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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기획전시 <끝없는 여지> 리뷰
지금, 여기의 남영동

이인실(자유기고가)


경험하지 않은 역사를 기억하는 법

박제된 역사가 있다. 깨끗하게 닦인 유리창 건너에, 아늑한 조명을 받으며 놓여있는 물상들에, 소통할 수 없는 전시용의 역사가 있다. 박물관 여기저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지지 마시오' 혹은 '가까이 가지 마시오', '찍지 마시오'라는 경고문들은 역사를 대할 때 느끼는 단절과 분열의 감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렇게 다가갈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역사는 개개인의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 사라진다.

이른바 나와 같은 민주화운동 이후의 세대들에게 '그 시대'를 복기하고 성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세대의 일원이 아닌 청년들은 투쟁과 억압의 역사를 문제적이고 슬프지만, 동시에 추상적이며 잡히지 않는 박물관 속의 무언가로 인식하고야 만다. 가슴 아픈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애도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마치 책을 덮듯 단절된 세계 저 건너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직 완벽히 해결되지 못한 상처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영동 대공분실은 과연 기억될 수 있는가? 기억될 수 있다면, 누가,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의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못한 고통과 죽음을 온전하게 재현할 수 있는가?

청년 예술가들의 역사 실천: <끝없는 여지(Endless Void)>

'끝없는 여지(Endless Void)' 전은 바로 이러한 질문 앞에 선 청년들의 화답으로 보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끔찍한 고문의 장소로 기능하지 않게 된 오늘날, 남영동을 겪지 않은 세대가 남영동을 기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체험이 결여된 재현과 기억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인식하고, 과거의 역사를 '지금, 여기'로 가져오려는 부단한 노력의 흔적이었다.  

전시가 열리던 첫날, 10월의 가을을 맞이한 남영동의 검은 건물 위에도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건물에 들어선 후 가장 먼저 발걸음이 향한 곳은 4층의 전시실. 그곳에는 공간의 틈새를 최대한 활용한 비디오와 오브제 전시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네 개의 비디오 전시는 각자의 스타일대로 남영동 대공분실과 반공 이데올로기, 독재와 자유, 그리고 인간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비와 빛>은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했던 사람들과 고문의 주체였던 이근안의 쫓고 쫓기는 이미지에 주목했다. <말랑말랑한 모듈러 #2>는 두 대의 모니터를 설치하여 한쪽에는 폭력이 정당화되어온 역사를, 다른 한쪽에는 '휴먼스케일'이라고 하는 대공분실 건물의 건축학적 이론을 설명했다. 방문객은 모니터 사이에 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가며 두 가지 영상을 힐긋거려야만 한다.

개성이 뚜렷한 전시물들 사이에서 서늘한 여운을 남긴 영상은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였다. 이 비디오 전시는 남영역을 지나는 지하철 1호선과 지하철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 그리고 이 거대한 흐름을 타고 이루어진 반공의 역사를 중첩한다. 아직도 북한이 대남 땅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믿으며 집요하게 탐사를 이어가는 노인들과 이들을 실어나르는 1호선의 터널. 영상의 후반부에 이르러 열차가 통과하는 길고 긴 터널의 이미지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영상의 그곳이 노인들이 이야기하는 땅굴 속인지, 아니면 내가 매일 타고 다니는 지하철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홀로 테니스를 치며 독재와 폭력에 대해 사유하는 <벽치기>는 과거의 역사와 마주한 청년의 목소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담았다. 지금도 남영동 대공분실의 한 공간에는 당시 수사관들이 이용했던 테니스장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작가는 <벽치기>의 영상 내내 직접 벽을 마주 보고 테니스를 치며 남영동 공간의 테니스장에 대해, 숱하게 이어져 온 폭력과 지배의 역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쉴 새 없이 내레이션으로 쏟아낸다. 땀을 흘려 운동하는 몸의 훈련과 역사를 반추하는 마음의 훈련. 이 두 가지가 영상 속에서 숨 가쁘게 이어진다.

한참 영상을 보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커다란 원형 고리 모양의 구조물이 전시실 한쪽에 자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저 '통과' 그 자체를 경험하게 하는 <의외의 사실>은 어떤 종교 시설의 원형 구조물을 지나온 사람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인생을 경험했다는 외국 인터넷 속 괴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극심한 고문으로 삶이 송두리째 뒤틀린 사람들의 사연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그 원형 고리를 넘어보았다. 그리고 한 발을 크게 디뎌 구조물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 나왔을 때, 삶의 뒤바뀜은 이곳을 방문한 현재의 우리 모두에게도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이 남영동 대공분실의 공기를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은 분명 그것을 모르던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과거의 사건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순간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내가 되었기 때문에.

고통의 과거와 마주하기

4층의 전시를 경험한 후에 곧바로 3층으로 이동했다. 3층으로 들어서자 구조물이 눈에 보이기도 전에 어떤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말랑말랑한 모듈러 #1>은 과거의 기억을 '냄새'라는 형태로 지금의 남영동에 소환시켰다. 작가는 다이알 비누를 가루 내어 마치 범죄의 현장을 재현하듯 바닥에 대공분실 건물의 설계도를 그려놓았다.

민주화 운동가 故 김근태 의장이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을 당시에 수사관들이 얼굴에 뒤집어씌웠던 수건에 벤 다이알 비누 냄새를 잊지 못해 이후로 다시는 그 비누를 쓸 수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한 작품이었다. 어느 누구도 1985년 9월에 그가 겪은 고통을 상상할 수도, 짐작할 수 없을 테지만, 34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를 몸서리치게 한 냄새만은 감히 그 자리에서 함께 맡아볼 수 있었다.

