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연극을 통해 나눔 활동을 하는 배우 이상철

 
 


지난해는 이른바 개성파 조연배우들의 전성시대였다. 원조격인 ‘순돌이 아빠’ 임현식을 비롯 <커피프린스 1호점> 이한위, <뉴하트> 박철민, <태왕사신기> 오광록까지. 탤런트 이상철(45). 그 역시 개성파 조연배우다. 지금은 비록 이들보다 덜 알려졌지만, 2003~04년 국민드라마였던 <대장금>에서
주인공 장금이를 도와주던 제주 감영의 ‘구만’ 역을 맡았던 이다.
본업이 탤런트이지만, 그는 요즘 연기보다 남다른 ‘선행’으로 연말연시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선뜻 자신의 것을 내놓기 꺼려하는 요즈음,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연기자 지망생들을 위해 ‘인기’와 ‘금전’을 포기했다.
12년째 드라마에 출연해 번 돈으로, 연기 지망생 청소년들을 직접 거두어 돌보고, 심지어 연기 지도도 하고 있다. 극단 버섯을 만들어 장애인과
불우 청소년을 위한 연극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아역 연기자로 출발해 지금까지 얼굴을 내밀고도 조연을 주로 맡은 탓에 그는 시청자들한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동안 그의 품을 거쳐 간 150여 명의 배우지망생들에게는 스승이자 후원자로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준 은인이다. 세밑. ‘배우 이상철’의 존재감이 더욱 빛이 나는 이유다.


“연기자의 길을 가려고 할 때 집안의 반대가 심했어요. 환경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을 뿐이었죠. 저도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서울 상암동에 있는 극단 버섯 연습실 인근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의 여유 같은 게 느껴졌다. 얼굴은 밝고, 싱싱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다만, 낡아버린 티셔츠에 청바지·운동화, 빛바랜 오래된 승용차, 유행이 지나버린 핸드폰……. 그의 차림새에서 고단한 삶의 흔적 같은 걸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기자의 심정을 알았을까.
그는 “1988년도만 해도 국내에서 세 번째로 카폰을 달 정도로 잘 나갔다. 차 역시 12년째 타고 있는데, 나에겐 벤츠 같다. 더 타도 끄떡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장금> 이후 방송에서 볼 수 없었지만,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지난해 10월~11월 대학로에서 제 20회 정기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지금은 후원해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다니며 결산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연출자·연극 기획 등 일인다역 전천후 배우
이상철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선수인 누나를 따라 남산드라마센터에 갔다가 우연찮게 캐스팅되면서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대하드라마 <강감찬>, 실화극장 <연락부>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연락부> 출연을 계기로 1977년 제 1회 KBS 방송대상에서 아역상을 받고 1985년 박상원, 박순애 등과 함께 MBC 18기 공채 탤런트에까지 합격해 그의 연기 인생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드라마 <수사반장>, <아스팔트 사나이>, <뜨거운 것이 좋아> 등에서 개성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 세계를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너무 바빠 연기를 할 수 없다니!’ 모순된 인생을 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매년 장애인·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연극 공연을 하며, 연극 기획자로 연출과 각색·대본은 물론 극장 대관과 후원 기업 모집 등 소소한 것까지 직접 챙긴다. 한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끝마치기까지 그의 손이 안가는 곳이 없어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다.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연기자가 되고 싶은데 가정 형편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어 그가 돌보고 있는 단원들이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그의 품을 거쳐 간 연기 지망생은 150여 명. 일부는 대학에 진학한 뒤 극단 등에서 배우로 활약하고 있고, 일부는 자신의 갈 길을 찾아 떠났다. “연극 현장을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워낙 배고픈 직업인데다, 제 뜻대로 배우로 잘 풀리는 건 아니니까요. 요즘은 연기자도 집안 형편이 좋아야 잘 풀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꿈을 바꾸거나 또 다른 길을 찾아간 친구도 많아요. 아쉽죠.”

