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사물놀이 광대 30년,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남기문

코리안 비틀스로 불리는 이들
지난달 14일(목)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충무 아트홀 지하 연습실에 네 명의 남자가 한데 모였다. 장구, 북, 징,꽹과리를 든 이들은 이내 능숙하게 빠른 장단을 쏟아냈다. 30년 전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10평 남짓한 문화공간인 <공간사랑>에서 그랬던 것처럼.김덕수(장구.56), 이광수(쇠.56), 최종실(북.54) 씨 와 작고한 김용배(1953~86년) 씨를 대신해 남기문(징.50) 씨가 다시 뭉친 건 지난 1994년‘국악의 해’공연 이후 14년 만이다. 이들은 이달 6일(목)과 7일(금) 서울 세종 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사물놀이 탄생 30주년 기념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다. 남기문 씨는 작고한김용배 씨 자리를 채워왔다.

“만나니까 행복하네. 오랫동안 같이 활동했지만, 30주년 기념공연을 함께 한다니, 힘도 나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미 래를 내다볼 수 있는 값진 자리잖아.”(최종실)“
그렇지. 바로 우리가 한류스타의 원조, ‘코리안 비틀스’잖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인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심금을 울렸었지.우리의 30주년 발걸음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도록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자고.”(이광수)


‘코리안 비틀스’라는 이광수 씨 말에 순식간 이들의 입가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이들의 연습실은 이렇듯 항상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 세월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추억 과 우정, 소리 등을 함께 나눠온 든든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로의‘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을 터. 일 하면서 마을 축제를 하면서 장례를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즐겼던 풍물이 시위 현장에 등장하자 어느 순간 ‘사라져야 할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여섯 살 무렵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남사당패 활동을 하던 이들은 졸지에‘무대’를 잃었다.

“1960년대 중반이 되면서 농악 공연이 다 없어졌어요. 1970년대들어서는 우리의 전통 문화가 향락/퇴폐 문화로 낙인찍히고, 전 통 문화는 무형 문화재를 통해 보존 쪽으로 갔죠. 마당이 사라지니까 우리의 일터가 없어졌어요. 결국 사물놀이는 그 시대를 살아 남기 위한 투쟁의 산물이었죠.”(김덕수)
사물놀이는 1세대 한류……‘글로벌 드림팀’으로 우뚝 설 것
“얼마 전 KBS2 텔레비전에서 하는 <도전 골든벨>을 보니, ‘사물놀이에 사용되는 네 가지 타악기를 말하라’는 50번째 문제를 맞히지 못해 결국 골든 벨을 울리지 못하더라고요. 그렇게 똑똑한 아이도 사물놀이를 모른다는 것이잖아요. 제가 직접 제작진에 다른 문제를 만들어 제출 했어요.”(김덕수)

지난 1978년,“ 아무데서나 놀이를 못하게 하는 현실을 탈피해 보자”고 나선 패기에 찬 20대 젊은이들이었던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 씨가 사물놀이를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그때는‘사물놀이’라는 단어는 없었다.과사전에‘사물놀이’가, 대형백과사전에‘사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신조어‘사물노리안 (samulnori-an)’이 등록되기에 이른다. 김덕수 씨는“사물놀이는 갑자기생겨난 것이 아니며 그동안 클래식, 재즈와 록, 힙합과 테크노, 월드 뮤직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과 교류하면서 경쟁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그럼에도 국내에서‘사물놀이’에대한 인식 수준은‘고리타분한 국악의 한 갈래’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덕수 씨가 전한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민속학자 심우성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보지도 듣지도못했던 이들의 연주를 우연히 본 뒤‘사물(四物)놀이’라명명했다. 그 이후부터 징, 꽹과리, 북, 장고 등 4개의 민 속 타악기가 어울리는 공연이‘사물놀이’라는 이름으로 안착했고, 더불어 사물놀이는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사랑과 인기를 누렸다.
1982년 미국 달라스에서 열린‘세계타악인대회(PASIC)’에서 사물놀이를 처음 접한 전 세계 사람들도 열광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들은 꽹과리, 징, 장고, 북 을 들고 5대양 6대주를 누빌 수 있었다. <뉴욕타임스>로부터“세계를 뒤흔든 혼의 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1983년 이후 LA, 뉴욕, 도쿄, 베를린 등 전 세계에 사물놀이 캠프가 세워졌다.

