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 저런 책]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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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글 박성용/ firstprince@hanmail.net

 

(오월의 봄, 2013)_##]

 

지은이 김순천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마포에 사는 30대 가장 박성용이라고 합니다. 마을에 책읽기 모임이 있는데 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정말 다채로운 의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회자도 중재자도 없고 따라서 아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할 수 있는 모임이지요. 이번에 제가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를 함께 읽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 때 마을 분들과 책을 읽은 뒤 나눈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 책은 르포작가이신 선생님께서 20명에 가까운 대기업과 공기업 사무직 노동자, 하청업체 여성노동자, 해고노동자, 프리랜서, 취업 준비생, 공인노무사와 학생회 간부 등을 인터뷰한 뒤 그 내용을 묶어서 낸 책입니다. 먼저 제가 이 책을 선정했던 이유는 용기 있는 분들이 만든 소중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이름 뿐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 만든 책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었거든요. 공개글이 된다는 생각에 인터넷에 댓글을 쓰다가도 실명을 언급하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검열에 들어가게 되는 게 요즘의 현실이잖아요. 정부나 기업이 비판자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거는 나라에서는 공개적인 글쓰기가 불편해지고 위축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알라딘 독자 북펀드를 통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더욱 와 닿았어요. 이 책을 만드는데 기꺼이 참여해주신 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 책을 볼 수 있게 된 셈이니까요.

 

철저하게 시장의 논리가 절대적인 기준이 된 대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앙대학교 사례, 노동자들로 하여금 변태적 일탈 행위를 집단적으로 부추김으로써 왜곡된 집단의식을 심어주는 한국 타이어 사례, 95% 이상이 중소영세업체임에도 불구하고 매출액 비중의 89%를 대기업이 독식하는 IT업계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 작동정지 장치가 없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서로 교대하며 인사할 시간도 없이 노동해야 하는 한 커피믹스 회사에서의 노동경험 등 글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숨이 차오르고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반응도 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사찰한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제정신인가요?”
“회사가 그것도 대기업이 회유하기 위해 노동자를 단체로 사창가에 보내준다는 내용은 읽고도 믿기지가 않을 정도네요.”
“IT 소프트웨어 업무의 하청단계가 갑, 을, 병, 정, 무…… 계속 된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기가 찹니다. 처음 알았어요.”
“‘눈을 감으면 커피믹스가 비처럼 내린다’는 글이 기억에 남아요. 쉬는 시간도, 화장실 가는 시간도 배려하지 않는 회사의 제품은 불매운동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이번 책을 선정한 저도 그랬지만 모임 구성원들도 한국 기업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직업이 노무사인 참여자 한 분은  “한국 기업에서 노동자와 고용자 간의 대등한 관계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며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직업과 자아실현이라는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상일 뿐입니다.”라고 말했어요. 직업 특성상 산재 현장을 자주 다니는데, 그때마다 왜 현장 작업자들은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며 일할 수밖에 없었는가, 부당하거나 목숨이 달려있는 무리한 요구에도 과감히 ‘노’라고 이야기 하지 못한 건, 그들 스스로가 고용자가 돈을 무기로 무슨 일이라도 시키면 해야 하는 노예라는 냉정한 현실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돈을 위해 일하는 것뿐인데, 일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위치와 지위를 확인하고(인정욕구 실현), 생계유지 차원을 넘어서 자아실현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이야기 했어요.

 

 조금 잔인한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그 자리에 참석했던 구성원들은 침묵했어요. 부인하기 어려운 말이었거든요. 한국에서 자본은 이제 누구도 막기 어려운 괴물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자본을 견제해야 할 정부나 언론, 지성인들이 거의 자본과 한 편이 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노동교육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입시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견고한 성벽 속에 위치한 학교 교육 또한 냉정한 노동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노동자들의 단체 교섭이 학교 정규 과정에 배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파편화 되어 가고 있고 인사노무관리 하는 것은 노동자를 주눅 들게 하는 굉장히 많은 장치와 기법을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저는 평소에 많이 했습니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환상 또는 이상보다는 독일 교육처럼 있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안에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사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말했던 주제는 문재훈 남부비정규직센터 소장님의 대기업 독식 구조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중소기업 지원금조차도 원청- 하청구조에 흡수되고 있더라고요. 재벌은 세금 끌어다 먹는 깔때기인 거죠. 기준 이하로 쥐어 짜는데도 중소기업이 그나마 살아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나라에서 주는 중소기업 지원금 때문이에요. 이 돈이 엄청나죠. 그걸 믿고 재벌들이 단가 후려치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 재경부 예산의 절반이 중소기업으로 들어가거든요. 그게 들어오면 재벌들이 다시 쭉 끌어가는 거예요.”(책 223쪽)

 

대기업과 재벌의 독식은 결국 계급의 맨 하위에 위치한 하청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이어져 온 것이고 혈세에 기반한 중소기업 지원금은 돌고 돌아 대기업을 배불리고 있다는 증언이었어요. 책에 실린 공단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이나 열악한 처우를 생각하면 결국 대기업이 최종 가해자였던 셈이죠. 하청노동자- 원청근무자- 관리직원- 중소기업 경영진- 대기업 담당자- 그룹 총수 순으로 이어지는 계급 상하구조 속에서 아득한 저 위로부터 수탈 받는, 맨몸으로 까발려진 밑바닥 하청 노동자, 곡소리 나는 현장과 깡패 같은 나쁜 기업들이 공론화 되어 결국 대선 공약으로 경제 민주화가 등장했고 복지 확충 열망이 확산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보다 밥’이라고 하는 천민자본주의와 철권통치에 대한 향수에 기반을 두고 선출된 권력이 경제를 민주화 한다는 것은 늑대가 개과천선하여 양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만큼 뻔한 거짓말로 들립니다.


 자연스러운 대안 논의도 있었어요. 기본 소득 보장과 보편적 복지가 그것입니다. 누군가 과로사할 정도로 몸을 혹사당해도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죠. 실업은 곧 빈곤이라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일자리 불안으로 인해 먹고사는 것이 점차 중요해지고 일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픈 ‘먹고사니즘’이 내재화 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보수화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죠. 저는 사교육과 지나친 경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었는데 책 속의 성실한 노동자가 당하는 처우를 보며 불안에 떨며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떠미는 엄마들이 일부 이해가 가기도 했어요. 일자리가 불안해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악순환 속에서 사회 안전망까지 부실하니 전 국민이 명문 대학과 안정된 직장에 목숨을 거는 현실은 쉽사리 바뀔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무겁네요.


 야심한 밤중에 벌어진 토론은 점차 고조되어 갔습니다. 우리 책모임 사람들은 그 흔한 주식이나 재테크, 시답잖은 막장 드라마 이야기 한 번 없이 인문, 사회, 교육, 생태, 철학 같은 주제만으로 열띤 토론을 하고 매번 헤어져야 할 시간까지 끝나지 않아 아쉬움을 가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데 그 점이 저는 참 신기합니다. 이번에도 선생님과 용기를 낸 주인공들 덕분에 많이 배웠고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만드신 의도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쁜 기업의 행태와 노동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해 나갈 때 세상은 좀 더 나아지겠죠? 고맙습니다, 선생님!

 

2013년 9월 박성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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