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우토로 10년, 무관심과 외면 속 영화 <아름다운 게토> 만든 김재범 감독

비극적이거나 비참하지 않은 조선인들의 아름다운 일상
9년째 오로지 한 작품을 만들어온 영화감독이 있다. 남의 손을 빌어 제작비를 충당하는 것도 모자라 자비를 털다 못해 빚까지 졌고, 지난달 말 마지막 촬영을 위해 일본으로 날아갔다. 1999년 8월부터 우토로 마을을 담은 영화 <아름다운 게토>를 제작 중인 김재범(42세) 감독 이야기다.
일본 교토부 우토로 51번지. 이 마을은 1941년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제에 강제 징집 된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일본이 패망한 뒤 무관심 속에 방치됐지만, 200여 재일 동포들은 이곳에서 60여 년 동안 삶의 터전을 일궈왔다. 우토로는 오랫동안 주인 없는 땅으로 버려져 있었다. 비가 오면 물에 잠기고 하수도 처리가 되지 않아 쓰레기더미 같았던 이곳을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땅 인양 손수 갈고 닦았다. 하지만 주민들도 모르게 우토로의 토지소유권이 닛산자동차 계열에서 주민회 회장을 거쳐 서일본식산으로 전매됐다. 서일본 식산은 우토로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강제 퇴거 명령을 내렸다. 주민들은 졸지에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주민들은 법원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재판 결과는‘패소’였다. 재판에서 진 주민들은 떠나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다행히 지난 2005년부터 정부와 시민사회단체가 땅매입자금을 지원하기로 해 급한 불은 끈 상태지만, 21세기‘게토(ghetto)’인 우토로의 처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게토’는 중세 이후 유럽의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 지역을 말한다.
“우토로가 마치 게토 같았어요. 일본인과 격리하기 위해 만든 조선인 거주 지역. 그런데 전 그 곳에서 비참하고 비극적인 게토가 아니라 아름다운 조선인들의 삶을 봤어요. 철거의 불안감이 상존해 있지만, 함께 고기와 술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어요.”
변변한 교육을 받거나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우토로 조선인들의 처지는 열악할 수 밖에 없다. 결혼과 죽음 말고는 가난한 우토로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영화 제목을 <아름다운 게토>라 지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아름다움’에반 해 지금껏 우토로 주민의 삶을 영상으로 옮겼다.
영화에는 일본에 강제 징집된 1세대 노동자부터 2·3·4세대들의 각기 다른 삶과 처지, 우토로 주민을 돕는 일본인과 한국인 그리고 이들이 서일본식산에 대항해 투쟁하던 과정과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와 한국 정부의 도움을 얻기까지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1993년 <PD수첩> 통해‘우토로’사연 알려져
우토로의 사연은 지난 1993년 <PD수첩>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많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우토로에 관심을 보였고, 여러 차례 일본을 오가며 촬영을 했다. 그렇지만 제작 일정이 연장되고, 제작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하나둘씩 포기하는 감독이 생겨났다. 그에 비하면 1999년 첫 촬영을 시작한 김 감독은 후발주자인 셈이다. 다른 감독들이 제작 기간과 제작비에 겁을 먹고 쉽게 포기한 반면, 그는 한결 같은 시선으로 우토로를 지켜봤다.
“토지 문제가 걸린 민사소송이었지만 끝을 보고 싶었어요. 사실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도 못했죠. 소송이 마을 전체에 대한 민사재판이 아니라 몇 가구씩 나눠 진행되고,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가니까 길어졌어요. ‘우토로가 철거되어도 정부가 이처럼 무관심할까’호기심도 있었고요. 작년 하반기 정부 지원 발표가 나오고 나서야 마무리해도 되겠구나 싶었죠.”
 
