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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질문에 시대의 글로 답하다

민주·인권·평화 박람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리뷰
현재의 질문에 시대의 글로 답하다

최인담(성북구 학예사)



안녕하세요. <민주인권기념관>,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던 것은 2018년 3월이었어요. 당시 경찰청 인권센터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에 세워진 이후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시민을 고문하던 곳입니다. 건물 뒷편 출입구에서 5층으로 연결되는 좁고 높다란 나선형 계단과 붉은 타일의 욕실, 철문이 닫히면 벌어졌을 가혹행위를 기억하는 것은 마음 무거운 일이었어요. 국가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탄압했던 비극적인 장소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지키고자 시민들이 나서면서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숨긴 과거의 상처를 밝혀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희망이 될 이곳에서는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30일까지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오늘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민주‧인권‧평화 박람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포스터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10월 29일부터 ‘독립, 자유, 평등, 인권, 평화’를 주제로 전시가 열렸습니다. 전시는 크게 대한민국 민주주의 100년의 역사를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으로 돌아보고 있어요. 100년 전 독립운동의 정신은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이어져 내려올까요? 대한제국을 넘어 대한민국으로 향했던 사람들의 외침에서 100년 후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을까요?

사람의 말과 글, 이 전시는 과거와 현재의 기록이 서로 대화하듯이 구성되었습니다. 민주, 인권, 평화 100년의 역사를 무엇으로 보여줄까 고심한 끝에 고르고 고른 문장들을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민주인권기념관 별관 1층부터 본관 4층부터 2층까지 이어지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전시로, 딱딱하고 사무적인 치안본부 건물을 이리저리 뜯어보았을 기획자의 노고가 엿보였어요.


첫 번째 방, 대한민국 민주주의 100년 (별관 1층) 



전시실 별관 1층 사진 (사진작가 이우재)


먼저 별관 1층 대한민국 민주주의 100년에서는 근현대사 연표와 헌법의 제정과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헌법은 ‘날 때부터 있는 것’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백년 전 엄혹한 식민지에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만든 독립운동가와 헌법이 정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한 민주화운동가에게는 목숨을 건 도전이자 투쟁의 결과물임을 느낍니다. 1919년 임시의정원 문서에서 의장 이동녕의 발언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내 생애에서 가장 보람된 순간입니다. 우리는 군주제를 부활하려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에 민주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속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 감각으로 독립운동이 곧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시실 별관 1층 사진 (사진작가 이우재)


1948년 제헌헌법이 공포된 이후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1987년 9차 개헌이 있기까지 헌법의 변천사는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여기에 “민주 국가가 모두에 의한 나라라면, 공화국은 모두를 위한 나라이다.”라는 김상봉(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말은 그간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썼던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상기시킵니다. 2019년을 사는 우리도 100년 이후를 생각하며 ‘민주공화국’을 고민합니다.

두 번째 방, 민주주의의 출발, 독립운동(본관 4층)


본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이동하면 “민주주의의 출발, 독립운동”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왜 민주주의의 출발이 독립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인지는 앞서 민주주의 100년의 역사에서 충분한 힌트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독립운동의 사진과 선언문, QR코드를 이용한 해설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과 제도를 알 수 있어요.


독립운동가 김산의 “모든 조선인들은 오로지 두 가지를 열망하였다. 독립과 민주주의!” 라는 말의 의미는 100년 전 3‧1운동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은 심문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기를 들고 다중이 모여서 만세를 고창한다고 독립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농민 조영섭은 단호히 “된다.”고 말합니다. 조선인 전부가 같은 마음이면 자연히 독립은 된다고 생각한다는 그 신념은 경성고등보통학교생 박노영, 도쿄물리학교 유학생 고재완, 신성학교 교원 김지웅, 조선총독부 순사 정호섭의 기록을 통해 한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전시실 본관 4층 사진 (사진작가 이우재)


여기에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정하는데 앞장 선 김대우, 3‧1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지만 뒤로 숨어 안위를 추구한 최남선, 명문가 출신에 내로라하는 저명인사지만 3‧1운동 참여를 거부한 윤치호와 박영효의 기록을 대조하여 식민지 조선인의 생각과 선택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3‧1운동을 바라보는 당대의 사람들의 차이만큼이나 100년 후 남과 북의 역사 서술을 비교하며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살펴보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북한 지역의 3‧1운동에 대한 학계의 관심과 연구도 어느 때 보다 깊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분단으로 북한지역의 역사를 상세히 파악하기 어려운 점은 늘 커다란 아쉬움을 남깁니다. 향후 남북이 분단을 넘어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역사 연구에 힘을 모으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세 번째 방, 독재의 그늘, 시민의 저항


