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섬마을 편지 - 넉넉함과 풍요로움이


친구 이병천의 소설 『사냥』의 표제작 「사냥」에는 날짐승, 들짐승, 물고기 등속을 잡는 여러 형태의 방법이 나옵니다. 은어를 낚는 법, 약빠른 여우는 어떻게 잡는가, 물코라는 덫을 외나무다리에 놓아 족제비를 유혹하는 과정이며 겨울날 펑펑 내린 눈 속의 꿩을 곤경에 빠뜨리는 풍경 등등. 스타일리스트답게 아주 산뜻하고 유려한 문체로 그려 놓았습니다.
거기에 ‘세상의 모든 것과는 반대로 사냥은 원시적인 형태일수록 문화성을 갖는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름철, 모래밭이나 질퍽한 뻘밭 혹은 연근해에서 숭어와 멸치, 낙지, 모래고동, 대합 등 어패류를 낚거나 캐는 장면을 보노라면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일전에 동료 한 분이 학교에 그물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혹여 애들 데리고 모래밭에 나가 해양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수영만 가르칠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도 익히게 하자는 제의 중에 끼어든 요망이었습니다. 학꽁치며 숭어 때때로 고돌이(고등어 새끼)나 깔따구(농어 새끼) 등 안줏감을 수시로 잡아 술 한 잔 나눌 여유로운 짬도 가질 수 있잖겠느냐는 덧붙임의 말이 진의라고 여겨 술꾼들끼리의 속내로 함께 웃어 넘겼지요.


제가 교생실습을 했던, 방·폐·장 문제로 여전히 긴장감이 돌고 있는 전북 부안의 어느 섬에 있는 중학교엔 실제로 그런 그물이 있었습니다. 가로 70미터, 세로 5미터 정도의 그물로 그물코가 촘촘하지 않고 넉넉했습니다. 깊지 않고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만 그물질이 가능한 것으로 ‘대사리’라고 불렀지요. 수영에 자신 있는 한 사람이 아래엔 납을 달고 위로는 가벼운 부표를 매단 그물의 이쪽 끝을 잡고 목이 차거나 그보다 좀더 깊은 곳에까지 끌고 가 타원형으로 벌립니다. 그물이 다 풀릴 때까지 헤엄을 칠 수 있는 한 넓게 넓게 벌려서 저만큼 떨어진 뭍으로 그물을 끌고 나옵니다. 그러면 되들잇병 소주와 초고추장을 들고 간 술꾼들이 그물의 양 끝에 달린 긴 끈을 ‘으차으차’ 부리나케 끌어 올립니다.


학꽁치 서너 마리, 그물을 튀어 넘지 못해 억울해 하며 눈알 끔벅이는 숭어놈에다 민첩함을 잃은 갑오징어 한 마리쯤 걸려 나오면 입맛이 팍 돋지요. 모래밭에서 바로 썰어 되들잇병을 금세 비우고는 했습니다. 바닷바람과 더불어 저기 저 바다의 끝을 이루고 있는 둥그런 수평선을 바라보며 마시는 술은 안주 없이 되들잇병 하나를 더 마셔도 취기가 덜 돌게 합니다.
둥게둥게 둘러앉아 주거니 받는, 그 풍광 속에 해름의 서녘 노을 끼어들면 그대로 자연이었지요.(교생 신분에 어울리지 않았던 생뚱맞은 동참이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술 마시는 사람끼리는 각별했던지라……)

수평선을 바라보며 마시는 술
이곳 신지도에서도 그렇게 고기를 잡는답니다. ‘후리그물’이라 하고 ‘후리질’이라 한다는군요. 그물 마련하자고 제안한 동료와 언제 모래밭에 나앉아 술 한 잔 나눠야겠습니다. 이문구 풍으로 노작이면서 말입니다. ‘안주는 무슨 안주, 저기 저 두둥실 떠가는 일엽편주 바라보며 부질없음으로 한 잔 쏟아 붇고 저렇듯 바위에 부딪혀 상처 드러내는 파도의 분루를 삼키면서 또 한 잔 털어 넣으면 되지.’ 하며 술잔 나누렵니다.

