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설악의 숲에서 놀다

숲이 수평으로 조화롭다면,
산은 수직으로 강건하다.

바람결은 매서웠고 바다물결은 높았다. 근래 날씨는 한겨울처럼 춥고 시렸다. 길 떠나는 자의 심정이 못자리를 만드는 농부의 우려와 닮았다. 그런 틈 사이로 주춤주춤 다가온 봄빛은 마을 곳곳에 사태가 날 지경으로 봄꽃들을 피웠다. 살구나무가 해뜩발긋한 꽃을 피웠으며, 연푸르면서도 순백으로 피어난 자두꽃으로 마을은 한겨울 폭죽처럼 화려했다. 4월 숲을 찾아 설악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계가 좋은 날이면 거진항에서건 화진포 호수에서건 중청과 대청의 설악산 봉우리를 바라볼 수 있었지만 그곳은 언제나 아주 먼 곳이었다. 마치 화진포성이나 거진 등대에 오르면 금강산의 구선봉을 포함한 말무리 반도를 볼 수 있는 광경과 다르지 않았다.

 

비선대에서 대청봉까지의 길은 ‘산불 조심기간’으로 통제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산행 계획이 없었다. 매표소에서 비선대까지 숲에서 하루를 놀아볼 생각으로 길가 슈퍼마켓에서 음료와 초콜릿을 새참으로 준비하고, 시내버스에 올랐다. 국립공원 매표소에서 매표를 할 때마다 ‘문화재 관람료’ 포함 징수는 불만스러웠다.


공원 내에 음식점을 비롯한 휴게실들이 즐비한 것도 언짢은 일이었으며 매표소 밖의 음식점 앞에서 호객행위 또한 그러했다. 이쯤에서 참자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공원 내 음식점 앞 숲에는 이제 막 얼레지가 잎을 피웠으며, 보랏빛 현호색은 지천이었으나 사람의 발길에 밟혀 딱딱하게 굳은 채 미처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어루만질 수 없는 심정이 꼭 이와 같을 것이어서 슬며시 고개를 돌리면서 일주문을 지나 통일대불 앞에 섰다. 또 계곡 정비공사 중이었다. 굴삭기의 굉음이 천지를 진통시키고 있었다.


울산바위 방향과 비선대 방향 사이의 갈림길에서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비선대 방향의 숲에서만 놀기에는 하루가 너무 길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몰랐지만, 그 순간은 그러했다. 번번이 숲에서 사진을 찍다가 해를 넘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탓이었다.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자는 얼마나 현명한가. 이른 아침 빈 속의 몸이 추워 다리 옆의 가게에서 자판기 커피를 찾았으나 없었다. 순순히 물러나서 비선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멘트로 포장한 길은 오래지 않아 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렇더라도 숲의 나무들 사이에서는 박새가, 딱새가, 동고비가, 쇠딱따구리가 그리고 오색딱따구리가 먹이를 찾느라 소란하고 분주했다.


햇볕은 얼마나 따뜻한 감동이며 축복인지 인공의, 무채색의 검은 지하동굴 같은 날씨가 연속되다보니 저절로 알게도 되었으나, 하늘은 여전히 매지구름 속에 갇혀 도무지 헤어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숲도 여태 겨울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서는 시멘트 포장의 도로를 벗어났다. 경계석의 이쪽과 저쪽이 천길 낭떠러지처럼 다르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숲 바닥, 땅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만개한 현호색의 무리가 먼저 반가웠다.


숲 바닥에 지천으로 핀 현호색은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갈퀴, 댓잎(가는 잎), 들, 왜(산), 좀(제주) 등 이름과 이파리가 다른 현호색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깜깜한 땅 위를 환히 밝히고 있었다. 계곡의 자갈밭 또는 숲 사이에 잊을만하면 산괴불주머니가 노오란 꽃부리로 피었다. 괴불은 벽사의 의미로 쓰였고, 아이들 노리개도 그렇게 불렀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니 이번에는 꽃이 떨어지면서 잎이 돋아나는 노루귀가 푸른빛으로 도드라졌다. 꽃이 먼저 피고, 그 꽃들 이울고 나면 그때 잎이 나오는 노루귀는 어쩌면 상사화와 같은 처지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봄꽃들 중 꽃이 먼저 세상 구경을 한 다음 잎이 나는 꽃들이 많다. 눈에 띄는 것 중 생강나무꽃이 그렇고, 노루귀가 그러했다. 노루귀는 남녘에서는 분홍빛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이곳 강원도 북부에선 뾰족노루귀라고도 하는 보랏빛과 순정한 흰빛의 애기노루귀를 흔히 볼 수 있으며 분홍빛은 매우 귀하여 거의 볼 수 없다.

 

봄 숲의 작은 꽃들은 내 몸을, 허리를, 머리를 공손하게 숙여야지만 비로소 만날 수 있으며 지망지망, 거칠게 걷는 걸음으로는 결코 볼 수도 없으며 만날 수도 없다.

