하는 자리이다.
대회에 참가한 청소년은 민주주의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경험하고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초등학생이 박물관을 바꿨어요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 도시락 먹을 공간 만들기’를 주제로 4회 대회에 참가했던 박수빈 학생은 모든 청소년에게 청소년사회참여발표대회를 추천하고 싶다며 웃었다. “박물관 가는 날 아침에는 맑았어요. 도시락 먹을 때쯤 비가 내렸는데 박물관 안에서는 도시락을 먹을 수 없었죠. 지붕이 있긴 했지만 사람들이 오가는 야외 계단에서 밥을 먹어야 해서 불편했어요. 하지만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불편해하는 것에서 끝났을 거예요.” 당시 수송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수빈 학생과 친구들은 ‘솔루션’이라는 동아리를 만들고 대회 참가를 위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전자민원을 넣고, 학교 친구들의 서명을 받아 전달하고, 박물관장에게 편지도 보냈다. 하지만 박물관 내부에서는 도시락을 먹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답답했던 학생들은 박물관장에게 쓴 편지를 신문사에 보냈다. 수빈 학생이 쓴 편지와 솔루션의 활동이 일간지에 소개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공감했다. 이윽고 학생들은 박물관장으로부터 도시락 먹을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편지를 받아냈다. 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난 뒤에도 솔루션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박물관장님의 답변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공간을 점심시간에만 일시적으로 개방하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전용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다시 민원을 제기했죠.” 이듬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솔루션의 활약상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렸다.

“전 이게 될까 싶었어요. 우리 편지가 버려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TV 보면 어른들도 싸우고 싸우다 겨우 하나를 해결하니까요.” 시민의 사회참여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자 수빈 학생의 생각도 바뀌었다. “사회를 바꾸는 건 국회의원 같은 대단하신 분들이 하고 우리는 그걸 따르는 건 줄 알았는데,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이 바꾸어 간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이제 수빈 학생은 누구나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해야 시민이 진정한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불편한 일을 겪었을 때 가만히 놔두면 누군가 또 불편을 겪을 거 아니에요. 그냥 넘어가지 말고 바꾸자고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저희도 했잖아요. 저희도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촛불시위를 보며 시민이 힘을 모으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는 수빈 학생은 시민이 좀 더 쉽게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국회의원은 (시민의) 대표들이니까 대표적인 의견만 가지고 올 거 아니에요. 소수 의견도 당사자에게는 큰 문제잖아요. 소수의 이야기도 꺼낼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사회참여의 끈을 놓지 않았던 수빈 학생은 소수와 약자에 관심이 많다. 봉사를 하면서, 이들이 차별받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올해 수험생인 수빈 학생의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다. “돈 없고 힘없어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분들을 돕고 싶어요. 무조건 편을 들겠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법 앞에서만은 돈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죄로만 판단해서 아무도 억울하지 않게 만들고 싶어요.”


✽ 2012년 박수빈 학생이 속한 수송초등학교 ‘솔루션’ 동아리 친구들은 국립중앙박물관 계단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사 회참여발표대회에 참가했다.
 

민주시민 교육은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는 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것,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계속해서 공부를 하는 것. 민주시민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회 갈등은 민주시민교육의 부재가 원인

1984년 성남의 한 빵공장, 서진희 씨는 광주 출신 동료에게 4년 전 일을 물었다.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도무지 대답을 해 주지 않던 질문에 동료 역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른 동료들은 그런 게 도대체 왜 궁금하냐고 했다. 이듬해 YMCA 모임에서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아무도 서 씨에게 80년 광주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제야 서 씨는 초중고를 지나면서 단 한 번도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역사를 배우지 못했음을, 민주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을 보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명시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학교 현장에선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거든요. 중등교육과정에선 도덕이나 사회 교과를 통해 민주시민 양성 교육을 한다는데, 학생들은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 없다고 해요. 오히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었을 때, 군산의 한 학생이 징계위기에 놓이는 게 현실이에요. 자기 생각을 글로 써서 사람들에게 공개했다고요. 이런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이 민주적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서 씨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과 폭력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이라고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법, 다른 이들과의 관계맺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거다. “광주로부터 38년이 지났어요. 6월항쟁은 31년이 지났고요. 민주화가 이뤄진 사회라고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세요. 여전히 곳곳에 폭력이 깃들어있어요.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은 소외받고 있고요. 민주사회라고 부르기 어렵죠. 상명하복의 군사문화, 가부장적이고 비민주적인 문화가 삶 곳곳에 너무 깊이 녹아들어 있어요. 그렇게 폭력적인 세상에서 ‘피해자’로 자란 사람들은 이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새로운 문화,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문화를 만들려면 제대로 ‘교육’을 받는 것이 최우선이죠.”

