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점봉산, 꽃 사태 나다

 

오색 민박촌 담벼락 화단에서 만난 하늘매발톱꽃은 실하면서도 탐스러웠다. 음료와 새참거리를 사기 위해 들른 구멍가게 노파는 점봉산으로 가는 지름길을 일러주었다. 이른 아침 다래 어린순을 따가지고 온 뒤 아침을 먹는 중이라면서 나물을 하러 가느냐고 물었다. 대답 없이 웃으면서 문을 나섰다. 시골 노인들의 길안내는 가늠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잘못 알아듣기 일쑤인지라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시 내 어림짐작으로 찾아들었다.


민박촌은 산 깊이 들어앉았고, 마지막 집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더덕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골짜기는 깊었고 등성이는 높았다. 더덕냄새의 향방을 쫓을 겨를이 없었다. 어느 생이 또다시 있을라치면 나는 아마도 더덕이나 소나무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더덕과 소나무를 탐했다. 산에 나무를 심으러 가거나 솔잎혹파리 방제주사를 놓거나 또는 칡줄 제거 작업을 할 때면 더덕 냄새로 하여 환장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더덕구이를 혹은 날더덕을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을 아니면 더덕술을 즐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더덕을 보면 반갑고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일하는 가운데 어른들에게 더덕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지만, 어린 새끼더덕까지 모조리 캐는 것을 지켜본 뒤로는 질겁을 하여 그 뒤에는 혼자서 크기를 상상 가늠하여 보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다.

 

이, 황홀(恍惚)

초여름의 숲은 어느 한 곳으로 눈길이 쏠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애연한 연둣빛은 빛 틈에서 여름의 초록을 향해 가느라고 아우성이었고, 키 자란 나무들은 자폐와도 같은 제 부피를 나이테로 키우느라고 밤낮없이 수선거렸다. 계류의 물소리 또한 왁자지껄 깊으면서도 가볍게 어디 먼데로 흘러가고 있었다. 날짐승, 들짐승 역시 분주하기 이를 데 없이 한생의 만끽이었다. 발아래 키 낮은 꽃들 또한 생의 정점을 향해 치달아가면서 제 삶을 향한 열정에 가감이 없는 듯하였다. 꽃이 진 자리는 열매가 없어도 가벼울 수 없었다.


크고 높은 산이었으나 봄이 늦게 당도할 것이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였다. 애초 숲에서 꽃들과 놀기보다는 오색에서 점봉산을 너머 귀둔으로 가는 산행을 생각하였다. 우리 마을 앞산은 이미 여름의 녹음처럼 숲이 그득하여서 발 디딜 곳을 찾기 어려웠던 까닭이었다. 나무들 틈에 피어난 금마타리를 보고서도 꽃들은 까마득히 잊었다. 봉오리 맺은 꽃들이 만개하지 않았어도 개화의 시기가 늦은 꽃일 것이라는 추측만을 하면서 등성이 길을 걸었다.


올해 처음 발 딛는 숲이었으나 낯설음은 곧 익숙한 친밀감으로 다가들었다.
터질 듯한 심장 때문에라도 가풀막진 산길을 급하게 올라야 할 까닭이 없었으면서도 가쁜 숨길은 처치 곤란이었다. 금방이라도 절명할 듯 숨길은 거칠었으나 미련은 곰과 진배없이 닮았다. 내 걸음으로 걷지 않으면 어느 풍경과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핑계라면 핑계일 테지만 어디를 반드시 꼭 당연히 닿아 정수리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구멍가게 노파의 염려에도 답하였듯이 가다가 못 가면 되돌아오면 그만이었다. 그러면서도 걸음은 절로 다급하였다.

오붓한 숲길에는 앞서간 사람들의 불미한 흔적이 널려 있었다. 얼레지 군락지에서도 예외 없었다. 무참할 지경으로 꽃들을 밟고 지나갔다. 속상하지 않으려면 길을 바꾸든지 길에서 이탈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소나무들 때문에라도 견뎌야 했다. 아니 점봉산까지 가려면 달리 길이 없었다. 오래 늙은 몇 그루 남지 않은 금강송들은 솔잎혹파리 방제주사를 맞은 흔적이 또렷하였다.

 

천공자리는 수명을 다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미국산 솔잎혹파리 예방을 어느 만큼 하고 났더니 이번에는 소나무재선충으로 산림이 비상경계 중이다.


숲길 좌우에 나타나기 시작한 얼레지 씨앗은 유별하였다. 얼레지 꽃이 여태 있는 것에서도 이상스런 기운을 알아채지 못한 채 좌우를 둘러보며 걸으면서 마음은 속절없이 바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와, 와 소리를 질렀다. 하늘을 가려버린 키 큰 넓은잎나무들 그 아래 숲 바닥에 펼쳐진 세상은 난데없는 꽃밭이었다. 꼭꼭 감춰두었던 비밀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듯 숲 바닥은 온통 꽃들과 꽃들로 하여 낙원이었다.

