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장차현실의 꿈 -‘여성’과‘장애’를 주제로 한 장차현실의 만화

장차현실의 꿈
‘여성’과‘장애’를 주제로 한 장차현실의 만화

 

글 유성문 rotacklycos.co.kr

 


#타령3
- 은혜를 출산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담당 소아과 선생님이….
“애가 문제가 있구만요.” “넷?!”
- “저런 애는 버려도 데려가는 사람도 없다구….”
- 끝없는 구덩이 속으로 빨려가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은 왜 이리 비참하냐!!”
- 왠지 사회 속에 격리되어 있는 듯한 장애인들….
-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들에겐 먼 이야기처럼 생각했었다.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사는 것만도 다행이겠구만.”
- 그런데 그 ‘문제아’가 내 품에 왔다.
“우짜면 좋냐!!”
(-안절-부절-허둥-지둥-)
- 내 품에서 아이는 자꾸 자랐다.
“어-어-엄-마” “흑-. 근데 되게 귀엽다.”
- 이젠 그 문제아가 없인 하루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아가~. 여보~. 자기~.”
- “으-그- 징그러.” (찰싹) “오마낫!”
- 소중한 은혜야, 네가 있어 정말 고맙구나.


은혜는 다운증후군이란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장차현실(47)에게 그 현실은 마치 놀이공원에서 청룡열차를 타다가 정상부에서 앞으로 떨어지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철커덩’하고 뒤로 떨어지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날부터 그의 ‘예견되었던 미래’는 모조리 바뀐다. 장애 아이와 함께 살아가야 할 미래는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한 미래였다. 그러나 모녀는 기꺼이 세상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그것은 난생 처음 겪는 전쟁터를 향한 ‘출정’이기도 했다.
장차현실은 새로 닥친 현실에서 세상을 다시 배운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의 장애로 보지 않고, ‘다르다’는 것을 단지 다를 뿐이라고 여기지 않는 세상과, 그 세상에서 자기도 엄연한 일원이었음을 깨닫는다. 뒤늦게 깨달은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힘들어 할 때마다 오히려 아이는 엄마를 가르친다. ‘장애가 있는 멀쩡한 딸’이 ‘장애가 없는 이상한 엄마’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에게는 아무런 선입견도 편견도 없기 때문이다. 장애를 불편하게만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장애 때문이 아니라 그 불편한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냥!
- 엄마는 힘들다.
- 엄마는 그 힘듦을 남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자신의 문제라 생각하기도 한다.
“내 탓이야.”
-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다 큰 것은 아니었다.
“이그, 언제 철 나냐!!”
- 지친 엄마에겐 여러 가지 모습의 외로움과 슬픔이 생겨났다 사라지곤 한다.
“이 힘겨운 반복은 언제쯤 끝날까?”
- 아이가 엄마를 걱정한다.
“엄마!”
“난 엄마가 좋아.”
“왜나면….”
“그냥.”
- 이젠 아이가 엄마를 키운다.


“그즈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잡지사 디자이너로, 또 북 디자인, 출판물 삽화며 일러스트까지 돈 되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해왔어요. 돈벌이로 치면 그런 일들이 훨씬 나았지만, 어쩌다 스스로 세상을 향해 뭔가 말해야 할 일들이 생겨버린 것이지요. 내가 겪게 된 새로운 세상과, 그 경험들을 통한 깨달음을 고스란히 세상에 돌려주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어요.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출퇴근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아이의 수발도 들면서 벌이도 하기에는 출퇴근 없이 할 수 있는 만화일이 적격이었지요. 동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선에 대해선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고요.”
장차현실의 만화는 ‘여성’과 ‘장애’를 주된 소재로 한다. 그것은 순전히 현실에서 비롯한다. 그는 다운증후군 장애아의 엄마이면서 결혼 8년 만에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혼은 아이 아빠와 성격이나 삶의 방식이 너무 달라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딸에게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찌들어 사는 엄마의 모습보다는 비록 혼자지만 당당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 다른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하는 고된 과정이기도 했다.
“1997년부터 페미니즘 잡지 <이프>에 ‘색녀열전’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어요. 조선시대 민담을 기초로 소위 ‘밝히는 여자’들을 다룬 ‘색녀열전’은 단순히 ‘야한 만화’만은 아닙니다. ‘성’을 소재로 여성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것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여성이 성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마치 미덕처럼 여겨왔어요. 심지어 성에 대한 무지가 곧 도덕적인 기준인 양 해왔지요. 그런 모순에 대한 항변으로 만화를 시작했고, 그게 바로 내가 처한 현실이기도 했어요.
만화를 연재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과 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제껏 우리가 우리의 몸을 너무도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지요. ‘자신의 몸을 알자, 그것도 제대로 알자’는 것이 제가 구현하고자 했던 메시지였고, 그럼으로써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고, 솔직해질 때 비로소 행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냥 ‘색녀(色女)열전’이 아니라 ‘색녀(索女)열전’이었던 셈이지요. 물론 나 자신만을 위한 몸, 나 자신만을 위한 성이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존재로서 몸과 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요.”

