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불가능한 것에 대한 요구, 그것이 민주주의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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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학] 신간의 별자리를 그리는 서평가 로쟈 이현우를 만나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요구, 그것이 민주주의의 희망이다

 

정여울_ 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프롤로그

 

역사나 철학과 함께 문학을 인문학의 한 분과 학문으로 보는 것을
나는 ‘문학 극소주의’라고 부른다.
나는 ‘문학 극대주의자’다.
역사, 철학, 문학이 다 큰 의미에서 문학이라고 본다.


- 로쟈 이현우


 
책벌레 소년, 시인을 꿈꾸다

 

그는 너무 많은 책들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 무한미디어 사회에서 책들의 별자리를 그리는 사람이다. 그는 너무 현란하고 복잡해서 정리를 포기하게 되는 서재를, 자신만의 논리와 신념으로 차분하게 정리하고 목록화할 줄 아는, 우리 모두의 사서(司書)가 아닐까. 로쟈 이현우는 이제 거의 서평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는 정작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 이현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는 ‘책’만 보면 일단 머리부터 아파하는 독자들에게, 독서의 문턱, 이론의 문턱을 낮춰 주었다. ‘만만한 철학’이 될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곧 철학임을 일깨워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쌍생아이고 서로 지지하는 관계임을 인정하지만, 4년에 한 번씩 국회의원 뽑고 5년에 한 번씩 대선에 참여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는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대중을 기분 좋게 하는 작가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문학은 그냥 재미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문학은 더 대단한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문학 극대주의자’다.


정여울     저는 예전부터 이현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이 분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해지곤 했는데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책벌레 소년이었겠지요?(웃음)


이현우     얌전한 모범생이었죠. 집에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는데 계몽사에서 나온 오십 권짜리 전집이었어요. 다른 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세계문학전집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어요. 세계위인전집도 읽었는데, 한국위인전집은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말았죠(웃음). 세계문학전집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문학에 대한 감수성을 기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릴 때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의 작가들은 대부분 노벨상 수상자들이었거든요. 늘 그런 분들 작품을 읽다보니까 저도 덩달아 노벨상을 받고 싶었어요.(웃음) 그런데 제 머리에 입력된 소설이 다 외국 소설이니까 머릿속의 주인공도 다 외국인이었어요. 한국어로 소설 쓰는 것은 이래서 안 맞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 쿤데라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 싶었어요. 경험을 묘사하기보다는 성찰적인 소설이니까. 에세이와 소설이 결합된 글쓰기는 저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플로베르나 톨스토이는 ‘넘사벽’이고.(웃음) 아직도 에세이적 소설에 대한 관심은 남아 있어요.


정여울     언젠가 이현우 선생님이 쓰신 쿤데라 스타일의 에세이적 소설을 읽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웃음). 너무 많이 미루시지 마시고 얼른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기다려지는데요. 어린 시절에는 책만 읽는 외톨이 소년이셨던가요?


이현우     그렇진 않았어요. 하지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게 좋긴 했지요. 어린 시절에는 빨리 나이 들어서 노인이 되고 싶었어요. 노인에게는 아무도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으니까요. 책을 좋아했던 이유 중의 하나도 ‘날 좀 내버려둬’하는 심산이었죠. 『좀머씨 이야기』처럼요.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아무도 안 건드리니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아무 간섭 없이 죽은 듯이 앉아있을 수 있어서였어요. 학창시절 별명이 스티븐 호킹이었어요(웃음).


정여울     스티븐 호킹이요? 하나도 안 닮으셨는데.  

이현우     워낙 병약하고 비쩍 마르고 움직이는 거 싫어했으니까요. 어린 시절 폐결핵을 앓기도 했어요. 그 병도 결국 누가 날 건드리는 걸 싫어해서 걸린 것 같아요. 주사 맞는 걸 엄청 싫어했거든요. 결핵 예방주사를 맞으면 빨갛게 반점이 생기는데 그 반점이 10㎜ 이하면 다시 주사를 맞아야 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그 아픈 주사를 맞는 게 너무 싫어서 빨간색 연필로 칠해서 커다란 반점을 만들었어요. 다른 사람이 날 건드리는 걸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 수 있죠.  

