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사라진 숲을 추억하다

 

숲은 동·식물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키워왔다. 바람이 지나갔고 햇살이 모여들고 계류가 흘렀으며 꽃들이 피어났고, 나무들은 늙어갔다. 봄이면 그곳에서 더덕을 캤고 삼지구엽초(음양곽) 꽃을 구경하였으며 수리취를 뜯었다. 언 강이 따듯하게 녹아 흐르고 낮은 자리에서 숨죽이며 제 부피를 키우고 있던 여리디여린 싹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 깜깜하던 산과 들은 눈 깜짝할 사이 초록의 눈부신 세상으로 돌변하였다.


길고 길었던 삭풍의 겨울은 옛말이 되었고, 큰 산에 곰처럼 쌓여 엎드려 있던 눈더미들은 아름다운 물무늬로 바뀌면서 강을 건너 바다로 흘러갔다.

 

숲의 기억
닫혔던 창문을 열어젖뜨리는 그날부터 누구든 발탄 강아지처럼 숲으로, 숲에서 나무와 풀과 꽃들을 만나러 나서곤 했다. 지망지망 걸으면 만나지 못할 보랏빛, 우윳빛의 노루귀꽃, 연노란 애기중의무릇, 연분홍의 얼레지, 잘디잔 애기 손톱 같은 개별꽃과 흰빛의 은방울, 초롱꽃은 종소리처럼 맑았고, 노란 감자난초는 수줍었으며 청상의 무명 빛 같은 으아리 꽃은 슬픔으로 해맑았다. 무엇보다 먼저 샛노란 페인트 통을 들이부은 듯한 노랑 제비꽃들의 군락은 한 폭의 그림처럼 밝았다.


숲의 바닥에서 어린 꽃들이 수선거리면서 다투어 꽃대를 밀어 올리는 동안 물이 오른 숲의 나무들, 그 중에서도 동박나무라고도 불리는 생강나무는 잎보다 먼저 자잘한 숭어리로 이루어진 노란 꽃망울을 환하게 터뜨렸다. 박새가 날아올랐고 동고비가 뒤쫓았으며 뻐꾸기가 돌아왔다. 겨울밤에 길게 울던 부엉이는 노란 눈을 비비면서 나뭇가지 사이를 둔탁하게 날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문실문실 자라고 있는 젊은 조선소나무와 오랜 세월의 풍화를 견뎌내면서 고즈넉하게 늙어가고 있는 조선소나무 또한 서로 화평하였다.

 


산마루 혹은 등성이 어디쯤 시야가 환한 곳에는 멧돼지의 흩어지고 엉성한 잠자리가 있었으며 이친질(멧돼지가 영역을 표시하는 행위)한 나무기둥에는 억센 돼지털이 증표처럼 붙어서 경계를 섰다. 또한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골짜기 어디만큼 사초들의 무덤, 작은 늪에는 돼지의 진흙목욕탕이 있어서 멧돼지들의 발자국들로 어지러웠다.

 

그 발자국들 사이로 붉은 까치독사가 지나갔고, 고라니와 토끼가 힐끔거리면서 마른 목을 축인 뒤 쏜살처럼 달려갔으며, 목쉰 울음의 어치가 까치발로 다가왔다. 휴전선의 첩첩한 철조망을 뛰어 넘을 수 없는 멧돼지는 호랑이와 반달곰이 없는 숲에서 천적 없는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날짐승처럼 날지 못하는 산짐승들이 북쪽으로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까닭에 남한은 생태의 섬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의 숲-건봉산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사는 곳을 설명할 때 흔히 “고성 통일전망대 근처입니다. 또는 동해안 최북단 화진포해수욕장 부근입니다.”라고 한다. 그것도 고개를 갸우뚱할라치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4대 사찰 중의 하나인 건봉사가 있는 곳입니다.”라고 한 줄로 요약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고성은 그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역사의 경계지대다.


