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뚝심으로 새긴 역사의 기억 구본주 1주기전 별이되다

뚝심으로 새긴 역사의 기억 구본주 1주기전 별이되다

모든 기억은 상처를 동반한다. 기억이 발생했던 순간에서 멀어지며 현재에서 과거로 전이되는 순간 기억은 생명력을 얻게 되지만 기억이 기원에서 멀어지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불가능한 회귀의 꿈으로 스스로를 상처 입히며 자신을 지우고, 변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기억이라 믿으며 간직하는 것은 늘 몇 개의 이미지에 가까운 조각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겨,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것은 기억을 과거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복원함으로써 오늘과 대화하려는 끈질긴 노력에 다름 아니다.
2004년 12월 8일부터 28일까지 가나아트갤러리와 덕원 갤러리, 사비나 미술관에서 함께 열린 조각가 구본주의 1주기 전 ‘별이 되다’는 지난해 가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젊은 조각가의 작품을 통해 그에 대한 기억을 온전하게 복원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성심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약 20년간 조소작업에 매달렸던 작가 구본주의 작품들을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꼼꼼하게 모은 그의 1주기 전은 작가 구본주에 대한 기억을 복원함과 동시에 우리가 함께 살았던 80년대와 90년대를 찬찬히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을 제공했다. 그것은 작가 구본주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지난 시대를 살아내며 거친 역사의 격동을 뚝심 있게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 담고자했기 때문이며 그 뚝심이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빼어나게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동성과 단호함의 미학
1967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198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입학한 그는 전국대학미전 동상 수상과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 수상, 모란미술대상전 모란미술작가상 수상, 1997년 민예총이 뽑은 한국의 민족문화예술인 100인에 선정되는 등의 경력에서 증명되듯 널리 실력을 인정받으며 주목받던 청년작가였다. 구본주의 작품은 초기작부터 특유의 힘이 넘치는 인물상에서 역동적인 칼질을 선보였는데 이러한 그의 경향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한국사회를 담은 노동 미술 활동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혁명의 열기로 들끓었던 80년대 후반 좌파적 이념으로 무장한 예술가였던 그는 승리를 확신하는 노동계급의 당당한 신념을 형상화한 빼어난 작품들로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근육이 꿈틀대는 팔뚝에 움켜진 날이 선 낫으로 세상을 베어버릴 것만 같은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와 같은 그의 작품들은 당시의 ‘혁명적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써 그때의 뜨거웠던 기억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단호함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업과 함께 내놓은 ‘파업 연작’을 통해서는 그가 단순히 높은 이념의 절정만을 담는 거친 작가가 아니라 노동현장의 생생한 질감을 담아내는 안목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1999년 두 번째 개인전 이후 내놓은 샐러리맨 연작은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실질적 주체인 중년 샐러리맨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포착한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역동하는 노동자상에서 초라한 중년 샐러리맨으로 바뀐 그의 작품들은 혁명의 열기가 꺾인 당시의 상황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이는 이념적 무거움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물상들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며 자유롭게 묘사한 작품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구본주의 작품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표현해내는 인물의 생생함에 있다. 그것은 그가 인상적인 인간형의 ‘결정적 순간’을 잘 포착해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소재를 되살려내는 빼어난 기량 때문이다. 그는 흙과 나무, 쇠와 동을 자유자재로 주물렀다. 또한, 그는 인물의 전형성을 창출하기 위해 사지의 특정부위를 마구 늘이고 줄이는 일러스트적 기법을 동원함으로써 살아있는 질감으로 인물을 창조해냈는데 이는 그가 공간의 개념을 자유롭게 사용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지점이다.
구본주에게 포착된 대상들은 물질 속에 담겨지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통해 공간 밖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목이 하염없이 늘어난 샐러리맨을 담은 ‘위기의식 속에 빠진 그는’과 같은 작품에서 확인되듯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공간 밖으로 자유롭게 확장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게다가 ‘미스터 리’나 ‘그는’과 같은 작품에서 동판을 두들겨 표현해낸 양복과 구두의 질감이나 ‘깨소금’에서 이어붙인 나무 조각의 부드러운 흐름을 살펴보면 그의 뛰어난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힘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실제로는 섬세한 표현력을 통해 탄탄하게 뒷받침되고 있었던 것이다. 박영택(경기대 교수)의 말처럼 그는 뛰어난 조형성과 스케일, 프로근성은 물론 재료의 독창적인 재해석까지 겸비하여 실로 21세기 한국 조각계를 대표할만한 재목이었다.

 

푸른빛으로 날아 오르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가슴의 열정만큼이나 타인에게 관대하고 친절했던 그는 개구쟁이 같은 웃음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결같이 리얼리즘적 자세를 고수하며 내년에는 첨예하게 계급성을 드러내는 전시를 하겠다던 그가 좀 더 우리 곁에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는 떠나고, 그가 완성하지 못했던 작품 ‘별이 되다’는 1주기 전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가 아끼던 샐러리맨들은 푸른빛으로 날아올라 별이 되었다. 아마 그 역시 함께 별이 되었으리라. 예술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그의 꿈은 그렇게 꺼지지 않는 만인의 오늘이 된 것이다.


* 서정민갑

진보적 음악운동단체인 한국민족음악인협회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공연기획, 음반제작, 음악강좌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아름다운 문화의 시대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문화와 관련한 자유로운 글쓰기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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