정여울     정말 까칠하셨군요.(웃음) 어쩐지 선생님에게 말을 걸기가 좀 어려웠는데, 제 예상이 틀린 건 아니었네요(웃음). 그런데 어린 시절 소설 습작은 좀 해보셨는지요.


이현우     소설 습작은 안 해봤고 시는 좀 쓰다 말았어요. 초등학교 6학 년 때 노트 두 장 정도 자서전을 써본 적은 있었어요. 그런데 스스로 마음에 안 들어서 다 쓰지 못하고 그만둬 버렸지요. 그때 뭔가를 마무리 지었으면 내 인생의 길이 달라졌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A형스러운 특징인 것 같아요(웃음) 시작은 하되 마무리는 잘 못하지요. 소설은 안 써봤지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요. 내 자신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은 했지요. 멋있을 것 같았지만, 끝까지 해 본 적은 없어요. 대학교 1학년 여름부터 자작 시집을 냈는데 모교 중학교의 서무실 누나가 타이핑을 해주시고 등사를 하고 제본을 한 다음 서점에 가서 직접 제 시집을 팔았어요. 일반 시집과 같은 가격에. 몇 권 팔렸어요(웃음). 아버지가 사가시고, 담임 선생님도 사 가셨지요. 그 후에도 자작 시집을 여섯 권 만들었죠. 물론 자비로요. 점점 노하우가 생겨서 표지도 좀 더 번듯하게 집어넣고 대학가 인쇄소에서 제본도 했지요.  

정여울     자작 시집을 여섯 권이나 내셨다니,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데요. 제목이 뭐였나요?


이현우     첫 시집은 『음악가의 어린 시절』이었어요. 두 번째가 『저공비행』이었고 지금 제 서평 블로그 이름도 ‘로쟈의 저공비행’이 되었지요. 『한 그루의 사과나무』, 『생애 바깥에서』, 『중력과 은총』 이런 제목들로 시집을 꾸준히 냈지요. 그래서 제 별명이 ‘3동 시인’이었어요. 노문과 건물이 인문대 3동에 있었거든요. 97년에 석사 과정 졸업하면서도 책을 냈지요. 그때 아는 친구가 주선을 해가지고 『경향신문』 주말 판에 인터뷰 기사를 낸 적도 있어요. 기사에도 ‘3동 시인’이라는 별명이 나갔지요. 언론에 제 기사가 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죠.


정여울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우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노문과에 들어가시게 된 지도 궁금한데요.


이현우     주변에서는 ‘정 문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국문과로 가라’고 했는데, 저는 외국 문학을 주로 읽었기 때문에 내키지가 않았어요. 그때는 소련이 건재했던 시절이고, 러시아 문학을 좋아해서 노문과를 선택했지요. 그때 소련은 적성국가였지요. 소련이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노문과가 생긴 지도 얼마 안 되던 시절이었지요. 84년에 노문과가 생겼고 저는 87학번이에요.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이었고 사회주의가 재건될 것으로 생각했어요. 군대 갔다 오니까 소련이 망했더라고요. 군대 시절에는 단기 사병으로 복무했는데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아침마다 신문 배달을 하는 거였어요. 일면 톱기사로 계속 소련의 해체에 관련된 굵직굵직한 기사가 났었지요. 그때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일상에서는 그런 엄청난 변화를 잘 느낄 수가 없었어요. 90년 가을에 제대했고 90년 겨울에 소련은 해체되었지요.

 

 

『수레바퀴 아래서』, 나와 가장 닮은 인물을 만나다

 

정여울     1980년대에는 공부 잘하는 문과생들에게 ‘법대 들어가라’고 하던 시대가 아니었나요. 부모님께서 노문과에 들어가는 걸 순순히 허락해주시던가요(웃음).


