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진짜배기 농사꾼의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박형진의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서정민갑

 

 

변산에는 그가 산다. 농사꾼 시인 박형진, 그는 변산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농사지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50줄이 가까운 나이에도 흙 파먹고 사는 것을 운명처럼 아는 그는 학교라고는 중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 만 것이 전부다. 학교 공부는 일찌감치 작파하고 서울에서 고물장수를 해가며 세상공부를 하던 그는 어느 날 “농민은 농촌에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와 농사짓고 굿치며 농민운동을 하고 또 글을 쓴다.
세상에 글 쓰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인이라고 소설가라고 작가라고 명함 내밀며 목에 힘주는 이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박형진은 잘난척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쓴다. 중앙문단에서 알아주지도 않고 상표등록도 되어 있지도 않지만 누가 읽어도 금세 알아챌 수 있는 박형진표 글이다. 뜨뜻한 아랫목에서 쿰쿰한 냄새와 함께 익어가는 메주같고, 기영차게 일하는 농사꾼의 구릿빛 알통같은 글이다. 전라도 땅 변산에서 오랫동안 농사지으며 살아온 이답게 유식한 말 한마디 없고, 수시로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그의 글은 새참 국수 넘어가듯 술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글이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글은 현란한 수사와 미사여구 없이도 뜨끈한 찰밥처럼 읽을 때는 쫀득거리고 읽고나면 든든한 힘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오랫동안 농사지으며 땅을 하늘 같이 알고 이웃을 제 살처럼 여기고 살아온 그의 삶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에는 그가 갈아붙인 땅의 부드러움과 넉넉함, 그가 헤집고 다니는 갯벌의 물컹한 깊이, 그리고 그가 씨 뿌려 거둔 곡식들의 달짝지근함과 그 곡식들로 어머니가 차려낸 음식들의 곰삭은 맛이 제대로 배어 있다. 통째로 농사꾼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그의 능청스러운 입담은 글줄이나 읽었다고 목에 힘주는 사람들은 흉내도 못 낼, 변산의 하늘과 땅과 바다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그의 글이 어떻기에 이렇게까지 설레발을 치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번에 나온 그의 새 책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소나무)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이 책은 침이 꼴까닥 넘어가는 고향이야기이다. 침이 꼴까닥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박형진의 고향땅 변산에서 나는 먹거리 이야기로 어울렁더울렁 사철 고향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삼삼한 잡젓 속에서 잘 삭은 붉은 빛깔의 삼치 속을 쪽쪽 찢어서 밥 위에 걸쳐 먹는 이야기, 솥단지에 엿물이 쫀독하게 늘어붙도록 고구마 쪄먹는 이야기, 밥알이 하나씩 섞인 서리 호박 나물을 새파라니 썰컹거리는 맛으로 먹는 이야기, 막 까낸 돼지 불알을 호박잎에 싸서 구워 먹는 바삭하고 노릿한 입맛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군침이 꼴까닥 꼴까닥 넘어가다 못해 결국엔 책을 덮어두고 찬장을 뒤져 라면-그의 책 초장에는 라면 맛있게 먹는 법도 실려있다.-이라도 하나 삶아먹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맛깔 나는 입담으로 들려주는 고향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못 입고 못 먹었지만 아무리 적게 해도 청국장 한 대접 이웃집에 돌리지 않는 법이 없었던 시절의 풍경이 알싸하게 되살아난다. 매칼없이, 간짓대, 소매박적, 애콩, 나숭개 같은 옛말들을 다시 대하는 맛도 쏠쏠하다. 그러나, 왱병에 초를 안쳐 주둥이에 솔가지를 꽂아 두던 시절 보리밥 몇 숟갈 떠먹고 나무하러 가던 이야기며, 콩알만한 생 아편을 먹고 국수가닥 같은 회뭉치를 한보따리 싸던 이야기,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초상 치르던 이야기, 서캐 숨은 옷을 입에 넣고 어금니로 꼭꼭 씹어 으드득 으드득 서캐 터뜨리던 이야기는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먹는 이야기며 노는 이야기며 싸우는 이야기까지 박형진의 글맛은 한결같지만 한결같지 않은 것이 요새 세상이고 사람들 아닌가. 그러다보니 글을 읽는 내내 흥겨운 글맛에 취하다가도 요즘 농촌을 생각하면 마음이 다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 박형진이 살고 있는 고향마을 역시 백오 십 명이 채 안 되는 동네 사람들 중 오분의 사 정도가 노인들이요, 농토의 반 이상이 외지인들에게 팔렸거나 묵밭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얼마 전 여의도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간짓대를 휘두르다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졌던 사람들, 그들은 박형진의 고향마을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었겠는가. 잃어가는 고향의 손맛과 묵어가는 땅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은 그래서 때로는 서글프고 쓸쓸하다.

어쩌면 박형진이 감칠맛 나게 적어가는 고향음식 역시 그의 글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어, 몇 십 년 뒤에는 박형진의 글이 산문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기록물이 되어버리는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물론, 박형진의 글을 소개하며 말하고 싶은 것이 단순히 옛날을 그리워하며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뉴욕까지 하루면 다녀올 수 있고, 걸어 다니면서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손맛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입맛을 잃어버리고, 손으로 직접 물건을 만들어 쓰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땅을 잃어버리며 서울로 서울로만 몰려 소득 2만불 시대를 향해 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진보인지 반드시 다시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단순히 몇 가지 음식과 풍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향인 농촌이며 자연이지 않은가. 책을 읽는 내내 입맛을 다시면서도 언젠가 닥쳐올 동티를 두려워하는 작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다.


 
* 서정민갑
공연기획, 음반제작, 음악강좌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아름다운 문화의 시대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문화와 관련한 자유로운 글쓰기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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