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걸출한 사투리와 애드립의 비결은 소설 태백산맥 명품조연 박철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김완 장군에서부터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의 택시기사 인봉. 굵직한 역사 드라마에서부터 5·18민주항쟁을 다룬 근엄한 영화까지, 맛깔 나는 웃음을 선사했던 배우 박철민(40). 1988년 연극으로 데뷔한 뒤 50여 편의 연극·드라마·영화 등에 출연했지만, 지금껏 ‘박철민’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 2003년 영화 <목포는 항구다>에서 ‘가오리’ 역을 맡으면서부터다. 어느덧 불혹. 이제야 ‘주목받는 배우’ ‘명품 조연’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분명 늦깎이 배우다. 20년 가까웠던 무명 배우의 설움도 벗어던지고 있다. 그를 찾는 감독도 많아졌다. <화려한 휴가>에선 웃음을, 9·11을 다룬 특집드라마 <그라운드 제로>에서 울음을 선사했던 그는 영화 <마이 뉴 파트너>와 <스카우트> 개봉을 앞두고 있다. <킬 미>에 출연했고, 대하 사극 출연 여부를 고심 중이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빠듯한 일정이다. 다음달에 개봉하는 <스카우트>는 임창정·엄지원 주연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지만, 그 배경이 5·18이어서 이채롭다.

 

“인터뷰요? 당연히 해야죠.”
그를 만난 건 지난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이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일찍 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쁘실 텐데……. 제가 늦은 건 아니었는데.”라고 쑥스러워하자, “안 바빠요. 시간 많아요. 당연히 먼저 나와 있어야죠.”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는 “어렸을 때 초창기 시절 이것저것 많이 하고 싶었지만 나를 받아주는 무대와 카메라가 없었다.”며 “거기에 한이 남았는지, 나를 작품에 불러주고, 인터뷰 제의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설레고 행복하다.”고 했다.
박철민의 연기 인생은 고교 시절 연극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님의 반대로 중앙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연기에 목말라있던 그는 대학생활 대부분을 연극 동아리에서 보냈다. 연극을 했던 형의 영향이 컸다. “연극영화과에 가려고 했지만, 아들 둘을 연기자로 두는 걸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연극반 활동은 그에게 ‘연기’ 이상의 그 무엇을 느끼게 하는 값진 경험이었다. 이때 그는 김지하 선생의 <금관의 예수>와 마당극 <밥> 같은 사회 현실을 다룬 풍자극을 주로 무대에 올렸는데, 사회의 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연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전율을 느꼈죠.”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1988년 노동연극 전문극단 ‘현장’에서 연기의 꿈을 키웠다. “연극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결심한 그에게 ‘현장’ 입단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껍데기를 벗고> <대한민국 김철식> <늘근 도둑 이야기> 같은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그린 연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모인 곳을 찾아다녔다. 그에게 있어 연기는 점점 ‘자연스러운 옷’이 되었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기만 했던 그는 무대 위에서 잠재된 끼를 발산할 수 있었다. “무대에만 서면 나도 모르는 제 이미지와 에너지가 나와요. 까불대기도 하고, 흥분돼 오버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연극을 했던 형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제게 버무려진 것 같아요.”
‘현장’ 활동을 하며, 연극판만 전전하는 5~6년 동안의 무대는 그에게 꿈과 열정을 표출하는 마당이 됐지만, 생활인으로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더구나 당시 그는 극단 동료와 만나 결혼을 했고, 첫 아이의 출산도 앞두고 있기도 했다. 한달 15만원의 활동비로 월 60만원의 이르는 생계비를 감당하기엔 힘에 부쳤다.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과 생계에 대한 부담으로 그는 ‘현장’ 활동을 중단한다.
“기저귀 값이라도 벌 요량이었어요. 노동 연극이 아니라 다양한 연극과 극단 경험도 해보고 싶었고요. 이때 과일장사를 1년 했어요. 소매할 때는 수입이 짭짤해 욕심을 내어 도매까지 했죠. 장인정신이 중요한데 업이라고 해왔던 사람들을 도저히 당해내질 못하겠더라고요. 처절하게 실패한 뒤 다시 대학로로 나왔죠. 배우는 역시 연기를 떠나서 살 수 없겠더라고요.”

 


박철민에게 영화 <목포는 항구다>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사진제공 기획시대

“총학생회장에서 민주대머리가 되기까지”
왜일까? 그의 색다른 이력에 그 답이 있다. 그는 1987년 어용 총학생회장을 몰아낸 경험이 있다. 당시 사회대 학생회장이었지만, 총학생회장이 불명예 퇴진한 뒤 직무 대행을 했다. 치열하고 열정적인 성격 탓에 과격한 학생이기도 했던 그는 당시에 등록금 인상 거부 투쟁을 하면서 교학과의 유리창을 깨어 어렵지 않게 관철한 적도 있다. “그 시대는 격동의 시기였고, 첨예한 대립의 시기였고, 대학생이면 누구나 짱돌과 화염병을 한번씩은 들어봤을 시기였잖아요. 시대에 따라가기도 했고 밀려가기도 했고 합류하기도 했지만, 사실 전 ‘날라리 운동권’이었어요.(웃음)”
그는 집회 현장에서는 명 사회자이기도 했다. ‘독재 대머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명언(?)을 남긴 뒤부터는 ‘민주 대머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4년 탄핵 반대 집회 때도 사회자로 나섰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 경험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때 활동이 부끄럽거나 후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활동이 제 연기생활에 있어 훈장이 아닐뿐더러 되어서도 안 되니까요. 사회자로 무대에 서는 상황에서도 전 무대와 마당만을 생각했어요. 저는 배우, 광대로서 매력 있는 남자, 향기 나는 남자가 되고 싶고, 그렇게 사랑받고 기억되는 게 더 중요해요.”
그가 걸어왔던 시간들이 현재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그의 이런 독특한(?) 이력들은 그의 연기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그의 연기관 역시 엔돌핀 돌게 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큰 웃음도 한번 주고, 그칠 줄 모르는 깊은 눈물도 주고 싶어요. 신나게 웃기기도 하고, 하염없이 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게 제 개똥이 연기관이라고 할까요?”

