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섬마을 편지 - 새 봄, 새 학기를 맞으며!


곧 경칩(驚蟄)입니다. 우수(雨水)가 앞선 절기지만 진짜배기 봄의 전령은 경칩이지요. 남녘은 이미 봄기운이 완연한 시기요, 북녘에서는 꽁꽁 언 대동강 물이 녹고 삭풍마저 누그러지는 때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기상이변이 하 잦아 시(時)도 모르고 절(節)도 가늠하기 어렵긴 합니다.


지난해 3월에는 게릴라성(?)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에서 오도가도 못 한 채 혹한의 밤을 지샌 차량들이 많았습니다. 올해 역시 겨우내 보기 어렵던 눈발이 2월에서야 매우 사납게 흩날렸습니다.
체감 온도 영하 20℃ 이하로 떨어진 추위가 몰려온 것 또한 2월이었습니다. ‘3월 추위가 장독 깬다’는 옛말이 있듯이 올해도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긴 합니다.


딴은 기상이변과 달리 3월은 아이들 개학을 앞두고 꽃샘추위가 몰려와 옷깃을 한껏 여미게 하곤 하지요. 내내 겨울답지 않던 날씨가 어찌 그렇게 잊지 않고 새 학기 시작하려는 3월이면 시샘을 부리는지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에도 자연은 골 깊은 어느 계곡에서 얼음 긋는 소리를 미루지 않고 들려줍니다. 북향(北向)의 산등성에 남아 있던 잔설이 녹아 개울로 좔좔좔 물이 흐르게 합니다. 산골짜기 물가엔 아지랑이 복스럽게 피어오르고 동백은 이미 주위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꽃송이마저 탐스러운 동백은 피면서 지기도 하여 이제 망울을 확 틔려 하기도 합니다.


낙엽을 떨군 채 겨우내 헐벗은 졸참나무와 서어나무, 층층나무엔 가지마다 희망의 새 움이 돋고 산수유는 노오란 망울을 막 터뜨립니다. 매화 역시 눈발 성글던 겨울날에게 헤어짐의 목례를 지그시 건네려 합니다.


 

또 다른 앙다짐
이런 3월이면 또 다른 앙다짐을 하도록 합니다. 새해 들어 산에서 혹은 바다에서 붉게 솟구치는 태양을 맞으며 마음속 깊이 새해 꿈을 새록새록 다지던 정월 초하루와는 사뭇 다르게 비장감을 갖도록 합니다.


엄혹한 저 훼절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새봄은 ‘닭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며 결기를 곧추세운 채 비장한 각오로 반독재투쟁의 전선에 나서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교육운동과 관련하여 해직당한 분들께선 올해 이루지 못한 복직의 꿈을 내년 3월에는 반드시 쟁취하리라 새롭게 다지며 전열을 정비하곤 했었지요.

그처럼 지금도 각 부문에 따라서는 올곧은 싸움을 전개할 채비를 서두르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사는 농어촌 지역은 새해를 맞아 민족의 먹거리인 쌀을 더욱 큰 폭으로 개방해야 하는 세파의 흐름에 한숨을 거두지 못하고 있답니다. 폭설에 의한 추위보다 더 비정하고 차가운 물대포 세례를 받으며 온몸이 언 채로 실신하기도 하고 닭장차에 실려 가면서까지 온몸으로 맞섰던 작년의 한·칠레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반대투쟁과는 전혀 다른 싸움에 내몰려 있는 상황은 참으로 애통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한파와는 달리 우리 아이들의 표정은 밝습니다. 등교 길에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어제 내준 과제를 깜박 잊고 해내지 못해서 더욱이나 가벼운 책가방을 메고서도 친구들과 손짓, 발짓 해가며 느리고 느린 걸음으로 해찰을 하면서 등교하는 아이들은 마냥 흐뭇하기만 합니다. 오늘 아침 학교에 가면서 만난 2학년 민영이가 친구에게 흔드는 반가움의 손짓을 저에게 하는 줄 알고 답례로 저도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정작 화들짝 놀란 건 녀석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내 수줍게 인사를 건네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를 머금습니다, 후훗.


늦잠 탓에 끼니마저 거르고 종종걸음으로 학교에 오기 일쑤인 지각대장 명환이는 담임선생님께 혼줄 나게 꾸중을 듣고도 돌아서면서 재잘거리며 웃고 장난하며 싸웁니다. 1학년 아이들의 교실은 어지럽기도 하지만 풋풋한 열기가 꿈틀대는 걸 느낍니다. 때로는 창가에 턱 괴고 앉아 저 멀리 떠있는 청산도(靑山島)의 앞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2학년 어느 아이의 깊은 상념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교실 풍경은 보기에 참으로 흐뭇합니다.


이렇듯 아이들의 얼굴도 3월이 되면 긴장감이 서린답니다. 한 학년씩 올라간 아이들의 표정은 자못 진지해지지요. 새 학년을 맞으며 새로운 비상(飛上)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학년이 오르면서 가슴속에 암팡지게 무언가 다지고 새기는 연유랍니다. 박차고 올라 어느 지점에 이르고자 하는 한해의 소망을 아이들은 3월에 하지요.