그와 함께 2003년에는 자신과 딸 은혜의 삶을 다룬 그동안의 만화들을 모아 를 펴내기도 했다. 그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1998년 무렵 서울을 떠나 경기도 덕소로 이사를 했다. 서울의 큰 학교에서는 도저히 은혜가 적응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시골의 작은 학교로 보내기 위해 둘이 이사를 했던 것이었지만, 거기서도 버티지 못하고 양수리의 더 작은 학교로 옮겨야 했다. 그마저도 적응이 어렵자 홈스쿨링이다 대안학교다 숱한 시행착오도 겪었다.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그들의 잘못이 아니기는 했지만. 게다가 독신모의 가장으로서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 아무리 삶에 단련되었다고 자신을 했지만 슬며시 치미는 외로움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엄마, 배고파
- 늘 마감에 쫓겨 바쁘고
“돈 벌어야지.”
- 아이 챙기느라 바쁘고
“좋은 엄마 되어야지.”
- 늘 무언가에 쫏기는 사람처럼 안달을 내며 산다.
- 그러다 한숨을 돌릴라 치면…
“가을이네…. 왜 이리 허하고 기운이 빠지냐.”
- 스물거리며 치미는 외로움…
“헉! 구멍.”
- 내 인생이 슬프게 느껴진다.
“흑…흑, 난 뭐야? 뭐냔 말이야.”
- 그런데…, 이 모든 괴로움을 무너뜨리는 게 있다.
“엄마, 배고파.”
- 어떤 외로움도 이것을 이길 수가 없다.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운명이었을까. 그런 삶 속에 한 젊은 남자가 끼어들었다.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영화를 찍는다는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장차현실보다 일곱 살 아래였다. 은혜의 모습을 찍으면서 둘은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결국 한 집에 같이 살게 되면서 늦둥이 아이까지 갖게 되었다. 그때 영화감독 서동일이 만든 독립영화 ‘핑크 팰리스’는 2005년 1월 완성되어 그해 8월 제주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둘 사이의 아들 은백이 세 살이 되던 해 “오빠는 이제 다 컸으니까 아빠해도 돼”라는 은혜의 승인(?)을 얻어 결혼식 대신 가족식을 올렸다.

나는 나의 딸 은혜와 나의 아들 은백이를 사랑합니다. 나는 나에게 소중한 딸과 아들을 선물해 준 나의 신부 장현실을 사랑합니다. 나와 장현실이 이루는 가정이 비록 장애와 나이 차이에서 오는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지만, 나와 장현실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서 세상의 불편한 시선과 편견, 불합리한 고정관념에 기꺼이 도전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장현실과 함께 우리의 소중한 가정을 자유로운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가정으로, 더욱 건강하고 튼실한 가정으로 가꾸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2008년 6월 8일, 신랑 서동일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 않겠습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투정도 부리겠습니다. 아닌 척 씩씩한 척 하며 가족들을 원망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건강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닌 짐을 나누고 가족의 짐을 나누어 받겠습니다. 사랑하는 서동일, 은혜, 은백, 그들을 진심으로 원하며 오래도록 사랑하겠습니다.

-2008년 6월 8일, 신부 장현실 그 해 장차현실은 그의 두 번째 자기 기록인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를 펴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누군가 항상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생겼다고는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편견으로 가득하고, 그 역시 그런 편견에 맞서 자신과 가족들을 지켜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만화들은 자칫 무겁고 힘겨울 수 있다. 그의 남편조차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아내가 “남편과 은백이는 포기해도 은혜는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두고 섭섭함보다는 “평생 은혜를 안고 가야 하는 엄마의 짐이 그만큼 큰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의 만화가 여전히 감동스러운 것은 그런 부담과 아픔마저도 따뜻하게 보듬음으로써 오히려 그를 보는 독자들에게 위안을 던져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 꿈이요? 제발 퇴근 한 번 해보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지요.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게 미래는 그저 장차 현실인 것을요.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온힘을 다해 감당해 나갈 수밖에요. 앞으로 가능하다면 오래 읽히고 감동을 주면서 사람의 삶에 꼭 필요한 만화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삶의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해 나가고도 싶고요. 좀 더 풍성한 이야기를 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요. 리얼리티를 살리면서도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그동안 즐거운 이야기도 너무 진지하게 그렸지 않나 싶어요. 특별히 은혜에게 남겨주고 싶은 만화로 ‘자립백서’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밥하기, 라면 끓이기, 냉장고 사용하기 같은 생활 속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려주는 그런 만화 말입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살도록 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자기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글 유성문 <희망세상>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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