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책 저런책] 다시 봄, 어머니 대지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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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어머니 대지를 생각합니다.



글 한창현/ chhan68@naver.com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중년의 남자라면 한번쯤 ‘아!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일개미인가?, 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일하나? 이러다 나도 그냥 그렇고 그렇게 늙어가다 소모품으로 죽어가는 건 아닐까? 두 다리 뻗고 잘 집도 있고, 매번 남은 음식물쓰레기 처리가 귀찮을 정도로 먹을 것이 넘쳐나고, 옷장에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옷이 넘쳐나는데도 모두들 행복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정부는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몇 년째 수천억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청년실업은 날로 늘어만 갑니다. 아이들은 아직도 입시교육의 그물에 갇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조류인플루엔자에 실제 감염된 오리와 닭은 불과 몇 십 마리에 불과한데 인간의 안전을 위한다며 수십만 마리의 오리와 닭들이 강제로 살처분되고,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과로로 쓰러지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장 피에르 카르티에, 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농부철학자 피에르라비』(조화로운 삶, 2007)

 

오늘 소개할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인간이 대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피에르 라비는 1938년 북아프리가 알제리의 남부 사막 오아시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막의 혹독한 풍경 속에서 척박한 대지를 일구며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막의 농부들의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유년시설 라비는 알제리 사막의 문화를 간직한 채 프랑스 인 부부에게 입양되어 알제리에서 프랑스 문화의 교육을 받았고, 청년시절에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단순기능공으로 일하며 노동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현대의 산업사회시스템에 염증을 느낍니다. 그러던 중 1960년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미셸을 만나 도시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시골마을 아르데슈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염소 30마리와 불모의 땅 5헥타르 자갈밭을 일구며 새롭게 농부의 삶을 시작합니다. 라비는 생산성을 중시하는 현대적 농법(화학 및 기계농법)을 거부하며 유기물과 부식토를 이용한 거름을 이용하여 돌투성이 자갈밭을 비옥한 토양으로 만듭니다. 이를 통해 누구나 3핵타르(약 3,000평)의 땅만 있으면 유기농으로 농사지어도 한 가족이 충분히 먹고 남을 만큼 자급자족이 가능함을 역설합니다. 라비는 실제 시골에서 다섯 아이를 낳아 농부와 예술가, 과학자로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골에서 품위 있는 멋진 삶이 가능함을 몸소 보여줍니다.

 

라비는 자신의 생명농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농부가 되기 위해서는 의식혁명, 영적혁명, 기술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첫째로 의식혁명은 지구를 대하는 모든 사고방식이 수익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영적혁명은 “어머니 대지는 신성하다”는 참 뜻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라비는 아메리카 인디언 농민이 말했던 다음의 내용을 들려줍니다.

 

“어머니 대지는 우리를 사랑합니다. 대지는 우리를 먹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해 줍니다. 대지는 우리를 사랑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괴롭히고, 거칠게 대하며, 오염시킵니다. 대지는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렇게 대지는 참고 견딥니다. 어느 날, 아마도 멀지 않은 시간에, 지구는 진저리가 나 개가 벼룩들을 털어 내듯이 몸을 흔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 벼룩들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라비가 말한 기술의 혁명은 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하기 위해 땅을 오염시키고 동시에 인류를 오염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조화로움 속에서 땅을 경작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렇듯 라비는 농사를 짓는 행위가 단순히 생산성이 있는 작물을 키워내는 과정이 아니라 대지와 인간이 서로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기적의 창조과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라비는 우리의 지구가 살아 있는 존재인 흙과 버섯 등의 여러 미생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농부들에게 화학비료와 같은 죽은 물질에 매달리지 말고 생명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합니다.

 


물론, 라비가 강조하듯 우리가 직접 흙속에서 생명을 가꾸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농심農心(라비가 강조하는 신성과 같다고 생각한다)을 되살리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겠지만, 도시생활에 대부분 익숙한 우리 모두에게 그런 급격한 삶의 혁명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하나의 유토피아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비 또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죠.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이러한 농심을 염두에 두고 라비가 진단하는 현대 문명을 살펴보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대안들을 끊임없이 실천해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면서까지 지나치게 편리만을 추구하면서 그 세계 파괴의 책임은 모두다 타인에게 있다고 여기며 삽니다. 라비는 세계 파괴의 책임은 바로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그 책임으로부터 탈출하려면 신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즉, 천지만물에 속하는 것들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동물이든 식물이든 광물이든 모두 신성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합니다. 라비가 말한 신성을 깨닫는 다는 것은 세상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나로부터 스스로의 혁명을 말합니다.

 

“언제나 더 많이! 당신에게는 소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이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는 무너지고 맙니다!”  이것은 삐에르 라비를 가장 화나게 하는 슬로건입니다. 라비는 이런 슬로건들이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간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지구의 자원은 무궁무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조화로운 곳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라비는 말합니다. 라비가 말하는 검소한 생활은 단순한 생활 덕목의 도덕적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이며 지구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자기 실천적 방안입니다.

 

한국경제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사람들은 흔히 서구 복지국가의 모델로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의 복지모델을 지향점으로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라비가 이야기하는 한 가지 사례는 그런 우리 또한 소비주의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그 이상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대안을 추구하고 있다는 성찰을 갖게 합니다. 라비는 이전에 잘 몰랐던 나라에 가면 언제나 쓰레기 처리장을 간다고 합니다. 라비가 소위 잘살기로 유명하다는 스칸디나비아의 나라들에 갔을 때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 세트 등 아직 쓸 만한 물건들이 잔뜩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한 나라들의 쓰레기 처리장에 가보십시오. 그곳에는 쓸모 있는 물건은커녕, 그것을 담을 상자조차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자 또한 쓸모가 있으니까요. 그곳에서 당신은 플라스틱 빈 병 하나도 발견하지 못 할 것입니다.”

 

그리고 라비는 인간의 모순된 행위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소, 양, 돼지, 가금류들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학대만 하는 우리들이 애완동물에게는 비싼 사료를 먹이고 수의사에게 데려가는 등 부르키나파소의 1년 치 국가 예산보다 세 배나 많은 돈을 매년 들여가며 수선을 떠는 것입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보살핀다고 해서 그 동물들이 언제나 행복할까? 큰 개를 작은 아파트 안에 가두어 살게 하는 것보다 들판을 자유롭게 달리게 하는 것이 혹시 그 개에게는 더 행복한 일이 아닐까? 라비는 그렇게 반문합니다.

 

라비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창조물들이 이 대지 위에서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들이 약탈자가 되는 것을 이제 그만 멈추고, 동물들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끝없이 감탄합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 한 마리를 보면서 내 마음은 감동과 자유로 넘쳐납니다. 나는 모든 인간이 당장 오늘이나 내일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동물을 희생시킬 때,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그 동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고,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이 가해지지 않도록 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어머니 대지와 단절되어 아스팔트 위에, 시멘트 콘크리트 건물 속에, 그리고 화폐로 주고받는 소비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우리의 경제도, 사회도, 교육도 갈길을 잃고 끝없이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 봄입니다. 이 봄에 흙을 밟으며, 생명 하나 다시 보듬어 키워내며 라비가 강조한 ‘감동과 자유로 넘쳐나는’ 감탄을 내 마음에서 불러낼 방법들을 같이 고민해 봅시다. 그게 또 하나의 시작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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