배우는 만큼 실천하며 민주시민으로 성장

서 씨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이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한다. 몇 번의 강연만으로도 사람들은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그 순간마다 서 씨는 교육의 힘과 우리 모두에게 있는 민주시민의 희망을 발견한다. “동두천〮양주 지역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죠. 8번의 강연이 끝나자 그동안 자신의 아이만 생각했는데 아이가 속한 사회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들은 지금도 모임을 만들어서 민주시민교육과 갈등 해소 공부를 하세요.”

정치학자 칼 베커는 “민주주의란 말은 여행용 가방과 같아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다른 것들을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되고 싶은 민주시민, 우리가 살고 싶은 민주사회는 어떤 것일까. “민주주의란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에요. 다른 이의,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 서로의 다름이 빚어내는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나가는 것, 그게 민주주의의 요체죠. 민주주의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실천하는 행동양식이죠. 민주시민교육이란 민주사회를 이루려는 시민들이 더욱 현명하게 관계 맺고 따듯한 마음을 키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돼주는 것이에요. 제가 하는 일은 그거죠, 징검다리를 놓는 일.”


✽ 서진희 씨는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 학부모 대상의 민주시민교육을 한다.
 

뒤틀리고 불온한 상상력의 민주주의

“우리의 운동이란 어제보다 나은 실패를 하는 것,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실패를 하는 것이에요.”
‘후레자식연대’ 깃발이 광장에 올랐을 때 어떤 이는 눈을 찌푸렸고 어떤 이는 박장대소했다.
다소 패륜적인 이름은 ‘어버이’와 ‘엄마’를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한 저항이었다.
“난 당신들 같은 부모를 둔 적이 없다.”는 의미. 미술을 전공한 작가 최황 씨의 첫 사회참여,
그는 그렇게 처음부터 비틀려 있었다.

후레자식연대는 세상을 향한 질문

이전에 최 씨의 사회참여는 집회에 가끔 참여하면서 머릿수를 보태는 정도였다. 최 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다 자신의 작품 활동이 전시 공간 바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쯤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 같은 보수단체 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졌다. “일단 그 이름이 싫었어요. 난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후레자식연대’란 이름을 떠올리고 SNS 페이지를 만들었죠. 이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각예술을 전공했으니 내 능력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처음의 목표는 어버이와 엄마라는 이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거였어요.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의 해체를 직접 이끄는 운동은 못 하지만 적어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요. 그게 화제가 되면서 언론에 조금씩 노출이 되고 사람들의 입에도 오르내렸죠.”

결국 ‘후레자식연대’는 실체가 없는 조직이다. 사실 조직이라기엔 애초부터 최황 혼자였지만. 미술관 바깥의 세계에 미칠 영향을 고민했다는 최 씨는 어째서 SNS의 부유하는 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을까. “누군가는 꾸준히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잖아요. 그런 문제 제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인식의 변화예요. 모든 것은 누군가 던진 질문에서 시작하죠. 질문을 받은 사람들, 질문과 답변의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업데이트를 받는 거예요. 업데이트 받는 사람이 많든 적든, 그런 방식을 통해서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져요. 근래 페미니즘 이슈의 성장을 봐도 SNS는 꽤 가능성이 많은 운동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뉴스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틀어보려는 새로운 시각, 주류에 편승하지 않은 시각을 전달하고 또 받는 창구가 돼주고 있어요. 무엇보다 새롭게 세상을 이해하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죠.”

불온한, 그래서 더 희망적인

뒤틀린 시각, 새로운 접근, 익숙해지고 무뎌진 기성에 새로운 균열을 일으키는 것. 최 씨는 균열의 축적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거창하고 대단해보여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주의에까지도. “후레자식연대가 이슈였을 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SNS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접한다고 당장 세상이 달라지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전 그게 세상을 바꾸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믿어요.”

