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대학로에서 충무로까지ㅣ 배우 기주봉

  신촌의 무서운 아이들, 대학로를 강타하다

중학교 시절 남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영화배우 남궁원의 모습을 본 기주봉은 ‘막연하지만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다. 당시 그는 “조명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사람 얼굴에 저렇게 빛이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1976년 신촌을 거점으로 창단한 76극단을 통해 그는 연극계에 들어선다. 1977년 친형 기국서가 76극단에 합류했고 1978년 사무엘 베케트의 <마지막 테잎>으로 첫 주연을 맡는다.
기주봉은 “모노드라마였는데 도무지 감이 잡히지도 않고 작품 자체가 분석이 안 되더라. 국문과를 다녔던 형을 찾아갔다. 욕 많이 먹었지. 그때 처음 연기라는 일이 ‘잘 노는 것만으로 안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는 말수가 줄어들고 모든 고민이 시작됐다. 이를테면 내가 이렇게 키가 작아서 배우를 계속할 수 있을까. 매번 작품 분석은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게 고민이 되는 거지. 그 이후 내 연기는 그 감정이 기조를 이뤘다. 의사를 표시하기 보다는 안으로 머금는 스타일이 됐다.”고 회상했다.

 

절치부심한 기주봉은 1979년 <관객모독>의 열연으로 ‘신촌의 앙팡테리블’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주목받는다. 30년 동안 76극단의 레퍼토리로 살아남은 <관객모독>은 한국 연극의 지형도를 흔들었고, 배우 기주봉의 삶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관객모독>은 초연 당시 배우들의 욕설과 물을 퍼붓는 기행이 화제가 됐지만, 객석에서도 유리창을 깨고 난동을 부리는 등 격렬한 반응이 쏟아졌다.
기주봉은 “그때 처음 물을 끼얹은 것은 배우들이 성난 관객들을 피해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양동근, 리마리오가 기주봉의 뒤를 이어 연기했다.
이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햄릿>시리즈와 <미친 리어>로 대표되는 기국서의 실험적인 작품들은 대학로를 향한 젊은 연극인들의 대공습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돌격의 첨병은 바로 그의 친동생 기주봉이었다. 76극단은 이후에도 박근형, 김낙형 같은 연출가들을 배출하며 대학로의 대표극단으로 자리 잡았다.

 


  동숭동 마라도나, 충무로에 나서다

‘동숭동 마라도나’ 기주봉은 이장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1980년 <어둠의 자식들>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한다. 하지만 조연배우의 삶은 끝도 없이 고달팠고, 연기는 주린 배를 결코 채워주지 못했다. 20대 내내 연극에 전념하던 기주봉은 어느 날 연기를 포기하고 가장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간 회사의 정수기 판매원으로 나선 기주봉.

 

하지만 무대 위에서 거칠게 객석을 압도하던 성격파 배우의 입에서 “정수기를 사 달라”는 단순한 말은 쉽게 흘러나오지 않았다.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 로만을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연기했던 기주봉이 정수기를 제대로 팔지 못한 것은 삶의 아이러니다. 그것은 기주봉이 배우의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세 달을 허송세월한 그는 친구의 도움으로 레스토랑에서 세익스피어 극의 독백을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생활연극을 시작한다.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출연을 재개한 건 돈 때문이었다. 먹고살아야 했으니까”라고 기주봉은 말한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그가 충무로에 데뷔했던 1980년대와 달리 젊은 감독들은 불혹을 넘긴 이 강렬한 배우의 에너지를 제대로 알아보고 활용하기 시작한다. 배우 송강호에게 “학생은 고독이 뭔 줄 알아”라고 물었던 투숙객을 연기한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필두로 박찬욱 감독의 <심판>, <공동경비구역 JSA>,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 윤종찬 감독의 <소름>에서 기주봉은 음산하고 강렬한 인상을 앞세우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단 몇 십 초를 등장해도 주연배우에 버금가는 강력한 인상을 심는 괴력의 조연배우 기주봉의 제 2의 전성기는 대거 등장한 신인감독들과 함께 그렇게 불이 붙었다.

