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전통문화로의 초대 - 전주학교이두엽 교장

전통문화로의 초대

- 전주학교이두엽 교장

글·사진 유성문 rotacklycos.co.kr



학창시절 전주에 간 적이 있다. 일탈의 작은 여행이었지만 그때 전주의 첫인상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저물 무렵 오목대에 올랐을 때 발아래 교동 일대의 기와지붕이 넘실거렸다. 그 고색창연(古色蒼然)함은 저녁 연무 속에 그윽하기 그지없었다. 실제 몇몇 집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했다. 모색(暮色)이었다. 그 모색은 더없이 아름다웠지만 까닭 모르게 서글프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전주는 변했는가. 다시 오른 오목대 아래로 기와지붕의 물결은 여전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퇴영(退)이 더욱 깊어져 버린 느낌이다. 같은 남도의 빛고을이 격랑에 휘말렸을 때에도 비교적 온전했던 전주였음에도 오히려 더 깊이 가라앉아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꽃의 심은 다시 피어오를 수 없는가. 천 년 침묵의 두께를 털고 찬란한 꿈을 다시 찾아 이룰 수는 없는가.
전주학교는 <프레시안>에서 운영하는 인문학습원의 한 과정이다. 이 학교 이두엽(55) 교장은 전주가 고향으로, KBS TV 프로듀서, 예원예술대 문화영상창업대학원장, <새전북신문> 사장 등을 거쳐 현재는 군산대 겸임교수로 있는 문화기획자다. 한 10년 전쯤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숲학교의 일원으로 강원도 인제 내린천의 한 마을을 찾아 머물렀을 때 인문학습원 개설 이야기가 처음 나왔고, 그 일환으로 마침내 전주학교가 설립될 수 있었다.

"더불어숲학교가 발전하면서 신화학교, 인도학교, 실크로드학교 등이 개설되었고,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도시를 다루는 과정까지 논의가 이어졌지요. 애초 이야기가 되었던 곳이 경주, 전주 두 곳이었는데 2009년 6월 먼저 전주학교를 열게 된 것입니다. 처음 저보고 교장을 맡으라고 했을 때 짐짓 고사를 했습니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여간 허드렛일이 많지 않겠냐 싶어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고 빠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일을 맡길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 결국 제가 맡게 되었지요.
특정 도시학교라 해서 꼭 그 도시를 공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마다 나름대로 빛깔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보다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느끼고 체험하고 학습하는 그런 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종의 전통문화로의 초대라고나 할까요. 음식, 한옥 등 우리 전통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전주에 머물면서 직접 체험하고 학습함으로써 우리의 삶과 문화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고자 하는 것이지요."


전주학교는 작년 6월 개설 이후 그동안 다섯 차례의 강의를 가졌다. 한 번 행사에 40명 정도가 참가하면서 그간 입학한 학생 수는 170여 명에 이른다. 1박 2일 동안 전주 일원을 돌며 이루어지는 강의는 그 수준이 높아 반응이 꽤 좋은 편이다. 참가자는 교사부터 법조인, 교수, 대학생까지 다양한데 아무래도 그 주력은 40~50대 중년들이다. 봄, 가을로 이루어지는 정기 강의뿐만 아니라 전통문화 관련 공연 초대행사를 열기도 하고, 동창들끼리 수시로 번개모임을 갖기도 한다.

"전주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입니다. 누구에게나 고향 같은, 말하자면 고향지수가 한참 높은 곳이지요. 나지막한 한옥 담장에 햇살 가득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오래 전 잃었던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참가자들 모두가 마치 고향에라도 돌아온 듯 편안하고 행복해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첫째날 밤의 막걸리집 코스는 아코디언 반주에 옛노래를 부르면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되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들 해요."

전주학교의 강의는 움직이는 학교답게 서울에서 전주로 가는 차 안에서 시작된다. 차가 출발하면 이 교장이 서툰 유머를 섞어가며 전주, 재미있는 이야기 여러 편을 들려준다. 이를테면 전주 입문과정인 셈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교장은 학생들에게 교장선생 지침을 내린다. "그 첫째가 교장선생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 하지 말기입니다." 한바탕 웃음이 쏟아지고, 이어 이 교장의 본격적인 강의가 펼쳐지면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진다.

