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노래패 `새벽` 콘서트 일상으로 빚어낸 영화감독 남선호

노래패 `새벽` 콘서트 일상으로 빚어낸 영화감독 남선호

지난 4월 28일(금)부터 29(토)일까지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13년 만에 다시 ‘새벽’의 동이 텄다. 1984년 대학노래패들이 모여 만든 <새벽>은 ‘광야에서’ ‘그 날이 오면’ 등 수많은 민중가요를 만들어내며 1980년대 현장을 풍미했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1993년에 해체됐다. 이때 <새벽>을 등지고 각자의 현실로 돌아갔던 사람들 가운데 83~85학번 21명이 모여 ‘혹시 내가 들리나요?-사랑 노래 15’ 콘서트를 연 것이다. 

이번 콘서트의 연출자였던 남선호(41) 감독은 “노래가 눈물이 되고, 노래가 희망이자 용기가 되고, 뿌듯함이자 안타까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벽>의 노래를 통해 깨달았다. 내 무딘 감수성으로 느끼기에도 <새벽>의 노래는 건강한 슬픔과 기쁨, 분노와 희망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내 둔한 머리로 생각하기에도 진보의 핵심을 끊임없이 지향하고 있었다.”며 <새벽>의 과거를 평가했다. 또 “그런 <새벽>이 13년 만에 공연을 한다. 그 사이에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변했다. 길지 않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세월은 곧 극복되었고 <새벽>은 변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무대에 서게 되었다.”고 13년 만의 콘서트가 ‘과거’ 대신 ‘현재’를 지향하고 있음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남 감독의 말처럼 <새벽>의 공연은 정말 그랬다. 공연장에는 노동과 해방을 외치던 옛 노래들 대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중년의 삶을 담은 새 노래들이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일상이 울려 퍼진 공연장,
남 감독의 첫 영화와 닮은 꼴

교통비도 안 되는 연출비를 받고 너무도 열심히 연출을 맡아준 탓에 멤버들로부터 ‘친절한 선호씨’라 불렸다는 남 감독은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노문연) 연극 분과였던 극단 ‘한강’의 멤버였다. 또 지난 3월 말에는 데뷔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를 개봉하기도 했다. 그는 “노문연 음악분과였던 <새벽> 멤버들과의 술자리에서 술김에, 그것도 바쁜 이수인(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감독) 대타로 연출을 맡았다.”며 이번 공연의 연출자가 된 이유를 ‘술’과 ‘우연’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남 감독의 첫 영화와 <새벽>의 콘서트는 우연이라기엔 너무 큰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괜찮아요?’는 생계를 아내에게 떠맡기고 백수생활 10년(실제로는 14년)을 버틴 끝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손에 잡히지 않는 꿈, 무기력하고 팍팍한 일상, 여기에서 비롯된 우울과 자격지심의 기억들이 영화 속에 가득할 거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하지만 ‘모두들, 괜찮아요?’에는 중년부부와 그 가족들의 아웅다웅하면서도 소박한 일상들, 애잔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건강함이 있었다.

뜨거웠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현장을 떠난 미련으로 가득한 회고담 대신 평범하고 건강한 현재의 일상을 선택한 <새벽>의 공연과 ‘모두들, 괜찮아요?’가 갖는 공통분모다.

운동의 기억 간직한 채 건강한 일상, 
‘모두들, 괜찮아요!’

남 감독은 “콘서트의 컨셉은 ‘일상성의 확인’이었다. 운동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현재 자기 위치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 시절을 한 때의 추억으로 접어 두기는 싫고 그렇다고 밤마다 술자리에서 옛 노래를 꺼내 부르는 것도 싫었던 멤버들이 컴퓨터게임 프로그래머로, 대기업 간부로, 혹은 요가 강사나 미술사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을 노래로 들려주고 싶어 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과거 <새벽>의 동지이자 팬이었던 관객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남 감독은 “과거처럼 살고 있지 않은데 그때 그 노래들을 부르며 ‘그런 척’ 하는 것도(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운동의 경험을 후회하며 과거와 결별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는 것도 문제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소중하게 여기되 과거와 같은 척하지 않고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서 멤버들과 뜻이 맞았다.”고 술과 우연이라는 겸손 뒤에 감춰진 연출 이유를 털어놨다.
과거와 현재를 대하는 남 감독의 이런 태도는 콘서트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과정이나 그의 영화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서울대 총연극회에서 활동 하다가 졸업 뒤 ‘한강’에서 문화예술운동에 힘을 쏟았던 그는 ‘순풍에 돛 단 평탄한 삶’을 보장해 줄 경영학과 졸업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 뒤 “제일 하고 싶고, 해볼 만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극영화 만드는 일’인 것 같아서 영화감독 지망생이 됐고, 일단 시작했으니 한 편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14년을 끌었다. 그 사이 무용가의 꿈을 접은 아내는 무용학원 강사가 되어 생계를 책임졌다. 또 친구들은 기업체 간부로, 영화 감독으로 삶을 안정궤도에 올려놨다.
그리고 14년 만의 입봉. 노문연 시절 함께 활동했던 인연으로 영화제작자 오기민 씨가 대표로 있는 마술피리에서 본격적인 감독 데뷔에 들어갔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으니 마음에 품어뒀던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야심찬 실험으로 가득한 영화를 만들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원래 그 속에 빠져 있으면 비극인데 밖에서 보면 웃기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고, 거장처럼 삶을 반추하는 영화를 만들 수도 없어 일상적인 웃음들을 관찰해 가장 소박하게 찍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낸 소박하기 그지없는 영화를 첫 영화로 세상에 내놨다.

얄팍한 소재주의 경계,
자기 검열은 과거의 영향


대학 시절 그리고 ‘한강’ 시절 생각하고 실천했던 많은 이야기들은 잊은 것일까. 남 감독은 “노동 문제를 포함해 우리 사회에 내재한 다양한 문제들을 영화적으로 재미있고 의미있게 만들 수 있는 소재를 찾으면 당연히 영화로 만들거고,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소재들도 더러 있다.”면서도 “제대로 만들 자신도 없으면서 아이디어만으로 그런 얘기들을 꺼내 ‘척’하는 소재주의를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14년도 모자랐는지 좀 더 묵히고 익혀서 꺼내 보이겠다는 것이다.
남 감독은 “대학 연극반과 극단 시절이 영화감독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렇다 저렇다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과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지나칠 정도로 묵히고 익히며 살아가는 이유를 어림 짐작케하는 대답을 들려줬다. “아무리 영화감독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해도 ‘마지노선’을 포기하고 갈 데까지 가는 영화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모두들, 괜찮아요?’를 통해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미덕을 갖춘 감독으로 인정받은 남 감독은 곧 차기작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는 “첫 작품과 달리 갈등이 세고 서스펜스가 있으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구상을 밝혔다. 
갓 데뷔를 마친 감독답지 않게 차기작을 얘기하면서도 워낙 느긋해 하는 바람에 “집에서 두 번째 영화를 재촉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모두들, 괜찮아요?’를 본 아내의 친구들이 ‘넌 좋겠다, 그 나이에 벌써 너한테 바치는 영화도 있고…….’라는 반응들이어서 아내가 흡족해했다.”며 “당분간은 효과가 지속될 듯하다.”고 한다. 말하는 분위기를 봐서는 ‘곧’ 들어간다는 시나리오 작업이 언제 끝날 지, 촬영은 또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날 지, 개봉은 언제쯤이나 하게 될 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는 “그래도 첫 작품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웃는다.



 

전정윤 한겨레신문 기자
사진 제공 임종진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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