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촌사진가 노익상, 알고 보니 도회지 사람이네

 

문학판에는 ‘구라’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입담 좋은 소설가 황석영 씨가 ‘황구라’로 통합니다. 사진판에도 구라들이 있습니다. 충무로나 인사동의 포장마차에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소주잔을 비울라치면 이런 구라들이 빛을 발합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람, 내 손길 닿지 않은 문화유산이 없다고 허풍 치는 사람들로 떠들썩합니다. 그 때 조용한 소리로 “그런데 말이야…….”하며 끼어들어 “그곳은 말이야,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낙동정맥을 따라서……. 백병산·백령산·주왕산·주사산·운주산·사룡산·단석산·가지산·취서산·원적산·금정산·몰운대로 이어지고 그 줄기는 낙동강 동쪽에 위치하는데, 그 산줄기의 동쪽으로 울진·영덕·포항·경주·울산·부산이 나오고, 서쪽으로는 태백·봉화·영양·청동·영천·경산·밀양·김해 이어진단 말씨…….”라며 사설을 이어가면 사람들은 일순 어안이 벙벙해져 입을 닫고 맙니다. 우리 땅을 산맥과 강, 평야까지 꼼꼼히 따져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과 기질까지 파악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 한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멈출 줄 모르는 ‘노구라’, 그가 바로 사진가 노익상입니다.


“우리 강의 중류지역에는 산과 들, 내가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어 삶의 모습도 다양합니다. 이곳에서 우리 땅의 문명이 꽃을 피웠죠. 전주나 안동, 부여가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일수록 전통을 앞세우고 현재나 미래의 삶보다는 과거에 집착하죠. 그곳 사람들의 기질입니다.”


국내 다큐멘터리 사진가 중에는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기록하는 이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노익상은 그런 이 중에서도 독특한 존재입니다. 그는 절집을 쫓지도 않고 잘 팔리는 문화유산을 찍은 일도 없습니다. 그가 렌즈로 담아내는 것은 촌동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장가도 못 간 초로의 농사꾼, 결손가정임에도 꿋꿋하게 집안일을 감당하는 아이들입니다. 강원도 촌에서 손수 지어 대접하는 흰 쌀밥에 감동하고 어느 촌부의 인생유전에 눈물짓습니다. 그래서 노익상은 “내 사진은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연들이 사진에 채 담기지 못해서 일까요. 그는 참 글도 잘 씁니다. 맛깔나게 우리말을 살린 그의 글을 읽노라면 커피 한 잔 보다 막걸리 한 잔이 간절합니다. 그런 그의 글맛에 감동한 소설가 공선옥 씨가 함께 촌을 두루 다니며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5년 동안 직업 사진가로 살아오면서 촌동네에 대한 사진 이야기를 500여 편 가까이 만들어온 진짜 촌사진가 노익상이 사실은 서울 출신의 도회지 사람입니다. 촌을 이야기하는 가장 탁월한 이가 사실은 도회지 사람이라? “제가 촌사람이었다면 뭐가 그리 궁금했겠습니까? 함께 가마솥 안에 담겨있었다면 그 안을 보려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도 맞는 말입니다. 이야기꾼의 첫 번째 미덕이 호기심 아니던 가요? 하지만 그 호기심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는 최근에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대궐이다 양반집이다 하고 돌아다닐 때 그는 재료도 부실하고 설계도 엉성한 함석집, 새마을주택 등 가난한 이들의 집들을 돌아다니며 그 안에만 남겨진 사연을 기록했습니다. 참 남다르지 않습니까? 노익상같은 이가 있어 우리 다큐멘터리 사진판이 풍요롭다 하겠습니다.

 

이상엽 inpho@naver.com
다큐멘터리사진가로 웹진 이미지프레스 http://imagepress.net의 대표.
『실크로드 탐사』(생각의 나무), 『그 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동녘) 등을 썼고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청어람미디어) 등을 기획하고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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