‘수복지구’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곳은 이북과 이남의 역사가 겹쳐 중첩된 지역으로 인간은 누구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수복지구이므로 민통선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강원도하면 산간오지, 까마득한 산비알 그리고 꼬불꼬불한 논틀밭틀길을 떠올리는 사람들을 단박에 배반이라도 하듯, 우리 마을 또한 1970년대 초 이미 농경지 경지정리를 완벽하게 끝냈다. 산을 막고 저수지도 만들었다. 대북선전용이었다. 경지정리를 끝냈다는 것은 손수레, 우마차 수준이 아니라 경운기, 트랙터 그리고 대형 트럭의 길이 확보됐다는 것을 뜻한다. 농기계 출입이 자유롭다는 것은 자동차의 출입 또한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송수단의 진입이 자유로워지면 그때부터 숲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 되고 만다.
그보다 먼저 1970년대 초 우리 마을 서쪽에 있는 민통선인 건봉산을 비롯, 마을 근처 야산 기슭에는 군부대에서 토치카를 만들고 호를 팠다. 이어서 여러 겹의 철조망도 줄이어 쳐 놓았다. 산기슭에도 뱀의 허물처럼 호를 파고 토치카를 만들었지만 산마루 능선을 따라서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민통선은 사람의 출입을 극도로 제한한다. 국가 방위 차원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사람 허리께까지 파놓은 호가 자연 풍화작용을 겪으면서 산사태를 일으키기도 하고, 허물어지면서 스스로 망가져간다는 데 있다. 일킬로미터가 아니라 수백,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것이 문제라면 또 문제다. 건봉산 능선 산마루를 따라 길게 난 군사도로처럼 말이다.


민통선은 사람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까닭에 인간들의 침탈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민통선의 생태계가 다양하고 건강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해버리고는 한다. 그러나 건봉산은 한국전쟁으로 그리고 가까이는 1986년 대형 산불로 초토화 되었고, 그 이전에는 땔감으로 나무들이 벌목되는 수난을 겪었다. 산불도 자연발화가 아닌 인간의 실수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고, 특히 건봉산 오십령 부근 포사격장 주변 수백 미터는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게 헐벗었다. 마을에서 바라다봐도 구멍 뚫린 가슴처럼 휑하게 비여 흙바닥을 보인다. 반세기가 넘도록 포탄을 쏟아 붓고 있는 중이다.




마을의 숲 - 송강리
마을의 숲, 건봉산 기슭에서 잘 자라고 있던 조선소나무들이 몇 년 전부터 도심의 정원수로 팔려나가고 있다. 그렇게 소나무들을 파낸 자리의 놀란 흙들은 강변 의 논바닥을 메우는 데 쓰기 위해 또다시 실려 나갔고, 강변의 논에서 파낸 모래와 자갈들은 도심의 건물을 짓기 위해 팔려 나갔다. 언뜻 보면 잘 짜여진 순환의 주기 같기도 하고, 또 한편 보면 밑돌 빼서 윗돌 고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숲의 나무와 꽃과 동물들을 말살한 대가로 높은 콘크리트 회색빛 건물을 지어 올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혼자만의 삶의 질을 외치는 이들을 위한 것이며, 복원된 청계천과 같은 인위의 자연을 꿈꾸는 이들이 만든 허상의 결과다.


나무와 흙을 드러낸 숲은, 산은 이제 논으로 용도 변경되었다. 농업정책의 부재로 과잉 생산된 쌀을 줄이기 위한 미봉책으로 화폐를 지불하면서까지 휴경지를 조성하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만금 사업의 매립 면허 목적이 ‘우량 농지 확보’라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논이 없어서 벼농사를 못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을 헐어내서 회색빛 까마득한 건물을 짓는 어리석음이나 드넓은 갯벌을 막아서 논을 만들겠다는 몽매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닮았다.


한편, 그동안 잡목으로만 지칭되던 숲의 나무들에 무심했던 사람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산으로 쏠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인한 석유값의 급등으로 기름값을 감당키 어려운 농가에서 마침내 화목보일러로 교체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는 무분별한 벌목으로 이어지고 있다. 땔감을 솎아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트랙터나 경운기의 접근이 쉬운 산기슭에서 닥치는 대로 논두렁 풀 깎듯이 빤빤하게 기계톱으로 나무들을 베어내고 있는 것이다. 당장 어떠한 원칙도 없는 형편이며, 이 마구잡이식 벌목을 막을 방도 또한 없다.


수십 년 동안 잘 자라던 참나무며 소나무들이 가차 없이 숲에서 사라지고 있다. 큰 나무들이 사라진 숲은 그 나무에 기대 살던 모든 생물들의 떠남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또한 나무가 사라진 숲은 물조차 마르게 되고 그 끝은 사막의 모래언덕일 수밖에 없다. 봄날 중앙아시아에서 날아온 황사로 고생하는 일때문에 흙, 먼지, 바람을 원망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먼 미래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해망쩍게도 미래를 팔아서 오늘을 살고 있다. 숲은 그러므로 시대의 묵시록이며 또한 인간의 미래이기도 하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상투이지만 그리하여 새삼스럽게 되새김질 해 보아야 할 또 하나 이 시대의 화두다.


* 김 담
강원도 고성 출생
1991년 임수경통일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수상 작품집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현재 강원도 고성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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