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 심포지엄 참관기

설레임

그랬다. 사춘기적 감성처럼 묘한 설레임이 가슴을 뭉클거리게 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 면면이 묵직한, 그래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보이는 시대의 색다른 어둠을 뚫고 나갈 송곳 같은 메시지를 기대하게 했다. 1980년대 중반쯤, 정경모 선생의 『찢겨진 산하』가 던져 준 충격적인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면 너무 허풍 떠는 것인가. 지난 2002년도 일로 기억된다. 그이는 남북이 분단된 조국에, 그것도 검열을 통과하고 들어와야 하는 남쪽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 꼬장꼬장한 줏대가 다시 떠올랐다. 무슨 말씀들을 들려주실 것인가.


지난 6·15기념 광주행사에서 지근거리로 뵈었던 백낙청 선생의 말도 상당히 기대되었다. 북측이 핵실험을 하고 난 뒤 선생은 이미 어떤 매체에 특유의 어법으로 북의 핵실험에 대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일갈한 바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만만치가 않은 것이니 내밀하게 따져볼 얘기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비록 일본에서의 심포지엄이어서 얼마나 많은 청중이 자리할 것인가가 염려가 되었지만 심포지엄 자체의 부흥으로 보자면 일단 출연진의 화려함이 모든 걱정을 상쇄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노구를 이끌고 리영희 선생이 참석하기로 하셨음은 물론,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 선생을 뵐 수가 있다는 기대감도 컸다. 아쉽게도 경청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와다 하루키 선생 역시 토론의 무게감을 더하기에 충분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역사로서의 사회주의』라는 저작을 매우 의미심장하게 읽었던 기억이 새로웠으며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선생의 ‘동북아에서 한국의 역할론’이 북핵의 시점에서 어떻게 재론될 것인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광주공항의 안개로 인해 비행기 이륙이 지연되고 있는 순간은 마치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이에게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의 낭패감과도 같았다. 헐레벌떡 하네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순간이 새삼스럽게 기억으로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일본 도쿄에서의 심포지엄은 다른 한편의 즐거움도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비록 이틀 정도의 시간일지라도 살고 있는 곳을 잠시라도 떠난다는 여행의 즐거움이 그것이리라. 게다가 나라가 다르지 않은가.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이다. 모름지기 동행하는 분들의 존재감도 여행에서는 매우 중요한 데 안병욱, 한홍구, 서동만, 정해구 교수와 백승헌 변호사 등은 비교적 낯설지가 않은 느낌이어서 편안했다.

 

예상을 깬 청중의 참여와 열띤 토론
10월 28일 토요일, 도쿄 일본프레스센터 10층 대강당에서 10시부터 시작될 예정인 행사에 9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입장하기 시작한 청중들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방명록에 작성되는 참석자들의 이름은 다양했다. 일본인들도 의외로 많았으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와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 동포들도 다수 참석하였다.


행사의 후원이 일본 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와 일본기독교협의회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위원회 그리고 재일대한기독교회, 6·15공동선언실현 재일동포모임 등인 것처럼 주최 측이 예상한 200여 명의 청중은 그렇게 해서 300명이 훨씬 넘었고 200명 분의 점심 도시락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북의 핵실험이 몰고 온 관심사라고 생각되었다. 토론회의 주제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라는 데서 우선 관심이 높았을 것이며 한국 측 발표자와 토론자는 물론, 잡지 『세계』 편집장인 오카모토 아쯔시를 비롯한 이토 나리히코 등 일본 측 토론자들의 면면이 청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사진제공 한겨레 신문>


행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 시라야나기 세이이치 일본 추기경, 오다 마코토 소설가의 축하인사로 시작되었다. 첫 발표자로 나선 정경모 선생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선생이 직접 겪었을 법한 해방 직후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놓으셨다. 흰 광목천에 ‘해방자(emancipator)’라는 영어단어를 써서 미군을 환영하였다는 어린 시절 경험담을 곁들이면서 시작한 발표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로 미국이 남한의 독재정권 지원과 정세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였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서양 패도를 돕는 매나 사냥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충언한 손문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를 질타하는 말은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였다. “미국과 운명을 함께하려는 일본이 극동의 영국이 되려 해왔는데 요즘 동향을 보면 극동의 이스라엘이 되려고 애쓰는 게 아닌지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는 선생의 예견이 적중되지 않기를 마음으로부터 빌어보았다.


백낙청 선생의 발표는 맥락마다 많은 의미를 함축했다. 우선 북한의 핵실험을 통해서 확인되다시피 북을 예외로 하여 남한만의 독자적인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축하는 개념으로 북의 핵실험을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을 위해 “타격을 가장한 선물”로 해석하였다. “민간통일 운동이 아직껏 한반도식 통일 과정의 한 주역으로서 자기 위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주역으로 행동할 준비도 부실한 마당에 더욱 단련되고 성장할 시간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특유의 ‘어물어물 진행되는 한반도식 통일’을 위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중요성을 북핵 파동을 통해서 재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에 대한 단선적 해석에 근거하여 북을 엄호하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미국 비판은 남한 당국과 민간운동의 자주화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더 큰 목표에 이바지하는 결과가 되기 싶다.”는 주장은 미국의 한반도 전략 진화 설명으로 매우 냉정한 현실주의적 관점이라는 판단이다. 이런 이유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전 지구적 한민족 네트워크”가 필요하며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재일동포의 특별한 지위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민단과 총련의 화해는 물론, 시민참여형 통일에 대한 해외참여의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기 위해서도 재일동포 사회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지정 토론자 중 한홍구 교수의 질문과 의견은 핵심적이었다. 정경모 선생의 발표에 대해 “한국 정세의 미국 결정론은 지나치다.”는 문제제기는 공감할만한 것이었으며 민단과 총련, 한통련 등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곰곰이 되새겨 볼만한 의문으로 남았다. 그리고 재일동포 사회는 한반도의 통일운동에 어떤 형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를 따지는 일은 매우 실천적인 문제제기였다. 한반도 통일운동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일본 사회 내에서 평화헌법 수호나 우경화 저지, 외국인 차별 철폐 등 인권 평화 신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문제제기 역시 재일동포 운동의 방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라 여겨진다.

 

진지한 주제, 경쾌한 마음
사실, 올 4월에 있었던 민단과 총련의 화해협약은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첫발은 매우 소중한 것이지만 곧바로 파기된 것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행사 현장에서 “상호 화해와 만남을 위해서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지 않느냐”는 오오사카 민단 단장의 발언이 몇 사람의 야유로 중단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토론회는 진지했다. 무거운 주제였지만 참석자들은 끝까지 경청했다. 예정된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드물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한 유학생의 걱정과 우려를 들으면서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왜 그렇게 진지하였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한국의 상황이 곧 전쟁 일보 직전에 있지 않느냐, 시민들은 우왕좌왕하지 않느냐, 시민운동은 절망적이지 않느냐 등등의 상황인식을 갖고 있었다. 여러 가지 정황을 들어 설명하면서 한편으로 이렇게 하여 안팎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라 판단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해외에서 한반도 문제를 토론하고 협의하는 데 있어서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 동안 남과 북의 정치체제가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인 것이겠지만 통합적 절차와 과정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오히려 해외동포 사회를 더욱 분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쿄의 토론회는 그 주제의 시의성과 구성의 중량감으로 인해, 또한 준비의 세심함과 통합적 노력으로 인해 이후 재일동포 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일조할 것이라 평가한다.

 

조진태
(재)5·18기념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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