배우의 꿈 포기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그가 연극을 통해 나눔 활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건 1995년. 우연히 술자리에서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 두 명이 있는데, 연기를 가르쳐 보겠느냐”는 권유를 받고난 뒤부터였다. “몇 달 가르쳤더니 대학에 진학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 일을 계속하리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배우고 싶을 때 배우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서럽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에게 제 재능을 나눠주는 일이었죠.”
불우 청소년들에게 연기를 가르친다는 얘기가 퍼지자 주위에서 아이들을 맡겨오기 시작했다. 매년 그 수가 늘어났지만 빠듯한 형편에 번듯한 숙소 마련조차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와 아이들의 보금자리는 서울 수서 청소년수련관 안에 컨테이너박스였다. 여름엔 더웠고, 겨울엔 추웠다. 1999년 씨랜드 화재참사가 난 뒤에야 보증금 500만원의 반지하방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극단 이름은 버섯처럼 비록 음지에서 자라지만 강한 자생력을 갖고 집단을 이루며 번창하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1995년 버섯은 창단하자마자, 장애인·고아 초청 무료 공연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청소년수련관 위주의 순회공연이었지만, 2000년 이후 대학로 소극장에 입성했다. “여기저기서 도움을 주셨어요. 도움을 받는 만큼 베풀어야한다고 생각했죠. 공연을 하면서 아이들은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되고, 자신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존재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평소 연극 관람을 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문화 향유의 기회를 줄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유산으로 받은 집 담보로 대출받아 공연
극단 버섯은 지금까지 방송국, 소극장, 기업체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어려움 없이 공연을 해올 수 있었지만 변양균·신정아 스캔들이 터진 지난해는 기업들의 후원이 크게 줄어 더욱 힘든 한해였다.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공연을 무사히 마치긴 했지만, 그는 재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산으로 남긴 18평 아파트를 담보로 4,500만 원을 대출받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연극에 유명 배우가 등장하지 않고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따듯하고 감동적이며 잔잔한 여운이 남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한번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데 연습 기간에 들어간 비용과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최소 6,000~7,000만 원이 들어요. 초창기에는 번안 작품과 국내 창작물을 올렸는데, 2003년부터는 저작권료도 아끼려고 제가 대본을 씁니다.”

 

 

작품은 장애인·불우청소년 등 연극의 주 관객층을 감안해 구상한다. <병실에 불을 켜라>, <이렇게 생각한다면>처럼 자살예방이나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처럼 컴퓨터, 카페인, 알콜 중독에 관한 교훈적인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다소 따분할 수 있을 법한 주제를 재밌게 풀어내는 몫이 그에게 주어진 과제인 셈인데, 다행히 관객들은 그의 작품에 흠뻑 빠져들곤 한다. 이번 달에도 문화관광부와 한국메세나협의회의 지원을 받아 전국을 돌며 <병실에 불을 켜라> 앵콜 공연을 하게 됐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우리 연극을 보고 많은 이들이 삶의 중요성을 깨달으면 된 겁니다.”

현재 생활에 만족, 꿈과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어느덧 그의 나이 마흔 다섯. 연기자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동료 탤런트, 행복한 가정을 꾸렸거나 명예와 부를 거머쥔 친구들을 보면 가진 것 하나 없는 자신에게 회의도 느껴질 터.
하지만 그는 “주식, 아파트 값, 자녀 교육과 입시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지금이 더 행복”하단다.


크리스마스 날 연습실에 붙여진 단원들의 카드를 봤을 때처럼, 소소한 일상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와 단원들이 만들어가는 이런 행복들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힘일 테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돈은 먹고 자고 생활할 정도의 최소한만 있으면 되요. 결혼은……. 음. 처자식이 있으면 아이들을 지금처럼 돌볼 자신이 없어요. 주변에서는 더 나이를 먹어 독거노인이 되기 전에 정착하라고 하지만, 제겐 자식이 항상 넘쳐나는 걸요.”
‘연기자 이상철’로서의 꿈은 평생 그가 이뤄내야 할 꿈이다. 주인공 한번 해보겠다는 욕망의 발로가 아니라, 그냥 연기가 좋다. “주인공은 1987년 베스트셀러극장 <웨딩드레스> 때 해본 적이 있어요. 주연과 단역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하며,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연기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든든한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 역시 그의 꿈이다. “5년, 10년 뒤에는 연기자 되고 싶지만 형편이 되지 않는 친구들을 위한, 학비는 전액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문화예술학교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또 기회만 된다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장애인들을 초청해 무료 장기 공연도 하고 싶어요.”

후원 및 공연 문의
극단 버섯 카페 : http://cafe.daum.net/soulsang

글 김미영 한겨레 기자

사진제공 극단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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