바닷가에 나앉아 그대로 바다이고 싶고 바람이고 싶더라도 안주 없이 마시는 술판이 오래 갈 순 없습니다. 그래서 안줏거리를 항시 마련해 두기 위해 간편하게 잡는 전통 어법이 또 있습니다.


마을 앞 바닷물이 들고 나는 곳, 물살이 조금 거칠게 흐르는 길목 여기저기를 옮겨 가면서 해질 무렵에 쳐 두었다가 아침이면 거둬들이는 오래된 방식이지요. ‘삼마이’라고 합니다.


풍치 좋은 바닷가 길을 지나다 보면 한 겹으로 길쭉하게 풀어 놓았거나 두 겹, 세 겹으로 마치 진을 이룬 듯 펼쳐진 그물을 보셨을 겁니다. 대개는 잡어를 잡기 위해 치는 그물이지요. 잡히는 종류 또한 다양합니다. 야맹증에 특효가 있다는 꽁치며 숭어, 농어 새끼 등은 구어서 먹어도 맛있고, 횟감으로는 가을 전어라 할 만큼 입맛을 돋우는 전어, 수명이 3,40년이나 되어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참돔 등 여러 종류의 고기를 잡는데 요긴한 방식입니다. 물론 물때에 따라 그물에 걸려 있거나 갇혀 있는 고기의 양이 판가름이 납니다.


조금 때는 적습니다. 그믐 여섯물, 보름 여섯물 하는 사리 무렵이 되어야 흐뭇하지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사리 물에는 구럭이 넘칩니다.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그때그때 안주로 내놓지요.

 

전통 어법
이런 전통 어법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표적인 방식으로 죽방렴과 독살, 손방진 등이 있습니다. 죽방렴은 고기가 지나가는 어로에 대나무발로 장막을 둘러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해서 잡는 방식입니다. 독살은 앞서 삼마이와 죽방렴처럼 실그물과 대나무 대신 돌을 쌓아 밀물 때 들어왔다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를 잡지요. 손방진 또한 말 그대로 진지처럼 쳐놓은 곳에 갇힌 고기를 잡는 방식입니다. 대부분 지금은 좀체 구경하기 어려운 전통적인 고기잡이입니다. 문자 속으로 말하면 모두 함정어법이지요. 하지만 원천적으로 마구잡이식 포획을 허용하지 않는 어획법입니다.


어구가 발달될수록 어획량이 줄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입니다. 자본만 횡행하여 결국 어족자원의 고갈을 초래할 조짐이 나타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결코 문화적이지 못하답니다.


어쨌거나 조금이니 사리니 하는 말은 이곳 섬사람들의 삶을 가장 잘 담아내고 단어에 속합니다. 그래서 섬사람들이 한 해를 보내기 전에 필수로 구해둬야 하는 게 있습니다. 농·수협에서 발행하는 이른바 ‘물때 달력’입니다. 일반 달력에 조수간만의 차를 표기해 둔 달력이지요. 절기에 따라 논농사와 밭농사 짓듯 섬에서는 바닷물의 들고 나가는 정도에 맞춰 그물을 치고 패류를 캡니다. 무엇 하나 연관되지 않은 바다 일이란 없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연명의 끈이지요.



 

바닷물은 하루에 두 번씩 변함없이 들고 나갑니다. 달(月)의 차고 빔에 따라 들고 나가는 시각은 다르지요. 얼마만큼 들었다가 어디까지 나가는가 하는 정도의 차이 또한 참으로 현격합니다. 조황에 민감한 바다낚시꾼들이 출사의 시기를 엄밀히 맞추는 것처럼 이곳 섬사람들에게는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연근해에 그물을 쳤다가 거둬들이고 모래밭의 옅은 바다에서 모래고동을 캐고 뻘밭에선 낙지를 잡습니다.


