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책 저런책] 동화를 만난, 어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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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만난, 어른 아이


- ‘필리파 피어스’의 『학교에 간 사자』-


글 변정희/ Jhstream@naver.com





‘학교에 간 사자’ 이야기를 할까 한다. 옛날 옛적에 학교 가기 싫어하는 작은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 아이는 어찌나 작은지, 이름도 베티 스몰이었다. 아이는 언제나 느지막이 집을 나섰지만, 절대로 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퉁이를 돌아, 웬 사자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자, 이쯤 되면 너무나 유명한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이 떠오른다. 그러나 작은 여자 아이는 존과 달랐다. 존은 자기가 만난 사자와 헤어져 학교에 갔으므로, 선생님과 도통 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 작은 여자 아이는 당차게도, 사자의 등에 올라탄다. 아이는 왜 사자를 타고 학교에 갔을까?


지각하는 아이에게 학교란, 선생님의 핀잔이나 벌이 기다리는 공간이었을 테니까.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이는 왜 학교에 가기 싫었을까? 작은 여자 아이를 힘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이 이야기는 물론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영국의 판타지 동화 작가 ‘필리파 피어스’의 것이다. 그녀는 BBC 방송작가와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36세에 첫 작품 『피라미호의 모험』으로 동화작가가 되었다. 그 이후로 1959년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라는 시간의 절묘한 비틀림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통해, 카네기 상을 받았다. 그녀의 작품은, 아동문학사에서, ‘리얼리즘 판타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한밤중 톰의 정원』은 아동소설인데, 고학년, 청소년, 그리고 꿈을 꾸는 어른이라면 누구에게나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필리파 피어스’의 대표작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이지만, 그녀는 단편동화에도 능했다. 그냥 능한 정도가 아니라, 아동문학을 해 보고 싶은 습작생의 입장에서 보면 판타스틱하다. 그야말로 멋지다. 오늘은 ‘필리파 피어스’의 중학년(3~4학년 대상이지만, 저학년도 부모의 입으로 들려준다면 얼마든지 대상독자가 될 수 있다) 동화 「학교에 간 사자」를 추천하려고 나는 이 글을 시작했다.

「학교에 간 사자」에는 아홉 가지의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다. 단편 모음이다. 그 중 첫 번째 이야기 「무지무지 잘 드는 커다란 가위」를 보자. 여기에는 팀이라는 남자아이가 살았는데, 너무너무 사랑하는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는다. 팀은 당장 엄마와 함께 할머니에게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엄마는 급한 나머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엄마와 아이와의 일상에서, 이런 좌절은 빈번히 일어나지만, 팀은 몹시 화가 났다. 그래도 엄마는 팀을 두고 나가버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찾아온다. 찾아 온 남자에게서 팀은 무지무지 잘 드는 커다란 가위를 산다. 그리고는 찰캉찰캉 잘라보기 시작한다. 아빠의 코트 단추서부터, 양탄자, 그리고 소파, 의자, 어항까지… 어항에 든 금붕어는 마음이 아파 세숫대야에 넣어두는 센스까지.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팀은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이대로 엄마가 돌아온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그 때 다시 초인종이 울린다. 이번엔 바구니를 든 할머니가 왔다. 바구니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바로바로, 무엇이든 붙여주는 접착제였다. 이걸로 팀은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는데, 때도 알맞게, 이제야 엄마는 돌아온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팀에게 얌전히 잘 있었다는 칭찬을 해 준다. 덧붙여, 할머니는 괜찮아지셨고, 할머니의 선물 나무딸기 잼도 전해준다. 그렇게 이야기는 잼을 냠냠 짭짭 맛있게 먹었다는 걸로 끝이 난다.

너무 이야기를 다 해 준 것 같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이것 말고도 여덟 가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게다가 「무지무지 잘 드는 커다란 가위」도 줄거리가 말해줄 수 없는 무궁무진한 아우라를 담고 있다. 바로 그래서 명작이 아니던가. 그런데 굳이 내가 이렇게 스토리를 풀어낸 이유는 이 이야기가 갖는 구조의 틀 때문이다. 이 틀에는 약자로서의 분노와 반항으로 일탈을 감행할 때, 주인공의 카타르시스가 담겨 있다. 판타지의 세계에서, 아이들 대신 맘껏 자유롭고도, 주인공은 현실로 돌아와 달콤한 할머니의 나무딸기 잼을 먹을 수 있다. 그녀는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았던 것이다. 돌아올 포근한 엄마 품을 빼 놓지 않고, 아이의 마음에 깊이 호응해 도닥여주고 있다.

간질간질 콕콕 쑤시는 새끼손가락을 구부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온통 빨래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아줌마의 뜰에서, 셔츠가 장난을 걸어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이제는 당신이 확인할 차례이다.

앞서 습작생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나다. 나는 아이들에게, 또 나에게 선물이 될 글을 쓰고 싶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 이런 말을 하기도 쑥스럽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가 먼저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의 나를 보듬어 보는 것이다. 그 과정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고, 지난하고, 때로 내상의 슬픔을 느낀다. 허나 그러면서 내가 떠올린, 내 이야기가 있다. 때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우리 집은 부도가 나서 덜컹거렸다.

어느 날 나는 숙제를 해 가지 못했다. 그날 선생님은 숙제 안 해 온 사람은 일어서라고 하셨다. 그러나 차마 나는 일어나지 못 한다. 너무 수치스러웠으므로. 그리고는 선생님에게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는다. 집에 가서 알게 된, 내 엉덩이는 피떡이 진 채로 팬티와 하나로 엉겨 있었다. 살점을 떨구어 내며, 벗은 팬티를 나는 몰래 버렸다. 그런데도 붉어져 버린 나의 엉덩이를 어루만져 줄 만큼, 한가한 사람은 내 옆에 없었다. 엄마는 집달관에게 빼앗겨버린 것들에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그 때의 어린 나를, 나는 이제야 스스로 얼러 본다. ‘아팠지? 외로웠지? 무서웠지?’하고 말이다. 그런 나의 길 위에서 ‘필리파 피어스’는 성큼 나에게 말을 건네주었다.

내 안의 어린아이와도 만나고, 지금 커가고 있는 내 아이와도 만날 수 있는 책 『학교에 간 사자』를 당신에게 내밀어 본다. 따뜻하고도 짜릿한 경험이 될 거라고 장담한다. 아이들의 쫑긋, 집중하는 귀는 보너스다. 그 때만큼은 아이들 귀가, 커다란 레이더 마냥 커질 것이다. 꼭 읽어보시라. 또한 사랑도 나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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