지난하고 미세하더라도 조금씩 세상에 균열을 내는 것, 굳어져 딱딱해진 세계를 비틀어 바라보는 것. 최황의 민주주의란 ‘후레자식연대’라는 이름처럼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비틀림과 불온함은 그래서 더 희망적이다. “모두가 평화로운 민주주의란 것이 어디 있겠어요. 계속 갈등하고 다투면서 상처를 내고 치유해야 해요. 동시에 서로의 상처와 갈등을 성실하게 관찰해야 하죠. 그렇게 다름을 배워가는 것이 참된 의미의 민주주의일 겁니다. 그래서 전 갈등을 일으키고 돌팔매질 당할 글을 쓸 거예요. 갈등의 실체를 꼼꼼하고 성실하게 관찰할 거고요. 그 과정의 축적으로 세상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 최황 씨는 자신의 작품 활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더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사진은 지난 2016~17 촛불 집회 참여 활동
 

우리들은 여전히 삶의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어요

시작은 우연히 본 공모전 홍보 포스터였다. 후배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이자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이처럼 김성원 씨가 ‘대학생 민주주의 현장탐방’에 참가한 계기는 대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탐방을 다녀온 현재 김성원 씨는 마음과 생각, 삶의 모습까지 크게 변했다.
여행, 사람, 그리고 축적된 역사가 빚어내는 것은 오늘의 나, 내일의 우리다.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나의 문제이기 때문

목포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세월호의 모습이 가까워질수록 김 씨의 마음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가 있는 신항으로 가는 길, 울타리에 걸린 노란 리본을 마주했을 땐 결국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노란 리본에 적힌 글귀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으며 걸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들, 기억하겠다는 이들이 한 글자씩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을 마주하며 걸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힘들게 걸어갔던 길의 끝에는 세월호가 있었다. 김 씨는 누워있는 세월호의 모습을 보자마자 자리를 피했다.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마치 대한민국을 마주하는 것 같았죠. 세월호를 등지고 돌아 나오면서 저도 모르게 다짐을 했어요. 같이 있던 친구들과도 ‘우리가 공부해야 하고,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고, 그러려면 이 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죠.”

시대는 빠르게 변한다. 엑사바이트 단위의 정보량이 매일 생산되고 바로 어제의 일도 지난 유행이 돼버린다. 비정규직〮취업난〮N포세대가 익숙한 오늘의 대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한 투쟁과 사회참여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탐방을 통해 김 씨가 배운 것은 모든 사회 문제가 실은 자신의 일이라는 거다.

“구의역에서 죽었던 청년은 내 형일 수도 있었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제 할머니였을 수도 있고, 강남역에선 내 동생이나 누나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을 수도 있었죠. 수학여행을 떠났던 세월호 탑승객은 나일 수도, 내 동생이 될 수도 있었어요. 사실 이건 저뿐 아니라 대학생 모두 다 알고 느끼고 있어요. 현재의 대학생이 사회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 대학생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환경이 예전과 다르기 때문이에요.”

앞선 시대의 민주화 투쟁으로 독재에서 벗어나 사회‧정치적으로 더 자유로워졌지만 지금은 자본주의가 만든 억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김 씨는 말한다. “비정규직이나 노동유연화 같은 말들은 대학생을 더 많은 두려움에 떨게 해요.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비민주적인 사회, 불의한 사회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왔어요. 지난겨울 촛불을 든 대학생들을 떠올려보면요, 그들은 그저 사회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대학생들이 아니었잖아요.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생활 속에서, 일상에서, 우리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어요.”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며, 조금씩 천천히 더 넓게

등록금 고지서가 두렵고, 취업을 하지 못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시대를 사는 대학생들. 하지만 여전히 더 좋은 세상, 더 정의롭고 민주적인 세상의 시민을 꿈꾸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민주적이지 못한,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주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대학생이 사회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건 알려주는 이가 없고 또 알더라도 이야기를 나눌 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얘기를 하다 여성, 노동, 민주주의 등 잘 모르는 분야는 같이 공부하고 고민도 하고요.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의 문제가 실은 내 문제임을 깨달아 가는 것, 그것을 주변과 함께 나누며 폭을 넓혀가는 것이요. 민주주의란 쉽지 않아도 꼭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있는 곳에서 천천히 조금씩이라도요.”