맞은편 방으로 자리를 옮기면 투명한 물이 담긴 세 개의 수조가 보이고, '그 시커먼 벽돌 건물 보면 그렇게 가슴이 아파'라는 음성이 시간의 간격을 두고 들려온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이근안의 육성으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이 더는 대공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한 2012년의 인터뷰를 발췌한 것이다.

이근안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발설되는 순간이면 수조에 담긴 물 위로 잘게 파동이 인다. 마치 불가해한 거대한 악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몸을 떨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처럼. 그러나 수조 속의 물은 이근안의 목소리가 끝나자 금방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그러나 곧 일상을 회복하는 이 잔잔한 투명성이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악의 시대를 견디고 건너가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소름 끼치는 남자의 음성을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방을 나와 3층 입구 쪽의 공간으로 건너가면 파헤쳐진 유적지 같기도, 파괴된 건물의 흔적 같기도 한 모습으로 설치된 <가령>이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벽에는 유니폼을 만드는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흙더미 사이사이로 그 유니폼을 눌러 만든 조형물이 흩어져 있다. 전시실을 걸으며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는 이 유니폼의 조각들은 마치 서늘한 주검처럼 느껴진다. 아직도 대공분실에는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의혹들과 청산되지 못한 과거가 산재하고 있다. 수습이 이루어지지 않은 익명의 희생자들은 여전히 무덤에 묻히지 못한 채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더욱 깊숙이 걸음을 옮기면 방 전체가 적색의 타일로 꾸며진 조사실 하나가 나온다. 물고문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그곳의 작은 욕조 안에는 피해자의 육체 대신 두 그루의 나무가 세워져 있다. 살아있는 행운목에 죽은 나뭇가지를 붕대로 엮어 만든 <기념비>였다.

본래 '기념비'라는 명칭 앞에는 '참전'이나 '독립' 등과 같이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에 대한 단서가 붙지만, 피해자의 범위도, 그 존재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기념비는 그 어떤 단어로도 아직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욕조 속에 잠겨있는 이 살아있는 나무가 시간이 흘러 자라나듯이,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아직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변화 시켜 나가야 한다.

<기념비> 맞은편에는 마치 기념비를 향해 묵념하는 것처럼 세 개의 마이크 스탠드가 나란히 세워져 있고, 마이크와 연결된 헤드폰에서는 학림사건에 연루돼 이곳에서 고문을 받았던 피해자 유해우씨의 육성 증언이 흘러나온다.

<나란히 서는 시간>이라는 이 오브제는 고통스러운 역사의 장소 앞에 선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쉽게 연민할 수도,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상처 투성이의 역사 앞에서 오롯이 타자인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나란히 세워져 있을 뿐인 마이크 스탠드는 이 질문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남긴다. 눈으로는 명명되지 못한 <기념비>를 응시하고 귀로는 피해자의 증언을 들으며 두렵고 떨리더라도 일단 그 앞에 서 있어 보자는 것. 이해와 애도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끝없는 여지(Endless Void)'전은 전시 이외에 퍼포먼스를 통해서도 남영동 대공분실에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펼쳤다. <목소리와 온도>에서 작가는 자신의 신체를 결박하여 대공분실의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1층에서 곧바로 5층의 고문실까지 연결되는 이 계단은 남영동 건물의 끔찍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계단은 연행자의 방향 감각을 상실시키고 걸음마다 날카로운 쇳소리를 울리며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작가는 나선 계단을 천천히 올라 5층의 고문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몸에 직접 밧줄을 감은 뒤 온몸을 뒹굴고 짓이기며 자신의 체온으로 돼지기름을 녹이기 시작했다. 고문실 한쪽에 서서 한 시간 동안 작가의 퍼포먼스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고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한 시간의 몸부림은 이 공간이 얼마나 차갑고 두려운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대공분실 건물의 디자인을 활용하여 남영동의 기억을 직접 피부에 문신으로 기록하는 <유한한 재료로서의 피부, 폭력의 역사를 기록하는 가이드>, 본관 1층에서 7층까지 건물 전체를 사다리차로 스캔하는 <내일의 연대기>, 5층 조사실의 수도관을 연결해 창문에서 바깥을 향해 물을 뿌리는 <분실>, 정문 현관 옆의 바람골에서 바람 소리와 기차 소리를 배경으로 움직임을 더해가던 <주체하는 신체> 등. 어떤 것은 난해하게, 또 어떤 것은 명확한 의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각자가 고심한 주제를 사람들 앞에 펼쳐놓았다.

불가능의 경계 앞에 서서


전시와 퍼포먼스를 모두 감상한 뒤 남영동 건물 밖을 나서자 시간이 꽤 흘러 어느새 사위가 어둑해져 있었다. 나는 입구 앞에 서서 다시 처음의 질문을 떠올렸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기억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누가,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재현할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끝없는 여지(Endless Void)' 전은 나에게 당사자가 아닌 우리로서는 어떠한 노력으로도 피해자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고통은 타인에게 결코 전가되지 않는 온전한 개인의 기억이므로, 그들의 이름과 생애가 기념비에 기록되고 그들의 뼈가 민주묘지에 묻힌다 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몸을 뒤틀어 바닥을 뒹굴고 물을 뿌리고 소리를 질러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노라고. 전시에 참여한 열세 명의 작가들은 한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나란히, 눈을 피하지 않고 서는 것. 끊임없이 묻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이 부족함은 어떤 글을 읽고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상상력으로도 우리는 감히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해낼 수 없을 것이다. 하는 수 없어서, 나는 다시 남영동의 문 앞을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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