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사진첩 - `묘지의 기념식`으로부터 `일상의 기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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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사진첩》
-‘묘지의 기념식’으로부터 ‘일상의 기억하기’로

박영선(작가,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책임연구원)


민주주의와 5월의 광주

4.11총선과 12월 대선 사이에서 시국이 내내 어수선하다. 그런 중에 한국 민주주의운동의 기원인 4.19혁명의 52번째 기념일이 지나갔고 곧 32번째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하 5.18로 약칭함)이다.

사회학자 조희연에 따르면 5.18은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정권에 대한 항쟁이자 그 정권에 의한 집단학살이며, 1960년 4.19와 1987년 6월의 민주화운동을 잇는 한국 현대사의 “전환적 사건”이다. 또한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저항과 희생은 남은 자들에게 “결연함”과 “숙연함”을 환기시키며 “민주주의적 추동력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외재하는 적에서 내재하는 적과의 각축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과정에 대한 일 연구」, 『경제와사회』, 2010년 여름호 40-41쪽). 타당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에 의해 세워진 정부가 광주학살의 최고책임자인 전두환을 ‘국가의 이름으로’ 용서하고 현재까지 ‘예우’와 ‘보호’를 계속하면서, 5.18이 지닌 민주주의적 가치의 기본 의미가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망월동은 국립묘지라는 거대한 기념물로 화했으며, 형식적인 연례행사들에 의해 5.18의 기억은 제도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급속히 변질되고 있다. 

5.18은 지금 우리가 부족하나마 누리고 있는 최소한의 민주주의, 말하자면, 적어도 국가가 국민을 ‘공공연히’ 학살하는 폭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도적, 심리적 안전판을 마련케 한 사건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국민 개개인의 자치적 민주적 합의 절차를 거쳐 생성된 권력이 아닐 경우, 국가는 언제든지 개인들을 역습하는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성찰을 남긴 사건이기도 하다. 국가폭력을 막고 개인들의 자치적이고 합리적인 연대가 존중되는 민주주의의 보편가치를 위해서라도, 5.18은 추상적인 ‘묘지의 기념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구체적 일상 속에서 기억될 필요가 있다. 


생성하는 5월의 기억: 《오월의 사진첩》의 새로운 해석과 방법론
 
이런 맥락에서 5.18관련 기념사진아카이브 전시인 《오월의 사진첩》은 주목할 만하다. 이 전시는 2008년 5.18기념재단과 광주시립미술관이 공동 주최했고, 기획은 한국근대사진 아키비스트이자 연구자인 이경민이 맡았다. 기획자가 5.18에 접근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의 무의식에 가라앉은 강력한 트라우마의 시공간이다. 그간 주로 광주라는 특수한 지역성과 1980년 신군부정권 대 민중항쟁이라는 특수한 시간성과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5.18을 ‘역사화’하려는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디지털미디어의 지구화에 따라 시간도, 공간도, 사람들도 급속히 변해간다. 만약 5.18 희생자의 유족과 5.18을 자기 삶의 한 사건으로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뜬다면, 5.18은 역사교과서의 한 대목, 사회과학 이론서나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서만 기억되는 아득한 과거의 사건으로 박제될 것이다. 또한 극도로 폭력적인 학살 과정이 담긴 기록이미지들의 처참함 때문에 특이한 소재와 구경거리로 소비될 가능성도 높다. 이미 몇몇 영화들에서 5.18이 ‘노스탤지어 산업’의 소재 거리로 대상화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억의 변질과 망각의 위기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안으로서, 5.18의 특수성을 중시해온 사회과학적 접근방식의 경계를 넘어 5.18의 보편성을 발굴하는 인문학적 해석의 태도가 요청된다. 철학자 김상봉의 논의대로, 5.18을 ‘그들’, 즉 1980년 광주 시민들만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의 역사로 현재화·보편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최영태·김상봉 외, 『5.18 그리고 역사』, 길, 2008). 그러기 위해서는, 늘 되풀이되는 제도적 기념이 아니라 ‘새롭게 기억하기’가,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기억의 새로운 방법론과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전시기획자 이경민은 동명의 전시자료집 『오월의 사진첩』에서 기획 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전시는 열여덟 명의 기념사진을 통해 개개인의 생애사를 조명해보고, 서로 다른 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5.18이라는 역사적 공간 속에서 어떻게 그 운명적 삶을 함께했는지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이경민, 「5.18의 기억과 표상의 프레임을 넘어」, 『오월의 사진첩』, 5.18기념재단 엮음/이경민 기획, 아카이브북스, 2008, 9쪽. 이하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이경민은 5.18을 1980년 광주라는 특수한 시간과 지역에 국한된 과거의 한 사건이기를 넘어 현재와 미래에 걸친 우리 모두의 문제로서 기억하고, 보편적인 인문학적 탐구 주제로서 현재화할 방법론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5.18 희생자뿐 아니라 그 유족들, 나아가 5.18을 자기 삶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직간접으로 영향 받은 수많은 개인들의 생애사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다. 또한 그 방법적 장치로서 근대 이후 모든 개인의 생애에서 통과의례적인 중요 순간을 담은 ‘기념사진’들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5.18만으로 기억될 수 없는 다양한 개인사들을 갖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기술과 기억의 방법들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수의 엘리트만을 시민군 지도자로 영웅시하거나 신화화하여 5.18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수많은 소시민들을 상대적으로 소외시켜왔다... ...5.18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5.18을 구성했던 인물들의 개인적 삶을 보여주고 구별짓기를 극복하고자 5.18 희생자 10명과 5.18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생존자 8명 등, 총 18명의 기념사진으로 구성했다... 기념사진이라는 동일지평 위에서 그들을 만날 때 우리는 5.18을 둘러싼 수많은 경계짓기식 인식을 극복해 볼 수 있을 것이다(이경민, 같은 글, 10쪽). 

