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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시설을 통한 역사의 기억방법 현재는 미래의 거울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기념시설들에 대한 연재를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이 역사를 정리하고 기억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역사적 경험과 문화 그리고 현재의 여러 조건의 차이에 따라 과거의 사실을 평가하고 기억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기억이라는 것이 과거의 사건과 경험을 회상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기억들을 가진 주체들이나 집단들의 끊임없는 기억투쟁을 통해 선별되고 재구성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과 워싱턴 홀로코스트박물관
히로시마와 워싱턴에는 평화기념자료관과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라고 하는 과거의 극단적인 폭력의 기록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측이나 관람객들도 정치선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도 정치선전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지만, 관람객과 박물관이 공유하는 전쟁에 대한 사회통념을 확인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정치적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이 보여주려고 하는 ‘전쟁을 잊지 않고 세계 평화를 바란다.’는 호소도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다양한 역사기념물들에서 전쟁의 기억, 평화의 기원이라는 동일한 말이 사용되고는 있지만, 나라와 지역에 따라 그 기억의 내용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에 개관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경우, ‘기본적인 사명은 이 전례 없는 비극에 관한 지식을 확충하고 보급하며, 고통을 겪은 자들의 기억을 보존하며, 홀로코스트 사건이 제기하는 도덕적, 정신적 질문에 대해 관람자들이 숙고하도록 격려하여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그들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도록 돕는다.’(「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 사명선언」, 1993)고 하는 국민교육이라는 자신들의 뚜렷한 목표를 밝히고 있고, 이러한 교육이 때로는 군사력까지 동원하여 미국의 가치를 전파해야 한다는 개입주의라는 미국 외교정책의 당위성을 인정하게 하는 차원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하는 것을 볼 때 역사의 기억은 강력한 당파성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바닥이 높은 건축양식(피로티식)으로 지어진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본관은 1955년에 완성되어 개관한 후, 91년의 개장을 거쳐 94년에 동쪽에 있던 평화기념관을 개축하여 자료관 동관으로 만들고 통로를 연결하였다. 처음에는 연간 20만에서 30만 명 정도가 찾아왔지만, 65년경부터는 100만에 근접, 70년대 들어 100만을 넘어 현재는 130만 명 전후(수학여행 학생만을 보면 연평균 40만 명 전후)를 헤아리고 있다고 한다.

 

                        


전시의 내용을 보면, 원폭돔 모형의 주위를 둘러싼 비디오와 사진 등을 통해 도시의 성립과 발전, 군사도시로의 변화,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핵개발과 원폭투하의 결정과정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순서에 따른 히로시마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전시의 중심은 원폭피해를 보여주는 원폭자료와 유품으로, 예고도 없이 도시를 날려버린 원폭에 의한 열선, 폭풍, 흑우의 피해를 보여주는 녹아버린 기와, 탄화된 도시락, 사람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돌 등 많은 실물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기념관은 전시 이외에도 원폭투하에 관련된 자료는 물론 핵문제와 평화문제에 관한 도서자료도 수집하고 있어 도서관이나 연구기관으로서도 기능하면서 ‘히로시마를 세계로’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히로시마가 이처럼 평화교육과 평화관광의 상징으로 부각된 것은 13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은 피폭의 잿더미를 평화의 도시로 되살리려는 시와 시민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평화기념자료관 하다구치 미노루 관장은 이 과정을 “10년간의 논쟁과 20년간의 대(大)이주의 긴 여정”이라는 말로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를 세계 문명의 끝이 아닌 평화의 발신지로 만들려는 지난한 노력이 있었음을 스스로 강조하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의 차이
전쟁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의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전시와 함께 관련 자료의 수집과 연구를 행한다는 점에서 히로시마의 평화기념자료관과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이 두 박물관은 전쟁의 기억으로부터 나온 희생과 폭력에 대한 가치판단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히로시마의 기념관은 핵무기의 폐기를 호소하면서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과 원폭을 투하한 책임을 물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들 역시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로부터의 일종의 도피심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는 평화공원의 중심에는 ‘편히 잠드소서, 과거는 반복하지 않을테니까’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는 원폭위령비(정식명칭은 히로시마평화도시기념비)가 있다. 위령비는 비문을 새긴 석관 위에 아치형의 지붕을 얹은 모양으로, 비의 정면에서 그 지붕 안쪽을 통해 반대쪽을 바라보면 원폭돔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비문의 주어(主語)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은 한때 일본 전체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과거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말한 주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탓에, ‘일본인’이 주어라고 하면 왜 미국의 떨어뜨린 원폭의 희생자에 대해 일본인이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맹세해야 되는 것인가,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맹세해야 할 것은 미국인이 아니냐고 하는 감정이 담긴 목소리는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의 측면만을 기억하고 싶은 그들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악에 마주칠 때 방관하지 말고 희생자를 살려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나치에 의한 박해를 알면서도 희생자들을 죽게 내버려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식으로 폭력을 비판함과 동시에 그 폭력을 방치한 책임도 묻고 있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홀로코스트라는 두 개의 사건을 통해서 기억하고자 하는 것과 후세에 말하고자 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전시내용의 차이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 방식의 역사 교육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국민이라는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로 연결하여 자신이 역사 안에서 어디에 있는지, 그 존재의 의미를 과거에서 미래에 이르는 국민의 이야기 안에서 찾아간다고 한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자기탐색’에 있는 만큼, 역사는 위인과 영웅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국민’도 마치 입신출세를 이루는 개인인 것처럼 의인화된다. 개인의 이야기와 말해지는 역사가 서로 중첩되어 이중의 의미로 말해지는 역사, 즉 이야기 방식의 역사가 등장하는 것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기념시설의 경우 이야기 방식의 역사를 통한 교육기능을 중요시하고 있다.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어린이를 위해 1층에 ‘어린이를 기억함 : 다니엘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나치 독일에서 자랐던 한 어린이의 눈을 통해 본 학살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이야기의 전개과정에 따라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하면서 관람객의 의식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는 사회가 요구하는 의미를 고유한 시각적 수사를 통해 제시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의사소통의 장을 마련한다고 한다. 관람자는 전시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박물관이라는 발상은 시민들이 과거의 유산에 대해 배움으로써 올바른 사회생활을 위한 지성과 인격을 형성해 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이처럼 박물관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다.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것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적절한 의미를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기관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세 개의 이야기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거의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가르칠 때 정서적으로 접근, 그 시대의 상황에 몰입시켜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사용되어 왔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전해 준 안네 프랑크와 다니엘, 원폭의 공포를 실감하게 만든 사사키 사다코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우리 역시 자라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와 같은 감성적인 접근방법을 적극적으로 구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은 안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프랑크 집안의 세 여자 중 어린 안네가 가장 용감했어요. 남겨 두었던 빵 조각을 허기진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었고, 늘 꿋꿋한 태도로 고통을 이겨 나갔어요. 안네는 훌륭했어요. 참으로 놀라울 만큼…….”(『안네의 일기』중에서)

