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작아서 우주만한 가족 미스 리틀 선샤인

 
올리브 가족을 소개합니다. 아빠 리차드, 엄마 세릴, 할아버지 에드윈, 삼촌 프랭크, 오빠 듀웨인 그리고 올리브. 올리브와 고등학생인 듀웨인은 아빠가 다릅니다. 듀웨인은 철학자 니체에 빠져 아홉 달 째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항공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약속입니다. 할아버지는 헤로인을 즐기다가 양로원에서 쫓겨났고 아빠는 ‘성공의 9단계 심리 전략’을 밤이고 낮이고 떠들어 대는 바람에 가족 모두로부터 왕따구요. 엄마는 언제나 바쁜 직장 생활과 주부 노릇을 하느라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에요. 현대를 살아가는 여느 집처럼 올리브의 가족은 바쁘고 정신없고 다들 따로 놀고 있습니다. 아, 삼촌 프랭크. 게이인데 애인에게 실연당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뭐랄까 ‘요양’차 올리브 집에 오늘 왔습니다만 오자마자 요양은 무슨…….
이런 가족의 저녁 식사 장면을 감독은 장장 20여분 동안 한 곳에 조용히 물러나 있거나 때론 움직이는 인물들을 빠르게 ?아 다니며 때론 빠른 편집과 치밀하게 구성한 화면 분할과 구도의 미장센을 통해 올리브 가족의 갈등, 문제, 애증 등을 화면의 표면에서 혹은 그 아래에서 보여줍니다. 독립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감독 데이턴(Dayton)과 페리스(Faris) 부부의 예사롭지 않은 연출 솜씨가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올리브 가족에게 여행을 함께 떠나게 만드네요.




미니버스 여행을 떠나는 가족
우여곡절 끝에 올리브가 꿈꾸던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로 출발. 가는데 1박 2일 걸리는 짧다면 짧은 미니버스 여행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가족 구성원들의 사건이 연달아 줄을 잇고 미니버스도 고장으로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아빠의 저술 사업도 파산으로 끝났음을 알게 되는 뒤숭숭한 여행입니다.
다음날, 고령에도 불구하고 헤로인을 정기적으로 즐기던 할아버지는 세상을 등집니다. 이제 시간은 얼마 없고 허가 없이는 시신이 주 경계를 못 넘어간다는 병원 측의 입장, 그렇다고 허가 받기를 기다리다가는 날 새게 생겼고 그때, 아빠 리차드는 일생일대 가장 과감하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립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야한다. 당신의 두 눈으로 올리브의 장기 자랑을 보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가지 못한다면 우리가 바로 실패자들이다’ 언제나 이론과 논리 안에서 만의 성공·실패의 일장 연설이 이번만큼은 실존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이에 가족은 동의합니다.
할아버지의 시신은 아빠 리차드의 지휘 하에 가족들의 성공적인 분업과 협업을 거쳐 병원에서 탈출하게 되고 가족 모두는 주 경계를 넘어갑니다. 이젠 뭔가 사고가 끝날 때도 됐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감독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화해하고 이해하고 포옹하는 그저 그런 가족 드라마의 형식과 힘을 거부하는 군요. 이번엔 듀웨인이 우연히 자신이 색맹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항공 학교는 다 갔습니다. 듀웨인은 미친 듯이 절규합니다. 위로하러 온 엄마를 향해, 저 멀리 가족을 향해 욕설과 경멸의 말들을 쏟아냅니다. 9개월 동안의 초인적인 침묵을 깨버린 그의 말들은 뜨겁고 너무도 아프게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하늘은 파랗고 새털구름 또한 너무 아름다운데 듀웨인의 절망은 무겁고 어둡습니다. 하늘은 처절하게 파랗고 아름다운데 그 하늘아래서 처절하게도 되는 일이 없는 한 가족은 그 눈부신 풍경을 말없이 지켜볼 뿐입니다. 그 때 올리브가 듀웨인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같이 곁에 앉아 자신의 품으로 다 들어오지도 않는 오빠의 어깨를 감싸 안습니다. 몇 초나 지났을까요. 듀웨인이 일어섭니다. 거짓말처럼. “오케이”하며. 자신의 깊은 절망과 낙담의 그림자를 끌고 일어나 엉덩이의 먼지와 함께 털어버리며 “오케이” 합니다. 니체를 허투루 읽지 않아서 그런가요. 혹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배 다른 오누이 올리브와의 유대 관계가 그를 일으켜 세웠을지 모릅니다. 의젓하게 자신의 말에 대해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고 버스에 올라타는 듀웨인.

