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민중가요의 관습을 깬 록 밴드 천지인

대학 노래패 시절 암묵적인 몇 가지의 금기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될 수 있으면 대중가요를 부르지 않는 다든지 (예외가 있다면 술자리의 뽕짝만이 너그러웠다) 통기타와 북 이외의 악기를 쓰는 일도 그러했다. 지금 생각하면 꼭 그래야 했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왠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일이다. 민중가요는 이래야 된다는 일종의 관습법이 있던 시절이랄까. 민중가요가 대중가요와 다른 대학생들의 독자적인 노래문화로 자리 잡는 70년대 후반 이후, 대중가요를 극복하는 대안문화로, 의식적인 노래운동으로 발전하는 80년대에 이러한 류의 관습은 꽤나 견고했다.
최초의 사회노래모임이었던 ‘새벽’이 공연에서 신디사이저를 썼던 문제로 대담이 마련되는가 하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대중가요의 편곡 관행을 받아들이며 드럼과 베이스 기타를 도입하여 밴드 형태의 반주팀을 꾸린 것 역시 노래패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았다. 하물며 록 밴드라면 말해 무엇하랴. 80년대 내내 록 음악을 비롯한 대중음악은 ‘지배자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상업적이고 향락적인 대중문화’로 간주되었고 ‘우리 것’을 추구하던 대학 문화의 담당자들에겐 극복해야 할 대상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이후 쏟아진 대중음악 담론에서 ‘록 정신’ 이나 ‘록은 저항이다’라는 이야기가 제시되고 이것이 서서히 받아들여지면서 이런 편협한 인식은 바뀌고 있었다. 허나 이렇게 인식이 바뀌었다고 해서 한번 만들어진 관습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이런 관습이 살아있던 때 이를 깨트리며 등장한 팀이 바로 천지인이다.

민중가요의 록 음악 수용 이끌어

록 밴드 천지인이 던진 충격파는 작지 않았다. 1993년 11월 ‘민중음악의 신세대’ 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1집 음반에서 최초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를 선보이면서 그때까지의 민중가요와 확실히 다른 작품경향을 보여주었다. ‘새벽’‘노래를 찾는 사람들’ ‘꽃다지’ 같은 노래팀이 주류를 차지했던 당시 민중가요를 생각하면 이들의 모습은 커다란 파격이었다. 노동자 노래단 출신의 작곡가로, 이미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같은 노래를 만들었던 김성민을 비롯한 천지인 멤버들은 일견 어려워 보이는 이 작업을 성공리에 해냈다. 물론 시에 많은 빚을 지고 있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을 오롯이 그려낸 노랫말에 서정적인 멜로디가 잘 결합된 <청계천 8가>나, 처음 ‘이름 없는 영웅들’ 이라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발표되었지만 행진곡과 발라드 사이에서 조금은 어정쩡한 듯 보였던 <열사가 전사에게>를 록 스타일에 어울리게 바꾸어 냈다.


이 새로운 시도는 초반의 뜨악한 반응과 과연 록 음악의 올바른 수용인가 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당시 록을 적극 수용하여 <자유> 같이 빼어난 성과를 낸 안치환과 더불어 초기 록 음악 수용을 선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좀 더 강렬한 사운드를 보여준 ‘메이데이’ 같은 밴드가 생겨나고 ‘조국과 청춘’이나 ‘꽃다지’ 같은 노래팀에서도 이
    러한 경향을 받아들이자, 90년대 중·후반 민중가요의 록 음악 수용을 주도하는 기폭제로 성과를 인정받게 되었다.
물론 첫 음반을 음악적 측면에서만 보면 포크나 팝, 발라드에 가까운 음악에 일렉트릭기타의 디스토션 사운드를 가볍게 얹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연주나 사운드도 완벽한 짜임새가 있다고 보기는 힘

들겠지만 록 음악과 민중가요가 실제로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다시 보는 첫 시작의 새로움


천지인은 이후 보컬과 멤버들의 교체로 쉽사리 다음 작업을 하지 못하다가 4년이 지난 1997년 포크, 팝의 영향에서 좀 더 벗어난 2집 <離集>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얼터너티브와 헤비메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희망을 위하여> 같은 노래로 1집에서 천지인이 보여주었던 서정적인 모습도 유지하려 했고, 무엇보다 연주와 가창 그리고 사운드 면에서 큰 진전을 보여주었다. 2001년 새로운 멤버들로 발표된 3집 <외눈박이>에서는 2집의 무거운 사운드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조금 편안한 음악으로 변신을 꾀했으며, 내용에서도 사회적인 이야기와 개인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조화시키려 했다. 그리고 활동하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가져왔던 외국인 노동자에게 배운 필리핀의 민중가요를 싣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활동을 하며 많은 음악인들이 천지인을 거쳐 왔다. 창립멤버는 아니나 초기부터 베이스를 맡아왔고 유정고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수많은 공연과 음반에서 베이스 세션을 했던 박우진과 퓨전 국악밴드 맥을 거쳐 역시 드럼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장석원, 건반 주자로 이스크라, 윤도현 밴드를 거쳐 지금은 강산애와 작업하고 있는 고경천, 그리고 손현숙, 김가영 같은 가수들도 천지인을 거쳐 온 음악인들이다.
멤버의 변화가 바로 팀 색깔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밴드라는 점에서, 그리고 여전히 밴드로 활동하기 힘든 민중가요계의 상황을 볼 때 지금까지 천지인이 내 온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하나의 팀이 10년 넘게 자리를 지켜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밴드는 연주와 사운드 그리고 메시지의 조화를 더 필요로 하며 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보다 안정적으로 팀 구성원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3집 <외눈박이> 이후 구축된 천지인의 멤버들이 지금까지 3년 넘게 변함없이 팀워크를 다져가고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재 베스트이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신보 3.5 집을 준비하고 있는 천지인이 오랜 관습을 깨트리며 등장했던 첫 시작의 새로움을 다시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10년의 관록과 그것에 어울리는 새로움을 함께 볼 수 있는 기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안석희>

유인혁이라는 이름으로
<바위처럼><우산><노래만큼 좋은세상>
<이 길의 전부> 등의 노래를 만들었다.
희망의 노래 꽃다지 음악감독을 지냈고
2000년부터는 유정고밴드에서 활동했다.
음악작업을 하는 틈틈이 노래에 대한 글을 연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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