  “생맥주와 통닭 원 없이 먹게 됐지만,
지금은 체력이…….”
그를 부르는 곳에 주저 없이 달려가는 탓에 연극판을 전전하던 때와 달리 현재 그는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 “‘삼겹살에 소주’, ‘통닭에 생맥주’ 한번 먹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실컷 먹을 수 있게 됐죠. 살이 찌고, 위가 안 좋아져서 문제죠. 지금 너무 행복하고 더 바라는 것 없어요.”
그는 ‘개런티’ 때문에 출연을 망설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목포는 항구다>의 경우 목포에서 공연하던 연극 <밥>을 본 김지훈 감독이 “형은 내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말을 듣고, <화려한 휴가>는 “박철민 아니면 안 된다.”는 김 감독의 제의를 받고 흔쾌히 출연을 결심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목포는 항구다>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제 연기를 높게 평가해주는 김지훈 감독도 고맙고요.”

그의 성공엔 그의 걸죽한 입담이 한몫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화려한 휴가>에서 그의 과도한 애드립으로 잘린 장면들이 디렉터스 컷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광주 출신이기도 하지만, “남의 영업용 택시에 똥칠을 해놓고 택시비만 주는 건 경솔하제” “분노를 발생하는 새끼, 폭력을 유발하네” “나가 볼 적에는 니가 시방 중3 수준의 연애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거여” 같은 그의 걸쭉한 사투리의 비결은 뭘까. “『태백산맥』 입니다.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읽으며, 노트에 필요한 문장과 단어를 적어놓았는데 그게 지금 제 교과서가 되고 있어요.”
비결은 또 있다. 어떤 작품을 하던 간에 100번 이상 뇌까려보고, 연습해보는 지독한 습관이다. 그의 말을 빌자면, “워낙 머리가 안 좋아 외우는 게 힘들어 반복 연습을 해야 입에 붙어 뇌로 인식이 된다.”고 했지만, 연기에 있어서만은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집요한 욕심 탓이다. 그 덕에 애드립도 많이 나온다. “입에 붙이기 위해 지난한 연습 과정을 거치는데, 똑같이 반복하다 보니까 심심하기도 하고, 다양하게 형용사나 단어를 바꾸게 되요. 이 캐릭터에는 이 대사가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선보이기도 하고, 채택되기도 하죠. 사실 애드립을 너무 많이 준비해요.(웃음)”

“변희봉·임현식 선배 존경
끊임없이 오버하고 싶다”

지금껏 그는 비중 있는 조연(?)으로 살았다. 불만이 없지 않을까? “안성기 선배의 삶이 부럽고, 좋아는 하지만 내 스타일에 맞을 것 같지 않아요. 김명곤 선배의 진정성과 열정을 좋아하고, 최종원 선배 특유의 넉살과 여유도 부럽고요.”
하지만 정작 그가 연기의 모델로 삼은 사람은 <괴물>에 출연했던 변희봉, <만남의 광장>에 출연했던 임현식이다. 배우에게 ‘과장’과 ‘해학’은 연기 삶의 적이 될 수도 있지만, 그는 끊임없이 오버하고 싶다고 한다. <혈의 누>와 <그라운드 제로> 같은 묵직한 연기도 필요하겠지만, 그의 연기 속에 ‘오버’는 항상 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2~3명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오버하는 사람이 있어야 모임이 재밌어지잖아요. 연기자 중에도 당연히 오버하는 배우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물론, 박수를 먹고 사는 배우니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은 욕심이 있죠. 오버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봐요. 감정을 더 키우는 것뿐 아니라 숨기는 연기도 오버이고, 화내야 하는데 더 절제하는 것도 오버죠. 다양한 오버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제 역할들을 소화해내고 있어요. 이런 다양한 색깔들이 작품을 훌륭하게 이끌어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신작 <스카우트>에선 오버 연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귀띔해줬다. 그렇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 좋은 연기란 뭘까. 그는 “정답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연기에 있어서는 나쁜 연기, 틀린 연기, 좋은 연기란 게 없고 다만 다른 연기와 관객들이 좋아하는 연기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꿈은 항상 다른 연기를 선보이는 ‘평생 배우’다. 올해와 내년엔 바쁜 일정을 쪼개 연극 무대에 설 계획이다. 올해 초 절친한 선배인 조재현의 권유로 연극 <경숙이, 경숙 아버지>에 출연했었다. “재현이 형이 극단을 만들고, 기획자가 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됩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인 <대한민국 김철식>은 아리랑 극단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하게 될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그가 스스로 평가하는 그의 연기점수를 물었다. “70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빠로서는? “62~63점”이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때 받아왔던 점수가 30~40점인데, 다행히 아빠 점수는 갈수록 더 높아지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줄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더 애틋하고, 될 수 있으면 함께 있으려고 하는데, 조만간 연기 점수를 초과할 것 같기도 해요. 남편 접수가 올라가야 할 텐데, 몇 년 후 다시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겠어요.(웃음)”


 

글 김미영 한겨레 기자

사진 황석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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