본관 3층은 강렬한 색채로 단번에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독재에 저항한 시민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 시위,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을 담았습니다. 국가 안보, 경제 개발의 명분을 내세워 헌법을 고쳐서라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권을 몰아냈던 것은 결국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의 힘이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두 가지로 먼저 현대사를 대변하는 단어를 보여준 패널입니다. 사건, 반란, 운동, 저항, 항쟁, 학살, 혁명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를 보며 하나의 사건에 붙은 수많은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전시실 본관 3층 (사진작가 이우재)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정부와 언론에서 이를 일컫는 말과 역사적 의미가 담긴 현재의 명칭이 다른 것만 보아도 제대로 이름 붙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5‧18민주화 운동 당시 신문 기사의 헤드라이트와 전라남도 광주에서 벌어진 시민의 저항을 비교한 전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문사가 광주에서의 사건을 보도하기까지 걸린 시간, 그 성격을 규정하는 단어와 짧은 문장 뒤에 일자별로 시시각각 벌어진 광주 시민들의 투쟁의 기록은 마음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시민의 초상을 마주하며, 1987년까지 광주를 기억하며 싸운 사람들의 사진을 살펴봅니다. 또한 독재 정권 하에 숱하게 조작된 간첩 사건의 수, 축소되거나 은폐된 민주화운동에서 진실을 찾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네 번째 방, 일하는 사람들의 100년

같은 층에 위치한 네 번째 전시 “일하는 사람들의 100년”은 앞선 전시와 사뭇 다른 기분이었는데, 스스로 ‘민주주의’와 ‘노동’을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까닭일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기나긴 싸움은 작게는 고용주부터 노동 환경, 넓게는 정책의 성격과 사회적 인식까지 끝없이 이어집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씨, 매일 뉴스에 보도 되어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노동 현장에서의 죽음을 보며, 평양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 사주의 횡포와 오욕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크레인에 올라 싸우는 김진숙의 기록을 살펴봅니다. 저는, 우리는 모두 일을 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꿈 꾼 경제적으로도 균등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각자의 일상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방, 민주주의의 미래, 시민

본관 2층에 위치한 “민주주의의 미래, 시민”은 100년의 시간 동안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 된 시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의 주요 사건들이 흑백사진으로 스쳐가며 1987년 전두환 정부부터 2016년 박근혜 정부까지의 시민운동과 정권의 ‘개혁’을 정치, 경제, 사회 분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 있었던 시민운동을 찾아보면서, 지금 우리도 ‘광장에 선 사람들’이 되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흘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상원 작가의 ‘군중’은 오랫동안 기억에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3‧1운동에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과 촛불을 든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보는 모습으로 100년의 시간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줍니다. 그렇게 전시는 한국의 근현대사에 민주, 인권, 평화의 박람회라 이름 붙일만한 근거를 문자와 사진으로 제시합니다. 


전시실 본관 2층 사진 (사진작가 이우재)


이 전시는 100년 전 혹은 그 이후에 만든 실제 자료가 전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시의 기록으로 민주주의의 역사와 가치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람객에게 약간의 집중력을 더 요구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 내 마음에 가장 와 닿는 구절이 무엇인지를 찾는 여정으로 전시를 본다면 저마다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간첩 조작 사건, 시민운동의 상세한 경위와 흐름을 알고 싶은 분이라면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네요. 


전시실 사진 (사진작가 이우재)


앞으로 1945년 이후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은 그 내용과 방향을 매우 세밀하게 정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기에 숱한 논란과 화제가 있을 것이고, 치밀한 연구와 분석도 계속 될 것입니다. 이곳을 방문하신다면 금방 아시겠지만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은 무엇을 어떻게 기념하는 공간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고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설계 공모부터 개관하기까지 약 4년의 시간이 걸릴 예정이라고 해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만드는 곳이라면,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가는 민주주의의 모습처럼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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