"전주 출신의 명필로 창암 이삼만 선생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길에 전주에 들러 한참 연상인 창암의 글씨를 평하기를 노인장의 글씨는 시골에서 밥은 먹고 살만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추사가 떠난 후 그의 모욕적인 언사에 분기탱천한 제자들에게 창암은 그냥 두어라. 그는 글씨는 잘 쓰는 사람인데 조선 붓을 헤치는 멋과 조선 종이에 스미는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라며 오히려 말렸다고 합니다. 창암 사후에 다시 전주에 들른 추사가 자신의 예전 언사를 후회하며 창암이야말로 글씨로서 인과 덕을 이룬 분이라고 칭송했다고 합니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글씨도구에서부터 온갖 호사를 누려온 한창 때의 추사가, 가난했기 때문에 꾀꼬리털, 칡뿌리 등으로 글씨를 써가면서 외려 강인한 정신이 살아있으면서도 시골장터처럼 정겨웠던 창암의 서체를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웠겠지요."

이 교장이 이 이야기를 화두로 삼는 이유는 그 속에 전주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중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기운생동의 미학이야말로 바로 전주의 미학이 아니던가. 그런 그의 생각은 전주 첫 번째 방문지인 전주향교에 이르러 더욱 깊어진다.


"전주향교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나 다름없는 곳으로 묘한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이곳에서 조선은 어떤 나라였는가, 조선의 마음은 무엇인가 새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민본의 나라였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면서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백성의 나라가 아닌 왕족과 귀족, 그들만의 나라가 되어 결국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만요. 장식성을 경계하고 단순 소박한 향교의 건축에서 조선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의 마음과 잇닿아 있는 것도 같고요. 그런 것이 바로 정신적 뿌리이겠지요."


강의는 전주향교를 나와 오목대로 이어지고, 여산휴게소에서 합류한 우석대 조법종 교수(한국학)의 해설이 곁들여진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으로 개선하던 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주에 들러 종친들을 모아 잔치를 벌였던 곳이라는 오목대에서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오종수 선생의 사설시조창 완산10경과 전주 미인 이은자 여사의 우시조 나비야 청산가자 등의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공연이 끝나면 덕진공원 앞 비빔밥 전문점 고궁에서 점심을 먹는다.

"비빔밥은 화합과 상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머지않아 세계인의 음식이 될 것입니다. 비빔밥뿐만 아니라 콩나물국밥, 한정식 등 전주는 맛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남도음식하면 마치 광주음식이 표준인 것처럼 되어 버렸지만, 화려한 광주맛, 곰삭은 전주맛이라고 전주음식에는 간장이 잘 배어있는 것 같은 담백함이 있습니다. 그 깊은 맛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하지만요."

점심을 마치면 한옥마을로 향한다. 700여 채의 도시형 한옥이 밀집한 한옥마을은 전주사람들의 자존심이 배어있는 곳이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들어와 서문 부근의 상권을 장악해가자 그에 대한 반발로 전주의 중산층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집을 짓고 모여 살면서 한옥마을이 비롯하였다. 한때 개발과 보존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전주 특유의 정신으로 이를 극복하고 전통을 어렵사리 지켜가고 있는 중이다.
한옥마을로 들어가기 전 만나게 되는 전동성당과 경기전 역시 화이부동의 전주기질을 잘 보여준다. 경기전은 조선왕조의 탯자리로서 태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곳이고, 전동성당은 조선왕조에 의한 천주교 박해와 역사를 같이한다. 그 기묘한 인연의 두 건물이 한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한 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전동성당에 관한 해설은 유철종 전북대 명예교수(정치학)가 맡는다. 그의 집안은 증조 때부터 천주교 집안으로, 그 역시 60여 년 전인 유치원 때부터 전동성당에 다녔다. 그는 정년퇴임 후 전동성당에서 신앙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에 처음 천주교가 들어온 지 7년 뒤인 1791년 첫 번째 순교가 일어나 윤지충, 권상현 두 분이 풍남문 밖 형장에서 참수를 당한 후 그 목이 성벽에 걸렸습니다. 그 후로 많은 순교자들이 풍남문 밖 형장에서 돌아가셨는데, 1907년 일제가 들어오고 신작로를 만들면서 성벽을 허물게 되었습니다. 그때 전동성당 초대신부인 윤보드네 신부께서 전라감사에게 요샛말로 로비를 해서 성벽의 돌들을 가져왔지요. 성당 건물을 짓는 데 주춧돌로 쓰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전라감사는 어차피 치워야 할 돌들을 치워주니 마다할 이유가 없고, 우리는 순교자들이 피 흘린 돌들로 성당의 주춧돌을 삼으니 그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었지요."

