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정말 의혹일까? 그녀의 해명을 들어보자. “가수활동을 하면서도 입시학원에 다녀 성적은 꽤 잘 나온 편이었어요. 워낙 성격이 예민하고 완벽을 추구해서 생긴 일인데, 평소에도 시험을 잘 못 보면 구토를 하곤 했어요.”
그녀는 재수를 포기했다. 대신 1998년 미국 버클리 음대를 선택했다. 그녀가 국내 명문대에 진학할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던 팬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재수를 고민하고 있을 때 재즈아카데미 김홍탁 원장님이 음악공부를 하며 장학금도 탈 수 있다면서 이 대학을 추천했어요. 친하게 지내는 이적, 김동률 오빠에게 진로 고민을 했는데, ‘캠퍼스에 대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유학도 바람직하다’고 했죠. 도피 유학은 절대 아니었어요.”
불행은 연이어 온다고 했던가. 2001년에는 소속사 분쟁이 터졌다.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이모부와의 법정분쟁이 시작되면서 2001년 4집을 끝으로 6년 동안 가수활동을 접어야했다. 데뷔 10년차이지만 활동 햇수는 고작 2년. “노래를 하고 싶은데, 당장 하지 못한다는 고통을 그때야 깨닫게 됐죠.”
그사이 가수 ‘양파’는 서서히 잊혀졌다. 그녀 역시 지난 6년은 음악도, 학업(버클리 음대 2년 휴학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힘든 나날이었다. “취하지 않으면 불행한 생각에 사로잡혀” 좋아하지도 않는 술에 의지했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눈물을 쏟았다. ‘암흑기’ 동안 그를 달래준 건 술과 친구들. 넬, 롤러코스터 조원선, 정재일 등과 곧잘 어울렸다. 가수 ‘양파’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한때는 외국계 홍보대행사에 이력서도 내봤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공부하고 술 마시는 일 말고 딱히 할 일도 없었죠. 얻은 게 있으니까 그런 힘든 기간을 겪어도 괜찮다고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그땐 내 삶이 이렇게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이 너무 컸어요.”
소속사 분쟁은 2005년 10월 이모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마무리됐다. 그 일로 그녀는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담담해보였다. “제 목소리가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는데, 내가 쉬었던 6년 동안 1년에 한번씩 목소리가 음반으로 나와 빛을 봤더라면 좀더 좋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운동해서 살도 좀 빼고 치아교정도 해서 입도 많이 들어가 예뻐졌으니까 괜찮아요.”

껍질 벗고 돌아온 양파, 6년 만에 새 음반 내고 팬들 곁에 돌아와

  1997년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17세의 소녀가수 양파. <애송이의 사랑>으로 혜성처럼 데뷔한 그녀는 또래답지 않은 가창력으로 주목받았고, 짧은 시간에 가요 시장을 석권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던 고교생 가수 이지훈, 진주, 이동건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음악프로그램에서 H.O.T나 S.E.S보다 더 많은 곡을 1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1990년대 후반 전형적인 아이돌 스타였던 셈이다.
모든 곡이 다 타이틀곡, 자작곡도 2곡 양파가 6년 동안의 공백을 깨고 지난달 5집 <더 윈도즈 오브 마이 소울(The windows of my soul)>을 내고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깔수록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예명처럼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다시 만난 양파의 모습에서 데뷔 초 앳된 소녀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동글동글했던 볼은 갸름해졌고, 덧니는 사라졌다. 천상 20대 요조숙녀다. “지금도 다이어트 중이에요. 사진만 찍으면 통통하게 나와서요.

 

그런데 재킷 사진을 보고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지 뭐예요. 가슴확대 수술 한 것 아니냐고요. 보조기구를 쓰긴 했는데, 그렇게 효과적일 줄은 몰랐어요. 저 성형수술 할 생각 전혀 없어요.”
달라진 것은 외모만이 아니다. 음악적으로도 한층 깊이가 더해졌다. 이번 음반은 선곡에만 1년이 걸렸는데, 발라드뿐 아니라 포크록, 블루스 펑키……. 음악 장르뿐 아니라 창법도 성숙해졌다. 타이틀곡 <사랑…… 그게 뭔데>에서는 절제된 애절함이 더해졌다. 자신의 음역을 뛰어넘는 가성으로도 불러보고(<메리 미(marry me)>), 끊었다 내뱉기도 했으며(<기억해>), 에디트 피아프처럼 요동치는 바이브레이션(<친절하네요>)을 시도했다. 자작곡도 두 곡 넣었다. “대중의 취향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 앨범 작업만 1년 넘게 걸렸어요. 쉬는 동안 묵혔던 것을 한꺼번에 다 쏟아내려니까 욕심도 커져 녹음작업도 수없이 했어요. 성시경의 히트곡 <거리에서>도 저를 거쳐 간 곡이에요.”
다행히 현재 그녀의 새 앨범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음반 발매 전부터 각종 온라인 사이트와 음반매장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해 침체된 음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제 노래 솔직히 촌스러운 발라드죠. 목소리에서도 ‘뽕(짝)’ 분위기가 많이 나고요. 가사는 감정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직설적인 언어들이 가득한데, 요즘 시대에 그런 복고풍의 노래들이 더 공감을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국내 대학 실패에 이어 소속사 분쟁까지