숲의 초입에서 만난 금마타리, 우리 마을에서는 함박꽃이라고 부르는 철쭉꽃이 벙싯거리고 있었고 꽃씨가 여물고 있는 처녀치마, 흰색과 분홍색의 고깔제비꽃, 연노랑 빛깔의 회오리바람꽃, 봉오리가 몽실거리면서 돋아나고 있는 검은 꽃의 요강나물, 꽃줄기 끝에 연한 노란빛이 도는 초록 꽃을 피우는 삿갓나물, 벌 받은 아이처럼 땅 밑으로 고개가 쳐진 애기나리, 간간이 만나는 둥굴레 흰 꽃, 자주솜대, 박쥐를 닮아 박쥐나물, 풀고비, 흔히 볼 수 없는 연분홍 빛깔의 큰앵초, 순정한 흰 빛깔의 한국 특산인 홀아비바람꽃과 날렵한 제비모양의 꽃을 가진 얼레지는 지천이어서 차마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디에서도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일 것이라고 짐작하였으나 이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색에서 점봉산 산마루를 향해 가는 길에 본 경치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이름을 미처 배우지 못한 꽃들은 또 얼마였으며 약재로 인기가 높아 수난을 당하고 있는 마가목의 볼긋한 꽃봉오리,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을 만나는 즐거움은 차라리 경외였다. 점봉산 산마루에서 귀둔으로 가는 길에는 더욱 더 많은 꽃들을 만났다. 홀아비바람꽃과 얼레지는 점봉산에서는 이제 막 절정이었다.

 

산나물꾼들을 만나다

생이별하듯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눈길은 사뭇 등 뒤에 머물러 있었다. 숲속의 해는 빠르게 지고 있었고 걸음은 땅바닥에 들러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점봉산 산마루에서 조망한 거칠 것 없는 천지사방의 풍경은 무엇보다도 다음이었다.

 

두고 떠나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바람이었고 꽃들이었고 냄새였고 빛깔이었으나 어느 것이고 두 번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매순간 달랐고 매번 새롭고도 낯선 것들이었다. 손톱이 자라 듯 머리카락이 자라듯 때가 벗겨지고 새살이 돋듯 늙음으로 하여 젊어지는 이치도 그와 같을 것이겠으나 내일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까지 위로할 수는 없었다.


골짜기에 이미 햇빛은 사라졌고, 그렇더라도 계류에 손 한번 담그지 않고 숲을 나올 수는 없었다. 등성이를 따라 걷는 길이었던지라 오색의 초입을 지나고부터는 물소리와 내내 멀리 있었다. 깊은 숲에서 만나는 바람과 물맛은 무엇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맑은 순정과 닮았다. 아니 무엇도 섞이지 않는 담담한 그 무엇이었다. 그런 뒤 미련 없이 빠른 걸음을 내딛는 순간 건너편 골짜기에서 웅웅거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섞여 들었다.

 
가만히 살피니 7~8 명에 이르는 산나물꾼들이었다. 등 뒤에 맨 나물보따리가 무거워 허리가 꼬부라졌다. 나무 지팡이에 기대 겨우 겨우 당달봉사처럼 계류를 건너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아랫마을에서 온 마을사람들이었다. 참나물을 비롯한 박쥐나물 등을 뜯어서 오는 길이였다.


 

 

새벽밥을 지어서 먹고 나선 길이었으나 이제는 해 지기 전에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물은 4킬로그램 한 관에 3만원에 판매되며 하루 15~16 만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막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앞서 걷다 보니 또 다른 나물꾼 대여섯 명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한 짐 그득 나물보따리를 짊어졌다. 숲에서 나오자 숲의 입구에는 나물꾼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트럭 여러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숲길에서 만난 어떤 이들은 나물짐을 건네받기 위해 마중을 가는 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음식점 주인은 문 밖에 삶아 널어놓은 고사리를 걷어 들이면서 꺾기 싫어서 그만 꺾었을 만큼 뒷산에 고사리가 지천인데 왜 나물을 뜯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무 말 없이 씁쓸하게 웃었다.


산행 길에 만난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입산이 통제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숲 바닥은 천양지간이었다. 마중을 가던 남자들 또한 나물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고 걱정을 했다. 이곳 어른들 말씀처럼 산을 그토록 요절을 내고 있는데 무엇인들 남아나는 게 있을까 싶었다.

 

김 담
강원도 고성 출생
1991년 임수경통일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수상 작품집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현재 강원도 고성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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