한옥마을 탐방은 최명희문학관, 한방문화센터, 전통술박물관, 부채문화관, 소리문화관 순으로 이어진다. 저녁식사는 한옥마을에서 처음 문화공간을 열었던 다문에서 한다. 저녁식사 중 사단법인 이음 이동엽 회장의 전주 음식과 술에 관한 해설이 곁들여진다. 식사 후에는 거문고와 대금 산조, 판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소리가 얼마나 귀에 사무치는지 느껴보게 된다. 이마저 끝나면 숙소인 한옥생활체험관 등으로 이동한다. 혹 쉬 잠 못 드는 이들을 위해서는 앞에 든 막걸리집에서의 조그만 주연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튿날 일정은 왱이집에서의 콩나물국밥 해장으로 시작한다. 주인장의 전주 콩나물에 대한 이야기가 모주와 함께 곁들여지니 이 또한 강의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한옥마을로 돌아와 지담에 들러 한지에 대해 공부한다. 이 자리에서 예원예술대 유봉희 교수가 한지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어서 한옥체험관 김병수 관장과 우리의 삶에서 전통문화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딱딱한 세미나 형식이 아니라 전주식의 땡기고 푸는 방식이니 무거워할 필요는 없다. 전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한옥마을의 종가 역인 학인당이다.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지역은 예로부터 곡창지역이어서 그만큼 수탈도 많았지만 재력이 든든한 중인들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동학혁명의 영향 등으로 반상의 차별이 다른 지역보다 일찍 허물어진 곳이기도 하지요. 그런 바탕 위에서 판소리와 같은 민중문화가 꽃 피울 수 있었습니다. 학인당은 일제강점기 호남 판소리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내로라하는 명창들이었던 임방울, 박녹주, 김소희 선생 같은 분들의 공연이 수시로 열렸다고 합니다. 본채가 방과 방 사이를 트고 확장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백여 명이 함께 앉아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는 학인당은 이를테면 우리 민족문화사의 큰 마당이었던 셈입니다."

귀경길은 필수적으로 모악산 루트를 거친다. 미륵신앙의 성지인 금산사가 깃들어 있는 모악산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산이다. 동학사상과 증산사상의 모태가 된 신령한 산이고,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생명사상이 발원하는 땅이기도 하다. 이 교장은 모악산 루트에서 생명과 평화의 미래를 모색하자고 이야기한다.

"미륵불교의 본산인 모악산 자락은 조선 최대의 사건인 기축옥사를 불러일으킨 정여립의 대동계가 결성된 곳입니다. 전봉준이 어린 시절을 지냈던 곳이어서 나중에 전주가 동학혁명의 중심지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자치기구인 집강소가 설치된 사실과도 무관치 않고요. 이러한 대동사상과 동학혁명을 거치면서 전주 일원은 개벽과 상생의 문화지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지역에서 변혁과 혁명의 사상이 움텄는가, 그 역사·문화적 연원을 찾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튼 전주학교를 통해서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나눔과 베품이라는 공동체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래 나무는 자기 뿌리만큼 자란다고 합니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는 큰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서 너무도 모릅니다. 그냥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는 국수적인 자세가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가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재발견해내야 합니다. 거기에 전주학교의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2010 가을학기 전주학교는 10월 23일~24일 양일간 열린다. 참가비는 20만원이며(지자체 지원이 마감되어 불가피하게 인상했으며. 한옥 2인1실 숙박비, 4회 식사비, 강의 및 공연관람비, 입장료, 여행보험료, 운영비등 포함), 참가신청과 문의는 <프레시안> 인문학습원 전주학교(www.huschool.com 또는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로 하면 된다. 글·사진 유성문 <희망세상> 독자편집위원

글.사진 유성문 <희망세상>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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