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만산홍엽, 덕유산


 

무주구천동, 기이하고 슬픈

강마른 긴 가을가뭄 가운데서도 들판의 벼이삭은 황금빛으로 여물고 있었으나 강바닥은 몹시도 메말라 마른 먼지를 풀썩이면서 힘겹게 흐르고 있었다. 길섶의 가을꽃들 또한 물기 없이 제 빛깔을 잃은 채 까맣게 말라 죽거나 흙빛으로 아등그러지고 있었다. 너른 들의 벼농사는 쨍쨍한 햇볕이 풍년의 징조이겠으나 산비탈의 밭농사는 흉년의 기미와 다름없었다. 콩꼬투리 속의 콩알은 여물지 못하였고, 김장밭의 배추 속은 올차게 앉지 못하고 있었다.


멀리 돌아 길게 가로질러 덕유산 무주구천동에 닿았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는 중추의 다저녁때 당도한 무주구천동 터미널 주차장은 휑뎅그렁했고, 주변은 황막하도록 풀들이 무성했다. 다음날 가고자한 서울행 버스 시간을 묻는 내게 직행버스 기사는 터미널 건물 출입문 유리벽에 붙어있는 버스시간표를 가리켰다. 출입문은 잠겨있었고, 건물은 방치된 채로 흉한 몰골로 서 있었다. 터미널은 폐허 그 자체였다. 건물의 폐쇄이유를 묻자, 매표원의 인건비조차 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곡선은 직선을 함유한다 해도 이미 직선의 빠르기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본의 증식 속도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었다.

 

무주구천동, 33경

매표소의 불빛조차 켜지지 않은, 동트지 않은 새벽 어스름을 걸었다. ’97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른 무주구천동 주변은 여느 국립공원의 어름과 다름없이 거대한 식당가와 숙박촌이 있었으나 추석 연휴와 단풍관광의 한철을 앞둔 그 사이에 있던 탓이었는지 인적조차 드물어 을씨년스럽도록 적막했다. 펜션을 운영하는 어느 주인에 따르면 계곡에서의 물놀이와 무주리조트에서의 스키가 한창인 여름과 겨울이면 방이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로 성황이라고 했다.

 



 

300명 정원에 겨울 한철에만 1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고 했고 또한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자랑처럼 덧붙였다. 계류를 거스르면서 계류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어떠한 사유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납득해야만 한다.

 

 폭포가 없다는 것은 물길이 그만큼 거세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물길이 매번 얕은 여울처럼 만귀잠잠하게 흐를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새벽 무주구천동의 숲길은 온통 물소리에 압도당하는 형국이다. 물소리에 젖은 귀를 흔들어 말리면서 고개를 치켜들면, 그믐으로 향하는 하현의 엷은 달빛이 컴컴하도록 어둑시근한 숲길을 밝힌다.


터벅터벅 무겁게 걷는 발걸음 소리에 새벽 단잠에 취해 있던 산새들이 날개깃을 털며 잠깨었다. 결별과 만남의 사이를 걸을 수 없는 존재의 가풀막진 현기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은 채 새소리 물소리가 불러오는 여명은 밝았다. 곡두처럼 한 남자가 스쳐 지나쳤다. 화진포 호수에서 밤 산책을 하던 가운데 순찰 중인 경찰관에게 불심검문을 당할 때처럼 섬쩍지근했던 것은 남자가 저만큼 앞서 걸어간 다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세상의 슬픔 따위는 차라리 뒷전이었다.


나제통문에서 시작한 무주구천동 33경은 옛 시절의 어느 순간을 불러오는 향수에 다름 아니었다. 아니 나제통문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는 증언이 있는 것을 보면 그러한 향수조차 백 년이 고작이었다. 제 걸음으로 길을 걷는 것이 아닌, 주마간산의 승용차로 달리는 도로에서는 다만 바라보는 풍경의 경치만 있을 것이었다. 천지간의 화조풍월(花鳥風月)은 그러므로 마하의 속도를 넘어간 원시의 잔영이었다. 그렇더라도 물빛조차 붉은 구천동의 계류는 한층 유혹적이었으며 그 매혹의 물빛을 따라 다다를 수 없는 곳을 향하여 걷는 걸음은 나라질 수 없었다.


시간 반 남짓 걸어 백련사에 이르렀다. 물소리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 백련교를 건너고, 덩그런 일주문을 지나서 매월당 설흔 스님의 부도가 있는 부도밭을 곁에 두고 백련사로 향했다. 까마득한 계단 저 가운데 안심처럼 천왕문이 엿보이는 사이, 좌우에는 도무지 오를 수 없는 바늘잎나무가 수직상승의 위엄으로 늠연하였다. 흰 연꽃 벙그러지던 시절은 가고 없고, 나뭇잎 피울음처럼 붉은 가을이 한창이었다.
지불하지 않은 국립공원 입장료를 백련사 대웅전 금빛 불상 앞에 향값으로 바치고, 향 한 대를 살랐다. 연기는 다시 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쌓이고 흩어지며 사라졌다.