1990년 북한에서의 공연은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고 나자, 브리태니커 백물론 여기에는 우연찮은 계기로 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한때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1984년고 김용배 씨가 국립국악원으로 떠나자, 멤버들이 차례로 독립했다. 그나마 혼자 남은 김덕수가 사물놀이 <한울림> 을 창단한 뒤 다양한 퓨전 무대를 선보이며 유명세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명성’과‘인기’만큼이나‘책임감’도 크다.
다섯 살 때인 1957년 충남 조치원 장터 무대에 선 뒤 50년 째 장고채를 잡고 있는 김덕수. 그가 공연 일정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후학 양성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이렇다. 그는 지금껏 한울림예술단을 창단해 국내외를 누비며 신명나는 우리 가락을 알려왔고, 한국예술 종합학교에서는 제자들을 가르치고있다. 그는“‘농악’과‘사물놀이’ 에는 우리 고유의 유전적인 신명이 녹아 있다.”며“사물놀이야 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유 가락이며 클래식, 재즈, 월드 뮤직 등 다른 장르와 경쟁해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한 공연과 후학 양성 외에 피아노의 바이엘 같은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교육 자료를 만드는 일에도 열심이다. 김덕수 씨는“세계 모든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우리가락이 울려 퍼지는 길이 열리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했던 것들이 원형대로 후대까지 전하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세계 문화시장에서 우리의 장단이 주류로 자리 잡기 위해 그 신명을 한층 더 승격시키는 방안들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물놀이 전용 공간 만들어 풍물 세계화 전진기지로!

최근 이들은 사물놀이 세계화를 위한 원대한 포부도 실천하고 있다.
사물놀이기념사업회를 만들고,전용극장과 기념관/교육장/체험관 등이 들어선
종합적인 문화센터를건립하는게 그것이다

 

“전용 사물놀이 공간을 만드는데 있어 경제적인 것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상설 공연장을 마련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공연장, 교육실, 연습실, 박물관 등의 장소를 추가로 마련할 계획입니다”(김덕수)

30년이 지나는 동안 20대 청춘은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얼굴에는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는 주 름살이 생겼고, 흰머리도 희끗희끗 내려앉았다. 시간이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은 조급할 수밖에 없 다. 실력, 내공은 30년 전보다 월등히 나아졌지만, 체력이아무래도 예전 같지 않다. 넷이서 공연으로 사물놀이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가능하면 국내에서 공연을 많이 하려고 해요. 우리의 활동과 공연이 책과 영상으로
기록되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1년에 20회 공연을 해도, 앞으로 10년 동안 200회 밖에 안됩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느닷없이 쓰러질 수도 있는데,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더욱 분발해야죠.”(김덕수)


지난해 데뷔 50주년 공연을 무사히 마친 김덕수 씨는우리 말 보다 먼저 생긴 게 리듬이고, 말보다‘가락’속에 우리의‘정서’가 더 많이 녹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전통’의 계승이라는 목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확 고해지고 있다고 한다.

“공연이 많아져야 무대와 관객이 더 많아지죠. 예전보다 더 자주공연하고, 더 많이 무대에 서고, 더 많이 가르쳐야죠.”(김덕수)

 

“30주년 공연을 준비하면서 원년 멤버의 자부심이랄까. 연습을 더욱 충실히 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아마 저는 북을 잡을 것이고, 지금처럼 후학 양성에 힘쓸것입니다.”(최종실)

 

“우리 문화가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이 사물놀이뿐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 환기를 시켰으면 합니다. 젊은 이들이 우리의 소리를 듣고 자극을 받는 것 말입니다.”(이광수)

 

“30주년 기념 공연은 20세기 한국 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던 사물놀이가 21세기에 다시 한번 발돋움하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겁니다.”(남기문)

세계가 사랑한 거장들, 두드림과 함께한‘감동
이달 6일(목)부터 7일(금) 공연에선 이들이 지금껏 갈고닦은‘원년 멤버’의 내공과 실력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 다. 길잡이를 시작으로 삼도설 장구가락, 삼도농악가락, 판 굿, 명인 개인놀이 등‘사물놀이’오리지널 레퍼토리만 골라 선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30년 동안 이들과 인연을 맺었던 아티스트와 함께 꾸미는 무대도 마련돼 있다. 30년 전 이들의 공연 모습을 담은 영상도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사물놀이 글로벌 드림팀’으로 뭉친 네 사람은 이어 국내 7~8개 도시를 찾아가는 지방 순회 공연도 한다. 내년 까지 미국과 유럽등을 도는 순회공연도 예정돼 있다.

 

글/김미영 한겨레 기자

사진/황석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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