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책 저런책] 분주하지도 산만하지도 않은 삶을 위해 <피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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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지도 산만하지도 않은 삶을 위해
<피로 사회>(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

 글 박호경 park_ho_kyung@hanmail.net





우리는 늘 피로하다. 최근 국내 아무개 브랜드전략연구소에서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10명 중 9명은 늘 피로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2 한국인의 피로’라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중 87.1%는 ‘현재 피로를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고, 특히 30대는 91.1%가 피로를 느끼고 있다고 답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피로도가 더욱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듯 모두가 피로한 한국 사회에서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적지 않은 시선을 끌고 있다.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건너가 철학, 독일문학, 가톨릭신학을 공부한 그리 평범하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인 저자는 2010년 독일에서 그리고 2012년 한국에서 ‘피로사회’를 통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피로사회’는 21세기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피로사회’는 현 사회를 과거의 규율사회와는 다른 일종의 성과사회로 분석한다. 즉 ‘과거가 타인에 의해 착취당하던 시대’라면 ‘지금은 스스로가 주인이자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착취한다’는 자기 착취의 시대라고 웅변한다. ‘너는 할 수 있다’를 강조하는 성과사회는 생산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본주의 모략으로 우리는 그 속에서 점점 더 피로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닌 성과주체이다. 그렇다면 왜 21세기의 자본주의 사회는 성과사회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일까. 저자는 이를 생산성의 극대화를 위해서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생산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규율 즉 부정성은 생산성 향상을 가로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성과 향상을 위해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성과사회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시스템적인 폭력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속에 노출되는 것이다.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신이 자신에게 성과에 대한 압박을 가하게 되고 결국 우리는 탈진하고 만다. 우리가 늘 피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늘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고 저자는 일갈한다. 우리는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하게 되고 결국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이는 일종의 성형수술과 같다. 처음에는 아름다움에 심취해 희열을 느끼지만 계속적인 수술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결국에는 몸을 망치고 만다. 여기서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가 된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21세기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는 과거 타인의 의해 착취되던 사회가 아닌 스스로가 주인이자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착취하는 사회일까. 어쩌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손, 즉 음험한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자본주의 사회구조라는 또 다른 모습의 타자에게 착취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자본주의 사회구조는 이전과 달리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그러나 저자는 이에 반론을 제기한다. 즉 타인착취 시대의 착취자는 자기착취 시대의 착취자와 다르다고 말한다. 피로사회, 성과사회에는 우리가 제거할 수 있는 자본가와 같은 타인착취가 없다는 것이다. 자본가 스스로 자기 착취를 하기 때문이다. 착취자와 대다수의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발상인데 여기에서 벗어나야 피로사회의 새로운 현상과 문제를 볼 수 있다고 저자는 웅변한다. 이렇게 본다면 회사에서 열심히 익힌 시간관리나 멀티태스킹 기법 역시 결국은 우리 스스로를 더 효율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서점의 자기개발서 코너에서 열심히 책을 읽는 것 역시 우리 스스로를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지식을 얻는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저자는 분주하지도, 산만하지도 않은 삶을 강조한다. 그는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하며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라고 일갈한다. 그래서 저자는 깊은 심심함과 사색적 삶을 강조한다. 인간은 사색하는 상태에서만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의 세계 속에서 침잠할 수 있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뤄져야 할 인간 성격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저자는 니체를 인용하며 우리의 삶이 좀 더 사색적으로 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우리를 더욱 피로하게 만드는 성과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책의 한계는 병에 대한 진단은 제시되었지만 병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이나 단초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과 사회의 압력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단순히 개개인들이 계속적으로 반성하고 자각하는 것만으로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저자가 그리고 우리가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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