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아이들을 향한 김민기의 말 걸기 "우리는 친구다"

아이들을 향한 김민기의 말 걸기 "우리는 친구다"


만약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단 두 명만의 작가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신은 누구를 택하겠는가? 누구를 좋아하냐는 질문이 아니라 누가 한국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는 질문이라면 말이다. 아마 많은 대중음악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겠지만 같은 질문을 대중음악평론가들에게 던진다면 십중팔구 김민기와 한대수를 거명할 것이다.
김민기와 한대수, 이제 음악활동 경력 30년을 훌쩍 넘기는 이들은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어떤 아이콘 같은 이름들이다. 이들은 비록 비슷한 시기에 음악활동을 시작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경향은 다르고도 또 같다. 김민기가 지식인적인 고뇌로 당대를 끌어안고 이에 맞서려고 했다면, 한대수는 보헤미안과도 같은 자유로움으로 당대를 탈출하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들은 그 이전까지 딴따라로 취급받던 대중음악계에서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팅을 시작하며 음악 속에 자신들의 철학을 깊이 있게 담아냄은 물론 음악적 행보와 삶의 행보를 통일시킴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을 예술의 반열로 끌어올리기 시작한 두 장본인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아이콘
김민기와 한대수로부터 한국 대중음악은 그 이전의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에서 벗어나 세계를 반영하며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일치하는 것은 그 작업의 위대함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현장에서 활발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이슬>의 작곡가로 기억되는 김민기는 90년대 이후 대학로 소극장에 둥지를 틀고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한 한국적 뮤지컬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으며 한대수는 지금도 계속 새 노래를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
어린이 뮤지컬 <우리는 친구다>는 김민기의 가장 최근 작품으로서 요즘 아이들을 향한 김민기의 말 걸기 같은 작품이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겁쟁이가 되어버린 초등학교 3학년생 ‘민호’와 텔레비전 중독인 동생 ‘슬기’ 그리고 일주일에 학원을 12개나 다녀야 하는 사고뭉치 ‘신문지’가 부모님과 함께 티격태격 펼치는 이야기가 극의 주요한 내용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민호는 귀신이 무서워 혼자서는 잠을 자지 못하다가 동생 슬기가 돌아오자 이층침대를 놓고 서로 위에서 자겠다고 다툰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동네 놀이터에 놀러갔다가 장난감 총을 가지고 노는 뭉치를 만나 총으로 위협받지만 힘을 합쳐 뭉치를 놀려주고 돌아온다. 그 뒤 다시 놀이터에서 뭉치를 만난 민호는 자신의 자전거와 뭉치의 장난감 총을 맞바꾸고 서로 좋아하지만 민호의 엄마와 뭉치의 아빠에게 오해를 받고 혼나게 된다. 그리고 심부름을 가다 다시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 그러나 슬기는 실수로 뭉치의 집 열쇠를 하수구에 빠뜨려버린다. 얼른 집에 돌아가 아빠의 확인 전화를 받아야 하는 뭉치는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민호는 과감하게 심부름 값을 뭉치에게 주며 열쇠 복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뭉치는 고마움의 표시로 총을 주지만 총은 민호엄마에게 또 한번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뿐이다.
결국 아이들은 공연을 해서 열쇠 값을 벌 생각으로 민호네 집에 모여 신비한 지하세계의 공연을 준비한다. 아이들이 꾸리꾸리 여왕이 되고 웰커 사령관이 되어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이들을 찾아 나선 민호와 뭉치의 부모님들은 비로소 아이들을 이해하고 오해를 풀게 된다.

 
극단 ‘학전’의 어린이 무대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이 공연은 무엇보다 요즘 도시 아이들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낸 것이 눈에 띈다. 이전의 김민기가 선보인 어린이 뮤지컬에서 탄광촌에 살거나 벌레로 의인화 되었던 것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이 농촌과 도시의 차이가 없이 도시화된 세태를 반영한 것일까? 아이들은 이혼한 부모나 가게일 때문에 눈코뜰새 없는 부모 밑에서 게임중독, TV중독, 학원중독의 어린이로 자라난다. 그들은 CM송을 줄줄 외우고 ‘짱나’, ‘당근이지’와 같은 통신언어를 남발하며 귀신보다는 강도를 더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젠 부모를 하늘처럼 믿고 따르지 않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면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토록 달라진 세상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김민기가 제시하는 것은 친구가 주는 힘이다. ‘우리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부모님들과는 달리 ‘너의 비밀쯤은 내가 벌써 다 알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놀고 떠드는 동안 민호의 불면증은 씻은 듯 사라지고 뭉치의 학원 빼먹기도 용서가 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태도에 어떤 선악의 판단으로 개입해서 교훈을 주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스스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것이 그동안 김민기가 ‘개똥이’나 ‘아빠 얼굴 예쁘네요’와 같은 전작을 통해 꾸준히 어린이 작품을 해오며 축적해온 힘일 것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
두 시간에 이르는 긴 공연임에도 어린이들은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웃고 떠들며 즐겁게 공연을 보았다. 이는 숙련된 배우들의 연기 덕이기도 했지만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카쥬, 하모니카로 연주를 직접 들려주는 김민기 뮤지컬 특유의 라이브 연주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침대에서 놀이터로 변하는 소품도 어린이 관객의 눈을 붙잡아 놓는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하지만 뭉치를 때리고 벽장 속에 가두는 뭉치의 아빠와 민호를 늘 혼내는 엄마가 극의 말미에서 갑자기 아이들과 어울리며 어린이들을 이해하게 되는 결론과 김민기 특유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 음악은 다소 아쉬운 점이었다. 그렇지만 늘 자신의 작품을 계속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는 김민기답게 앞으로 이런 부분을 좀 더 보강한다면 더 많은 아이들에게 ‘상상 속을 날아, 이젠 꿈을 꾸어보게 하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사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아침이슬처럼 맑은 세상을 꿈꿨던 이들이 이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서 그가 만든 뮤지컬을 같이 보며 계속 꿈을 꾸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김민기의 뮤지컬이 우리에게 친구처럼 늘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서정민갑>

진보적 음악운동단체인 한국민족음악인협회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공연기획, 음반제작, 음악강좌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아름다운 문화의 시대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문화와 관련한 자유로운 글쓰기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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