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인간의 신명을 기록한다 사진가 김수남

 

얼마 전 양평에 있는 사진전문갤러리 <와>에서 사진가 김수남(57)을 만났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두 달 동안 개인전을 열고 있었고 오늘은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어휴! 이거 너무 추워서 사람이 오겠나?” 올 겨울 일찍 찾아 온 추위에 양평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은근히 걱정이 되나 봅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이 추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굿’의 작가 김수남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진가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김수남은 비인기 종목인 다큐멘터리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독특한 예입니다. 게다가 그의 사진 소재가 ‘굿’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합니다. 1970년대에 굿은 유신정권에 의해 ‘미신타파’라는 명목 하에 없어져야 할 구습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수남은 “우리 것을 지키자는 반항심 비슷한 것에다가, 언젠가는 굿이 다 없어질 것 같으니 내가 다 기록으로 남기자는 욕심으로 카메라 들고 전국의 굿판을 찾아 다녔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민중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고 김지하나 채희완 등과 어울려 다녔습니다. 동료들이 문학과 춤으로 민중예술을 계승할 때 김수남은 카메라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무당 아들이 소주를 잔뜩 마시고는 내 사진기를 빼앗아서 집어 던진 적도 있다. 무당들이 ‘나 안 할란다.’하고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거다. ‘신이 노한다.’고 하거나, 자기가 미신 행위 한다고 잡아가려고 증거사진 찍는 거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사진 찍는 것보다 무당들 설득하는 게 더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무당들에게 경조사가 있을 때면 부조금 보내고, 돌 반지 보내고 해서 인연을 쌓았다고 합니다. 즉 한두 번 찍고 말 그런 소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1980년 어느 날 쓰러지고 맙니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 “3년만 더 살게 해 달라. 그러면 내 작업을 마칠 수 있다.”고 기원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요. 동아일보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어렵게 굿을 쫓아 기록하던 그가 다시 건강을 회복 합니다. 게다가 ‘신영연구기금’의 지원으로 그간 찍었던 방대한 사진을 정리하고 프린트를 합니다. 정리된 사진의 프린트만 1천장에 달했습니다. 당시 30대 중반 밖에 되지 않은 이 청년 사진기자의 작업에 많은 지식인들이 놀랐습니다.


‘열화당’의 이기웅 사장이 그의 집까지 찾아와 이 사진을 보고는 기가 막힌 제안을 합니다. “책을 만듭시다. 한 20권이면 될까요?”이 결과물이 바로 1983년부터 1993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간행된 『한국의 굿』(열화당, 전 20권)입니다. 사진가들이 여러 방법으로 자신의 결과물을 남기지만 사진가 김수남에게 가장 강력한 매체는 책이었습니다.


이 『한국의 굿』을 통해 익명으로 남았던 한국의 무당들이 ‘실명’을 찾았습니다. 아마도 황해도 만신 김금화 선생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합니다. 사라져 가던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그것이 시간이 흘러 원형을 되찾으려 한다면 아마도 김수남의 굿 사진처럼 강력한 기록수단은 없을 듯 합니다. “사진이 그림·음악·문자보다 강한 메시지를 주는 이유가 ‘기록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에도 물론 작가가 창조할 수 있는 영역이 있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사진의 강점은 ‘기록성’이다.” 그래서 김수남 사진의 예술성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들도 그의 성실하면서도 우직한 기록성에는 입을 닫습니다.


독일의 미술평론가이자 함부르크미대 교수인 요헨 힐트만은 “정말이지 그에게서는 사진의 즉물성(객관성)이 우세하다. 그의 작업은 사진 기록이라는 전통에 서 있다. 김수남은 예술 사진작가로 간주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의 사진이(기록이든 예술작품이든) 제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들을 주목하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그의 사진은 기록사진으로서 뿐 아니라 문화인류학적으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정부에서도 역시 그러한 업적을 높이 사 그의 오랜 굿 작업을 총 정리한 책을 영문으로 번역해 작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88년부터 무대를 아시아로 넓혀 중국,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네팔 등 아시아 11개국의 무속신앙을 찍고 있습니다. 이 글을 한창 쓰고 있던 어느 날 김수남은 무거운 카메라가방을 챙기고 홀연히 아시아 오지로 떠났습니다. 대부분 사진가들이 현장을 떠나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는 나이임에도, 그는 여전히 인간의 신명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던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후배 사진가들에게 언제나 긴장의 대상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그의 미덕입니다.

 

글 이상엽
다큐멘터리사진가로 웹진 이미지프레스 http://imagepress.net의 대표로 있다.
『실크로드 탐사』(생각의 나무), 『그 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동녘)등을 썼고,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청어람미디어)등을 기획하고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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