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석병산 지구 우리들은 현명한가


길은 흔적이다

봄산 가득 따듯한 바람이 일깨운 초록의 세상을 꿈꾸었다. 그렇게 꿈꾼 세상의 한 지점이 하필이면 백두대간의 어느 마루금 삽당령에서 이어지는 석병산이었다. 초행의 석병산 산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산행지도는 챙기지 않았다. 산은, 숲은 결코 선으로 표기할 수 없다. 또한 지도의 단일하고 일목요연한 통제의 질서가 언짢을 뿐만 아니라, 숲의 많은 것들을 은폐하고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릉과 정선을 왕복하는 직행버스는 삽당령 고갯마루에서 멈췄다. 이른 아침인지라 햇살은 고갯마루까지 올라오지 못했다. 고갯마루에 섰으니 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북으로도 갈 수 있었고, 남으로도 갈 수 있었다. 선택은 발걸음의 몫이었다. 그렇더라도 마음속에 품고 온 길이 있었으니 걸음은 자연스럽게 석병산 쪽으로 이어졌다. 산길의 어귀에는 ‘백두대간 종주’를 알리는 리본들이 성황당의 드림처럼 색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신작로만큼 넓게 닦여진 임도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임도를 버리고 너비 두 자쯤 되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시작부터 가파르게 치솟은 자드락길은 얼음길이었다. 쌓인 눈이 사람의 발길에 다져졌고, 마침내 얼음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주변이 갈색의 낙엽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숨차게 오른 비탈길은 굴곡진 능선으로 이어졌다. 능선은 마치 파도가 달려오듯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한 면으로만 삶을 살 수 없듯이 산길 또한 그와 같았다.


남도 아랫녘에서는 바야흐로 꽃 잔치가 한창이지만, 북쪽의 숲은 이제야 가만가만 눈을 뜨고 있었다. 온통 숲 바닥을 점령한 산죽군락이 오히려 푸름으로 기세등등할 지경이었다. 그렇더라도 끊임없는 사람의 발걸음은 질긴 산죽의 싹을 압살하였으며 마침내 산죽들 사이로 좁고도 길게 사람들의 길을 냈다. 인간에겐 승리의 길일 것이겠으나 산죽들에겐 고통과 수난, 억압의 길이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길은 상처이며 그 상처의 흔적일 수밖에 없다.

욕망의 신화 - 황금가지

뭉긋한 산등성이 산죽들 사이의 능선을 걷는 동안걸음이 먼저 박새 소리를 알아차렸다. 움직임을 멈추자 무당새로 불리기도 하는 딱새를 비롯, 회청색의 동고비가 숨바꼭질을 하듯 수선스럽다. 갈참나무 우듬지들 속에서 쇠딱따구리 또한 부산하다. 뒤미처 오색딱따구리가 알록달록한

날짐승들이 있었으니 그 짐승들 깃들어 사는 나무들이 마땅한 숲을 이뤘다. 참나무들 사이로 층층나무와 엄나무, 생강나무, 진달래 등과 그리고 간간이 오래 늙어온 금강송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명을 다한 참나무 등걸에선 운지버섯이 자라고 있었고, 딱따구리와 같은 새들은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무 둥치에서 새 생명을 얻고 있었다. 어느 한 종이 멸절하면 순환의 고리가 헝클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또한 둥근 그물공 같은 ‘겨우살이’들은 참나무 줄기 속에 뿌리를 내리고 기생하고 있었다. 겨우살이는 낙엽이 진 어두운 겨울 숲에서도 파랗게 광합성을 하며 살아 있다. 서양에서는 황금가지라고 하여 신성시하였고, 동양에서는 한약재로 쓰이던 것이 오늘에는 ‘웰빙’의 광풍을 타고 시골 장터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영생불사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신화이다.


겨우살이의 투명하고 연노란 열매는 산새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그러므로 죽음이 곧 탄생이다. 나무에 뿌리를 내린 겨우살이는 오래, 천천히 자라면서 숙주식물이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간다. 그리하여 때때로 생각해 본다. 참나무나 밤나무 등의 숙주식물에게 겨우살이는 무엇일까? 독일까, 약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무엇인 것일까? 인간인 나는 그 어떤 것도 끝내 알 수가 없다.


온통 어둡고 무채색 일변의 겨울 숲 끝자락에서 노오란 꽃봉오리가 한껏 부풀어 막 개화의 조짐을 보이는 선드러진 생강나무를 만난 것은 물 없는 산에서 만난 귀한 감로수였다. 꽃은 이울면서 비로소 꽃일 수 있듯이 개화의 조짐은 온 우주를 열어젖히는 천지개벽의 그 숨 막히는 황홀의 전야이다. 봉오리 속에 이미 나무 한 그루의 끝과 시작이 있었다.