이현우     아버지께서는 제가 법관이 되기를 기대하셨지만, 힘들게 강요는 안 하셨어요. 남동생 둘이 있는데, 둘 다 의사가 되었지요. 저는 고등학교 때 적성검사를 했더니 ‘전자공학’으로 나오더라고요(웃음). 정말 신뢰할 수 없는 적성검사였어요(웃음). 저는 중학교 때부터 이미 문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거든요. 그 결심을 하게 만들어준 건 헤르만 헤세였어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가 제 인생의 책이지요. 주인공 한스는 작품 속에서는 죽는 걸로 되어 있지만 현실 속에서 작가 헤세는 진로를 문학으로 바꾸고 신학을 그만 두었지요. 아버지가 사주신 세계문학 전집이 제게 큰 영향을 준 셈이지요.


정여울     『수레바퀴 아래서』가 왜 그렇게 좋으셨나요? 한스가 이현우 선생님과 많이 비슷했는지요?


이현우     한스는 제 자신과의 자기 동일시가 처음으로 가능했던 인물이에요. 집안이나 학교에서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자라지만, 시 쓰는 친구랑 어울리다가 성적 떨어지고 신경 쇠약에 빠지지요(웃음). 그때까지 읽었던 작품들 속에서는 ‘나를 닮은 인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는 완벽한 자기 동일시가 가능한 인물이었어요. 사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한스와 그의 친구는 헤세의 두 분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작품 속에서는 한스가 죽고 그 친구는 살아남는데, 현실 속에서는 그 시 쓰는 친구의 자아가 살아남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 작품을 읽으면서 제 안에서 ‘시를 쓰는 나’를 만들어냈던 것이지요.


정여울     올해 『경향신문』에서 뽑은 ‘뉴 파워라이터’ 20인에 선정되셨는데, 그 인터뷰에서 “나는 문학 극대주의자다.”라는 표현을 쓰셨더라고요.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이현우     ‘문학은 자고로 시와 소설, 희곡이지’ 이런 식으로 딱 정해진 장르와 분과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문학 극소주의자’라면, 역사도 철학도 넓은 의미의 문학이라고 보는 것이 ‘문학 극대주의자’이지요. 저는 모든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평을 쓰는 것도 문학의 일부이지요. 문학을 공부하면서 문학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문학적 지식에 대한 궁금증이 늘어갔어요. 우리는 문학에 대해 뭘 알 수 있는지, 어떤 작품, 어떤 작가에 대해서 안다고 할 때 뭘 알고 있는지를 밝혀야 할 것 같았어요. 문학이 무엇을 알려주는가에 대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로쟈 버전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문학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인식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하는 책을 써보고 싶어요. 문학 극대주의자이기 때문에 문학이 전부로 보이고 모든 것이 다 문학으로 보여요. 문학은 제가 아는 것들 중에서는 가장 커다란 무엇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것만이 문학이다’라고 주장하는 문학주의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죠.  

정여울     ‘내가 아는 것들 중에서는 문학이 가장 크다’라는 표현이 문득 뭉클합니다. 과학보다도, 철학보다도, 역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문학이 크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러시아 문학이 바로 그런 문학 극대주의자의 유토피아를 실현시켜주는 것이겠지요?(웃음)


이현우     그렇죠. ‘문학과 정치’, ‘문학과 사회’, 이런 식으로 나눌 필요가 없어져요. 모든 것이 문학이니까요. 문학 극대주의자의 망상이지요(웃음). 러시아 문학이 바로 그래요.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망상보다 더 큰 망상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바로 그것이 제가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톨스토이는 합리주의자이면서 문학 극대주의자는 아니지요. 제가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바로 이 문학 극대주의자의 과대망상증 계보를 잇지요.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문학이에요. 그리고 문학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증도 도스토예프스키다운 것이지요. 문학은 문학으로서만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쪽이고요. 그래서 톨스토이는 문학을 끝내 버릴 수 있었던 거예요. 톨스토이는 문학이 자기가 원한 것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버릴 수 있었던 거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곳에서 문학을 보았기 때문에 문학으로 인류를 구원하려 했던 거죠.


