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희망새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했다. 그 말씀은 분명 시였으며 이야기였으며 노래였으며 춤이었을 것이다. 또한 비였으며 바람이었으며 햇살이었으며 눈보라였을 것이다. 상상해보라. 머언 고대의 사내들과 여인들이 풍성한 수확을 놓고 난장으로 얽혀 기쁨을 나누던 자리, 그득그득 술잔은 넘치고 왁자지껄 이야기꽃 피어나는 순간. 말씀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노래가 되고 노래는 춤이 되고 땀이 되고 하늘이 되는 순간, 살아 있는 땅 위의 모든 것들은 한 몸으로 숨쉬는 대동의 맘판이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며 개인을 집단으로 옹골차게 묶어주었을 노래의 힘은 오늘 우리가 광장에서 함께 노래하는 순간 다시 살아난다.


 

독창적인 ‘힘’으로 대중 압도

홀로 불러도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불러야만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노래로 크게 노래를 나눈다면 노래극단 희망새의 노래는 단연코 후자일 것이다. 민중가요가 모두 함성처럼 울려날 때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어서 진지한 고뇌와 성찰의 결을 보여주는 서정적인 노래들은 홀로 기타를 튕기며 불러도 충분히 그 빛을 드러내지만 함께 팔을 흔들며 부를 때 호흡이 살아나는 노래들은 거리의 찬바람 속에서 비로소 질주하는 푸른 말 같은 생명력을 획득한다. 그러나 희망새의 노래는 소위 ‘투쟁가’와도 분명 또 결이 다르다. 희망새의 노래 역시 거리에서 불려질 때 제 맛을 내지만 그 맛은 군가풍의 행진곡이 선사하는 선명한 대치의 정점에서 느껴지는 혼연일체의 충만한 결의감이 아니다. 희망새의 노래는 운집한 군중들 앞에서 불려지지만 희망새의 노래가 불려지는 순간 희망새는 문득 만인의 노래를 대신하는 무당처럼 우뚝 선채 날아오른다. 희망새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희망새의 노래는 멀리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것처럼 따라 부르기보다는 그 속으로 섞여 들어가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게 하는 마력이 있다.

  희망새가 처음 서울 무대에 등장했던 90년대 초, 무대 아래 모든 이들은 경악했다. 집중된 밤의 조명을 받으며 하늘거리는 색색의 한복을 입고 등장했던 그들은 단 한 곡의 노래만으로도 그곳의 모든 이들을 충격과 광분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그것은 연극적 훈련이 돋보이는 분장과 무대 연출의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희망새의 노래가 가진 독특함 때문이었다.
희망새는 달랐다. 희망새의 노래는 그 전까지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충격이었다.


꾀꼬리가 울고 옥구슬이 은쟁반을 굴러가는 듯한 묘한 바이브레이션을 가진 여성 가수의 목소리가 굵직한 남성 가수의 목소리와 섞여 앰프로 증폭되어 울릴 때 그 곳은 집회장이 아니라 굿판이 되었다. 거대한 만신의 노래 소리를 따라 울고 웃는 사람들처럼 집회장의 수많은 사람들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어 버렸던 희망새의 노래. 그것은 지금까지도 소위 주체창법이라는 북한식의 발성을 흉내 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 독특한 창법 때문이었다. 당시 힘 있고 정직한 보컬로 승부했던 민중가요의 정석적 음악어법과는 달리 북한식의 창법과 흡사한 기교 많은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주술을 거는 듯한 힘이 있었다. 게다가 스케일이 커 웅장한 느낌을 주는 편곡방식도 희망새 노래의 주술적 측면을 더욱 극대화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의 민중가요와는 완전히 다른 아우라로 다가온 희망새의 노래들은 특히 반미·통일운동 관련 집회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다.

 

본격적인 통일노래 선보여

1993년 전노문협 영남권 노래창작단으로 활동을 시작한 희망새는 1집에서 ‘희망새’, ‘아침은 빛나라’등의 노래를 전국에 강타시키며 영남권을 기본으로 전국적인 단위의 노래운동을 진행한다. 그리고 초기 노래패로 활동을 시작했던 희망새는 1994년 민족가극을 준비하는 노래극단 희망새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분출하는 통일운동 열기의 한복판에 희망새의 노래가 있음을 간파했던 것일까? 1994년 희망새는 첫 작품 ‘아침은 빛나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의 칼날에 단원 전부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게 된다. 하지만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새는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향한 희망의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부산 지역에서 전국을 넘나들며 노래를 통해 변혁운동에 복무하고자 하는 기치를 분명히 한 희망새는 민족자주화운동, 조국통일운동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 왔다. 모진 탄압의 세월을 다 이기고 이제 총 7장의 음반을 낸 희망새는 안정된 체계를 구축하며 민중가요계의 원로 노래패(?)로서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특히 노래극단이라는 자기 규정을 지켜나가기 위해 2001년 음악극 ‘지리산에 가고 싶다’와 2002년 음악극 ‘반딧불이야’를 내놓으며 민족가극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상업적 마인드로 제작되는 대형뮤지컬이 아니라 이 땅의 현실을 민족적 예술성으로 담아내려는 희망새의 작품은 끈질긴 집념의 산물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마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것도 주류대중음악이 아니라 반 주류의 기치를 분명히 한 민중음악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꽃다지, 소리타래, 천지인 등과 함께 10년을 넘긴 몇 안 되는 민중가요 팀으로서 소리타래, 좋은 친구들 등과 함께 영남 지방을 책임지고 있는 노래패로서 희망새의 존재감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희망새가 펼쳐온 음악활동이 음악과 실천의 영역에서 분명한 희망새만의 영역을 창출해냈기 때문이며 또한 10년의 활동을 민족가극으로 새롭게 예비하고 있는 치열성에서도 담보된다.
김민기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미국 브로드웨이의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범벅이 된 뮤지컬이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희망새의 작품이 지금 이 곳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참다운 세상의 대안이기를 바라는 것이 단지 우리들뿐이겠는가? 90년대 초 신선한 충격으로 우리 곁을 찾았던 희망새라면 완숙한 민족가극을 통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줄 날이 분명 찾아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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