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그 여대생, 주란꽃을 배우다

흰 얼굴에 긴 생머리, 서글서글한 눈매에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온 그녀는 활달하면서도 조금은 새침해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서클룸이나 술집에서 종종 기타를 치며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오월의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존 레논의 연인 오노 요꼬처럼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팝송을 부른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나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댄싱 퀸’에 맞춰 그녀가 저도 몰래 몸을 격렬하게 까닥이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기는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팝송 매니아에다 클래식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고, 나중에 고백한 바에 의하면 피아노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그녀에게 우리는 ‘카수’라는 별명을 붙였다.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영산강’, ‘기지촌’, ‘맹인가수부부’……. 담배와 막걸리 냄새에 찌든 서클룸에서 보낸 3년 세월 동안 그녀가 즐겨 부른 노래의 목록은 대강 이랬다. 숱한 논쟁과 이슈 파이팅으로 그녀의 목청은 점점 더 쉬고 갈라져 갔지만, 그녀의 노래는 소위 민중가요를 벗어나지 않았다.

 

오노 요꼬를 닮은 그녀
1984년 초겨울 그녀는 민정당사 점거농성 사건으로 구속되어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녀는 악명 높은 옛 서대문형무소,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사상범들이 거쳐 간 곳, 유관순 누나가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를 부르던’ 여사(女舍)에 수감되었다.
양심수인데도 방이 모자라서 그가 일반 재소자들과 혼거를 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죄목이 대부분 절도, 소매치기, 사기나 간통인 그네들. 개중에는 열일곱, 열여덟 살밖에 안된 여자애들도 여럿 있었다. 유관순이 순국했다는 감방에서 유관순 또래의 여자애들은 마냥 먹는 이야기뿐이었다. ‘돼지족발 먹고 싶어’, ‘초코파이, 에이스 크래커, 라면에 파김치 얹어서 후루룩 …….’


나이 든 여자들은 간통이나 사기범이 대부분이었다.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 유행가처럼 그곳에선 간통이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둔갑했다. 사기범들은 한결같이 억울하고, 더럽게 재수 없어 걸렸고, 집에는 금송아지가 없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에 예배 볼 때면 찬송가를 가장 소리 높여 부르는 사람도 그들이었다.
“거기서 나 찬송가 많이 배웠잖아.”
다섯 달 만에 집행유예로 나온 뒤 그녀는 환영 술자리에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노래 한번 들어보자. 찬송가라도 봐 줄게.”
하지만 그녀가 부른 노래는 찬송가가 아니라 우리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였다.

내 너와 떠나던 날 저 하늘도 흐렸고/다시 만날 기약 없이 머나먼 길 떠나 왔네/
길가의 한 송이 외로운 꽃처럼 내 이름은 주란꽃 /내 다시 피어나서 옛날같이 살고 싶어
“감방에서 배운 노래야. 제목은 주란꽃!”
서글프고 묘하게 운치 있는 노래였다. 그녀에게 노래를 가르쳐준 사람은 개봉역 근처에 있는 술집 ‘황금마차’의 77번 아가씨였다고 했다. 나이는 29살, 죄목은 동침절도.


“착하고 의외로 너무 순진한 거야. 노래는 또 얼마나 구성지게 잘 부르는지. 몇 날 며칠 노래를 불러도 새로운 노래가 계속 나오는 거야. 그중에서도 주란꽃을 제일 많이 불렀어. 자기 주제가라면서.”
‘내 다시 돌아와서 눈물 없던 어린 시절, 꿈길 속에 피워보는 한 송이 주란꽃…….’
노래의 2절을 부르는 그녀의 목청은 예전보다 훨씬 깊고 풍부해져 있었다. 그녀가 감방에서 배운 것은 노래만은 아닌 것 같았다.
“처음으로 민중의 실체를 본 느낌이었어.”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 그녀는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금마차’ 아가씨가 가르쳐준 주란꽃
그날 이후 그녀는 노동현장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몇 년 후 공장에서 노조를 만들었다가 감옥에 한번 더 갔다 왔고, 출소 후 함께 활동하던 선배와 결혼을 했고, 아기를 낳은 뒤에도 꾸준히 노동운동단체에서 활동했다. 현재 그녀는 여성노동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너 요즘도 주란꽃 자주 부르니?”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뜬금없이 묻는 내 질문에 그녀는 “으응?”하더니, “아!” 탄성을 지른다.
“몇 년 전까지 개봉역 앞에 ‘황금마차’가 그대로 있었어. 집이 광명시라 그 앞으로 지나다녔거든.”
“나 글 써야 하니까, 감옥 얘기 좀 해주라.”
내 부탁에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갑자기 ‘후훗’ 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육보단 본 얘기 했었나?” “육보단?”
“내가 두 번째 감옥 살 땐데, 가끔 명절날 같은 때 비디오 감상하는 시간이 있었거든. 추석이었던가, 우리들이 ‘기분도 꿀꿀한데 문화영화 말고 밖에서 비디오 빌려다 보자!’ 그렇게 교도관들하고 얘기를 했어. 금병매에 젖소부인, 옆구리 터진 김밥부인까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육보단’으로 낙착됐어. 그걸 빌려다가 불 꺼놓고 여자 교도관들까지 모여서 다 같이 본거야.”
“재밌었겠다!”
“푸하하! 그런 코미디가 없었다. 배우들 입 헤벌리는 표정연기 하며 끙끙 앓는 신음소리 하며, 그걸 여럿이 보니까 왜 그렇게 웃기니? 다들 배꼽 잡고 웃다가 나중에 데굴데굴 구르고 눈물까지 찔끔찔끔 ……. 아무튼 나 감방에서 ‘육보단’ 원, 투, 쓰리 다 섭렵했잖아.”
한밤중에 전화를 건 친구를 위해 그녀가 풀어놓는 감방의 추억들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그녀를 이렇게 오랫동안 운동현장에서 버티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하지만 그 물음은 접어두고 대신 좀 가벼운 질문을 해본다.


“너 요즘엔 무슨 노래 부르고 사니?”
“궁금하면 노래방 한번 가자꾸나!”
그녀의 최신곡을 듣기 위해 기필코 노래방에 가야겠다. 

 

글 / 정혜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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