키 더 커지길 원하는 바람, 더 예뻐지길 바라는 갈망, 글쓰기에 자신감을 키우고자 하는 희망, 수학 공부를 지금보다 잘 했으면 하는 소망, 낡아빠진 컴퓨터를 새로 바꿔달라는 요구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도, 용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비는 마음, 동생들과 더욱 화목하게 지내야겠다고 하는 다짐, 부모님 하시는 일이 잘 되어 집안이 더욱 넉넉해졌으면 하는 염원 등을 떠올립니다.

 

그런 여러 가지 꿈들 가운데 이곳 섬 아이들이 꾸는 꿈은 사뭇 다릅니다. 뭍으로 하루라도 빨리 진출(?)하고자 하는 기꺼운 열망입니다. 3학년 아이들은 고향에서 더 멀리 떨어진 뭍의 학교에서 수학하는 꿈을 꾸곤 한답니다. 신지도에는 고등학교가 없는 까닭에 어차피 모두가 뭍의 고교로 진학하게 되어 있지요. 많은 아이들이 연륙도(連陸島)인 완도 읍 소재의 고등학교로 진학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연고가 없어 보이는 더 먼 곳으로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성적 순서로 뽑는 도내의 몇몇 이름난(?) 고등학교로 기어코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실업계 고교를 가면서도 타 시·도로 가기를 고집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친척 중 누군가가 그곳에 사느냐 물으면, 없다고 합니다. 도내에도 특화된 실업계 고교가 있다는 데도 기왕 뭍으로 나가는 길이라면 어드메까지 가보나, 어디 한번 가보자 하는 심정인지 모릅니다만 멀리뛰기를 하려 합니다. 물론 선생님의 설득에 그 꿈을 접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속내엔 여전히 멀리뛰기를 염두에 둔 채 좌절이라 여긴답니다.

 

더 멀리 떨어진 뭍으로
그러한 꿈을 꾸는 아이들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곳 아이들은 섬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품고 있답니다. 그런 생각이 어디에서 연유되었을까, 어렵지 않게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섬 지방이 유배지였습니다. 이곳도 그 중 하나입니다. 신지도의 자랑인 명사십리(鳴沙十里) 또한 유배지로서의 일화를 지닌 지명입니다. 지금은 올곧은 정신을 가진 선비의 강제 축출로 인식하고 있다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렇지 아니하였으니 중심으로부터 외면당한 땅이라는 자괴감이 섬의 문화를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연연히 지배해 왔다는 점입니다.


덧붙여 현실적으로도 고립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여건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안개 자욱이 끼면 아무리 급한 일이 있다 해도 여객선이 뜨지 않으니, 바로 코앞의 읍내엘 갈 수 없게 됩니다. 성난 파도가 몰아치면 두려운 마음을 떨구지 못한 채 조각배에 의지하여 겨우 뭍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뱃길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키우도록 종용했을 것이라 유추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교육에 있어서도 소외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도서 지방의 힘든 교육환경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건 참 쑥스러운 일입니다. 그냥 낯부끄러움으로 대신하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은 참 곱고 예쁩니다. 지난달 17일에 있은 우리 학교 졸업식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고마운 단비가 내린 다음 날이었지요. 겨울 가뭄이 깊은 터라 식수난을 겪는 섬도 있었기에 해갈에 도움이 된 비였지요. 연 사흘 내리던 비가 그치고 졸업식을 맞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았습니다. 모두 36명이 32회 째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외빈들이 오시고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축하객들이 찾으셨다고 합니다.


졸업생 한명 한명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면서 그동안 보고 느낀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선일이에게는 풍물놀이의 상쇠를 너무 잘 해주어서 기억이 새롭다고 했습니다. 제희에게는 학교 축제인 ‘명사제’ 때 본 연극의 배역을 기억하며 배우로서 소질을 키워도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해줬습니다. 선천이에게는 너무 과묵해서 탈이니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태현이 하고는 특별히 악수를 나눴지요. 저 하고 머리 모양 가지고 실랑이를 좀 했었거든요. 희영이와 효하는 졸업식 끝 부분에 가서 많이 울더군요. 아이들이 우는 걸 보면서 저 또한 울음을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다시 봄이 찾아온 섬마을
정규 중학교 졸업식에서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보는 건 요즘 흔한 풍경이 아닙니다. 어려웠던 시절, 중학교 졸업으로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형편에 놓인 많은 학생들이 있던 시기에야 서럽고 분하고 아프고 슬퍼서 펑펑 울었다지만 지금은 누구 하나 진학하지 못 하는 학생 없는 까닭에 축제로 치뤄지곤 합니다. 물론 우리 학교의 졸업식도 한판 축제로 치뤄졌지요.


그럼에도 우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닌 건 섬이기에 그렇습니다. 섬 아이들이기에 우는 것입니다. 헤어짐이 그만큼 깊기 때문입니다. 이제 뭍으로 떠나면 다시 삶으로서의 섬을 만나지 않게 되리라는 생각이 솟는 탓입니다. 속으로는 저도 함께 울었답니다.
섬에 이제 봄이 왔습니다. 3학년 아이들을 보내고 난 뒤 휑하던 교실에도 새 봄처럼 푸릇푸릇한 아이들이 새로 입학합니다. 작년 입학생에 비해 숫자가 줄었습니다.


넉넉하고 반갑게 맞으려 합니다. 새 학년을 맞은 우리 신지중학교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훈훈한 봄바람 불어 희망으로 부풀기를 염원해 봅니다.

 

 

사진 황석선

글 한상준
전북 고창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지에
「해리댁의」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오래된 잉태>가 있음.
현재 교육문예창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며
전남 완도 신지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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