정여울     저도 사실 그 ‘과대망상증 계보’가 참 좋아요. 아직도 문학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과대망상증에 계속 빠져 살아가지요(웃음).


이현우     톨스토이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걸 소설에서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건 문학의 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자신이 쓴 위대한 작품들도 말년에는 다 ‘쓰레기’라고 부정할 수 있었던 거예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이 뭔가 거창한 소명을 떠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위대한 예술은 톨스토이에게 의미가 없었지요.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은 문학이 아니라 사상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작가고 톨스토이는 거대한 작가라는 말이 있어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학이라는 것 자체를 위대하게 만드는 작가라면, 톨스토이에게 문학은 너무 ‘작은 것’이었고 그 이상의 뭔가 원대한 이상을 꿈꾼 사람이었던 거죠.  

정여울     이 위대한 작가와 거대한 작가가 한 나라에서 났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내심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중한 만큼 톨스토이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품은 이상은 ‘구원’이라는 거대한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 무기가 ‘문학’인지 문학이 아닌지는 조금 작은 문제라는 생각도 들어요. 문학이 인류를 구원하는 대단한 소명을 다 하지 못할 때 문학을 버리는 것은 가라타니 고진과도 비슷하네요.

 
이현우     그렇죠.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이야기하면서 톨스토이를 언급하기도 해요. 소설이라는 예술 형식이 인류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들에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을 때 문학을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었던 거죠. 더 이상 문학으로 세상을 치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쓴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작품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수 있는 작가가 바로 톨스토이였던 거죠.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이 그런 중요한 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버린 거고, 톨스토이는 아예 문학은 그런 중요한 일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버린 거죠.  

 

 

 

우리의 민주주의는 『춘향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여울     박사학위 논문에서는 푸쉬킨과 레르몬토프를 다루셨는데요. 푸쉬킨이 선생님의 문학관에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인지요.


이현우     푸쉬킨은 기본값이에요. 푸쉬킨은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좋아’, ‘나는 투르게네프가 좋아’라는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지요. 푸쉬킨은 러시아 문학의 수원(水原)이고 러시아 문학의 전부예요. 러시아는 푸쉬킨 공동체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국민문학의 힘이에요. 푸쉬킨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출발점이면서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이지요. 국민문학이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흥미로워요. 물론 국민문학이라는 개념도 판타지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분열이나 모순을 봉합시켜줄 수 있는 판타지라는 점에서 소중하지요.


정여울     푸쉬킨은 기본값이다,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 문학은 푸쉬킨 공동체다, 이 모든 말들이 무척 의미심장하게 들리는데요. 공동체의 분열과 사회 모순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이 푸쉬킨 식의 국민문학이라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작품들이 그런 국민문학의 수원(水原)에 속할 수 있을까요.


이현우     옛날에는 국민문학의 계보로 이광수의 『무정』 같은 작품을 떠올렸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춘향전』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춘향전』에는 사회적 모순이 응축되어 있죠. 그 모순 때문에 사회가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봉합하려는 흔적을 담고 있어요. 양반층의 요구와 천민층의 요구가 결합되어서 묘하게 화해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양반집 규수처럼 수절하겠다고 버티는 춘향이는 그리스 비극의 안티고네를 닮았죠. 자신의 비참한 상황에서도 양반과 대등하게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변사 또는 권력층에 기대는 악의 무리 중 한 명이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양반, 선한 양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몽룡을 차별화하기 위한 설정이 아닐까 싶어요. 양반도 천민의 편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양반도 천민도 둘 다 만족시키려는 것이에요. 자아가 초자아와 이드 사이를 중재하는 것처럼 국민문학은 하층 계급과 상층 계급을 화해시키고 있어요. 푸쉬킨의 『대위의 딸』도 그렇지요. 민중의 편만 들어주지도 않고 귀족의 편만 들어주지도 않아요. 국민국가라는 판타지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바로 이 통합의 환상, 푸시킨적 판타지이지요. 그건 민주공화국이라는 환상이기도 하구요.

