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벽화운동과 미술탄압, 공공미술로 꽃을 피우다

 
  1986년 여름, 서울 신촌역 앞 작은 3층 건물에 수성도료로 벽화가 그려졌다. <통일과 일하는 사람들>이란 제목이 부쳐졌던 이 벽화는 김환영, 송진헌, 박기복 등 20대 청년 작가 6명의 작품이었다. 1층 벽면에는 어깨동무하고 있는 아주머니와 청년들, 2층 벽면에는 백두산 천지와 노동자, 농부, 사무원 등 민중의 모습을 통해 민족통일의 바램을 3층 벽면에는 민중 세상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꽃에 뒤덮인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통해 표현하였다. 하지만 그림이 그려진 직후 벽화내용과 형상이 도전적이고 시위를 연상케 한다 하여 당국이 곧바로 지워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도발적으로 일어난 정치적 벽화가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유효한 선전물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도시 벽화에 눈 뜬 미술인들

도시환경 조형물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도시벽화이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대형벽화가 제작되기 시작 하였으며 흑인 거주 지역 같은 곳에서 먼저 시작된 벽화운동은 지역 사회 대중들의 인식을 변화시켰고 벽화 제작에 대한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마침내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고 도시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도 미국의 벽화운동과 1920년대 멕시코의 벽화운동가인 시케이로스, 디에고 리베라, 오로츠코 등의 혁명적·벽화 전통에서 그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프랑스에서 벽화를 공부했던 성완경이 1985년에 설립한 <성완경벽화연구실>과 그 후신인 <빅아트>, <상산환경조형연구소>는 당시 생소했던 벽화를 비롯해 다수의 공공미술과 문화관련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고 작업했다. 무엇보다 1980년대 성완경과 일군의 그룹은 한국의 도시벽화와 공공미술을 고민하는 최초의 전문적 집단으로 미술의 쓰임새 자체가 공공의 이익에 있음을 강조했다.

 

성완경의 공공벽화가 최초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공공미술이라면, 20대 미술대학 학생들과 청년작가들의 그것은 벽화의 정치적 선전에 그 목적이 있었다. 시민 학생들에 대한 선전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1988년 제작된 경희대 문리대 건물의 벽화 <청년>은 6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통일과 민중 세상에 대한 염원을 두 주먹을 불끈 쥔 청년학도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벽화는 벽그림제작공동위원회(미술교육과‘생활미술놀이공동체’, 만화패 ‘한그림’, 그림패 ‘쪽빛’)를 구성하여 제작되었다. 설문조사를 통한 디자인이 학교 측과의 협상을 통해 최종안이 확정되고 5개월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처음에는 흰 페인트를, 그 다음은 검은 타르를 옥상에서 부어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게 하는 두 번의 훼손을 시켰다. 또한 1999년에는 학교 측이 벽화를 철거하려 했으나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강력한 반발로 저지되기도 하였다.

 


★ 통일과 일하는 사람들
출처:류연복 장소:서울 심촌역 앞 3층 건물 참여자:김환영, 송진헌, 박기복 등 6명 내용: 1층 벽면에는 어깨동무하고 있는 아주머니와 청년들을, 2층에는 백두산 천지와 노동자, 농부, 사무원 등 민중의 모습을, 3층 벽면에는 민중세상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꽃에 뒤덮힌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통해 표현하였다.