대한민국 형사 역은 내게 맡겨라


지금은 강신일과 천호진이 가세한 한국 형사영화의 반장 역할도 역시 기주봉이 물꼬를 텄다. ‘너희 같은 놈들은 사람 때릴 줄만 알았지. 매 무서운 줄은 모르지’라고 호통 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형사반장 역을 필두로 문승욱 감독의 <로망스>에 이르기까지 그는 무려 열 편의 영화에서 형사를 연기했다. 오죽하면 “촬영현장인 경찰서에서 경찰 분들이 아는 척을 하거나 반장님이라고 편하게 대해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공공의 적> 도입부에서 정현종의 시를 읊으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비리 형사 송형기나 “칼은 나눠먹는 거야”라던 <와일드카드>의 형사반장 역할은 관객들의 뇌리에 깊게 새겨졌다. 기주봉이 연기했던 형사는 주인공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도화선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기주봉의 연기에 묻어나는 소시민적 리얼리티와 강력한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중견배우나 연극 출신 남자배우들이 희극적 요소를 강조해 영화계에서 성공한 반면, 기주봉은 연극에서 보여준 비극적이고 성격이 강한 배역을 고수하며 충무로에서도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형사 역을 도맡아 했지만 기주봉 만큼 악역을 선명하게 수행하는 배우도 드물다. 오랫동안 정극을 통해 다져진 비극성은 화면에서 찰나에 강렬한 인상을 뿜어낸다. 박찬욱 감독의 제안으로 원래 맡은 형사반장 역을 포기하고 배를 칼로 긋는 팽 기사를 연기했던 <복수는 나의 것>은 그러한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친구>의 보스나 <두사부일체>의 재단이사장 상춘만도 그러하다. 드라마 <올인>의 배상두나 <불멸의 이순신>의 윤환시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섬뜩하고 차가운 악당의 면모를 개성 있게 드러낸다.



강렬한 연기, 열린 마음으로
독립영화를 감싸다


드라마 <연애시대>와 <달콤한 스파이>로 대중들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선 기주봉이 선택했던 최근작은 민병훈 감독의 <포도나무를 베어라>. 수도원을 지키는 문 신부의 쓸쓸한 뒷모습은 젊은 신학도들의 고뇌를 현실과 연결하는 무게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혼자서 몰래 포도주를 마시거나 평소에는 엄격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간적인 온화함을 드러내고 허물을 감싸주는 문 신부의 모습은 틀에 박힌 아버지나 선생님의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저예산 예술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에 출연하고 출연료도 변변하게 받지 못한 기주봉은 웃으며 “서로 도와주자고 하는 즐거운 일”이라고 한다. 제작을 겸한 민병훈 감독이 자신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기주봉은 연기의 폭만큼 작품 선택의 폭도 드넓은 배우다. 기주봉은 오랫동안 독립영화계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연극계의 대선배인 그에게 수많은 졸업영화 작품이 의뢰됐던 건 그러한 개방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성격이 분명하고 좋은 작품이라면 단편이라도 언제든 환영”이라고 말한다. 무대와 스크린을 벗어나면 “선생님보다는 선배”로 불리길 원하는 기주봉의 자상한 성격도 한몫 했다.
가난과 세월도 배우 기주봉을 잠식하지는 못했다. 반평생을 몸으로 겪어낸 배우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묻자 기주봉은 “보통 사람들이랑 똑같이 약삭빠르고 계산에 능한 사람이 무대에 서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어느 수준까지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한다.



 

그의 아버지는 사상범이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동시에 연극인이었다. 기주봉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했다. 흥미로운 건 기주봉의 스무 살 먹은 아들도 연기를 준비하고 있다.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성격파 배우의 강렬한 눈빛이 순간 누그러든다. “같이 영화를 가끔 보는데 작품 분석은 나보다 나은 것 같다.”고 슬쩍 칭찬을 흘린다. “언젠가 아들과 함께 무대에 서서 부자간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날을 기대한다.”고 그는 말했다. 삼대로 이어진 무대에 대한 열정을 목도하는 일은 관객들에게도 즐거운 경험이 될 듯하다.
연기에 관한 한 기주봉은 원로도 중견도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아직도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작품을 해야 한다. 리얼리티의 출발점은 자신이지만 일상적이고 평면적인 작품을 평소 태도대로 임한다면 그건 리얼리티라고 보기 어렵다. 다른 관점을 통해서 삶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는 실험적인 작품에 도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카메라에게 말을 걸기 전에 사람에게 말을 걸고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익히는 게 기본”이라고 말하는 기주봉의 강렬한 몸짓이 20년 후에도 무대와 화면을 휘젓기를 고대한다.


김수경 시네 21 기자

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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