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시대 읽기

스크린에서 길거리로 나온 영화배우

 

영화배우 최민식(44) 씨의 근황을 알기 위해서는 신문의 ‘영화면’보다 ‘사회면’을 펼쳐보는 게 빠르다. 그가 본업인 영화 촬영 현장을 떠나 스크린쿼터 원상회복과 한미FTA 저지 투쟁의 현장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7일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에 반발해 영화 <올드보이> 출연으로 받은 옥관문화훈장을 문화관광부에 반납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최민식 과격하네, 저러다 말겠지…….’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5월 ‘스크린쿼터 칸 원정단’으로 프랑스를 방문해 칸 영화제 운영위원회로부터 스크린쿼터 투쟁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등, 반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스크린쿼터 원상회복 투쟁의 맨 앞자리에 서 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미FTA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산하 단체들의 집회를 찾아다니며 든든한 연대의 목소리를 보태고 있기도 하다. 영화배우 최민식의 최근 활동과 속내를 들어봤다.

 

투쟁은 연기의 연장선

“요즘 뭐, 많은 분들이 짐작하시는 대로 살고 있죠. 오후에는 집회에 참석해서 발언도 하고 대학 강연도 가요. 저녁에는 술 많이 먹죠.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발하는 게 ‘문화다양성’ 때문인데, 술자리는 문화다양성을 위한 일종의 ‘생활다양성’ 차원에서…….(박장대소)”
영화배우인 그의 일상에서 영화 촬영이 사라진 지도 어느새 1년이 됐다. 지난해 개봉했던 <주먹이 운다> 이후 차기작을 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사이 강우석 감독의 실명 비판이 기사화되면서 본의 아니게 ‘스타 배우 고액 개런티 논란’의 중심에 내던져졌고, 그 이후엔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듯 스스로 스크린쿼터 축소 폭풍의 한가운데 발을 디뎠다.

촬영 현장을 떠나있던 지난 1년이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했다. 하지만 뜻밖에 그는 결코 녹록치 않은 그 시간들을 배우 생활의 밑거름으로 기꺼이 또한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직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어요. 배우들한테는 작업을 하지 않는 기간이 아주 중요해요.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 전, 무엇을 비워내고 무엇을 새로 담느냐에 따라 연기의 폭이 달라져요.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분노를 진하게 느껴보고 떳떳하게 그 분노를 표현하고 행동에 옮겨보고 싶었습니다.”

 

분노는 투쟁의 원천, 발품은 나의 힘

최 씨의 천성이 워낙 낙천적인 탓에 결과적으로 투쟁을 연기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듯했다. 하지만 대중의 뇌리에 새겨진 ‘이미지’가 생명이기도 한 배우로서 자칫 ‘반정부 투쟁의 전사’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일에 선뜻 나서는 건 그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대학시절 이른바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마흔이 넘도록 사회적인 이슈에 큰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기에 더더욱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았다.
그는 “모욕감을 느꼈고, 화가 났다.”는 말로 영화작업에만 몰두했던 자신이 갑작스레 이 일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가 영화인들을 과소비만 일삼는 ‘딴따라 집단’으로 매도했어요. 외제 승용차 타고 다니면서 무슨 명분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느냐는 식으로. 전 제가 예술가고, 문화생산자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제 신조와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 같았어요. 정책 추진을 위해 영화인들은 물론 전교조 교사나 대추리 주민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참여정부의 소통방식에 대단히 문제가 있어요.”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전략적인 것과는 무관한’ 그는 “일단 화가 나서 앞뒤 안 재고 싸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자기 확신을 갖고 싸우기 위해 스크린쿼터나 FTA 관련 자료를 열심히 구해 봤고, 관련 전문가들과 술자리를 만들어 열심히 귀동냥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인들에게 등을 돌린 여론을 되찾아오기 위해 발품을 팔며 사람들을 만났다.

 



몇몇 언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스크린쿼터 축소와 한미FTA 체결에 대해 찬양 일색의 기사를 쓰는 상황이라 직접 만나서 진실을 알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체계적이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했지만, 제 주장과 진심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뒷풀이 때 소주를 마시며 학생들 얘기를 들으니 제 진심이 충분히 전달된 것 같더라구요. 강연과 뒷풀이가 끝나면 초주검이 되기 일쑤였지만, 행복했어요.”
촬영 현장을 떠난 그가 집회현장에서 이렇게 열심이다 보니, 얼마 전에는 ‘최민식이 민주노동당 후보로 재·보선에 출마한다’는 기사가 보도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최 씨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민주노동당에서 잠시 논의되다 무산된 해프닝으로 밝혀졌지만, ‘정치 욕심에 스크린쿼터 투쟁에 나선다’는 오해는 그에게도 상당히 곤욕스러웠을 터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전시 상황이고, 전시에 이런 식의 심리전 공격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나중에라도 정치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두고 보면 알 일 아니냐”며 무척이나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도 ‘상’도 욕심 없어

 다만 “정치하시는 분들 입장에서야 나를 오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이런 내용을 흘려서 또 다른 오해를 부추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대학에 강연을 나가면 각 대학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지지발언을 부탁할 때도 있는데, 민주노동당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혹시라도 우리의 싸움이 왜곡될까 걱정돼 정중히 거절할 정도”라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정치’에 대한 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명예’나 ‘상’에 대한 사심도 없어 보였다. 최 씨는 얼마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로부터 ‘신상옥 특별상-아름다운 후배 영화인상’ 수상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정중하게 고사했다. “스크린쿼터 원상회복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런 상은 개인이 아닌 관련 단체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뜻에 따라 이 상은 ‘스크린쿼터문화연대’로 돌아갔고, 상금으로 받은 1천만 원은 문화연대와 범국본 산하 단체 가운데 기금이 부족한 단체의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촬영 현장 복귀는 내년께,
지금은 현장에서 싸워야 할 때


그가 MBC 표준FM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 손석희 씨는 “배우 최민식을 잃게 되는 게 아니냐”는 애정과 걱정을 표현한 적이 있다. 최 씨는 이런 우려와 더불어 요즘 부쩍 잦아진 ‘차기작 출연시기’에 관한 질문에 대해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답을 내놨다. “요즘 제가 영화인대책위 핵심전력입니다.(웃음) 단기간에 결판을 볼 성질의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올해 제 나이 마흔 넷, 연기 경력만도 25년입니다. 객기로 시작했다 관둘 거면 시작도 안 했어요. 한미FTA 협상이 실패하고, 협상 선결조건으로 축소된 스크린쿼터가 원상회복 되도록 있는 힘을 다할 거예요. 성공을 하면 더없이 기쁠테고, 실패한대도 양심에 떳떳하게 행동했다는 개인적인 성과가 남을 겁니다.”
지금은 일단 시작한 싸움을 지속하는 데 몰두해야 할 시기라는 그의 판단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어 보였다.
그럼 언제쯤이나 돼야 스크린 속에서 다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원래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성격이라 영화 작업은 미뤄두고 있는 상태”라며 “내년 쯤에나 차기작을 하게 될 것 같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본업인 영화배우에 대한 애정은 어쩔 수 없는 듯 “‘영화장이’인지라 좋은 작품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까봐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아예 읽지도 않고 있다.”며 “영화촬영 현장이 그립다.”는 간절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전정윤 한겨레신문 기자
사진제공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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