이러한 자연의 물리를 잘 모르는 제가 하마터면 멸치잡이 현장을 놓칠 뻔했습니다. 멸치잡이는 대개 7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집니다. 멸치 떼가 연근해로 몰리는 시기지요.

바닷물이 많이 들었다 멀리까지 나가는 다섯물에서 아홉물까지의 사리 때에 맞춰 앞뒤 일주일 사이가 절정을 이룹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작업합니다.


7월 들어 장맛비가 억수로 내렸지요. 그래 바다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지라 멸치잡이에 따라나설 생각은 애당초 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습니다. 어느 술자리에서 멸치잡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 누구네 집 멸치잡이에 한번 따라나서기로 약조가 되었다고 하니, 물때가 이러하니 다음 사리 때로 미뤄야 한다고 누군가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아니 되기에, 부리나케 연락했지요. 밀물과 썰물의 차가 그리 크지 않은 조금 무렵이라서 오늘 밤에 이 물때의 마지막 작업을 한다더군요. 밤 10시가 넘어 바다에 나가니, 맞춰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늦은 시각에 바다에 나갔습니다. 그 집 그물엔 들지 않아 결국 허탕이었습니다. 다음날 어장이 달라 조금 때라도 낮에 바다에 나간다는 마을로 수소문해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그물에 든 갑오징어 몇 마리를 얻어와 술안주 삼아 동료들과 술잔을 나눴지요.

이밖에도 사리 때가 되면 아낙들이 나서서 잡거나 캐는 연체류와 패류 등속이 적지 않습니다. 낙지는 바닷물이 멀리까지 빠진 뻘밭에서 나무호미로 긁거나 손으로 잡습니다. 뻘에서 잡은 낙지를 제일로 알아줍니다.

 

맛이 훨씬 좋거든요. 대합 또한 사리 물에 갈퀴로 긁어 잡기도 하고 ‘조개눈’이라는 숨구멍을 찾아 잡기도 합니다. 같은 마을 어촌계 사람들이 아니면 잡을 수 없도록 폐쇄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고집하지 않으면 씨가 말라버리는 상황이 되기에 그 또한 문화적입니다.


 

모래고동을 잡는 광경은 참 아름답습니다. 전래의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전통적인 채취 과정을 우연찮게 볼 수 있었는데, 명사십리에서 모래고동을 잡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리와 아낙들
‘고동채’라고 하는 전통 어구에 달린 끈을 몸에 감고 허리께까지 차는 물속 모래밭을 훑습니다. 두 발로 모래밭을 흩트리면서 고동채를 바닥에 대고 긁지요. 더 깊은 곳까지 나가는 사람도 몇몇 있습니다. 파도가 연신 몰아칠 때면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가 뱉기도 합니다. 몇 차례 바닥을 쓱쓱 훑다가 지치면 잠시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떠가는 제주행 여객선을 망연히 쳐다보기도 합니다. 다시 서너 차례 더 훑으면 고동채에 모래고동이 가득합니다. 무거운 고동채를 안고 나오면 재빨리 아낙이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나가 받아옵니다. 대개는 바깥양반이 훑고 안주인은 바구니에서 모래며 자잘한 돌을 가릅니다.


여인네들만 나온 집들도 보입니다. 저 멀리 떠가는 여객선을 건네 보던 아주머니네 식구는 여정의 내심을 담고 나왔는지, 따님인지 며느린지 또한 바다 저 너머를 바라보는 눈길이 멀리까지 닿아 있습니다. 사연이 읽힙니다.


그렇습니다. 남획하지 않고 아침 밥상에 올릴 몇 마리 생선과 한 접시의 모래고동을 잡는 여기 사람들의 마음속에 배인 넉넉함과 풍요로움이 보입니다. 말마따나 ‘문화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 보러, 여기 오시지 않으렵니까?

 

 

사진 황석선

글 한상준
전북 고창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지에
「해리댁의」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오래된 잉태>가 있음.
현재 교육문예창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며
전남 완도 신지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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