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섬마을 편지 - 잃어버린 노래와 아련한 풍경

 

새해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위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데 막내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섬집 아기’라는 노래였어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라는 가사로 혼자서 노래를 곧잘 부르기도 하는 아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견해서 저도 따라 불렀지요.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적요하면서도 넉넉하게 닿는 노래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달마다 동요 부르기를 하는데 어느 달엔가 선정된 노래 중 한 곡이었다고 합니다. 좋은 교육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동요는 학교 음악 시간에 억지로 배우고 난 뒤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머릿속에서 재빨리 지워버리는 노래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배우고 난 뒤 마음속에다는 새겨놓고 있는지 모르지만 입에서는 멀찍이 떨어뜨려 놓은 장르가 된 게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이 되면 스스로 구매자가 되어 대중가수들의 음반을 사고 CD 플레이어나 MP3를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하며 가슴에 품고 다닙니다. 길거리에서도 이어폰을 꽂은 채 흥얼거리며 걷고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면서도 듣습니다. 제가 있는 섬 학교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동요를 부르는 어린이 프로는 방송국에서부터 편성되어 있지 않거나 설령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그 꼭지를 시청 대상에서 제외한 지 오랩니다. ‘동요가 어찌 이렇듯 푸대접 받는 상황까지 왔을까?’ 하다가 거기까지 생각하지 말자고 그만 다독여 봅니다.

푸대접 받는 동요
그러다 ‘어른들은 부르는데…….’ 하면서 백창우와 김원중을 중심으로 한 가수들과 김용택, 안도현 등의 시인들이 어울려 시(詩)에다 곡을 붙여 부르는 노래 모임인 <나팔꽃>이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문학 모임에서 그들의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더욱이나 육십 대 이상의 할아버지 세 분이 모여 <철부지>라는 이름으로 동요를 부르는 노래 모임 또한 생각났습니다. 아이들로부터 외면당한 동요를, 이제는 중년의 어른들과 할아버지들이 애써 부르는 현실을 떠올리면서 참으로 묘한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지만 <철부지>들이 부르는 노래를 여러 곳에서 들었던 저는 입가에 자잘한 웃음을 띠워 봅니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분들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노래 모임을 초청하여 학생들과 학부모님 그리고 선생님들 모두 함께 어울려 목청껏 부르는 노래 마당이 꾸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섬집 아기’라는 노래 속에 들어 있는 정겨운 풍경을 만날 수 없는 요즘의 섬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게 딴 데로 흘렀군요. 어린 아이들 마음속엔 개켜 있지 않으나, 어른들의 가슴 한켠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풍경이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마는 쓸쓸하고 애처로운 섬의 정취를 아련하게 더듬어 봅니다.


흰 코 고무신 한 쪽은 벗겨져 있고 어린 아기는 엄마 등에 업혀 잠든 사이 조개 캐던 호미를 뻘밭에 묻어둔 채 저 멀리 수평선 너머 빈 배로라도 어여 빨리 집으로 가자며 돛 세우고 있을 지아비의 억센 팔뚝을 그리는 엄마의 망연한 눈빛……. 하지만 엄마 등에 업혀 햇볕에 그을리며 잠자고 있는

아이도 볼 수 없을 뿐더러 엄마 굴 캐러 간 사이 혼자서 집을 지키는 아기는 더욱이나 이제 섬마을엔 없습니다. 갓난아기 태어나 사립 위에 빨간 고추를 묶어 내거는 풍경을 더는 볼 수 없는데요, 뭘. 딴은 계시지 않기로는 총각 선생님도 예왼 아닙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노래 1절입니다. 요즘 한창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영화감독과 동명이인(同名異人)인 김기덕 감독이 같은 제목으로 만든 영화의 주제가이기도 합니다. 1967년 개봉될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영화배우 문희가 열연을 했답니다. 모 인터넷 소식에 의하면 영화 속 배경이 남해의 어느 낙도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인천시 옹진군 대이작도라는 섬인데 그곳의 촬영지 가운데 폐교가 된 계남분교와 해수욕장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문희의 소나무’ 등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합니다. 추억을 상기할 수 있는 찾아가고픈 영화의 고향이라고 소개된 걸 보았습니다.


섬마을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거친 오십 대 이상의 어른들에게는 여전히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을 총각 선생님과 섬 처녀 사이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영화지만 이제 더는 현실에선 실현 가능하지 않은 픽션이 되었답니다. 그러한 사랑의 주인공들이 섬마을에 존재하지 않으니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지요. 영화에서처럼 애잔한 연정으로 가슴 태우는 섬 처녀마저 찾기 어려운 건 총각 선생님 아니 계시니 섬 색시마저 떠나버린 때문일까요?

