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비너스와의연애, 자기조형의기술

늙어가는 연습을 하는 노인
모리스는 왕년에 잘 나가던 배우였다. 전립선 초기 암이라 수술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그는 즐겁고, 인생의 쾌락이 뭔지 안다. 안다고 믿고 있다. 외롭지도 않다.
그리고 아직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다. 죽으면 신문에 부고가 날 것이다. 크게 한 면 정도는 장식할배우다. 역시 잘 나갔던 배우 친구들도 몇 있다. 조용히 늙어가는 연습중인 그는 마을 카 페에 모여 약 챙겨 먹는 것이 일과다. 모리스의 절친한 친구 이안에게 증손녀가 온다고 이안은 들떠있다. 예쁘고 순종적이고 현명한 증손녀가 자신을 돌볼 것이며 자신이 증손녀 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죽는 소리를 하는 증손녀제시는 이안이 기다리던 아이가 아니었다. 친절하지도 않고 음식도 못한다. 이안에게 제 시는 천박하고 역겹고 교양 없는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모리스에게는 다르다. 제시는 젊고 매력적인 아이다. 아직도 모리스는 젊은 여자들의 몸을 감상하는 용기와 배짱이 있다.

제시는 육감적이고 아름답다.제시는 자신의 멀고 먼 삼촌 할아버지를 존경할 이유가 없다. 이안 혼자 들떠 있었던 것이다. 이안은 제 맘대로 제시를 자신의 요리사로 가정부로 간병인으로 생각한 것이다. 편 견과 과신이 낳은 일이다. 혼자 들떠 있던 것, 죽는 소리를 해대는 것, 그의 편견이 낳은일들이다. 동정의 여지가 없다. 제시가 잘했다는게 아니다. 이안만 동정할 일이 아니다.
모리스는 제시를‘여자’로 느끼고 있다. 제시가 그를 기쁘게 하고 들뜨게 한다. 모리스도 이안처럼 그녀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게 있다. 세계에 대해 사랑에 대해 자신만의 안목 을 제시가 가졌으면 한다. 하지만 모리스는 연애를 택한다. 연애를 통해 그 일을 실천하는것이 더 즐겁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만 보면 모리스가 기분이 좋고 기쁨을 느낀다.

그의 인생 내내 그랬다. 아내 발레리와 자식이 있지만 그의 인생 내내 자신의 쾌락이 우선이었고 과감히 실천했다. 젊은 제시의 몸 구석구석이 기쁨이다. 이제 70이 갓 넘은 나이 에 노인들이 송장 시늉을 할 이유가 없다. 누구든 사랑할 권리가 있다. 모리스는 용감하게제시에게 작업을 건다.
제시도 이곳으로 오고 싶어 온건 아니다. 좋아했던 청년이 마을에 있었다. 그가 잘 해주었고 좋은 시절을 보냈다. 아이를 갖게 되었지만 그가 떠났다. 혼자 남은 제시는 두렵고 무서웠다. 그녀의 엄마가 낙태를 종용했다. 아이를 잃고 많이 힘들었지만 다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다시 세상과 화해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이곳에 왔다. 제시에겐 이 안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던 것이다.
제시는 이안을 돌보며 그의 경륜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시작 할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질 못했다. 이안은 제시의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끓어오름을 그 리고 동시에 그녀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끝없는 절망을 보려하지 않았다. 대신 모리스가 그걸 안다. 모리스의 작업이 추하지 않다면 그래서이다. 물론 연애에서는 자신의 욕망 에 충실하게 답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상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해야 한다.
서투른 욕망을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대화가 만드는 교감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Eommunication)은 어원적으로 볼 때‘commun(마을, 공동체 共同體)’, 즉‘공동체 되기’인 것이다. 그래서 어 렵다. 두 개체가 한 몸이 되어야 하니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하다고 연애가 가능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소통(梳通) 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개체의 독립성과 개별성이 인정되고 나서 어는 정도의 성긴 거리를 인정하고 나서야 서로가 새롭게 한 몸 이 되려하는 욕망과 그 상태가 소통하는 것이다. 우리 개체들이 한 몸이 되려한다면 여기서한 몸은 두 개체가 양적인 포갬을 거쳐 발견하는 합체(蛤體)를 넘어 간다. 두 개체가 새롭게 생성시키는 존재다. 연애 때문에 사람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이 새로운몸을 서로가 얻어 탄생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향한 있는 그대로의 이해와 존경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른바‘작업’이라는 것이 아주 나쁜 차원에서 머무른다면 연애를 시작하는 일이 가볍고 서투른 욕망들이 부딪히는 파열음을 만들어내 는 일에 그치는 순간에 그것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제시와의 소통을 꿈꾼다. 색정이 요동치는 늙은이의 주책없는 망동이라 폄하하기 어렵다. 그러나 모리스는 쾌락과 함께 가꾸는 소통의 영역을 안다. 죽음을 앞 둔 배우의 인생에서 나온 것이다. 그 앞에 절망 속에 웅크린 제시의 아픈 영혼이 있다. 모리스와 제시 그리고 감독로저 미셀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을 보여 준다. 속세에서구르고 굴러 흉측한 모습만 남아있는‘원조교재’라는 오해와 편견에 과감히 맞서 싸우는 중에 자유를 얻은 듯도 해 보인다. 싸우려는 의지도 잊은 듯 하다. 제시의 역할이 있는 듯 없는 듯 빛이 난다. 제시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던 간에70이 넘은 노인 모리스와 엮이는 자신이 싫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진정한 관심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리스의 인간적 향기를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도 힘들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저항을한다. 저항하지 않으면 또 다시 상처를 받을까, 버틸 수 있을 때 까지 버티려 노력 한다. 그녀덕분에 영화마저도 끝까지 탄탄한 긴장을 이어 간다. 쉬운 연애의 끝을 그녀는 알고 있다.
사랑과 소통 그리고 자유
모리스와 제시 그리고 감독 로저 미셀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을 보여 준다. 속세에서 구르고 굴러 흉측한 모습만 남아있는‘원조교재’라는 오해와 편견에 과감히 맞서 싸우는 중에 자유를 얻은 듯도 해 보인다.
싸우려는 의지도 잊은 듯 하다. 제시의 역할이 있는 듯 없는 듯 빛이 난다.