만산홍엽, 덕유산

줄곧 평지와 다름없는 수평의 숲길을 걸은 탓이었을까, 백련사 뒤뜰로 접어들자 숲길은 갑작스레 가풀막져 숨찼다. 햇귀 없이 엷어진 햇살은 용가마 같은 곳에 터를 잡은 백련사 경내를 비추면서 서서히 밝아지며 산등성이로부터 멀어지며 솟아올랐다. 여느 큰 산, 이름난 산들과 다르게 덕유산에는 가람이 흔하지 않았다. 잊혀진 옛적에는 십여 개가 넘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오늘날은 백련사가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다.
덕(德)은 어쩌면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일 테다. 당장 용맹정진해야 하는 눈 푸른 납자에겐 당치 않는 언감생심일 것이었다.



 

작은 마루에 이르면 또 다른 길이 앞서 있고, 그 길을 걸어 오르면 숨은 듯 돌아앉았던 길이 다시 눈앞에 흐릿하면서도 뚜렷이 놓여 있었다.

 

낙홍의 붉은 빛깔에 취해 갈 길을 잊은 사이, 중년의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쉬엄쉬엄 산길을 올라 저만치 앞서갔다. 백련사에서 향적봉에 이르는 동안 유일무이하게 만났던 숲길의 사람들이었다.

 

뒤따르는 아낙은 병색이 짙어보였다. 앞서 걷는 남정은 재촉하는 법 없이 다만 뒤돌아서서 아낙이 다가올 때까지 그윽하게 지켜볼 따름이었다. 알록달록한 단풍 숲길 사이로 멀어져가는 중년 부부의 뒷모습이 사뭇 애틋하였다.

인간의 한뉘가 순환하는 붉은 단풍과 같을 수 있다면 그 또한 곱고 아름다운 일일 것이었다. 지옥 같은 땡볕의 날들을 견디고, 폭풍한설의 강추위를 살아내면 산비탈 골짜기에도 맑고 환하며 따스운 햇살이 비추어 꽃들이 피고, 줄기에 물올라 늙어가면서도 제 부피를 키우며 창창하게 젊은 한생을 다하는 것이 나무들의 생이었다. 모든 생물들의 한평생이 시린 노을처럼 애잔했다.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남아서 강한 것이 되었을 것이었다. 바람이 뒤채일 때마다 낙엽은 온몸으로 떨어져 발밑에 쌓여갔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서서 저만치 까마득한 향적봉에 이르는 계단을 살피는 사이에 줄곧 귓가를 따라오던 사람들 목소리의 진원지를 문득 알아차렸다. 무주리조트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동해안 곳곳의 전망 좋은 곳을 차지한 군부대초소처럼 무슨 군사시설인가 했다. 무던히도 시끄럽구나, 유격 훈련 중인가, 갖은 상상을 하면서 목을 길게 빼며 살폈으나 알 수 없어 답답증에 시달렸던 그곳이 바로 무주리조트였다. 향적봉에 다다라서는 차라리 허탈하여 오금의 힘이 다 빠졌다. 향적봉 봉우리 주변의 수많은 탐방객들 대부분이 무주리조트에서 가볍게 산책 나온 사람들이었다.



어미 잃은 조카가 건네준 작은 샘플의 술병을 꺼냈다. 숲의 정령들과 산의 신들과 그리고 그 모든 슬픔 속에 있는 산자들을 위해 고수레 했다. 중봉과 송신탑 사이 아스라한, 못 다한 사랑 같은 지리산 천왕봉이 안겨왔다. 향적봉의 등성이는 가깝게는 남덕유산으로, 멀리는 계룡산으로 뻗어있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마루금과 등성이로 백두대간의 공룡 등뼈와도 같은 거대한 산줄기는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굽이굽이 기운차게 남북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반팔소매가 추워 긴소매 옷을 덧입었다. 탐방객들은 순식간에 썰물처럼 흩어졌고, 텅 비어 충만한 향적봉 산마루에는 갈바람만이 오고 갔다.


늘 푸른 주목과 구상나무가 있는 산마루 언저리는 이미 한겨울처럼 단풍의 빛이 바랬다. 산 아랫마을과 산마루가 이와 같이 달랐다. 산마루 주변은 사람들 발길에 밟히고 채인 곳을 복원하느라고 울타리를 만들고 꽃들을 심어놓았다. 마치 누덕누덕 기운 납의와도 닮았다. 개발과 보존 그리고 이용의 조화로운 상생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었다. 덜 쓰고 많이 아끼는, 한번을 만나도 천년을 만난 듯 대접하는 그 사잇길에 있을 것이었다. 덕유산 너른 녹청의 가을 빛깔에 내 온몸도 그와 같이 물들어 가는 사이, 다시 되짚어 백련사로 향하였다.

 

사진 황석선

김 담
강원도 고성 출생
1991년 임수경통일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수상 작품집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현재 강원도 고성에서 살고 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