사람들과 소통한 미술의 힘

민미협 작가들인 이경복, 최호철, 송정임 등이 경북 청송 감면마을에 1989년 제작한 벽화(10미터×4미터)는 구체적 사안을 다루고 있다. 당시 이 고장은 고추와 담배를 주로 재배했는데 우루과이라운드로 농산물 수입 개방에 민감해 있던 주민들이 우루과이 반대 투쟁을 이슈로 한 벽화작업을 홍익대 미대 학생들에게 먼저 제안하여 제작하게 되었다. 국도변에 있어 선전 효과가 뛰어났던 창고 벽면에는 ‘도시는 꽃 농촌은 뿌리, 뿌리가 시드는데 꽃이 피는가?’라는 표어가 크게 쓰여 있었다. 농민들이 직접 벽면에 밑칠을 해놓고 벽화제작을 기다릴 정도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절실했던 상황이었다.
학생들과 마을 농민회 회원들이 함께 내용을 논의하여 농산물 수입 개방에 대한 반대와 저항의 의지를 표현한 벽화는 우연히 도청 관계자의 눈에 띄어 군청에서 지우도록 지시가 내려왔고, 청송군의 공무원들이 불법 선전물로 고소하며 지우도록 협박했다. 이에 주민들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 하는 등 벽화 철거를 완강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몇 개월 뒤 농민회 청년들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벽화를 지우는 조건으로 주민의 폭행 혐의를 없던 것으로 하겠다는 경찰의 요구를 마을주민들이 받아들여 벽화는 지워지고 말았다. 주민들과 소통함으로서 미술의 힘을 확인하고 회복하려는 것에서 이 벽화의 중요성은 다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란 참여가 우선해야 하고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제작 경험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1985년 공주교도소와 결연을 맺고 있던 공주사대 교수인 김정헌이 교도소 측을 설득하여 학생들과 재소자 2명이 작업한 경우는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다.
<꿈과 기도>라는 제목의 벽화(30미터×3미터) 내용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왼쪽에 황금빛 보리밭 뒤로 모내기 하는 농촌 풍경이 있고, 가운데에는 기도하는 여인과 용꿈을 꾸는 남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누렇게 익은 벼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수확하는 농민들이 그려졌다. 이 벽화의 경우 애초부터 그 제작 과정과 목적 등을 보면 오늘날의 공공미술과 지향점에서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거주자(재소자)들과의 친밀도와 관심의 반영 부분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됨을 알 수 있다.



★ 경북 청손군 감면마을 벽화
출처:이경복 크기:10미터*4미터 제작: 이경복, 최호철, 송정임 장소:경북 청송군 감면마을 내용: 당시 이 고장은 고추와 담배를 주로 재배하였는데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한 농산물의 수입 개방에 민감해 있던 주민들이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투쟁을 이슈로 한 벽화 작업을 홍익대 미대 학생들에게 먼저 제의하였다. 도변에 위치해 선전효과가 뛰어났던 창고 벽면에는 `도시는 꽃 농촌은 뿌리, 뿌리가 시드는데 꽃이 피는가!`라는 표어가 크게 그려져 있었고 농민들이 직접 벽면에 밑칠을 해놓고 벽화 제작을 기다릴 정도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절실한 상태였다.

지역사회의 공공미술로 거듭난 벽화운동

미국의 1960년대 도시벽화는 지역에 뿌리를 두고 주민과 미술가가 모두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애초부터 도시 디자인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주민이 참여하는 미술을 통해 지역사회의 소통이라는 공공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 점,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은 그동안 건축물의 장식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환경조형물의 울타리를 뛰어넘고 있다.
기획창작 공간 산방은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미술이란 방법을 내 놓았다. ‘미술로 등 긁기’, ‘2005 삼백만원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바깥 미술 연구공간을 자임하는 <산방>(이경복, 박야일, 송지영)의 작업은 프로젝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삼백만원으로 이루어진다. 인건비 180만원과 진행 경비 120만원이 합해진 금액으로 미술가들의 인건비 책정이 작품제작비 지원에 한정되는 현 관행을 비꼬는 것이다.
<산방> 기획자 이경복 씨는 “공공미술에 대한 활동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축적되지 않고 개별 사례로 끝나곤 한다. 작가가 지역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이러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공미술을 하기란 쉽지만은 않다.”며 공공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함을 새삼 강조한다. 또한 삼백만원 프로젝트에 대해 “여전히 우리는 공공미술을 학습 하고 있는 셈이다. 미술가를 포함한 미술 소비자들 역시 이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이 프로젝트가 3년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여러 사례를 축적해 미술 소비자들이 함께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7명의 작가와 기획자가 팀을 이뤄 각각의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진행 형식도 이색적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이용 공간을 활용한 문화·예술 서비스, 철거 예상 지역 주민을 위한 쉼터 디자인, 서교동 정류소를 이용한 작업 등 그들의 작업은 모두 지역사회와 맞닿아 있다. 그동안 늘 회자되어 오던 문제가 아닌 우리 주변을 세심하게 둘러본 이들만이 끄집어 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들이다.


 

글·자료사진 전승보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 대학원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창원 2007아시아미술제>, <2006아시아미술포럼>, <아시아의 지금 - 에피소드 2004>, <열다섯마을 이야기>전 등을 기획했다. 현재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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