 

여자들에게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있다면 남자들에겐 키다리 아저씨 콤플렉스가 있다.‘ 내가 너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누구도 너에게 해줄 수 없고 경험하고느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다. 꼼짝 없이 잡혀 있으면 콤플렉스가 되지만다스리고 극복하면‘자유의 마지막 문’이 되는 것이 콤플렉스다. 원조교제에는 극복해야할 콤플렉스가 없다. 소통 없는 합체를 향한 욕망과 물신적 계약 성사의 성과만 있다. 다만털어내야 할 것이 있다. 어느 누구도 연애할 권리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자신의 욕망을 검사 받아야 할 의무도 없다. 모리스를 나무라는 이안의 모습이 처연한 이유다.

 

니체는 체계가 아닌 문제를 사유하는 철학자에만 그치지 않았다. 개념이 아닌 실존적 실천의 힘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은 윤리, 미학적으로 자기 자신을 조형해야 하는 존재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다듬어 나가야한다. 이 윤리, 미학적 조형의 역정에 이미 정해진선과 악의 경계는 없다. 성과 속의 경계도 없다. 잘 나누어지고 정리된 개념과 도덕의 지도위에서 이정표를 정하는 일은 더 이상 윤리적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니다. 모리스와 제시의 연애는 죽음을 앞 둔 배우의 마지막 삶의 풍경이다. 이미 자신 몸속에 있던 아이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배운 젊은 여인의 흔들리는 시선이다.

그들은 쉴 틈이 없다. 부단히 자신들의 실존의 영역에서 자신들을 조형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모리스가 죽은 후 제시는 누드 모델로 화가들 앞에서 포즈를 잡는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의 모습과 만난다. 빛나는 육체다. 이제 제시는 모리스가 그녀에게알려주고 싶었던 것을 이해한 것일까? 에로스와 언재나 동행하지만 언제나 에로스로 함께부단히 자신에 대한 사랑과 소통 그리고 자유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연마하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빛나기 위해 이제 니체를 읽어도 될 듯하다.

‘나의 열렬한 창조적 의지는 항상 새롭게 나를 인간에게 몰고 간다.’이것은 그렇게 망치로 돌을 쪼개야 한다. 아! 그대들 인간이여, 내가 보기에 돌 속에는 하나의 상이 내 여러 상들 중 하나의 상이 잠들고 있다. 아! 그것이 가장 단단하고 보기 흉한 돌 속에서 잠을 자야만하다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中에서

 

글/자료사진 김진택 철학과 미학, 영화미학을 공부했다. 현재 동덕여대, 연세대 등에서 미학, 철학,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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