우토로는 오랫동안 주인 없는 땅으로 버려져 있었다. 비가 오면 물에 잠기고 하수도 처리 가 되지 않아 쓰레기더미 같았던 이곳을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땅 인양 손수 갈고 닦았다.
하지만 주민들도 모르게 우토로의 토지소유권이 닛산자동차 계열에서 주민회 회장을 거 쳐 서일본식산으로 전매됐다. 서일본식산은 우토로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강제 퇴거 명령을 내렸다. 주민들은 졸지에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30억 원 지원이 결정됐다. 우토로 주민으로서는 일단 한숨을 돌린 셈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단 1원도 건너가지 않았다. 그는“8·15를 전후에서 지원금이 건너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돈이 지원되면 우토로 전체 토지의 절반가량인 1만 500여㎡ (3,200평) 가량 매입이 가능해진다.
<아름다운 게토>는 지난달 말 마지막 촬영을 마쳤다. 필름에는 10년 동안 바뀐 마을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이 주로 담겼다. “소학교 5학년에서 대학생이 된 소녀, 고등학생에서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여성, 돌아가신 분들의 자취를 주로 찾았습니다.”
 
빠르면 8월, 늦어도 9월에 개봉
“극장 스크린은 어차피 못 잡을 테고 독립영화 전용관이나 나눔의 집, 일본 우토로 마을에서 상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11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0주년 때 그곳에서 상영할 계획도 하고 있고요.”
10년 동안 우토로를 담았기에 기억에 남는 것도 많고 아쉬운 점도 있다. 어쩌다 보니, 때를 잡아 촬영을 한 게 전부 여름철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여전히 하수시설이 제대로 안 돼 벌레도 많을 뿐 아니라 덥고 습한데 그 때문에 주민들에게 민폐를 많이 끼쳤다. 형편이 좋지 않은 주민들 집을 전전하며 먹고 자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 역시 아쉽다.
포기하고 싶었던 때는 없었을까.“ 첫째, 마누라 바가지 긁을 때. 둘째, 영화판 일을 하면 서도 돈이벌고 싶을 때.”이‘가난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생계는 서울 대학로에서 주점(< 아 몹쓸 그립은 사람>)을 운영하는 부인이 주로 담당한다.“ 언제 끝나느냐”고 닦달한 적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큰 재정적·정신적 후원자는 언제나 부인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다큐멘터리라도 1~2만 명이 들어 대박이 터지는 작품을 만들고 싶을 때가 있어요.(웃음) <우리학교>처럼 대중적이거나 오밀조밀 재밌지는 않아도 영화를 통해 우토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영화에 관심
 
김 감독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접한 8㎜ 영화 워크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필이면 80년대 학번인지라, 꽂힌 게 돈이 되는‘상업영화’가‘다큐멘터리 영화’다. 이정국 감독의 <두 여자 이야기>(1993년 작) 연출부로 영화판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재밌고 아름다운 영화보다는 현실을 담은 영화를 하고 싶은 욕구를 잠재울 수없었다. 극영화 시나리오를 몇 편 써 보기도 했지만 그쪽 방면에는 재능도 흥미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감독 데뷔작은 조선인에서 일본인으로, 해방 뒤에는 인도네시아 인으로 살아간 고 허영 감독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1997년 작)이다. 그 해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초창기 아시아 영화 특별전’에 상영됐고, 일본 국제기금 특별전과 인도 뭄바이 단편·다큐멘터리 영화제, 일본 야마가타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1998년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고 이태영 박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2000년에는 인권
변호사로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던 고 조영래 변호사의 10주기 추모영화 <진실의 불꽃>을 만들기도 했다. 15년 영화계 경력치고는 작품이 너무 적다.
“앞으로도 다큐멘터리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게 제 한계이구요. 한번마음에 둔 작품이 있으면, 그 작품이 끝날 때까지 다른 작품을 손대지 않아요.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하다가 그 생각이 확고해지면 작업에 들어가는데, 그 시간이 오래 걸리는편이죠.”
 
고 허영 감독 후속작업 진행할 계획
<아름다운 게토>가 끝나는 대로, 그는 허영 감독에 대한 후속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작업 시작 일정과 작업 기간은 역시나 미정. 그가 그토록 허영 감독에 목매는 이유는 그의‘이중적’인 삶 때문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 영화를 만들어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던 매국노였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독립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후속 작품에는 허영 감독이 일본과 인도네시아에서 낳은 두 딸 속에 남아 있는 허 감독의 발자취를 찾는 과정을 담을 생각이다.
 
다음 카페‘아름다운 게토(http://cafe. daum.net/beautifulghetto)’
우토로 다큐 제작 후원 : 김재범(우토로다큐) 국민 / 031601-04-149182
 
글 김미영 한겨레신문 기자
사진 황석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