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짭새와 술 한 잔

사내는 겁에 질려 있었다. 죽음보다 더한 극한의 공포가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표정이 원형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괴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분노, 원망, 애원, 체념, 심지어 야릇한 미소까지 뒤범벅된 듯한 묘한 눈매는 차마 눈 뜨고 바라보기 가증스러웠다.
김달출. 학생들이 빼앗은 경찰 신분증에 적힌 사내의 이름 석자였다. 그것은 지금 수 십장이 복사돼 교내 모든 게시판에 붙어 있을 것이다. ‘불법 사찰 짭새 체포!’


사내의 운명은 이제 경각에 달려 있었다. 무쇠보다 단단한 것처럼 보였던 몸은 이미 물에 빠진 생쥐 모양 초라한 행색으로 변해 있었다. 우람하던 어깨도 바람 빠진 풍선마냥 풀이 죽어 행려병자의 그것처럼 왜소하게 오그라든 모습이었다.
1984년 4월 S대 학생들이 올린 뜻밖의 전과는 그 학교의 학생운동 지형을 바꾼 사건이었다. 당시 유화국면과 함께 학원자율화 조치가 내려졌지만 분위기는 쉽게 달아오르지 않고 있었다. 열린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마땅한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내 세력도 학자추(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와 학부추(학생회부활추진위원회)로 양분된 상태였다. 학자추가 다수파이긴 했으나 과반이 넘는 절대다수는 아니었다. 학생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킬 이벤트가 없는 한 어느 쪽이든 그들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


기막힌 역사는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오후 초입에 시작됐다. 집회를 주최하던 학자추 위원장의 시선이 문득 후문 쪽에 멎었다. 뭔가 반짝이는 물체가 있었다. ‘야전사령관’으로 통하는 서클연합회장의 눈길이 그의 그것과 겹치는 순간 S대 사상 초유의 작전이 시작됐다.
“잡아라!”
학생들이 우르르 후문 쪽으로 몰려갔다. 그가 본 것은 후문 앞 동사무소 건물 2층 창에서 햇빛을 반사한 카메라 렌즈였다. 사복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작전을 지휘했지만 그들을 잡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느 멍청한 형사가 학생들에게 잡혀줄까. 솔직히 잡더라도 뒷감당이 더 어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은 동사무소 건물 앞에서 두 명을 놓쳐버렸다.
“세 명이었어!” 누군가가 외쳤다. 순식간에 동사무소 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학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은 샅샅이 뒤졌다.


건장한 사내가 캐비닛 속에서 끌려나온 것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내는 캐비닛 안에서 갖고나온 국기봉을 휘저으며 끝까지 저항했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사내는 학생들이 빽빽이 에워싼 가운데 교내로 압송됐다. 학생들은 사내를 C관 라운지 한가운데 의자를 놓고 앉힌 다음 둥그렇게 에워쌌다. 학생들의 신문이 시작됐다.
“거기서 뭘 한 거야?”
“호적등본 떼러…….”
“이 새끼! 거짓말 마!”


학생들의 발길질이 퍼부어졌다. 사내는 필사적으로 발뺌했지만 학생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호적등본 발급대장을 확인하고, 빼앗은 카메라의 필름을 인화했다. 거짓말이 탄로 날 때마다 사내는 덤으로 얻어맞았다. 결국 사내는 의자에 앉은 채 실신하고 말았다.
이날 김달출은 그동안 경찰이 행했던 학내사찰의 대가를 온몸으로 치렀다. 학생들에게는 백골단에 당하고 감옥에 끌려간 모든 동료들에 대한 시원한 복수의 향연이었다.


한바탕 광풍이 지나간 뒤 상황을 주도하고 있던 그는 냉정을 찾았다. 사내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고 의식도 회복했기 때문에 사태 수습을 생각해야 했다. 사내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아픈 시늉만 계속했다. 학교 당국과 경찰 쪽에서 압박이 시작됐다. 학생들의 행위에 대해 공공기관 침입, 폭력행사, 불법감금 등의 죄목을 열거하며 으름장을 놓고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난감했다. 여기서 밀릴 수는 없었다. 그냥 놓아주었다가는 아무 소득이 없고, 오히려 역공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었다. 이럴 땐 공격이 최선의 방어였다. 그는 강력히 항의하며 경찰의 ‘불법사찰’을 물고 늘어졌다.


“경찰서장이 불법 학내사찰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지 않으면 풀어줄 수 없다.”
하지만 경찰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이 교내에서 완전히 철수했고, 김달출의 일은 학교 밖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학내사찰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학교 밖에서라도 학내 집회를 촬영한 것은 학내사찰이라고 맞받았다. 논쟁은 평행선을 달렸다.
상황을 종료시킨 것은 엉뚱한 사람이었다. 사내를 진찰한 의사가 “빨리 병원으로 후송해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소견을 낸 것이다. 그는 사내가 꾀병을 부리고 의사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입증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학생들은 ‘학원사찰’을 했다는 자인서를 받고 사내를 풀어주었다.


‘김달출 사건’은 뒷날 S대가 학원자율화 국면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이 학내 분위기를 반전시켰기 때문이다. 뒷날 다른 대학이 부러워할 정도로 ‘전투적’으로 변한 S대의 괴력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 때문에 ‘언더짱’을 하기로 했던 그는 ‘오픈짱’으로 떠버렸다. 얼굴이 너무 팔려버려서다. 잘 나가는 정보형사였던 김달출 역시 같은 이유로 학원 담당을 할 수 없게 됐다. 교통경찰로 빠져 지금은 어느 면허시험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세월은 쏜살같다. 중년의 왕성한 사회활동가로 성장한 그는 20여 년 전 궁지에 몰린 김달출의 공포에 질린 눈빛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정말 치열했다. 전도양양한 한 경찰의 앞날을 망쳐버릴 정도로……. 하지만 세월이 그때의 결기를 많이 마모시켰나 보다. 이제는 그립기조차 하다. 김달출을 만나면 같이 소주 한 잔 할 수 있다.

 

신동호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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