 
정여울     아, 그럼 러시아 문학이 푸쉬킨 공동체라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춘향전 공동체가 아닐까 싶어요(웃음). 푸시킨과 연결시키니까 춘향전이 훨씬 깊이 있는 텍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춘향전』은 어쩌면 봉건사회 안에서 민주주의의 테마를 태동시킨 집단 무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현우     『춘향전』에 여러 가지 판본이 있지만 춘향이 ‘양반의 서녀’라는 입장과 ‘천기 출신’이라는 입장, 크게 두 가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어요. 성참판의 서녀 성춘향보다는 월매의 딸 천기 출신의 춘향이 훨씬 더 래디컬한 버전이죠. 서녀 신분보다는 천기 신분이 훨씬 더 급진적이고 도발적이고, 더 도전적인 문제 제기예요. 이건 거의 세계문학 수준이죠. 성춘향이라는 것은 뭔가 저항의 가능성을 거세시키고, 춘향을 좀 더 양반 쪽에 가깝게 순치시킨 버전이지요. 춘향의 고결한 태도나 수절의 의지를 그냥 핏줄로 해결해버리면, 절반은 양반의 피를 타고났다고 하면, 이것은 양반 쪽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버전이니까요. 하지만 천기 버전의 『춘향전』은 세계문학사의 고전이 될 만해요. 아래로부터의 문학이거든요. 그것보다 더 분명하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것을 말한 텍스트는 고전문학에서는 거의 없어요. 한국문학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텍스트죠.


정여울     그럼 오늘 우리의 대화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춘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정리해도 되겠네요(웃음). 

이현우     홍길동만 해도 율도국이라는 별도의 유토피아를 정해서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도피해서 인정을 받는 것이지요. 춘향은 체제 내에서 인정을 받아요. 임금이 이몽룡과의 결혼을 허락하고 정경부인으로 봉했다는 것이니까 ‘저 세계’가 아닌 ‘이 세계’ 안에서 천민의 존재가 처음으로 인정받는 거예요. 춘향전의 판본이 이렇게 엄청나게 범람하는 것도 민중들이 보였을 어떤 열광의 흔적이라고 봐요.

 

 

에필로그

 

이현우는 『춘향전』에서 ‘어떤 열광의 흔적’을 읽는다. 아래로부터의 열광, 아래로부터의 환호, 그리고 이 사회를 언젠가는 기필코 바꿀 수 있다는 저항과 도전의 의지. 그것이 『춘향전』이 품고 있는 혁명적 에너지이자 국민문학의 이상향일 것이다. 푸쉬킨은 시를 처음으로 ‘예술’의 차원에 올려놓았고, 시라는 것은 다른 상위의 무언가를 위해서 봉사할 필요가 없고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 보았다. 보들레르나 김동인이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는 문학’, 즉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다면, 푸쉬킨은 ‘아버지의 책임을 지려는 문학’,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문학’을 꿈꿨고 그것이 바로 국민문학의 이상을 이루었다. 푸쉬킨은 러시아에서 유배 중이었고, 탄압이 너무 심해 망명을 꿈꾸기도 했지만, 러시아의 그 수난과 모순으로 점철된 고통의 역사를 다른 어떤 역사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국민문학 작가의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푸쉬킨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 문학은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커져버린 것 같다. 갈등과 모순으로 점철된 ‘두 계급’이 언젠가는 화해할 수 있다는 희망과 신념이야말로 ‘기꺼이 아버지의 힘든 자리’를 떠맡는 국민문학의 유토피아일 것이며, 아직 지구상에서 완벽하게 실현된 적이 없지만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유토피아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요구’가 없다면, 문학이 아니라고. 그리고 ‘불가능에 대한 요구’가 있기에 민주주의는 여전히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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