총각 선생님과 섬 처녀의 애틋한 사랑


제가 일 하는 학교엔 열한 분의 선생님이 계십니다. 남자 선생님 가운데 제일 나이가 적은 선생님이 사십 대 중반입니다. 여자 선생님 네 분이 함께 일 하는데 두 분이 처녀 선생님이지요. 총각 선생님은 없습니다. 여기 신지도에는 중학교 말고도 초등학교가 두 군덴데 두 곳 역시 처녀 선생님은 여럿 계시지만 총각 선생님을 아이들은 만날 수 없습니다.


여기만 그런 건 아닙니다. 전남 대부분의 섬마을이 그렇습니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아주 예외적으로 몇몇 총각 선생님이 섬마을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런 연유를 몇 가지 들 수 있지만 그걸 여기서 들추는 건 이 글의 성격과 맞지 않으니 접겠으나, 섬 처녀가 순정을 바칠 수 있는 총각 선생님이 아니 계시니 애틋하고도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어쨌거나 옛날의 정취일 뿐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곳 섬마을에 사는 여학생들은 애초에 미완의 추억거리마저 만들 수 없는 처지입니다. 아버지가 잡아온 꽃게 삶아 엄마 모르게 정성스레 소반에 담아서 총각 선생님 방문턱에 슬그머니 갖다 놓는다거나, 하얀 손수건 선물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애닳아 하는 그런 모습을 그 짜릿한 애정의 미완을 처음부터 빚어낼 수 있는 근거조차 상실당한 현실 속에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회억할 만한 풋풋함을 만들 수 없다 하여 불행하다고까지 말할 순 없겠지만 쓸쓸한 풍경입니다.

 



그나마 며칠 뒤에는 설날입니다.
바로 한 세대 전의 정경과 풍취를 전해 줄 추억의 전달자마저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마을에 얽힌 상큼하고도 풋풋한 사랑의 전설을 이야기해 줄 분들이 돌아오는 것이지요. 그분들은 모교의 한층 작아진 운동장을 바라보며 죽마고우끼리 어울려 놀던 지난 세월의 잔상들을 아련히 떠올리겠지요. 그래 고향집 마당에 숯불 일궈놓고 굴 구이 안주 삼아 소줏잔 돌리면서 나누는 정담 속에는 어느 선생님이 화제로 떠오를 수도 있겠지요.


몹시 엄하고 고깝게만 대해주던 학생과(부) 소속의 어느 선생님을 떠올리며 그때의 지나친 훈육에 대해 고개 젓기도 하고 혹은 몇 살 차이 나지 않은 미술 가르치던 처녀 선생님 흠모하던 아릿한 속내 들춰내며 별이 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곱던 처녀 선생님의 얼굴을 하늘에 그려놓고 별 헤어도 보는 겨울밤, 그 긴 겨울밤을 하얗게 새기도 하겠지요.
물론 아주머니들은 그때 그 총각 선생님, 지금의 나이 꼽아 보면서 “흰 머리 희끗희끗 나셨겠다.”면서도 “그 무렵 숙자, 네가 더 좋아했었지?” 하고 놀려대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밤이 되지 않겠어요?


아, 아, 그랬었구나! 막내 고모가 총각 선생님에게 마음 빼앗겨 큰 고모에게 혼줄이 나고도 몰래몰래 연서를 또 보냈다는 무렵이 언제였을까? 고리타분하고 밍밍하게만 보이는 작은 아버지가 처녀 선생님께 연정을 품은 적이 있었다니, 원…….
그렇게 들은 이야기를 설 지나고 개학하는 날, 아이들은 교실에 둘러앉아 후훗 웃으면서 그때 그 시절에 있었던 내 고모와 이모, 작은 아버지와 삼촌의 못다 이룬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 아릿한 연정을 흐뭇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저는 소망해 봅니다.

 

추억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 추억의 이야기를 고향 찾은 귀성객들께서만 나누시지 말고 지금 여기 당신들의 고향에서 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길 바랍니다. 그 풋풋하고 상큼한 옛날의 정경을 아이들 또한 가슴 속 깊이 담아 두라고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오랜 정취를 오늘에도 느껴보고 만들어 보라면서 이야기해주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진 황석선

글 한상준
전북 고창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지에
「해리댁의」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오래된 잉태>가 있음.
현재 교육문예창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며
전남 완도 신지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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