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책 저런책]「완벽주의 함정」 완벽하지 못한 `완벽주의자`는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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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못한 `완벽주의자`는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완벽주의의 함정』, 클라우스 베를레 지음, 박규호 옮김, 소담출판사, 2012

글 김경중/ kjstream@naver.com




3년 전 가을, 유럽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직장인인지라, 긴 휴가를 다시 내기 어렵다는 생각에 여행 전 많은 준비를 했다. 건축물, 예술작품, 현지의 생활문화, 맛있는 음식까지, 어느 것 하나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여행을 꿈꾸었기에 인터넷 카페, 블로그, 여행 잡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수많은 정보를 추려, 거의 책 한권의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길 찾기를 위해 인터넷 검색으로 골목골목의 사진마저도 찾아보는 치밀함으로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은 순조로운 듯했으나, 불쑥 예상치 못한 일들도 일어났다. 블로그에서 추천한 맛집을 찾아 한 시간 넘게 빙빙 돌다가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식당에선 ‘슈니첼’이라고 하는 우리식 ‘치킨까스’와 별 다를 것 없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프스 필라투스산에 올랐을 때는 갑자기 날리던 눈발을 맞으며 예정되어 있던 기차를 포기해야 했다. 대신 걸어 내려오면서, 안개로 자욱한 철길, 끊어질 듯 구부러진 길, 서리가 내린 야생 꽃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 때 그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길 잃는 이가 지도를 만든다고, 우연만이 줄 수 있는 새로운 풍요로움이 있다. 그럼에도 뭔가를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하는 나를 비롯한 우리들은 이미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져든 것이 아닐까? 저자는 완벽주의가 우리 생애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학업, 직업, 자녀교육, 개인소비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완벽을 향한 우리의 노력은 점점 더 심해지고 그럴수록 더욱 깊이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게 된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학교의 교육에서부터 이미 완벽주의의 함정은 시작된다.

요즘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이 대세다. 입학 전 한글, 영어, 수학까지 많은 걸 미리 배우고 간다. 이는 독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자동차 뒷좌석 세대`라고 하는 `VIB(Very Important Babies)`들은 기어 다닐 때부터 이미 완벽한 사회화 및 학습 계획에 따라 보육되고 있으며, 20개월이면 프랑스어 학원을 다니고 음악 테라피를 받고 피트니스 스튜디오에서 신체를 단련한다. 이렇게 조기교육을 받은 아이는 앞으로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직까지 어느 연구결과도 조기교육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밝혀내지 못했다. "풀은 잡아당긴다고 더 빨리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시절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스펀지처럼 많은 것들을 빨아들일 수 있는 나이에, 조기 교육이라는 걸맞지 않은 옷을 입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생의 즐거움으로 알아가야 할 공부를, 살기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게 되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렇게 자란 아이는 다들 가야 한다는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취직을 위한 엄청난 양의 공부와 학점 따기에 지쳐 정작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할 중요한 시기가 지나버린다. 배운다는 것은 이제 삶의 자양분이 되지 못한다. 다만 기업이 원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만이 요구된다. 그렇게 모든 힘을 다 하였어도 직업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새로운 걸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학생은 마치 기업 컨설턴트처럼 자신의 스펙을 철저히 분석하여 증명서와 자격증을 따려 하지만, 문제는 다른 학생들도 모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기업이 필요한 것만을 고루 갖춘 복제 인간 같은 대중이 되어 독창성이 없는 획일화된 개인이 될 뿐이다.

운 좋게 취직을 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직장에서 성공을 위해 퇴근 후 영어를 배우고, 휴가를 가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 회사와 집 구분 없이 24시간, 일주일 내내 일을 한다. 직장에서 완벽함의 추구는 열심히 일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은 재미뿐만 아니라, 성취감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일한다고 돈을 더 벌거나 출세의 기회가 더 높아지지는 않는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죽도록 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는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스트레스만 심해질 뿐이다. 경쟁에서 ‘우위’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혼자 갖고 있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모두가 의자 위에 올라가 있으면 제 자신이 의자 위에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두드러지지 않는다."

저자는 결혼을 하면서도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다. 앞으로 나에게 완벽함을 더해줄, 내가 사랑할 만한 배우자를 찾는다. 스펙 위주의 배우자 찾기 덕에 온라인 중매업체는 사상 최대 호황인 것이다. 결혼식은 또 어떠한가? 뭔가 특별하고 싶다는 개별화된 요구에 각종 이벤트가 유행을 타고, 결혼 대행업체는 이를 놓치고 않고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는다.

완벽주의는 일상의 삶에서도 뿌리를 깊게 내렸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를 하루 종일 헤매고, 블로그의 상품평을 꼼꼼히 살펴본다. 넘쳐나는 상품과 수많은 판매 사이트 덕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도대체 내게 필요한 상품인지, 정말로 싸게 샀는지 확신할 수 없다. 길거리를 걷다가 맘에 드는 물건을 적당한 가격에 샀을 때보다 오히려 만족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완벽을 추구하는 똑똑한 소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들과 다른 개성있는 소비에 대한 욕구는 루이뷔통 같은 사치품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자신이 자율적으로 소비를 결정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직접 음식을 나르며, 은행 업무나 주식거래도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기차표, 비행기표도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가구를 직접 조립하는 `일하는 고객 Working Customer`이 된다. 그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다줄까?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단호히 말하고 있다. 그 수혜자는 다름 아닌 기업이라고 말이다. 인건비 감소는 기업에 막대한 수익을 주고, 일자리는 계속 줄어간다. 줄어든 일자리만큼 우리는 스펙경쟁시장에서 더욱 피폐해져 가고 말이다.

우리는 삶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에 더욱더 완벽을 추구한다. 그러나 완벽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작은 날갯짓은 학교, 기업, 국가에 커다란 이익을 안겨줄 뿐이다. 이런 현상을 저자는 `나비효과`라 부르며, 우리의 완벽주의가 남들에게 더 이득이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지나친 교육 열기에 학원, 학교의 이익은 커지고, 성공을 위한 완벽의 추구는 기업의 배를 불리고, 완벽한 삶을 꿈꾸는 개인은 보험이나 연금 상품에 가입함으로써 국가가 국민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을 상당 부분 덜어주는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사탕병에 손을 넣고, 가득 움켜진 사탕 때문에 좁은 입구에서 손을 빼지 못해 우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사탕을 놓는 순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비록 많은 사탕을 얻는데 실패했지만, 자유로워진 손으로 다른 걸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모든 걸 잘할 수 있다는 완벽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날 때만이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무언가를 계속 만족스럽게 이루어나가는 삶을 꿈꾼다면, 우리에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는다. 늘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내가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만의 삶을 저벅저벅 걸어가고 싶다. 때로 패인 웅덩이도 만날게다. 좀 부족하면 어떤가? 그것이 나이고, 또, 사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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