 

“예전에는 너무 자신감이 넘쳤었죠.”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그녀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사실 공백기를 갖기 전까지 그녀의 가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가수의 꿈을 키우던 평범한 고등학생이 기획사 사장이던 이모부의 제안으로 손쉽게 앨범을 냈는데, 그 음반이 82만장이나 팔렸다. 이어 낸 2~4집의 음반들도 <천사의 시> <알고 싶어요> <아디오(Addio)> 등이 인기를 끌며,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발라드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해프닝처럼 시작된 가수의 길이 항상 성공적이었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는데, 운이 좋았죠.”
반면 그는 대학 진학과 소속사 문제로 긴 공백기를 가져야했다. 데뷔 당시 그녀는 ‘전교 1등’ 가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는데, 수학능력시험 당일 복통으로 그녀가 쓰러져 시험을 포기하자, ‘공부를 못해 쇼를 했다.’는 의혹을 샀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유학시절,
결혼도 하고파


그녀는 한때 양파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은’으로 활동을 재개하려고 했다. “나이가 있는데, ‘안녕하세요. 양파입니다.’라고 인사하려니 쑥스러웠어요. 처음부터 양파라는 이름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요. 인터넷에서 ‘양파’를 검색하면 양파 그림이나 양파의 효능, 양파즙이 먼저 떠요. 또 ‘다마네기’ 같은 조소랄까, 진지하지 않은 반응도 싫었고요.” 그렇지만 자신뿐 아니라 팬들이 가진 양파에 대한 향수나 추억까지 없애는 것 같아 그만뒀다고 했다.
그녀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일까. 의외로 유학시절이란다.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보스턴에 있을 때 행복했고, 기억이 가장 크게 남아요. 가수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게 고마운 일이지만, 평범한 대학생일 때가 더 좋았어요.”

 

어느덧 그의 노래를 경험했던 이들은 20~30대를 훌쩍 넘어섰다. 그녀가 작사 작곡한 <메리 미>는 그래서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팬들을 위한 곡이다. “저뿐 아니라 제 또래 친구들이 꿈꾸는 결혼생활을 대변한 곡이에요. 결혼을 하게 되면, 이렇게 해줘.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해줄게. 뭐 그런 내용인데, 사실은 제가 결혼을 하게 되면 이 노래가사처럼 하고 싶어요. ‘항상 주머니에 넣어 다니라고, 바쁘다고 혼자 두지 말라고’요. 결혼을 하게 되면 현모양처가 될 거예요.(웃음)”
양파의 연애사는 어땠을까? 그녀는 “그동안 남자친구와 생일을 보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에둘러 말했다. “연애엔 젬병이어서요. 연애를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서툴러요. 고백하지 못하는 짝사랑만 몇 년 하거나, 확 질러버리기도 하죠. 연애할 땐 남자에게 잘 해주지만, 헤어질 때는 미련을 두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이상형이요? 계속 바뀌는데……. 자기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 좋아요.(웃음)”

 

 

뮤지컬은 꼭 한번 해보고 싶어

음반시장이 붕괴되면서 가수들의 연기자 데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렸다. 신화의 에릭, 전진, 김동완을 비롯해 S.E.S의 유진, 핑클의 성유리와 주얼리의 박정아까지. 가수들이 설 무대가 없어지고, 음반이 팔리지 않으면서 생존을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사실 그녀도 김지운 감독과 이재용 감독에게 영화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거절했다고 한다. “뮤지컬은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분야에요. <미스 사이공>은 유일하게 노래도 외우고 있는 걸요? 뮤지컬은 내 에너지가 고갈됐을 때 샘물 같은 존재였거든요.”
물론 그녀의 본업인 가수로 인정받는 게 먼저다. “지금부터라도 음반을 자주 내고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으면 제가 못 참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록과 일렉트로니카를 좋아하는데, 이런 실험적인 음악도 선보일 거예요.”
물론 가창력을 겸비한 싱어송 라이터는 지금 양파의 꿈이다. 1998년 전국 투어 이후 하지 못한 콘서트에 대한 욕심도 많다. “공연을 통해 두터운 팬 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소라 언니나 이승환 오빠처럼 앞으로 콘서트를 많이 하고 싶어요. 그런데 팬들의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잖아요? 오래오래 사랑받는 가수가 될 거예요.”

 

글 김미영 kimmy@hani.co.kr 한겨레신문 기자

사진제공 팬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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