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민주주의의 `기본기`

민주주의의 `기본기`


 

글 이명재/ promes65@gmail.com


 

올해는 갑오년. 120년 전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났던 해와 같은 갑오년이다. 동학농민전쟁이 청일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후 을사늑약과 한일합병으로 망국에 이르게 한 통한의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해다.


그런데 올해는 또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크게 뒷걸음질 친 해로부터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74년에 박정희 유신정권은 긴급조치를 발동함으로써 이미 빈사상태였던 민주주의에 더욱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74년 1월8일 발령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개정하자는 얘기를 하기만 해도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하고, 재판에(그것도 군법회의에) 회부한다는 내용이었다.

 

긴급조치 1호의 위반으로 비상 고등 군사 재판에서 선고받는 피고인들


이렇게 암울했던 유신-긴급조치 시대가 끝나고 그 후 다시 5공 독재 치하를 거친 뒤에야 우리 사회는 87년 6월 항쟁으로 마침내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많은 제도와 법규들이 갖춰짐으로써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성취한 나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그렇듯 견고한 듯 보였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문들이 최근 수년 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선거제도만 해도 선거는 법적으로 정해진 날에 확고하게 실시되고 있지만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주의적 선거의 4대 원칙, 즉 보통 비밀 평등 직접 선거의 원칙은 실질적으로 지켜지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헌법과 법률로 정한 자격에 맞는 사람이면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는 것이 ‘보통 선거’의 원칙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투표를 하고 싶어도 직장에서 투표할 시간을 제대로 내 주지 않아서 선거권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이들이 적잖은 현실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충분히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현실만큼,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 바로 ‘민주주의’ ‘민주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작년에 어떤 연예인이 ‘민주화시키다’라는 말을 ‘강압에 의하여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시킨다’는 의미로 써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 발언이 인터넷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비난을 사자 이 연예인은 부랴부랴 이를 해명하고 나섰지만, 이 사건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했다. 이 연예인의 말은 실은 적잖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다수결의 원리’와 같은 제도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다수의 의사’에 의해 ‘합법적으로’ ‘결정되고 이행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이다.


어쩌면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단순한 이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의 핵심인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단지 어떤 제도나 규칙이 아니라 과정이고 문화여야 하기 때문이다. 결코 완결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진화, 성장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성장시킬 ‘민주주의의 기술’이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에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그 구성원들이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학습하고 잘 실천할 때 더욱 잘 작동하며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민주주의 운동`을 벌이는 프란시스 무어 라페와 그의 딸 안나.

민주주의에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미국의 프란시스 무어 라페라는 여성 운동가가 제시한 ‘민주주의를 살아 있게 하는 기술들’이 좋은 참고가 될 듯하다. 그는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기, 창조적으로 논쟁하기, 평가와 성찰하기 등을 들었다. ‘축하하기’도 꼽았다. 즉 우리가 배운 것, 우리가 성취한 것에 대해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라는 것이다.

 

경청하고 논의하고 격려하기, ‘민주주의의 기본기’는 우리 일상으로부터 그리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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