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책 저런책] 상상과 성찰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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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성찰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나무』(열린책들, 2003)

 

글 이천 / clee007@naver.com

 

 

베르나르 베르베르. 우리에겐 소설 『개미』의 작가로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이다.
『개미』를 통해 그를 알게 된지도 벌써 20여 년이 되었다.
당시 내가 그 책을 접했을 때 너무나도 놀라운 상상력과 관찰력에 그저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작가는 이후에도 새로운 소재와 상상력으로 가장 최근작 『웃음』까지 여러 편의 책을 출간했다. 이중에서 소설의 형식을 취하지 않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상상력 사전』등과 함께 유일한 단편 소설집이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나무』라는 작품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베르베르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아닐테지만, 한국에서는 이 작가에 대한 열광적인 펜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다. 나 또한, 이 작가의 모든 책을 찾아 읽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이 사람의 무한한 상상력에 이끌려 꽤나 많은 작품들을 읽게 된 경우이다. 베르베르는 흔히 말하는 ‘천재 작가’이다. 천재를 ‘타고 난다’거나 ‘만들어 진다’고 설왕설래 하지만 베르베르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의 관찰력과 상상력은 타고난 것으로 보이나, 적어도 글 쓰는 능력만큼은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빠르게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을 유지하고 싶어 매일 저녁 한 시간을 할애하여 단편소설을 썼다. 그럼으로써 오전 내내 장편소설을 쓰는 데서 오는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곤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무』는 이렇게 써내려간 여러 단편들 중에서도 가려 모은 것으로 장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느낌이 있다. 총1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위에서 얘기한 습작의 형태이다. 그러나 내용만은 결코 습작의 수준이 아니다. 길이의 제한으로 구성이나 결말이 장편보다 조금은 허술해 보이나, 이 단편이 모티브가 되어 장편으로 써진 작품들이 많다. “완전한 은둔자”란 단편은 장편『뇌』의 모티브가 된 듯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나 “어린 신들의 학교”는『신』의 모티브가 된 듯하다. 이렇듯 상상력이 충만한 단편들을 하나씩 읽다보면 그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에 그저 감탄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놀라운 것은 이런 상상력의 출발점이 바로 우리가 흔히 놓치고 지나가는 일상의 하나하나의 순간들에 자리 잡고 있다는 데 있다. 어린 조카아이와 얘기를 나누다 자기 반에 10까지 셀 줄 아는 아이들과 그 이상의 수를 셀 줄 아는 아이들로 서열이 존재한다는 아이의 얘기를 듣고 수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그(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수의 신비”라는 단편도 그렇고, 양로원을 방문하여 노인들의 처지를 보고 노령화사회에 노인들을 격리 감금시키려는 국가정책에 저항하여 자신의 존엄을 되찾고자 했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황혼의 반란”도 그렇다. 이 단편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이야기들의 시작은 바로 우리가 접하는 일상의 면을 날카롭게 잡아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위 둘의 사례만 봐도 당장에 자본과 각종 주류미디어에 농락당하고 있고, 폐지를 주워 하루하루 연명하는 노인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노령화사회로 치달으면서도 그 문제를 회피하려 드는 우리의 일상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의 제목 “나무”는 수록 단편중의 하나인 “가능성의 나무”란 단편에서 따온 것이다. 내용은 과거를 연구하고 지식을 체계화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능성의 나무는 우리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언제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준다는 내용이 기본 설정이다. 다가올 세대에게 살기 좋은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 반드시 취해져야 할 환경보호 조치들이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도 이 가능성의 나무를 통해 많이 줄일 수 있다고 소설은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가 인간은 이제 컴퓨터와 기계가 예측하는 것들을 통해서만, ‘나’라는 존재를 넘어 인류와 지구공동체를 염려하고 걱정할 수 있는, 말하자면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역설에 부딪혀 있는 우리네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그렇다면 이러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과연 어떤 관점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의 출발점은 책 서문에도 밝혔지만 소설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개미와 천사에서 알 수 있다. 개미와 천사는 인간에 대한 상호보완적인 두 관점이다. 하나가 지극히 낮은 곳으로부터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지극히 높은 곳으로부터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인간에 대한 지극히 다른 관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여자를 어린 시절부터 친구처럼 지켜봐왔던 한 나무가 주인공이 되어, 자기 앞에서 돈과 다이아몬드 때문에 서로 의심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세 인간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무 스스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 폭력의 이유에 대해 묻고 있는 ‘말 없는 친구’에서처럼,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묘사되는 인간 세상의 풍경은 인간의 오만함을, 때론 인간의 어리석음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그가 설정한 가정을 극단으로 몰고 갔을 때의 결과들을 보여주며 특유의 유머를 곁들여 우리를 환상과 사색의 공간으로 이끌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위기를 이야기할 때 흔히들 ‘상상력의 빈곤’을 이야기한다. 공업화 시대에 맞게 대량의 똑같은 생산인력을 찍어냈던 옛 교실의 전근대적 교육방식이 큰 변화가 없이 그대로 지금의 아이들에게 대물림 되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갖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들이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도 사람들이 변화될 수 없는 그 첫 번째 이유가 상상력의 빈곤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공상과학소설로 분류되곤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이 유독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책에 담겨있는 작품들은 열여덟 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련의 심각한 질문과 그에 대한 베르베르 나름의 대답’이라는 책날개의 서평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의 상상력이 부족해져 가는 세상에 한번쯤 “나무”를 통해 상상력의 세계와 함께 우리를 성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접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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