 


사사키 사다코(당시 12세)는 두 살 때 원자폭탄에 피폭 당하였지만 별다른 외상없이 건강하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9년 후 소학교 6학년 가을(1954년)에 갑자기 백혈병으로 입원한 그녀는 회복을 기원하며 종이학을 계속 접었지만 8개월의 투병생활 후 1955년 10월 25일 사망하였다. 사다코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원폭으로 죽은 아이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평화를 구축하는 상을 만들자는 운동이 시작되었고, 전국에서의 모금으로 ‘원폭어린이상’이 완성되었다.
이 이야기는 전 세계로 확산되어 지금도 ‘원폭어린이상’에는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종이학이 바쳐지며 그 수는 연간 1만 다발(1천만 마리, 8.5톤)에 달하고 있다.(『21세기 사다코 스토리』중에서)
“엄지손가락만큼 작다 하여, 어느 만화 여주인공만큼 착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가졌다 하여 ‘엄지’라 불리던 나의 동아리 후배, 소박한 성격 탓으로 남 앞에 잘 나서려하지 않았던 아이, 가난했으나 사랑 하나는 마음껏 베푼 아이, 사람 없는 공간을 마음 아프게 지켜나갔던 아이, 어떤 일로 투쟁에 동참하지 못했을 때 겸허하고 솔직하게 반성하는 아이, 밤을 새며 토론하는 전투적인 아이, 그 아이가 열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열사라 하여 특출 난 영웅의 모습은 아니며, 단지 식민지 조국의 이름 없는 모든 전사들과 같은 모습을 가진 아이였습니다.”(『민주주의의 꽃 김귀정』중에서)

 



과거는 현재의, 현재는 미래의 거울
역사는 성공한 사람만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세계의 여러 기념관의 건립과 운영을 둘러싼 논쟁은 역사가 성공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며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이들 기념관은 누구를 기리든 어떤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든 모두 역사의 ‘무거움’과 시간의 엄숙함을 전해주면서 과거가 우리를 괴롭히는 힘을 가진 동시에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행복은 앞서 투쟁한 수많은 열사들과 이름 없는 선배들의 값진 희생 위에 세워진 피눈물의 기록이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져 온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또한 더 많은 진실과 활동이 아직 드러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밝혀주고 증명해 줄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안고 하나둘 우리의 주위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과거를 망각하는 죄악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사업은 그것이 포괄하는 민주화운동의 범위, 기념사업의 주체 문제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이 제기되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논쟁과 갈등이 없는 기념이란 특정한 입장과 주장이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거나, 기억의 다양성 혹은 상상력이 정형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생각할 때,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에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노력 또한 우리의 역사를 발전시키기 위한 주춧돌을 놓는 과정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양금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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