사진은 삶의 기억을 죽음의 형식으로 보존하는 매체다. 하지만 ‘사진이 매체’임을 인식한 인간이 주체적으로 개입할 때, 그것은 각색의 개인들이 공유하는 삶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보편적 ‘효과’를 발할 수 있다. 특히 기념사진의 경우가 그렇다. 기념사진은 ‘누구나’ 찍는다. 모두 자기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다. 따라서 기념사진은 ‘특수한 개별자들의 일상과 기억의 보편적 지속을 담지하는 시각적 기호이자 형식’이 될 수 있다. 가족끼리의 단란한 소풍, 행복하고 꾸밈없던 삶의 한때에 사진기를 응시했던 사람들... 그들은 ‘5.18희생자와 유족’이기 이전에 그 사진들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일상 속의 개인’이었다. 갑작스레 가공할 국가폭력이 그들의 삶을 엄습했고, 그들은 그 상황을 피할 수 없었거나 피하지 않았다. 


‘기념사진’이라는 보편형식의 매개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섰던 그 자리에 우리 또한 섰던 듯한 데자뷔의 감수성에 도달하게 되고, 느슨하면서도 단호하게 ‘연대되는’ 상상력을 가동시키게 되고, 과거의 현재화라는 생성적 기억하기로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은 지금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감수성과 상상적 기억을 촉발하는 1차적 층위를 넘어, 보다 정교한 이성적 관심을 유발하는 지적 장치들이 이 전시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민은 기념사진들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근현대문화사적 실마리들, 이를테면 머리모양, 복식, 사진관의 배경소품이나 거리풍경 등에 대한 고증, 그리고 기념사진을 매개로 진행된 유족들의 생애사 구술 등을 결합시킨 탈경계적 방법론과 장치를 이 전시에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 5.18은 특정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한국인 누구나 결부되어 있는 공통의 조건으로 경험됨과 동시에, 인문학적 관심의 보편주제로서 지속적으로 재발견될 수 있게 된다. 또한, 5.18을 둘러싸고 다양한 개인들의 기억하기와 말하기가 확산 가능해짐으로써, 삶을 매우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리게 된다. 이 같은 ‘기억의 열림’은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와도 직결된다. 


국가권력과 기념제도, 분과학문들이 제시하는 5.18 해석법에 머무르지 않고, 생성적 기억의 방법론을 모색할 때 열릴 수 있는 의미있는 가능성들을 《오월의 사진첩》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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