✽ 김성원 씨는 ‘대학생 민주주의 현장탐방’(왼쪽 사진) 참가 후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2016~17 촛불집회에서 장구를 치는 모습.
 

시민이 사회의 소유권을 되찾아야 해요

한 구청의 소강당에서 의회가 열렸다.
9명의 회의 구성원이 각각 노동인권교육과 실질적인 성교육의 정규화, 청소년 바우처 카드 도입, 청년노동 119 상담 센터 운영, 중고생 교복 지원 사업 등 주민들이 반길 만한 생활밀착형 정책을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인 뒤 즉석에서 표결을 진행했다.
내용도 과정도 나무랄 데 없었던 이 회의의 주체는 의원이 아닌 시민이었다.

시민이 참여할수록 합리적 결정 이뤄져

지난 2017년 10월 열린 ‘노원시민의회(이하 노원민회)’ 총회에는 대학생‧주부‧직장인‧교수‧청소년 등 여러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수준 높은 정책 제안으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 자리에는 구청장, 시의원과 구의원도 참석했지만 이들은 그저 손님일 뿐이었다.

노원민회를 기획하고 주관한 노원시민정치연대 서명갑 대표는 넉 달 전부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하는 등 알찬 총회를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갑‧을‧병 지역 별로 민회를 열었어요. 권역별로 40~60명 정도 모였죠. 각각 대여섯 개 테이블에 나눠 앉아 주민 스스로 지역 현안을 찾고 정책 대안을 이야기했어요. 테이블 별로 대표 의견을 정해서 모두에게 공유한 다음, 현장에서 투표로 1~3등을 뽑았죠. 총회에서 발표한 정책은 이때 선정된 대표 정책들이에요.”

시민들이 지역에서 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한 정책들이라 민회 참석자들은 실행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정책안은 바로 정치인에게 전달해 시행을 촉구했다. 그야말로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책과 의사결정이었다. 이를 통해 서 대표는 민회가 소수 의사결정 구조인 지역 정부와 의회를 견제하고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집단지성이 형성되고 합리적 의사결정이 된다는 걸 확인했어요. 소수가 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더라도 자기 맘대로 결정하게 되거든요. 물과 같죠. 물은 그릇이 흔들려도 수평을 유지하잖아요. 물방울은 안 그래요. 물이 많아야 균형을 잡을 수 있죠.”

민회는 실험이 아닌 지속적 참여 형태로 자리 잡아야

서 대표는 전업 활동가가 아니다. 육류도매업을 하는 시민의 한 사람이다. 4년 전 지방선거를 계기로 정치‧환경‧지역장터‧시민교육 등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장주의자라는 서 대표는 직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것에 집중해 노원민회처럼 의미 있는 결과를 여럿 만들어내고 있다. “이론에 치우치거나 상상에 근거한 사업은 하지 말아야 해요. 작더라도 실감이 나는 알맹이를 하나 만들면 그 알맹이를 더 크게 만들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따라와요.”

노원민회 역시 일회성 실험으로 그치게 하지 않으려면 지속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서 대표는 주장한다. “서울시에는 민관협치 조례가 있는데 협치 회의 구성이 필수예요. 이를 민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사업을 진행하면 노원뿐만 아니라 서울 전 지역으로 민회를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어요. 정책실명제 또는 회의참가수당을 만들어 여기에 참여하는 시민에게 보상도 해야 해요. 시민이 찾은 의제와 정책은 시민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시민이 향유해야죠. 이렇게 하면 시민의 정치 참여가 건설적이고 빠르게 이뤄질 수 있어요.”

서 대표는 현재 우리 사회는 국가 운영을 핑계로 국가가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너무 많이 가져갔다고 이야기한다. “민주주의 사회를 운영하고 소유할 권리는 시민에게 있지만 지금의 시민은 소유자도, 주권자도 아닌 것 같아요. 단순히 수요자일 뿐이죠. 이제는 소유권을 우리 시민들의 힘으로 찾아올 시기예요.”


✽ ‘노원시민정치연대’와 서명갑 대표는 지역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과 민회 등을 열어 실질적인 시민사회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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