 

생물권 보전지역

‘설뫼로’라고도 불리는 설악산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대청봉을 중심으로 173.7킬로미터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또한 수려한 경관과 동식물의 서식처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82년 8월 유네스코(UNESCO)의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호랑이, 여우, 사슴은 아예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고, 늑대의 서식도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산양, 하늘다람쥐, 수달의 서식은 위험에 처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까닭에 도로 옆에 안내 표시판을 따라가면서 자연학습 탐방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뿐이었다.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은 단체로 비선대에 몰려들어 기념사진을 찍고서는 또 어딘가를 향해 바삐 달려갔다. 숲에서도 편안한 구석 없이 몹시 바빠서 종종걸음으로 서두를 따름이었다. 문명이 숲을 밀어냈듯 시계바늘이 자연 상태의 리듬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시계의 시간을 쫓는 인간을 양산했다.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끊임없이 죽여 왔다. 다시 말하자면 어여쁘다고 꽃을 꺾었고, 고기가 좋다고 짐승들을 잡아먹어 왔으며 그것은 세세년년 반복되어 영속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라도 생태계 보전과 자연자원의 현명한 이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미래의 또 다른 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러해야할 것이지만, 우리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자연자원을 훼손하기에 여념이 없다. 개발이라는 이름을 앞에 세우고 염치도 없이 차라리 당당하다.


조릿대 숲을 비켜서서 다시 숲으로 들어섰다. 노루귀, 개감수, 고깔제비꽃, 남산제비꽃, 미치광이풀, 풀고비, 개별꽃, 바람꽃, 족도리풀, 돌단풍, 괭이밥들과 미처 이름을 알지 못한 식물들이 저마다 고유한 색깔과 특별한 모양으로 숲을 빛내고 있었다. 처음 실물을 대한 개감수는 단연 유별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서로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테지만, 꽃들의 모양을 살피고 있으면 마치 외계의 무엇을 보는 듯 기이하면서도 신묘할 따름이다. 짧은 내 말과 글로는 어떻게 표현해 낼 도리가 없다.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어여쁘구나, 어여쁘구나 할뿐이다.

 


 

그 남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꽃들에게 정신을 팔면서 기념하느라고 다른 틈이 없는 사이, 불쑥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주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웬 사람이, 아니 정확하게 웬 남자가 내게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얼결에 사진을 찍는다고 말을 하고서는 그러는 당신은 무엇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나물을 뜯는다고 했다. 나물? 사진기를 거두고서는 겁도 없이 나무들 사이를 지나 그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쪼그리고 앉은 젊은 남자는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서는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옆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바람에 너풀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나물을 뜯는다는 처음의 말을 고쳐서 ‘자연산 더덕’을 캐고 있다고 했다. 더덕? 가만히 살피니 더덕 냄새가 났고, 검정 비닐봉지는 거의 비어 있었다. 남자는 다시 새끼 더덕을 캐서 집에다 심을 것이라고 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속초에서 왔다고 했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그가 전문 나물꾼이 아님은 알 수 있었던 까닭으로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다음 “국립공원에서 나물을 채취할 수 없는 것은 아시죠?” 쐐기를 박고서야 자리를 떴다. 남자는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알면서도 왜 남자는 더덕을 캐고 있었을까. 더 물어보지 못한 것을 뒤늦게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그를 고발하거나 신고할 생각은 없었다. 큰 도둑들은 도로 옆 눈앞에서 이미 더덕 따위는 거의 없어진 그런 곳에서 일을 벌이지 않는다. 어쩌면 몇 뿌리 더덕을 캐서 집 마당 어딘가에 심고 싶었을 것이었다. 설악산에 등을 기대고 살면서도 설악산이 국립공원이라는 법적 지위를 가진 탓에 남자는 설악산에서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었을 테다. 봄산의 나물을 뜯을 수도, 가을산의 송이를 딸 수도. 하다못해 어느 휴일 입장료를 내지 않고서는 단 한걸음도 숲으로 들어올 수조차 없었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남자 한사람만큼은 모르는 체 했다. 싹이 난 뒤 칠년 쯤 지난 뒤에야 꽃을 피울 수 있는 얼레지를 뜯지 않은, 도시에서 온 전문 나물꾼이 아닌 것만도 고마웠던 것일까. 봄에 잎을 따버리면 얼레지는 생장을 멈춘 채 더는 자라지 않는다. 사람이 먹기 위한 것이지만 언제든 대량생산의 속내는 우리를 깊게 병들게 했다.


사람과 숲의 소박한 공생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길을 더듬어 찾아내야 할까? 나는 꽃들 속에 파묻혀 내가 편애하는 금강소나무, 두루뭉실 뭉뚱그려 불리는 신갈, 졸참, 굴참, 갈참나무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공동체의 이익을 높이면서도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러한 세상에 대해서 언제 다시 이야기할 날이 있지 않을까.

 

 

김 담
강원도 고성 출생
1991년 임수경통일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수상 작품집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현재 강원도 고성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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