 

 

미스 리틀 션사인대회
가까스로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아빠 리차드를 포함해 가족들 눈에 비친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는 올 곳이 아니었습니다. 올리브의 순수한 동심, 그 꿈의 공간이 아닌 어른들의 허접한 대중문화와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이 설익은 철학, 자본의 논리와 맞물려 해괴망측한 모습을 하고 있는 포장이 잘 된 쓰레기봉투 같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하나같이 건전지 없이도 잘 걸어 다니고 잘 웃는 바비 인형같습니다.
모두들 말리지만 엄마 세릴의 결단이 빛이 나는 순간 입니다. 모두 올리브를 보호하고 싶어한다는 건 안다고 하지만 올리브는 올리브고 올리브답게 올리브일 수 있도록 올리브에게 맡기고 도와주자고. 올리브는 의연하고 당당히 무대로 나아가 할아버지와 연습한 춤을 뽐냅니다. 청중은 웅성거립니다. 할아버지가 안무를 담당한 올리브의 춤은 스트립 클럽에 가서야 볼 수 있는 ‘뜨거운’ 동작들이었거든요. 대회 관계자들이 올리브를 끌어 내리려 합니다. 그러나 올리브의 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올리브의 자존심 그리고 가족이 새로 쌓아가는 신뢰와 존경은 이렇게 미완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대회 관계자들의 방해 공작을 뚫고 아빠, 삼촌, 오빠와 엄마가 차례대로 무대로 뛰어 올라 올리브와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허위와 위선으로 겹겹이 쌓인 어린이 미인 선발대회의 의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무대는 그들 가족만의 의미,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와 애정이 실존적으로 표현되는 무대이자 할아버지의 애석한 영혼을 위한 한바탕의 씻김굿의 한 판입니다.
돌아오는 길, 할아버지의 ‘부재’는 트렁크의 빈자리로 ‘현존’합니다. 모두 차를 밀기 시작합니다. 이제 손발이 착착 맞아 적어도 미니버스 밀기대회가 있다면 우승은 올리브 가족의 것이겠습니다. 달리기 시작한 올리브 가족의 미니버스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이제 없어 보입니다. 호텔 주차장의 가로막이 따위가 감히 그들의 차를 멈추게 할리 만무합니다. 해가 서서히 지려 합니다. 눈부시게 푸르고 따가웠던 캘리포니아의 선샤인이 저물어 갑니다. 올리브 가족의 행운과 건강을 빕니다.

 


새로운 가족의 개념
가족이란 단순한 혈연 공동체가 아닙니다. 피의 순수성 운운은 이제 그만 해도 좋겠습니다. 전통적 형이상학이 만들어 놓은 역사적 가상물에 지나지 않는 이상의 공간을 바라보기 보다는 우리의 피가 교환되고 소통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바라보길 권합니다. 가족은 한 지붕 밑에서 살면서(家)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이고(食口) 또 그러한 공간에서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나란히 활을 들어 겨냥하는 사람들의 공동체(族) 입니다.
과거에는 피로 이어지고 설명되는 것이 가족의 개념이었지만 이제 세계의 혼혈성에 대해 진지하고 엄격하게 사유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의 몸이 이미 이것저것 다 흡수하는 혼혈적인 존재이고, 이것저것과 교배되고 국경을 넘나드는 먹거리와 상품이 그렇고 여권 번호 없는 얼굴 없는 자본이 그렇습니다. 단단한 관념과 이데올로기 보다는 새로운 차원의 철학과 고민, 실천이 함께 나아가야 하는 지점에 우리는 있습니다. 한참을 지지고 볶아야 하는 지점에 우리는, 세계인들은 서 있습니다.
올리브 가족이 괜히 지지고 볶아가며 자신들의 여행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을까요? 배 다른 자식들 사이의 관계가 순수한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열등하게 해석되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말을 못하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며느리의 제사상을 드시고 혼혈 손주들의 절을 받으시는 조상님들의 넉넉한 마음을 우리는 느끼고 있지 않나요? 가족도 모두 개별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진 존재들인데 어떻게 그를 낳아준 부모의 뜻대로, 그들의 잣대대로 평가되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잘 안될 수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한동안 있는 힘껏 지지고 볶아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듀웨인의 어깨에 걸쳐진 올리브의 손길 끝에서 듀웨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손길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개체에 대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손길이자 당당한 혼혈의 손길이고 그 섞여짐의 광활한 우주적 가능성입니다.
이번 설날에 맑은 하늘에 날벼락 같은 가족의 기적을 준비하시는 건 어떠신지요.

 

글 김진택 철학과 미학, 영화미학을 공부했다. 현재 동덕여대, 연세대, 인하대 등에서 미학, 철한,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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