겨울 숲에 아직 봄은 먼데 있는 게라고 조바심을 치며 안달을 하는 것은 인간들뿐이었을까. 이미 숲에는 가만가만 봄빛이 스며들어 풋풋하면서도 청청한 바람으로 꽃들이 깨어나고 있었던 것을 인간만이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등성이를 넘어가는 바람은 누구에게라도 나눠주고 싶지 않을 만큼 여리면서도 날카로운 그늘이 있었다. 그것은 넋을 빼앗길 정도로 아찔한 부드러움이기도 했다.

 

사라진 자병산 봉우리를 바라보다

물병 없이 오른 산행인지라 얼어붙은 눈더미 앞에서 흙먼지 내려앉은 겉눈을 긁어내고, 속눈을 뭉쳐 얼음처럼 깨물어 먹으면서 갈증을 달랬다. 봄산에 나물을 뜯으러 가는 어른들이 물병 없이 갈 수 있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미처 계류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응달 깊은 곳에는 이렇듯 눈얼음이 남아 있었던 덕분이었다. 눈얼음은 얼얼하면서도 청량했다.

 


 

숲은 동무가 없어도 외로울 겨를이 없다. 발치에서 화들짝 날아오르는 멧비둘기는 뜻밖이었으며 수리취 가을 씨앗을 만난 것도 즐거움이었다. 우리 고장에서는 떡취라고도 하는 수리취 어린 싹은 오월 단오에 절편을 만든다. 단일한 산죽이 자리하지 않은 숲 바닥은 여러 식물들이 함께 있다. 단일만을 고집할 때 무언가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두리봉을 지나자 앞으로 내딛는 걸음에 탄력이 붙었다. 능선의 왼쪽은 가파르게 사무쳐서 천길 낭떠러지인 듯하여 고개를 들면 아스라이 동해가 손에 잡힐 듯하고, 반면 오른쪽으로는 봉우리와 봉우리들이 끝없이 물결치듯 흘러가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하다. 넓은잎나무 지대를 그렇게 오르내리면서 휘우듬 굽이 돌기도하면서 눈앞에 바위산으로 우뚝한 석병산으로 향했다.


석병산, 바위산에 발긋발긋 참꽃처럼 자라고 있던 나무는 도장나무로 알려진 회양목이었다. 정원에서만 봐오던 회양목이 석회암지대에서 자생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놀라움은 조금 덜했을까. 아니 강원도 회양에서 많이 나는 나무인 까닭에 황양목이던 이름이 어느 사이 회양목으로 바뀐 것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눈앞을 스쳐가면서도 무엇을 만났는지 모르는 것이 태반인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놀라움도 잠시 동안이었다. 갑작스레 광풍으로 돌변한 바람으로 인해 서 있을 수가 없던 나는 앉은걸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밧줄을 잡고 일월봉까지 내려갔다 엉금엉금 다시 올라왔다. 새까만 절벽이었다. 다시 시작된 황사는 시야를 더욱 더 흐리게 했다. 그것뿐인 줄로만 알았다. 아니면 길을 잘못 들어 그 산, 자주색으로 빛나던 산을 볼 수 없는 게라고 지레 낙담하여 우두망찰 바람을 등지고 섰다. 그렇더라도 어느 곳으로든 가야 했다. 남으로든 북으로든, 아니면 인적 없는 헬기장이 있는 서쪽으로든. 어정버정하는 사이, 흐린 황사 속에 어릿어릿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였고, 패닝하듯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다가 그만 아, 아 숨을 멈췄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28년 동안 석회암을 파먹은, 자병산이 눈앞에 확대경을 들이댄 듯 다가섰던 것이다.

 

이젠 지도에서조차도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자병산이 이름 없는 산이 되어, 정수리가 파헤쳐지고 사지가 갈갈이 찢긴 채로 피 흘리듯 석회석을 흘리면서 굴착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20년은 더 석회석을 캐낼 것이라고 했다. 백두대간은 이미 대간이 아니었다. 아니 ‘백두대간 종주’가 은폐하고 있는 그것과 닮았다. 아직 누구도 백두대간을 온전히 종주한 사람이 없는 것과 같았다.


강원도가 2009년까지 석병산 지구에 ‘미래경제림단지’를 조성할 계획으로 이미 1차 기반시설을 완료했다는 뉴스를 돌아오는 길에 보았다. 백두대간의 특성을 담은 지역 고유의 산림수목원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750ha의 면적에 84억 원을 들여서 15개의 소규모 공원을 조성할 방침이라고 했다. 자연을 파괴한 자리에 인공 공원을 조성하는 우리들은 과연 현명한가.


김 담
강원도 고성 출생
1991년 임수경통일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수상 작품집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현재 강원도 고성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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